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재주 없는 나에게 너까지
류 근만
나는 글 쓰는 솜씨가 부족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요즘도 그렇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더욱 그렇다. 문장력도 그렇지만 작품을 제출하거나 발표하는 자료를 만들 때도 정말로 힘들다. 지금은 컴퓨터 시대지만 헤매는 것은 여전하다.
나는 필체가 악필이어서 공직 초기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 공문서 기안할 땐 더욱 그랬다. 글씨는 펜을 먹물에 찍어 기안지에 썼다. 붓으로 쓰는 사람도 있었다. 발송할 그곳이 여럿일 때는 철판 위에 등사 용지를 대고 공문서 내용을 철필로 긁었다. 등사판에 글 쓴 용지를 붙이고 먹물 찍힌 롤러를 밀면 공문서가 되었다.
내가 공문서 초안을 작성할 때는 정서를 해주는 직원도 있었다. 초안은 아이디어 창출이나 실행계획서다. 기안문이 작성되면 상급자의 결재를 받아서 실행에 옮겼다. 나는 기안문 작성에 두 번 세 번 용지를 구겨버리기 다반사였다. 그러던 중에 타자기가 나오면서 나를 도와줬다.
이 천년 초반 컴퓨터 시대가 열렸다. 나 같은 사람에겐 요긴했다. 그러나 무한한 것이 아니다. 반 백 년이 지난 요즈음 컴퓨터가 고마움보다 애를 태울 때가 많아졌다. 아마도 내가 컴퓨터와 친숙하지 못한 탓이라 생각한다. 요즘엔 엄청나게 속을 썩였다.
며칠 전 프린터기가 작동이 안 되어 날 밤을 새웠다. 컴맹이고 기계치인 내가 씨름하다 보니 지쳤다. 서비스센터를 가려고 컴퓨터와 프린터기를 해체했다. 거미줄처럼 늘어진 선이 왜 그리 복잡한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선마다 나 혼자만 알아볼 수 있도록 이름표를 붙였다. 그것도 못 믿어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도 찍어뒀다.
서비스센터 기사가 보더니 프린터기 고장이 아니란다. 본체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다행히 노트북에 프린터기를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집에 와서 프린터기에 노트북을 연결했다. 그런데 웬걸? 노트북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수강자료 출력은 지인에게 부탁했었다.
또다시 노트북과 컴퓨터 본체를 들고 서비스센터에 갔다. 먼저 노트북이 안 되는 사유를 설명했다. 기술자 손에 들어가니 쉽게 해결됐다. 마우스 이상이었다. 본체에 프린터기를 연결해서 상태 좀 봐달라고 해 봤다. 하지만 결과는? 거절이다. 자기네 제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눈 한번 질끈 감고 코드만 연결하면 될 것 같은데! 참으로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쩌다가 글을 쓰겠다고 덤벼들어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글 한 편 쓰려니 어줍다. 오랜만에 쓰는 탓도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으니 잘될 리 없다.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면서 “교수님! ‘우이독경(牛耳讀經)이란 말이 저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하고 미안한 마음에 토도 달았다.
새로운 기술도 내 것을 만들어야 유용하다. 나같이 우둔한 사람은 자칫 애물단지일 뿐이다.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었을 땐 ’58 컴퓨터 학원‘도 다녔고, 개인교습도 받았다. 늦깎이 학생 땐 논문도 썼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컴맹이고 기계치다. 자칫 서비스센터 우수 고객이 될지도 모르겠다. 즐겁지 않은 미소가 나온다. 아니 조소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고집인지 끈기인지 노트북을 가지고 또 서비스센터엘 갔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이게 무슨 짓인가? 몇 번을 다닌 길이건만 초행길 같다. 처량한 생각도 들었다.
도착 해 보니 대기 손님이 없다. 접수와 동시 기사가 배정됐다. ‘아이 구, 또 그 놈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노트북을 내려놓으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그는 노트북을 살피더니 ‘한글 프로그램’ 이상이라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자기네가 처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인 수리업체로 가 보라고 한다.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서비스센터가 뭐 하는 곳이냐? 부속을 교체하면 부속값 주고, 공임을 달라면 공임 주면 되는 그것 아니냐?’라고 항변했다. 그 기사가 무슨 죄인가?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하는 수 없이 컴퓨터 수리업체를 찾아갔다. 사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른 일 제쳐 놓고 내 것을 먼저 보아주니 고맙다. 아마도 이마에 주름진 덕을 본 것 같다. 노트북은 쉽게 해결이 됐다. 문제는 프린터기다. 출력이 안 되는 이유가 프린터기인지 본체인지 모두 점검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맡겨놓고 가란다.
저녁 늦은 시간인데 전화가 왔다. 수리가 끝났으니 내일 찾아가란다. 아마도 내 마음을 잘 읽은 것 같다. 이튿날 쏜살같이 컴퓨터를 찾으러 갔다. 프린터기에 컴퓨터와 노트북을 각각 연결해서 써도 된다고 한다. 집에 와서 컴퓨터에 프린터기를 연결하고 키를 눌렀다. 그런데 웬걸? 인쇄가 안 된다. 수리기사와 사진을 찍어 주고받으면서 원격진료를 시도 했지만 불발이다. 홧김에 이곳저곳 자판을 두드렸다. 속상한 기분에 컴퓨터를 번쩍 들어 박살 내고 싶었다.
몇 날 며칠 속을 썩였지만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내 글 쓰는 재주가 없어 속이 상한데, ‘너까지 내 속을 썩여?’, 주먹 쥔 손으로 컴퓨터를 내려치려다 내 가슴을 쥐어박았다.
잠시 후 멈춰있던 프린터기에서 드르륵~ 소리를 낸다. 출력이 되는 소리다. 꿈속인지 생시인지? 꿈을 꾸는 것같다. 조금 전, 홧김에 이것저것 자판을 마구 두드렸었다. 어느 한쪽에 얻어맞은 놈이 운 좋게 적중한 것 같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은 격이다.
컴퓨터가 미안해서 그랬나? 아니면 내가 불쌍해서 그랬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튼 해결되었으니 다행이다. 내팽개치지 않고 무사히 합평회 자료도 출력했다.
연습 삼아 프린터 키를 두드렸다. 연거푸 스르륵 ~ 소리를 내면서 인쇄용지가 빨려들어간다. 인쇄 상자에서 선택사항을 지정하지 않은 그것이 불찰이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회심의 미소가 절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