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뇌신
어머니는 밤마다 뇌신을 먹었다
쓰디쓰고 희디흰 가루약
정신의 밥
감기약 판피린을
무슨 음료수처럼 마시는
균이 엄마와 더불어
이미 중독된,
세상 모든 어머니의 절망은
뇌신의 이름으로 사라지고
뇌신의 이름으로 용서되었다
무덤 속의 어머니
뇌신을 못 먹으니 어쩌나
뇌신 없는 극락일까
지옥일까
나 어느새
어머니 뇌신의 나이가 되었으나
쓰디쓴 정신의 흰밥이 없다
-{동서문학}(2004. 가을호)
* 그래요, 그 시절에 우리의 어머니들은 두통약 뇌신을 즐겨 드셨지요. “쓰디쓰고 희디흰 가루약”, 그 “정신의 밥”을 말입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절망은
뇌신의 이름으로 사라지고
뇌신의 이름으로 용서되었다
마약 중독자가 때가 되면 미친 듯이 마약을 찾듯이, 알코올 중독자가 때가 되면 미친 듯이 술을 찾듯이. 뇌신을 먹어야 비로소 이마의 주름살이 펴지던 어머니의 고통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혼자서 삭이고 혼자서 앓으면서 모진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우리 어머니였습니다. 그래서 이원규 시인은 무덤 속 어머니가 뇌신을 못 먹으니 어쩌나, 걱정이 다 되었던 모양입니다. 어느덧 내가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그만한 고통도,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입에 틀어넣을 “쓰디쓴 정신의 흰밥”도 없는 것이 한스럽다고요? 마지막 연이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첫댓글 전 일을 하면서 뇌신, 뇌선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도 꼭 뇌신만 찾는 어른이 계셔서, 호기심으로 그분들의 "쓰디쓴 정신의 흰밥"을 읽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