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갚음의 공포
임병식 rbs1144@daum.net
나는 어렸을 적 어떤 이야기를 들은 후 그것이 늘 꿈에 나타나는 바람에 전전긍긍했다. 잠을 설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고일어나면 개운하지도 않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서 샤스가 흥건히 적은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몸에서는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갑자기 발바닥이 따갑고 가려운 것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걱정하시며 비방의 하나로 코에 침을 찍어 발라준 다음 발바닥에다 젖은 수건을 올려놓아 주었다. 그러면 신기하게 나아지기도 했는데, 어떨 때는 그런 처방이 전혀 먹히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이때는 한동네에 사시는 비손을 잘 하는 할머니를 모셔와 빌어주기도 했다.
나는 그 증상이 나타난 것을 이전에는 한 번도 어머니께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무서워서 차마 내가 발설을 하지 않았을 뿐, 마음속으로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 무렵 나의 나이는 10세전 후였다.
어느 날 초여름, 나는 여느 때처럼 학교를 파하고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늘에 피어오르는 구름이 아름다워 그것에 팔려 있다가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다. 바로 내딛는 발 앞에서 무엇이 스르르 기어가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보자 나는 즉각 반응을 했다.
‘요게, 나를 놀래키다니!’
앞뒤 가리지 않고 돌멩이를 하나 얼른 주어들었다. 그리고는 뱀의 몸뚱이를 겨냥하여 힘껏 내던졌다. 그것은 제대로 녀석의 머리에 맞았다. 녀석의 정수리에서 피가 솟았다.
그걸 보니 두려움이 일었다. 이것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돌멩이를 찾았다. 두 개를 주워서 돌아오니 기절해 있던 뱀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혼절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달아나 가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그 후로 자주 꿈에 나타났다. 그것은 아마도 그 무렵에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서 인지 몰랐다. 하루는 동네에 사는 먼 친척 할아버지가 늘 논둑에 구멍을 뚫어놓고 마는 구렁이를 한 마리 발견했단다. 뚫린 구멍 때문에 방천을 하느라 매번 고생한 할아버지는 억하심정이 발동하여 녀석을 붙잡아 목에 대못을 박아 놓았단다.
그런데 이후에 기겁을 할 일이 일어났다. 이슥한 밤에 바람소리와 함께 갑자기 봉창 문에서 ‘타닥타닥’ 하고 무엇이 부딪친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일어나 확인을 하던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그만 소스라치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 아니고, 낮에 잡아다가 목에 대못을 박아 놓았던 그 구렁이가 집으로 찾아와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그렇게 시도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소리가 난 것은 대못이 그렇게 박힌 채로 와서 좁은 문살에 막혀 나는 소리였다. 놀란 할아버지는 그 뱀을 다시 잡아다가 이번에는 확실하게 불에 태워 죽였단다.
다음의 이야기도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이기는 마찬가지다. 외조모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예날 전라도 낙안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 고을에서는 해마다 사당에 처녀를 바치는 풍속이 있었단다.
그리하지 않으면 고을에 흉년이 들고 역병이 나돌아서 그리 했단다. 그런데 어느날 고을에 담력이 큰 원님이 부임했다. 이방으로부터 해괴한 일이 일어난다는 말을 들은 원님은 진상파악에 나섰다.
그리고는 사당에 재물로 바친 처녀를 들여보내고 명주실을 풀어놓았다. 무엇이 들어오면 옷가지에 걸려서 그것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보려고 한 것이었다.
원님이 문틈으로 엿을 보는데 눈 깜박할 사이에 처녀가 사라졌다. 명주실이 끌려간 곳을 추적하니 처마에 커다란 것이 있었다. 바로 지네가 들보에 걸쳐져 있었다. 원님을 칼을 빼들어 그것을 동강내 버렸다. 그런데 그때 휘두른 칼에 피가 몸에 튀었다. 지내는 죽어가면서 ‘제발 발하나만 살려 달라’고 싹싹 빌었다.
그후 자식이 태어났는데 보니 이마에 지내반점이 선명했다. 그가 바로 조선 최대의 역신 김자점. 그는 벼슬이 영의정까지 올랐으나 나중 역모사건에 휘말려 능지처참을 당했다. 가족들은 노비로 전락하고 소용의 딸인 효명옹주로 결혼한 손자도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야말로 멸문지화를 당한 것이었다.
일설에는 지내가 죽으면서 발 하나만 살려달라고 한 것은 그렇게 하면 다시 되살아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지내는 살아남아서 해코지를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동네로 할아버지를 찾아와 붕창문을 두드린 그 뱀도 해코지하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이야기를 들어 놨으니, 뱀을 설 건드린 내가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나는 어느 누구한테도 내가 뱀을 설죽여 놓았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였다. 우선 겁이 났고, 어른들이 걱정을 많이 할 것 같아서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성장 통을 앓았던 셈인데, 당시는 그게 그토록 공포감에 떨게 만들었다. 하필 얻어 들은 이야기가 병이 되었는지 모른다. (2023)
첫댓글 선생님의 경험담부터 흥미로운 일화들을 대하고 나니 꺼림칙하다거나 뒤가 켕긴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대개 소년시절에 뱀이나 지네를 죽여 본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고개를 쳐들고있는 꽃뱀을 회초리를 휘둘러 죽이기도 하고 지네도 더러 잡았었지요 아버지 약에 쓰려고 며칠을 독사 구멍을 지키다가 기어이 잡아 온 일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르네요 미물일지라도 다 귀한 생명이니 함부로 죽이거나 해를 가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철 없던 시절에는 그런 의식이 없었던 것 같아요 즐감했습니다
뱀을 설죽여놓고 달아난 바람에 그것이 찾아올까봐 전전긍긍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하면 심약해서 그런것 같은데 당시에는 정말 많이 떨었던것 같습니다.
성장통을 앓았다고나 할까요.
옛날 전설을 생생하게 듣는것 같습니다.
재밌기도 하네요.
순천낙안에는 이런 전설이 내려오고 있답니다. 전에 외할머니한테 이야기를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