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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30여년 금융계 외길을 걸어온 하용이 한국은행 연수원장은 ‘계산적이고 딱딱한 인상’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었다. 그의 밝고 행복한 웃음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기분을 전한다. |
중2때 친구집에 놀러간 소년이 우연히 한 스님으로부터 전해들은 ‘화두’가 있었다. ‘유리병 속에 갇힌 부화된 새를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스님은 또 ‘어제의 일, 10년 전 일을 기억하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에게 ‘그럼 왜 태어나기 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가’라고 물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불교에 대한 관심은 경기고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학생포교단체인 ‘룸비니’로 달려간 계기가 됐다. 불꽃 튀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당시 조계종 종정이자 룸비니 학생회 ‘총정’인 청담스님은 고3생들을 모아놓고 공부를 격려하는 ‘축복게’를 내렸다.
‘수여허공 무시종 복내우주 비유무(壽如虛空 無始終 福乃宇宙 非有無).’ 소년은 이렇게 해석했다. ‘시작과 끝이 없는 허공처럼 오래살고, 있고 없음이 없는 우주처럼 큰복을 받으라’고. 35년이 지나고, 중년의 나이가 지긋해진 지금에야 청담스님의 축복게를 곧은 눈으로 다시 음미한다. ‘중생의 목숨은 허공과 같아서 시작과 끝이 없고, 복 또한 우주에 가득하니 있고 없음이 없다. 다만 본인의 업력에 따라 다를 뿐.’ 그는 진리의 참뜻을 제대로 바라보는데 30년이 넘게 걸렸다며 또다시 30년 후에는 더 깊은 ‘깨달음’에 눈을 뜨고 싶다고 했다. 하용이(河龍二, 54) 한국은행 연수원장. 지난 15일 서울 남대문로 3가에 있는 한국은행 본점에서 그를 만났다.
37년 룸비니 16년 금융권생활서 맺은
법사 선후배 도반이 모두 훌륭한 스승
듬직한 몸체, 둥글둥글한 생김새에 맑은 눈빛 환한 웃음을 띤 그는, 가슴속에 행복한 심장을 하나 따로 달고 있기라도 한 듯 생그럽다. 나이 50줄이 훨씬 넘고 은행살이만도 벌써 30년이 돼가는 그의 삶에 어떤 기운이 담긴 것일까. 하 원장은 암울한 시대를 살며 흥망성쇠를 다 겪고 흙으로 돌아간 모친을 떠올렸다. “물론 기복이 짙게 느껴지지만, 어머니의 쉼없는 기도와 발원으로 당신이 평정을 얻으셨듯, 지금까지 제가 그 덕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살림에도 전국을 돌며 대소불사에 공양을 하시며 고교입시를 앞두고는 북한산 국영사에 〈금강경〉을 보시하셨고, 관악산 연주암을 셀수없이 오르면서 기도를 아끼지 않으셨던 내 어머니…”
어머니의 신심은 아들의 불심을 싹틔우는 씨앗이 됐고, 이후 하 원장은 줄기차게 ‘부처님’을 찾아다녔다. 룸비니 법회서 간부소임을 끝으로 고교를 졸업하고 1971년 서울대에 입학한 뒤, 불교에 대한 그의 갈증과 욕구는 더욱 커졌다. 고등시절 그에게 자운(慈雲)이란 법명을 준 청담스님은 대학에 합격한 룸비니 법회 학생들을 조계사에 불러모아 주옥같은 법문으로 삶의 방향을 제시했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이 납니다.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자마자 조계사로 달려간 우리들에게 청담 큰스님은 통행금지 직전까지 자상하게 법문을 해주셨지요. ‘우리 마음에 온 우주가 있다’는 가르침은 어린 우리들이 선뜻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때는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닫기라도 한 듯 참으로 뿌듯하고 풍만한 마음에 젖었지요.”
