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미술관] 2016-08-24>
달처럼 차고 기우는 예술작품들의 ‘운명’
심혜리 기자
과천 국립현대 30년 특별전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품 ‘다다익선’(1988년)을 중심으로 작업을 한 이승택의 설치작품 ‘떫은 밧줄’(2016년).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잘 알려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립미술관으로 과천에 자리 잡은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시대 3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는 차고 기우는 달처럼 예술작품도 제작 후 유통, 소장, 전시, 보존을 거쳐 소멸·재탄생하는 과정이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다. 소장품전을 통해 잊혀진 작가를 재발굴하고, 작품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펼쳐놓는다.
■ 수장고 속 작품들 세상으로
전시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수장고에만 머물며 주목받지 못한 작품을 전시장에 내보이는 ‘발견’, 소장품과 짝지을 수 있는 작가들의 신작이나 소장품을 재해석하는 ‘해석’, 재미난 뒷이야기를 지닌 소장품을 들여다보는 ‘순환’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고는 3899㎡다. 미술관 전체의 약 10분의 1 규모다.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보다 몇 배나 많은 작품이 수장고 안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낸다. 오랜 기간 전시되지 못한 작품들 중 재조명할 만한 작품들이 나온 ‘발견’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작가들이 눈에 띈다.
박기원의 ‘도원경’.
이야기를 하며 그네를 타고 있는 여성의 영상작품인 김영진의 ‘잭키의 그네’ 등이 대표적이다. ‘잭키의 그네’는 제작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다소 섬뜩한 모노드라마, 아방가르드한 실험극처럼 보인다. 뉴미디어 아티스트인 김영진은 연극과 미술의 교감을 통해 현대미술에서의 탈주체, 정체성, 여성의 문제를 환기하고 있다.
‘발견’에서는 이외에도 1990년대 후반에 제작된 고낙범의 ‘포트레이트 뮤지엄-신체에서 얼굴로’, 코디 최의 ‘원반 던지는 사람’과 ‘생각하는 사람’, 198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정병국의 ‘의지있는 아다지오’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김영진의 설치작품 ‘잭키의 그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캠버스 뒤에 또 다른 그림이
'순환’에서 볼 수 있는 손동진의 제목 없는 추상화 캔버스 뒷면엔 또 다른 그림이 있다. 회색과 붉은색의 비정형 이미지들로 이뤄진 앞면의 그림 뒤쪽에 보색인 녹색이 주를 이루는 추상화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항상 정면만을 향하고 있는 작품의 뒷모습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근대 여성화가 첫 세대인 박래현의 ‘노점’도 나왔다. 노점의 아낙들을 담은 작품은 동양의 평면성과 반추상성을 결합시킨 그림으로 전통적 동양화와는 여러 면에서 달라진 화풍이 확인된다. 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6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구입·소장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1971년 10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이번 특별전은 장르를 넘나들며 국내외 작가 300여명의 소장품과 신작, 각종 자료 등 56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은 7840점, 과천 이전 이후 30년간 수집한 작품은 전체 소장품의 74%에 이르는 5834점이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정신대’(1997년·사진 오른쪽 위로부터).
전에서는 본전시 외에 퍼포먼스, 전시 설명회 등도 함께한다. 한국 전위예술 1세대인 김구림의 참선 퍼포먼스,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천 정착 과정을 다룬 ‘아카이브 프로젝트: 기억의 공존’ 등이다. 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경복궁 옛 조선총독부박물관에 문을 열었다가 덕수궁을 거쳐 1986년에 과천으로 신축·이전했다. 전시는 내년 초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