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홍수 막으려고 시냇가엔 방죽이라/ 김장밭에 들어가는 개닭 막는 개바자요/ 수수깡 갈대풀로 촘촘하니 울바자라/ 대로 엮은 대울타리 돌로 쌓은 돌담이요/ 흙돌 반죽 돌죽담에 꽃수 놓은 예쁜 꽃담/ 깨진 기와 담에 박은 디새죽담 보기 좋네/ 돌멩이를 배 맞추어 마주 쌓은 맞담이요/ 석비레로 쌓았으니 이름조차 석비레담/ 담벽 아랜 수북하게 돌무더기 밑뿌리요/ 작은 돌을 포갰으니 보말담이 그것이라/ 자갈돌을 쓸어모아 차곡차곡 사스락담/ 일년 농사 물 대주는보를 막아 봇둑일세…
- 이동순 '담타령' 중.
'흙돌 반죽 돌죽담에 꽃수놓은 예쁜 꽃담'이란다. 예부터 집의 벽체나 담장에 여러 무늬나 글씨를 놓아 독특한 치레를 한 담을 가리키는 이 순정한 말. 그 꽃담을 찾아 길을 나선다.
- 익산 조해영 가옥
'십장생' 꽃담에 담은 배려의 마음
익산 함라면 함열리 수동(壽洞)마을. 이 마을 담장들은 이젠 '익산 함라마을 옛 담장들(등록문화재 제263호)'이란 이름으로 문화재가 되었다.
“예부터 인심은 여그만 한 디가 없어. 노래도 안 있는감, '인심은 함열'이라고, 여그가 바로 거그여. 예전 여그 큰 부자들은 만석꾼이었어. 그래도 속이들어 지 속만 채우덜 않고 배고플 때 집 헛간 풀어 노놔묵고 했제.” 동네 할매들의 자랑이 한량없다.
“여그가 친정이요. 산천초목 좋고 공기 좋고 솜씨 좋은디여. 그래서 어디나 있는 담장도 여그는 다른가 문화재가 돼서 천지서 와싸요.” 할매들의 말처럼, 어디나 있는 담장도 여기는 좀 다르다.
조해영 가옥(전북문화재자료 제121호)으로 들어선다.
1918년에 지어진 이 집은 '열두 대문 집'이라 불릴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던 곳. 지금은 사랑채와 안채가 이어진 몸채와 일본식의 별채, 문간채만 남아 있다. 집 입구마당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조선중기의 실학자로 대동법(大同法)의 시행을 주장했던 영의정 김육(1580~1658)의 불망비(不忘碑). 임종에 이르러서도 백성들을 위해 대동법의 확대를 유언으로 남길 만큼 백성을 생각했던 그이의 마음에 대한 이곳 함라 사람들의 고마움을 담은 비다.
‘ㄱ’자 모양의 긴 사랑채 지붕합각에도 기와로 피워낸 꽃 한 송이 하늘 향해 피어나 시간의 향기를 품고 있다. 그 작은 공간에도 소홀함 없이 꽃 한 송이 피워 놓은 장인의 마음자리가 오늘 이렇게 눈길을 붙잡는다.사랑채를 돌아서니 십장생(十長生) 문양의 꽃담이 자리한다.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는 벽돌담에 학, 사슴, 거북, 대나무, 소나무, 해와 구름, 영지, 포도, 연꽃 등의 문양을 새긴 전돌[文樣塼]을 회벽에 붙여 놓았다. 예전 이 집의 주인이던 조해영이 경복궁 대조전 뒤뜰에 있는 굴뚝의 꽃담을 본떠 만든 것이라 한다.
사랑채와 대문을 드나드는 낯선 이들의 시선으로부터 여인들이 기거하던 안채를 가리고 집을 아름답게 꾸밀 목적으로 둔 것이지만, 이 꽃담에는 집주인의 또 다른 배려가 담겨 있다. 대문을 들어선 손님들에게 제일 먼저 ‘꽃담’을 선사해 경계심을 풀어 편안케 하고, 식구들과 더불어 이곳을 찾는 이들 모두가 장수의 복덕을 함께 누리길 기원하였던 것. 모두를 위한 배려를 품은 꽃담인 것이다.
