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contemplation) 란?
관상이라는 말의 영어 단어인 컨템플레이션(contemplation)은 접두사 con과 templaion의 복합어이다. 템플레이션은 라틴어 템플럼(templum)에서 유래했는데, 템플럼(templum)은 로마인들이 예언을 위해서 하늘이나 땅 위에 지정된 공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은 후에 일반 장소와는 구분된 거룩한 장소라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temple 이라는 말은 성전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영어의 con이 '~와 함께', temple이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것임으로 contemplation은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관상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머물러 있는 기도라 할 수 있다. (시131:2) 1)
관상이란 단어의 한자어 풀이를 해보면 볼‘관’, 서로‘상’ 으로 서로 마주봄을 의미한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향하여 ‘내가 얼굴을 대면하여 아는 자’라고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기도이다. 고린도 전서 13장12절의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하나님을 아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성 그레고리는 “관상이란 순수한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 사랑으로 충만 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라고 했으며,
카톨릭 교회교리서 2724항에서는 “관상기도란 예수님께 우리의 눈을 고정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없이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는 기도이다. 관상기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는 것인 만큼 그리스도의 기도와 합쳐지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토머스 키팅은 “로마서 8장 26절의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는 말씀처럼 성령이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도록 나를 비워 드리고 우리는 그 기도에 동의하는 것이 관상기도이다.“ 라고 말한다.
고전적인 기도의 단계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계가 있다.
1) 구송기도(Vocal Prayer) : 이 기도는 입술의 기도라고도 하며, 말을 강조하고, 읽거나 노래로 한다. 아름답고 영감을 주는 기도문을 낭송하기도 하지만 자유로이 구송기도를 말한다.
2) 묵상기도(Meditative prayer) 또는 경청하는 기도 : 이 기도는 정신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과 그의 경이로우심을 생각하고 상상하고 성찰하고 숙고한다. 입술은 조용하나 정신은 이해와 통찰을 추구하며 활동적이다.
3)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 : 이 기도는 마음과 의지로 하나님의 현존을 향해 나아가는 기도이다. 입술과 정신은 쉬며 마음은 말없는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고 의지는 주님의 의지와 하나 되기를 추구하면서, 다만 단순히 주님을 응시한다. 관상은 ‘사람의 존재의 중심에서 알려지고 사랑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자각이다.’
관상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1) 습득적 관상 :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이 진정으로 현존하심을 아는 것으로 시작하여,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서 그분과의 접촉을 계속 추구하는 것이다.
2) 주부적 관상 : 하나님께서 대가없이 거저 주신 은총으로 , 기도할 때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현존에 대한 진정한 자각을 주신다. 예를 들면, 사랑, 평화, 기쁨과 같은 성령의 열매를 체험케 함으로써 그분의 현존을 자각하게 해주신다.
관상기도는 마음의 기도이다.
우리의 심장(마음)은 하나님께서 거처하시도록 창조되었다. 우리 심장의 가장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모상인 우리의 진정한 자아(정체성)가 있다. 여기에 그분께서 은총으로 머무신다. 우리 안에 머무시는 그분이 바로 우리 심장에서 솟아 넘쳐흐르는 참사랑의 근원이요. 샘솟는 살아 있는 은총의 원천이시다.
관상기도의 핵심은 내적 침묵이다.
토머스 키딩은 "침묵이 하나님의 첫 번째 언어이다. 그 나머지 언어는 잘못된 번역일 뿐이다." 라고 했고, 십자가의 성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 속에서 이 말씀을 듣는다." 라고 했다. 관상기도는 ‘침묵의 기도’, ‘쉬는 기도’, ‘단순한 하나님 현존의 기도’, ‘사랑의 집중 기도’, ‘잠심 기도’, ‘마음의 기도’ 등 다양한 이름들이 있다.
관상기도는 예수님의 기도이다.
예수님께서 새벽 미명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간 본성이 성령께 자신을 더 잘 열어 드릴 수 있는 환경과 조건(고독, 침묵, 기도 중에 깨어 있음)들을 찾으셨음을 의미한다. 당신의 아버지와 함께 지식과 사랑의 일치를 체험하기에 더 좋은 환경과 조건들을 찾으시고 그 조건들 속에서 살려고 애쓰신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이런 침묵기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기를 배웠고, 그 뜻에 순명하기를 배웠다. 그분은 이런 기도 중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그분은 기도 중에 사랑으로 당신 아버지를 아셨다.
2. 관상기도의 열매
관상기도의 열매와 은혜는 기도하는 그 시간보다 기도 시간밖에, 즉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어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 준다. 기도가 빈약하더라도 기도 시간 밖에서 저절로 하나님의 현존을 기억하게 되므로 생활 전체를 변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1) 관상기도는 인격적 변화를 가져온다.
“관상을 수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관상이, 보는 이들 모두의 눈에 그들을 매력적으로 비치게 만드는 만큼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신에도 좋은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가장 추한 사람도 은총으로 관상가가 되면 자신이 갑자기 달라지면서 그가 만나는 선한 사람마다 즐겁고 기쁘게 그와 우정을 나누고자 할 뿐 아니라, 그와 사귐으로서 영적으로 새로워지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무지의 구름 저자)
“만약 당신이 일 년 동안 하나님의 현존 안에 살고 또 노력한다면, 일 년이 끝 날 무렵이면 당신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당신이 완덕의 정상에 도달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2) 관상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더욱 더 진실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 그분의 현존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진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의 크고 작은 속임수들과 겉치레와 허세, 관습이라는 가면 뒤에 있는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배운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거짓 태도와 거짓 자아의 인위적인 것들을 점차로 벗어나서 성실과 진실 안에서 성장한다. 우리가 자신에게 성실하면 할수록 더 성실한 인간이 되고 더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실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더 진실하게 되고 사물에게도,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도 더 진실하게 된다.
3) 관상기도는 우리를 하나님화 한다.
우리가 일편단심 그분의 ‘거룩한 현존’을 추구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게 되며, 그분을 알게 되고 그분으로 가득 차게 되어 점점 그분과 같아지고 그분과 하나가 된다.
4. 관상기도를 해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들
1) 우리는 좋은 지향을 가지고도 극복할 수 없는 습관적인 결점과 약점(조급한 비판, 화내기, 적대감, 우울증 등)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결점들은 우리 자신과 이웃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평화를 깨뜨린다. 관상기도를 통하여 침묵과 승복 중에 성실하게 하나님을 추구한다면 이런 결점들의 영향력이 점차로 약화되고, 결점들 자체도 점점 줄어들게 된다. 관상에서는 아무리 성스러운 사람이라도 자신 안에 남아있게 되는 죄의 뿌리와 근원을 제거하게 된다.
2) 관상기도는 긴장감과 신경과민성을 크게 줄여 준다.
3)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인간 영혼의 치유’ 와 사랑의 움직임을 점검하기 위한 시간이 된다.
4) 철저한 개인 기도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