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옆방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에 잠이 깹니다.
누워서 한참을 듣다 자다 듣다 일어납니다.
낮에도 깜깜한 방, 실컷 자고 밖을 나오니 아침 햇살이 찬란합니다.
마당 큰 솥의 물을 떠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합니다.
햇볕이 잘 드는 벽에 은박시트를 붙이고 그 아래에 앉습니다.
온도가 20분만에 13도에서 50도까지 올라갑니다.
와~ 태양에너지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가만히 앉아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맨 얼굴을 들어 충분히 해를 받고, 해를 먹고,
실눈을 뜨고 햇살을 보고.. 시력을 회복시키는 방법입니다.
더워서 목도리를 풀고, 더 더워서 조끼를 벗고, 돌아앉으니 등이 따끈해지면서 땀이 납니다.
자하산방은 에너지를 최소화 하는 생활을 합니다.
낮에는 햇볕받아서 따뜻이 지내고 자연빛으로 책 읽고,
밤에는 한촉으로 불 밝히고.
밥은 하루에 한끼만 먹어 자연단식을 하고..
오늘 쓸 나무를 하러 갑니다.
나무를 던지고 도끼로 자르고 외발손수레에 싣고.. 때죽과 손발 맞춰 하던 일을 자하 혼자서 다 합니다.
여울각시는 그저 서서 바라보기만 합니다.
나무를 한트럭씩 하는 시골사람들이 매일 매일 하루 쓸만큼만 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합니다.
어떤분이 땔감 나무를 많이 하다가 죽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도 시골사람들은 나무를 집채만큼 해 놓고 삽니다.
일을 위해서 사는지, 사람이 사는데 최소한 필요한 것이 얼마만큼인지..
가치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약을 만들 나무를 하러 갑니다.
여울각시가 자연휴양림을 다녀온 다음날부터 등과 배에 쿡쿡 찌르면서 아픕니다.
여드름같이 도돌도돌한 것이 거미류에 여러번 물린 듯 합니다.
자하산방 온 날부터 시어버터연고를 아침 저녁으로 발랐더니 더 이상 번지지 않고 좀 낫기는 했는데
아직도 쿡쿡 찌르는 것이 문제가 있나 봅니다.
그래서 동의보감에 나오는 대로 약을 만들어 써보기로 합니다.
모든 염증치료에는 소금이 가장 강한 약이라... 소금나무를 베러
붉나무를 잘라와서 냄비에 넣고 무쇠솥안에 넣어 중탕을 합니다.
시커먼 물을 맛보니 쓴맛과 단맛이 납니다.
3시간을 다려서 물이 다 졸아들고 난 후 막대기로 바닥을 긁어모으니 까만 고약이 됩니다.
옛날 고약을 떼어내어 성냥불에 녹여 붙이던 생각이 납니다.
약을 만들어 쓰고 나니 오후3시가 되었습니다.
된장풀고 미역과 떡국, 어묵을 넣어서 끓여서 오늘의 한끼식사를 합니다.
적정기술로 만든 난로를 보며 용도와 방법, 효율성에 대해 설명을 듣습니다.
공동육아 아이들과 함께 만든 티피안에 있는 난로, 마당에 큰 벽돌 몇장으로 만든 난로,
마당한가운데 가마솥에 나무를 넣어 큰 솥을 올려놓은 난로..
굴뚝이 없을 때와 있을 때..
아이들은 불놀이를 좋아해서 가족캠프 아이들도 불놀이만 하다 갔다고 합니다.
이야기숲 아이들 생각이 납니다.
저녁에는 대건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를 마시로 오셨습니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허리가 아픈 대건이 어머니가 뜨끈한 방에 누워 허리를 지집니다.
매일 매일 일만 하느라 세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고,
아이 셋을 낳고 일주일만에 일을 하느라 산후조리를 못 한 일,
오빠가 반대할 때 결혼을 하지 말걸..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다는 말..
이런 저런 하소연을 합니다.
여울각시는 옆에 앉아서 듣기만 하는데 늘 씩씩하고 야무지던 대건이 어머니가 애처롭게 보입니다.
마루에 나와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십니다.
프랑스 장인이 만든 수프라 난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으면서 홀리는 듯합니다.