마을 곳곳을 돌아보니 눈길 닿는 곳마다 소박하고 정갈하다. 서로 다른 돌죽담과 돌만으로 쌓아놓은 강담들이 길게 이어져 골목을 이루고, 겹겹이 차곡차곡 쌓은 사스락담은 이 마을이 품은 솜씨를 여실히 보여준다.
- 익산 김안균 가옥
키 높은 담장에 피어난 살뜰한 마음
담장 둘레만도 300m가 넘고 전북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김안균 가옥(전북민속자료 제23호)의 높다란 바깥벽 디새죽담에도 기와를 박아 피운 꽃이 있다. 1922년 이집을 지을 때 단조로운 담에 눈썰미 깊은 토공이 솜씨를 낸 것이리라. 줄지어 비스듬히 켜켜이 누인 기와조각들이 늦은 봄날 흩날리는 꽃잎인 양 담장 벽 한쪽을 물들인다. 집 안쪽 담에도 암키와로 긴 줄기를 대신하고 수키와 두 장으로 꽃송이를 피워냈다. 뉘라서 저 소박한 꽃 앞에 무심히 지나칠까. 골목에 새겨 놓은 저 꽃은 집 앞을 지나는 이들에게 자칫 키 높은 담이 줄 수도 있을 위압감을 덜어주려는 살뜰한 배려였다. 또 내 집을 감싸고 건물과 조화를 이룰 담장에 대한 예의의 표현이기도 했다. 모두를 위한것이고 보면 옛날의 공공미술인 셈이다. 우리나라 한옥의 담장은 '내 집'을 구분하기 위한 공간분리의 역할보다는 집 전체를 아늑하게 감싸면서 건물 외의 공간으로 장독대와 텃밭을 만들어 건물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역할이 더 컸음을 이곳 김안균 가옥의 담장에서 살필 수 있다.
- 임실 녹천재
수복(壽福), 부(富), 아(亞)에 담은 축원
겨울 농한기에는 집집마다 쌀엿을 만드는 임실 삼계리. 지명보다 '쌀엿'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다'는 세심(洗心)천을 따라 삼계면 삼계리 탑전마을에 다다른다.
한자(漢子)문양 꽃담이 있어 찾아나선 '녹천재(鹿泉齋)'는 창녕최씨 문중의 사당으로 함정(陷穽)들이 펼쳐진 산자락 아래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걸린 '녹천재중건기(鹿泉齋重建記)'에는 <이 산이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는 형상이라 하여 산 아래 샘을 파고 녹천재라 이름하고, 1921년에 새로이 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솟을대문을 두고 양 옆 낮은 담장에 다양한 한자문양이 베풀어져 눈길을 끈다. 좌우 디새담에 기와로 연꽃, 청룡, 태극을 비롯해 壽福(수복), 富(부), 亞(아) 등의 글자가 구획을 이뤄 빼곡히 새겨져 있다. 사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靑龍(청룡)'이란 글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이곳이 청룡과 백호의 기운으로 잘 지켜지길 바랐던 걸 짐작할 수 있다.
또 10여 개가 넘는 '亞'자에는 조상의 묘실을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어 자손이 부귀와 수복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냈다.
임실 신평면 대리마을의 영모재(永慕齋) 담장에도 꽃담이 펼쳐져 있다. 큰 가지마다 커다란 꽃봉오리를 매단 채 오늘도 환하게 이곳을 밝히고 있다. 안쪽에는 기와로 만(卍)자를 새겨 놓았다.
- 정읍 김동수 가옥
겸손으로 지어낸 꽃담
정읍 산외면 오공리 공동마을에는 소박해서 더욱 빛나는 꽃담이 있다. 이 마을에는 1784년에 지어진 99칸 부잣집의 대명사로 불리는 김동수 가옥(중요민속자료 제26호)이 자리하고 있다.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는 김명관(1755~1822). '지네[蜈蚣]'의 형상을 닮아 명당으로 꼽히는 이 터에 1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정성을 다해 집을 지었다.
