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 5:20)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돼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 3:24)
예장 합동 이대위가 지난해 예장 합동 총회에 제출한 ‘준비은혜론(회심준비론)에 관한 보고서’에서 개혁신학 준비(예비)은혜론을 “개혁신학이 아니다.”며 이단시하며 제시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1)
1) 회심준비론은 회중교회 신학이다.
2) 중생 이전 인간이 구원을 사모하게 된다는 주장
3) 율법의 기능에 의해 죄에 대한 애통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주장
4) 갈라디아서 3장 24절이 복음보다 율법을 먼저 선포해야 한다는 근거라는 주장
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2) 중생 이전 인간이 구원을 사모하게 된다는 주장”을 두고서는 내 글 <예장 합동 이대위는 정신병자들만 모인 집단인가?>에서 반론했다. 링크한다.
https://cafe.daum.net/reformedcafe/jMaU/271
예장 대신 조직신학 교수 신원균 목사와 {프랑스 신앙고백 해설} 같은 개혁교회 교리 해설서들을 펴낸 예장 대신 장대선 목사 역시 개혁신학 준비(예비)은혜론을 “개혁파(장로파) 신학이 아닌 회중파 신학이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 우리 개혁신앙의 선조 칼빈 선생님 가르침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제네바 요리문답} <227문답>에서 “…… 바울이 지적한 대로 율법은 죽음과 정죄의 직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 하시며 {제네바 요리문답} <228문답>에서 “첫째로, 율법은 …… 그들을 겸비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찾도록 준비해 줍니다. 둘째로, ……”라고 가르치셨던 우리 개혁신앙의 선조 칼빈 선생님….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할 글로서 칼빈 선생님 글을 또 옮긴다. 다음은 존 칼빈 선생님께서 ‘로마교 추기경 사돌레토’에게 쓰신 답신, [사돌레토에게 주는 답신]에서 옮기는 글이다. ‘{칼뱅 소품집 제1권} 박건택 편역 (경기: 크리스천르네상스, 2016)’ 547쪽이다. 문단을 나눠 ‘번호 ①, ②’는 내가 붙인다.
① 우리는 사람들에게 먼저 자신들을 살펴보도록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지 피상적이고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양심을 하나님 법정 앞에 세우기 위해서 하고, 자기 자신의 불의함을 엄격하게 확신하게 될 때는 모든 죄인에게 선포된 심판의 엄격함을 생각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리해 그는 자신의 비참함에 놀라고 당황해 하나님 앞에 부복해 엎드려 겸비하게 되고 자신감을 모두 벗어 버리며 마지막 멸망에 던져진 자처럼 신음하게 됩니다.
② 그때 우리는 우리 구원의 모든 부분이 완성되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 가운데만 유일한 안식처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장 합동 서철원파 Wolf 목사들ㅡWolf이철, Wolf만옥, Wolf진남, Wolf창모ㅡ처럼 딴(Wolf) 나라 독해력을 가지지 않은 이상, 우리는 ①에서 ‘죄에 관한 각성에서 오는 신음과 애통, 율법의 저주에 따른 공포’를 독해할 수 있다. 또한 ①과 ②에서 “복음보다 율법을 먼저 선포해야 함”을 독해할 수 있다.
죄가 없는 곳에는 은혜가 없기에(롬 5:20) 복음은 율법과 함께 간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께서는 ‘복음의 해설서’인 [로마서]에서 먼저ㅡ<1장>, <2장>, <3장>ㅡ ‘율법의 저주와 공포와 절망’를 선포하신 뒤 복음의 은혜(소망)을 선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순종으로 얻으신 의와 그 의의 전가’의 ‘이신칭의’를 선포하신다.
영국 국교회 제도를 반대해 선포하신 설교, ‘[장로교주의의 첫번째 공식적 부르심](1570년)’ 설교로 목사직과 신학석사 학위를 박탈당하신 뒤 제네바로 건너가 베자 선생님과 교제를 나누셨던 영국 토마스 카트라이트 목사님(1535년~1603년)은 1576년에 프랑스 위그노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해 장로교제를 조직하셨다. 즉, 이른바 “장로파” 목사님이시다. 다음은 ‘토마스 카트라이트 {기독교 총론} 김지훈 역 (서울: 신반포중앙교회 출판부, 2017)’ 101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문: 도덕법 교리는 복음 교리보다 앞섭니까?