대학생이 돼서도 룸비니 법회서 대학부를 이끌었던 하 원장은 1971년 청담스님이 열반에 들자, 이듬해 여름방학에 대학생부 신임간부들과 룸비니 총정직을 수락한 성철스님을 만나기 위해 해인사 백련암을 찾았다. “성철스님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영문잡지에 나온 영매(靈媒)이론 등을 두루 인용하시면서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마음이 지극하면 물질도 움직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셨지요. 큰스님에 따르면 정신력을 무한하게 키우는 것이 깨닫는 것인데 그것은 착한 일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요. 스님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착한 일은 남을 돕는 것이라고 하셨죠. 어찌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법문이지만, 그 뻔한 진리에 제대로 눈을 뜨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더욱 절감합니다. 아… 한여름 깜깜한 밤중에 큰스님의 제자인 원택스님이 밝혀준 손전등 하나에 열여섯명의 ‘도반’들이 의지하면서 사하촌으로 내려오던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대학시절 사찰을 찾아다니면서 신심을 돋우고, 스님들을 만나 법(法)을 공부해온 하 원장은 “불법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슴 가장 가까운 자리에 가장 쉬운 모양으로 살아있다”며 “문제는 실천 여부”라고 잘라 말했다. “성철스님은 ‘하심(下心)’을 강조하시면서 아주 쉽게 설명해주셨어요. 좋고 영광스러운 것은 늘 남에게 미루고, 나쁘고 욕되는 일은 남모르게 내가 둘러쓰는 것이 수도하는 사람의 행동이라고요. 세상 모두가 내 옳고 네 그른 싸움판이니, 내 그르고 네 옳은 줄만 알면 싸움이 영원이 그치게 된다는 육조스님의 법문도 참으로 와닿습니다.” ‘하심’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깊이 깨달아 내가 옳고 네가 그름을 버리고, 나의 허물, 나의 잘못을 언제나 꿰뚫어보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사진설명: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석굴암 지폐’ 부스 앞. |
쉼없이 자기를 살피고
끊임없이 자기를 해방시켜
자기에게서 벗어나는
방법 일깨워주는
‘일체유심조’ 화두 삼아
매순간 최선 다할 터…
이런 정신은 사실 현실적인 직장생활에서도 중요하다. 하 원장이 그의 직장 안에 ‘불교’라는 우물을 파게 된 이유다. 16년 전 한국은행 인사부 과장으로 있을 무렵부터 한국은행 불교회 살림을 도맡아온 하 원장은 매주 금요법회를 비롯, 수련수계법회, 용맹정진법회, 성지순례 등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여타 직장불교회에 모범을 보였다. 특히 1997년 IMF 이후 금융가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올 때도 금융계 동료 선후배들과 수행과 신행을 실천하면서 신심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지난 1월 한국은행불자회 회장으로 취임한 하 원장은 수년간 공부해온 부처님의 가르침을 테스트할 겸 포교사고시에 응시, 마침내 조계종 포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37년의 룸비니 생활과 함께 16년의 한국은행불교회와 전국금융단 불교연합회 인연공덕으로 알게 된 모든 스님과 법사님, 각 은행 간사님, 선후배 동료 도반들 모두가 나의 허물을 깨쳐주는 거울이자 스승입니다. 지금까지 천번 넘게 오르고 있는 관악산 연주암과 룸비니회관, 한국은행도 제게 있어서는 수행도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남은 삶 30여년도 더욱 참회하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이 소중한 인연공덕을 아름답게 쌓아가고 싶습니다.” 수년간 수행정진하면서 신행과 포교의 길을 걸어온 하 원장은 한국은행 내에 꾸려진 자원봉사회서도 남모르게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다. “모든 것의 근원이 자기 마음에 있음을 알고 자기 마음을 연구하고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마음공부인 것 같아요. 쉼없이 자기를 살피고 끊임없이 자기를 해방시켜 자기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을 화두삼아 날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지요.”
하 원장은 1968년 처음 ‘룸비니’를 통해 불교에 입문했을 때만도 ‘머리 좋은 사람만이 불교를 안다’는 착각과 치기어린 오만방자함이 전부였다고 회고했다. 고등법회에 참여한 그에게 한 법사가 ‘대통령감’이라며 농담삼아 건넨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해진 바람에 빠짐없이 법회에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욕심 많고 어리숙한 어린아이를 앞에 두고, 밤낮없이 불법을 전해준 스님과, 두 손에서 놓지 않았던 불경 덕분에 오늘날 자신이 여기까지 왔다며 매우 만족해했다. 그 해맑고 행복한 웃음은 그의 곁에 살고 있는 수많은 도반과 가족, 그리고 그와 인연맺은 모든 이들에게도 훈훈하게 전해지리라.
직장불교 활성화 ‘산파’
1952년 부산서 출생한 그는 경기중ㆍ고를 졸업하고 1977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경기고 시절 학생포교단체인 ‘룸비니’에 입회해서 청담ㆍ성철스님 등의 지도를 받았고 대학생부회장, 법도회회장 등을 맡으며 전법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1977년 한국은행에 입사, 총재비서실과 인사부 정책기획부 등에서 활약했다. 1984년 프랑스 파리사무소에 파견근무를 나갔을 때 한국은행 불교회가 창립됐다.
이후 1989년부터 한국은행 불자회 간사직을 맡으면서 17년간 한주도 거르지 않고 법회를 봉행하고, 창립 20주년을 맞은 지난 2003년에는 회원 각자의 발원을 담아 1000일 기도에 입제하는 등 신심깊은 신행활동을 주도했다. 이에 앞서 1999년 한국은행 광주지점 부지점장으로 있을 때는 광주 문빈정사와 무각사 등의 거사림회 법사와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쉬지 않고 전법에 전념해왔다.
지난 1월 한국은행불자회장으로 취임한 하 원장은 이외도 직장불교 활성화를 위해 제방 스님 및 동국대 교수 등과 〈법화경〉 〈금강경〉 〈계초심학인문〉 등 경전공부를 추진했고 성남 자광원과 의정부 선재동자원 등을 후원하는 등 모범적인 신행활동을 선보였다. 한국은행 대외협력팀장과 정책기획국 수석부국장을 거쳐 현재 한국은행 연수원장을 지내고 있는 하 원장은 전국금융단불교연합회 운영위원, 봉은사 신도회 부회장, 한국은행 자원봉사회 부회장, 사단법인 룸비니 수교단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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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