차를 마시면 몸이 풀린다는 대건이 어머니를 위해 특별한 보이차를 우립니다.
연한차, 기운이 강한 생차.. 모두 땀이 나고 몸이 후끈해 집니다.
화장실에 갈 때 마다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쏟아질 듯 합니다.
별자리가 얼마만큼 움직였는지를 보고 시간을 짐작합니다.
자기전에 고약 바른 곳을 보니 부풀었던 곳이 푹 꺼지고 배쪽은 거의 다 나았습니다.
몇번 더 바르면 나을것 같네요.
참 신기하기도 하고 전통의학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동의보감을 공부하고도 실제로 쓰지를 못했는데..
도시에 있었으면 병원에 가고 항생제만 잔뜩 먹었을 걸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실사구시’ 쓰지 못하는 공부는 모두 헛공부이거늘..
해지기전에 씻고 아궁이마다 장작을 넣어두고 바깥갈무리를 하고
마루에 초하나 키고 난로불보며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십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은, 가만히만 있어도 좋은.. 하루중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동양라디오 마지막날 황인용 아나운서의 울먹이는 마지막 인사,
옛날 노래에 옛날 우리들의 삶도 함께 엮어져 나옵니다.
방에 누워서 노래를 듣다가 잠이 듭니다.
노래소리에 잠들고 노래소리에 잠이 깨니 ‘자고 깨고’가 자연스럽에 이어지는 듯합니다.
아침 마루 활활 타오르는 난로불에 몸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곶감과 모닝커피를 마십니다.
인디언식으로 내린 원두커피를 타서 큰잔으로 마시니 구수하고도 향기롭습니다.
난로옆에서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고..
떠나는 날이라 정리를 합니다.
방도 정리하고, 찻잔도 닦아놓고 차호, 주전자도 씻고 찻상을 덮어두고
아궁이마다 재를 퍼내고 불씨를 확인하고
난로주변을 쓸고, 그릇을 제자리에 두고 덮고.. 시골집은 참 갈무리 할게 많네요.
나오며 자하산방을 돌아보고 잘 지내다 간다고 인사를 합니다.
기차시간이 오후4:10분이라
폭포수 민박에 가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시골버스에 타는 할머니들과 인사도 하고, 짐도 덜어드리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러 영동역으로 갑니다.
언제나 설레이며 들어서고 뿌듯해서 떠나가는 영동역..
이제 집으로 갑니다..
첫댓글 정겹기만한 자하산방이네요~^^
방학동안 몸도 마음도 잘 정돈하시는듯해서 제마음이 더 좋은건 왜일까요?!대리만족?!ㅎㅎㅎ 종종 소식올려주셔서 늘 즐겁게 눈요기잘하고갑니다~~~
네.. 영훈맘 잘 지내시죠?
해뜨고 해지듯이 자연스런 일상이었어요.
몇일 잘 지내다 왔어요~
대건이어머니.. 이름만 들어도 익숙하네요... 문득.. 대건이는 몇살일까? 설마 나보다 나이가 많은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드네요..^^
대건이는 코딱지(자하산방 주인장)가 집을 지을때 초등6학년이었는데
으젓하고 아이답지 않게 차도 잘 마셔서 코딱지와 친구가 되었어요.
대건이와 친구하다가 그 부모님과도 잘 지내게 되었지요.
올해 고2되는데 이번에 가니 여자친구도 생겼더라구요.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러 간다는 아들말에
대건엄마 왈" 이놈아, 엄마는 아직 영화 한번 못봤다!" ㅎㅎ
@여울각시 주문전화 몇번했을뿐인데^^ 친숙함 느껴지는게 좋네요^^ 고2라는 대건이의 모습도, 일을 많이해서 힘드시다는 대건이 어머니의 모습도 한번 상상해봤네요^^ 따뜻한 느낌을 가진 모자의 모습을 그려보며..씨..익..웃어봤어요^^
@장재민맘 위로 딸둘을 낳은 후 얻은 막내아들이라 부모님의 사랑이 대단해요.
대건이가 어릴 적 놀던 땅은 아무리 빚에 시달려도 안 파신다는 대건이 아버님 말씀에
깊고 큰 사랑을 느낀적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