답: 그렇습니다.
문: 왜 그렇습니까?
답: 왜냐하면 그것이 복음 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은혜언약이 하나님 안에 감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순전한 상태의 아담에게 도덕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문: 그렇다면, 도덕법을 먼저 사용해야 합니까?
답: 참으로 그렇습니다. 율법에 대한 첫 사용과 능력(vertue)을 생각할 때, 그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 죄가 무엇인지, 우리 죄가 응당 받아야 할 징벌을 보여줍니다.
개혁교회 정통 신학 ‘중생(회심) 전 준비은혜’를 다룬 이 글 제목에 ‘①’을 썼다는 것은 ②편도 쓰겠다는 뜻이다. ②편에서는 사무엘 루더포드 목사님 ‘준비은혜론’을 다룰 생각이다. 개혁교회 정통 신학 준비 은혜론의 한 부분으로서 ‘중생(회심) 전 율법의 정죄에 따른 공포(두려움)가 낳는 율법적 회개’를 다루는 글이다.ㅡ이 글만으로도 예장 합동 꼴뚜기파 목사들과 예장 대신 신원균, 장대선 목사가 준비은혜론을 두고 “회중파 신학” 운운한 게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논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②편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ㅡ
자칭 “맥도날드 신학자, 재야 신학자” 정이철 목사, 예장 합동 꼴뚜기 Wolf이철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7장: 하나님의 언약]과 [제19장: 하나님의 율법]에서 고백한 ‘행위언약’을 “이단 회중파 신학”으로 주장하며 이단시했다. 그런데 17세기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청교도 신학자이자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석하셨던 사무엘 루더포드 목사님(1660년~1661년) 역시 이른바 “개혁파(장로파)” 목사님이시다. 대표작으로는 ‘1644년에 출판한 {장로회들의 정당한 권리}’와 ‘1655년에 출판한 {생명언약 제1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생명언약 제2부: 구속언약}’이 있다. 참고로, 사무엘 루더포드 목사님께서는 ‘{생명언약 제1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안상혁 역 (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2018)’ [제15장]에서 ‘중세 로마교 준비주의의 중생 전 충족 은혜와 알미니안 준비주의의 중생 전 충족 은혜’를 반론하신다.
다음은 ‘토마스 카트라이트 {기독교 총론}’ 99쪽~100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문: 그밖에 또 어떤 것이 있습니까?
답: 율법은 가정교사 혹은 후견인으로 비유됩니다.(갈 3:24) 마치 후견인이 연령이 어린아이를 엄격하게 지키는데, 그 후견인 때문에 아이가 자신의 유아기를 벗어나서 아들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바라는 것처럼 동일한 방식으로 율법은 그 자체의 두려움과 엄격함을 통해 우리가 더욱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찾도록 우리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갈 4:2) 더 나아가 가정교사 혹은 안내인(Usher)이 아이의 발걸음을 인도하고 생의 여정들을 그에게 가르치며 그것에 의해서 아이가 그 후에 살아가는 것처럼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데려다준 뒤에도 이생에서 걸어가야 하는 그 길과 영생을 위한 것을 우리에게 지도해 줍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렇게 뛰어나고 가치 있는 두 가지 효과(effects)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께로 우리가 쫓겨 가도록 가하는 박차의 역할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갔을 때 어떻게 걸어야 할지 우리를 지도하고 가르치는 빛으로서 역할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정교사로서 율법은 우리가 율법을 성취하는 것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이해하게 하는 수단이 됨으로써 우리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율법의 일에 의해서 우리 자신을 율법의 저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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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댓글 최근에 올린 글들 몇 편은 시간대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어야 할 시간대다. 지금 이른바 “백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지난 3월에 제주도 출장(여행)과 지난 4월에 베트남 다낭 출장(여행)을 다녀온 뒤 7월부터 회사에서 날마다 거의 놀다시피 했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 수주 물량이 부족해, 부사장님께서는 생산직 직원들을 두 조로 나눠 1조는 9월 한 달 휴가, 2조는 10월 한 달 휴가를 명령하셨다. 입사 뒤 처음 있는 일로 성과급 없이 ‘얼마 되지 않는 기본급’ 지급 휴가였다.
Wolf이철이 자기 {페북} 담벼락에서 나를 직장 없는 이른바 “백수”로 말한 적이 있어서 노파심 때문에 올리는 댓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