평평하고 너른 공간에 자리한 집에 제각각 작은 벽과 건물을 배치해 칸살이의 쓰임에 따라 오밀조밀하게 나눠놓은 공간의 실용성에 눈길이간다. 그래서 여느 집과 달리 'ㄷ'자 모양의 안채에도 각기 독립된 부엌을 나란히 끝자리에 배치해 접근성과 독립성을 살렸다. 이는 여성들의 노동을 줄이고 고부간의 역할에 따른 영역을 나누고자 한 것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당 사이에는 낮은 벽을 두고 불필요한 외부의 시선을 막아 독립된 공간을 만든 점 등도 눈에 띈다. 또 이 간벽에 문양을 베풀어 검박한 치장을 함으로써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함께 담아냈다. 또한 여느 집들이 권위를 높이고자 사랑채나 안채의 기단을 높여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것과 달리 이 집에는 별도의 기단이 없다. 경계돌만을 놓아 겸손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겉으로 보이는 허식보다는 실용성과 소박함을 담아내고자 한 뜻이다. 김동수 가옥과 나란히 이웃한 고택의 돌죽담에도 균형과 절제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꽃담이 있다.
안팎에 각기 다른 모양의 꽃들을 새겨 놓았다.
- 정읍 영모재
기쁨이 두 배 되는 '쌍희(囍)'자 새겨
정읍시 외곽 진산동에 자리한 영모재(등록문화재 제213호) 솟을대문의 화방벽에도 3개씩의 '쌍희(囍)'자를 양옆으로 쌓아 솜씨를 부려 놓았다. 예로부터 '희(囍)'자는 실제 문장에는 사용되지않지만, 기쁨이 두 배가 된다는 의미로 읽혀 의복, 각종 그릇과 가구 소품 등의 공예품이나 생활용구, 건축의 문양과 도안에 적극 활용되었다. 일상에서 늘 '기쁨과 복'이 함께 하길 바랐던 간절한 염원이 깃든 셈이다. 1915년에 세워진 솟을대문 안쪽의 양벽에는 민화풍의 벽화가 가득하다.
산수화를 비롯해 소나무 아래 까치와 호랑이, 까치와 표범, 연꽃이 활짝 핀 물가풍경, 대나무와 봉황, 해태와 사자, 거북과 현무, 소나무와 토끼, 청룡과 황룡, 사군자, 포도와 참새 등 그 종류와 표현이 다양하다. 그림들은 저마다 의미를 담고 있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 상서로운 기운이 깃들길 기원하고 늘 기쁨과 풍요로움이 가득하길 바랐다. 더불어 자손들의 대와 번영이 끊기질 않기를 그림 속에 담아냈다.
- 고창 송양사
이 꽃 보고 늘 기쁜 일 가득하길
송양사(松陽祠) 입구 풍욕루(風浴樓), 그 누각에 오르면 '바람'에 욕심도 근심도 잠시 씻을 수 있다. 고창 해리면 송산리 너른 들을 굽어보고 있는 송양사(전북문화재자료 제163호)는 고려시대 문신인 성사달(成士達, ?∼1380) 등이 배향된 창녕성씨 문중의 사당이다. 풍욕루 양 옆으로 펼쳐진 담장엔 '쌍희(囍)' 글자와 꽃봉오리들이 대칭을 이루며 피어나 꽃담을 이루고 있다.
송양사의 중심건물인 경현당(景賢堂)은 '선현들의 바른 뜻을 우러러 잇고자 한 뜻'을 담은 곳으로, 문중의 자제들을 모아 공부를 시키는 학당(學堂)이었다. 이곳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사당의 단정한 맞배건물 화반에 조각된 학과 사슴도 살펴보시길.
- 고창 김성수 별장
화분에 심어진 꽃 담은 독특한 문양
울울한 숲길 사이로 물길은 끊이질 않았다. 고창 선운사(禪雲寺). 그곳에도 어김없이 동백숲길따라 꽃담이 펼쳐져 있었다. 선운사 후원 바로 옆 차밭 사이로 난 좁은 산길을 따라 10여 분 정도 오르니 커다란 솟을대문이 서 있다. 건물은 오래전 화재로 소실되고 문간채만 남은 이곳은 인촌(仁村) 김성수(1891~1955) 집안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솟을대문을 중앙에 두고 '기쁠 희(囍)'자와 '버금 아(亞)'자를 투박하게 새겨 두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그 어느 꽃담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문양의 꽃담이 있다. 커다란 화분에 심어진 꽃은 가지를 넓게 벌린 채 꽃봉오리를 형형하게 달고 있다. 담 앞에 심어진 목련꽃 모습인 양눈길이 머물게 된다. 바깥의 투박한 꽃담과 비교되는 화려함으로 색다른 정취를 느끼게 한다. 시간은 덧없이 흐르지만, 저 꽃담들엔 꽃이 여전히 피어 있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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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감상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