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m 노고산이 감히(?) 북한산(백운대836m)과 맞짱은 아니지만
마주서서 한 치도 양보없이 버티고 있다.
북한산 자체에서는 볼 수 없는 북한산의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이란 얘기다.
여하튼 일년 중 가장 많이 찾는 산이 바로 이 노고산이다.
들머리와 날머리를 바꿔가며 거의 혼자서 올라 온다.
사설이 좀 길었나 보다.
함께한 사람들
비쥬님 무아지경님 산청님 함대님 길동무님 수민님(참가 접수 순) 그리고 이같또로따
노고산 정상.
가슴이 탁 트이는 조망에다 북한산 도봉산의 자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엇? 한 분이 안 보이네.카메라를 드셨나...
양주시 삼하리 노고산 들머리다.
전원일기 드라마 촬영지다. 전보다는 덜하지만 목가적인 풍경의 마을이다.
저기 앞에서 왼쪽으로 꺽는다. 노고산 방향은 결코 아니다.
누구의 하우스? 아님 창고?
바로 여기가 함대님의 작업장이자 창고.
앞의 하얀 차는 그의 애마.
전기 수도에다 조리를 할 수 있는 시설과 함께 약재를 가공도 하는 기계 시설도 있다.
올 안에 특별한 파티(?)도 공개했다. 부도는 없을 듯. 기대가 크다.
커피와 빵을 들며 이곳에 자리를 차지한 내력을 말했다.
어잉? 비코스다. 철조망을 친 개구멍을 통과한다.
금바위저수지로 가는 지름길이다.
오늘은 저수지가 만수(滿水)다.
삼하리 일대 논밭의 젖줄 물창고이기도 하다.
가끔 철새들이 모여 있는걸 봤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금바위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월남 이상재 선생의 묘비석.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에 풍운아같은 삶을 산 분이다.
정치가 종교가 독립운동가 그리고 언론인이기도 했다.
1957년 서천 선산에서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 가까이에 유택을 마련했단다.
여기서 조금만 발품을 팔면 산소가 있다. 산소 앞에는 연못도 있다.
본격적인 등산로.
낮은 산이나 산은 산이다. 오름이 이어진다.
낙엽이 쌓인 길이다. 그래도 발 아래는 쿵쿵캉캉 봄의 용트림이 느껴진다.
돌 위에 밤송이가 엎어져 있다.
지난 가을부터일게다. 송이 안에 작은 밤알이 보인다.
다람쥐가 그냥 지나쳤나 보다.가을이 지끔껏 누워있다. 시린 겨울을 지나 지금까지도.
자연 스틱을 든 무아지경님.
닉 처럼 북한산의 위용에 무아지경 모드다.
이제 제대로 무대(?)에 선 길동무님.
포스가 A급이다. 어디서 많이...
비쥬님. 비쥬얼이 짱이네요.
이분도 어디서 많이...
닉네임이 말해준다. 창고에서 닉을 탱크로 하면 어떻겠냐고 공개 질의를 했지만,
움직이는 전천후 탱크다.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남이다.
뉴 페이스 미선님.
역쉬 무대(포토죤)에 서 보신 분이다.
산행의 어떤 미션도 당당히 해내실 듯하다.
안양에서 아침에 꼬리달고 달려오셨다.
수리산길 때 안내를 공개 부탁 드린다.
약간의 땀이 난다. 그래도 바람이 이마를 간지럽히며 더위를 식혀 준다.
헬리콥터장에서 4녀가 섰다.
몽둥이, 아니 나무 지팡이를 든 무아지경님~ 무게가 훨 있어 보인다.
"자연산(스틱)이 좋은 겨."라는 듯 두 손으로 잡고 있다.
등산로 흙길이 말라있다.
봄비가 온다는 예보가 빗나갔다. 논에도 밭에도 비가 와야 하는데...
그리고 정서적으로 말라 있는 인간에게도 감성의 단비가 내려야 한다.
허례의 우산을 저치고 온몸으로 그 '단비'를 맞아야한다.
어디 땅만 고갈이랴....
"당신은 누군가의 안락한 의자가 되어 보셨나요?"
서어나무가 의자가 되어 물었다.
이제 바로 당신이 답을 할 차례다.
언제, 누군가에게 쉼의 공간을 비어 주었나를 말이다.
솔직히,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인색하지 않았던가!
지팡이도 사람도 그리고 말 없이 따라 온 그림자도 쉬어야 한다.
쉼은 충전의 또다른 말이니까.
드디어 노고산의 정상이다.
서너 무리가 선점했던 자리다.
텐트를 친 한 무리만 남았다.
석굴암 절 위로 오봉이, 그 위로 도봉의 주봉들이 보인다.
사패산은 더욱 가깝게 서있다. 바로 앞 줄기가 상장능선이다.
출입이 제한된 등산로다. 그럼에도 다니는 등산객이 있다. 1봉에서 9봉까지 쭈욱가면 우이동이 나온다.
엇, 그걸 내가 왜 알지?
숨을 수 없는 숨은벽 사이로 인수봉과 백운대가 선하다.
백운대 아래 파랑새능선도 타 볼만한 코스이다.
이제 나는 포기했지만.
마산고동문들이다. 산청님과 인사를 한다.
진주고, 마산고, 거기가 거기란다.
인사를 나눈 이유가 있다.
M님이 허기진 우리 중생을 위해 시루떡을 이들에게서 얻었고
우리는 답례로 양갱을 교환했다. 그 연유로 말을 섞게 된 것.
참, 떡이 맛있었다. 나중에 하나를 더해 세개를 얻었다던가.
올라 갈 때는 몰랐네
내려 갈 때는 알았네
하산길은 조심조심하는 것을.
문단 미투의 대상 중 한 분의 그꽃이란 싯구가 떠오른다.
앉지 안아도 편해 보이는 의자.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길섶 쉼표. 눈으로만도 쉬어 본다.
산이라고 봄이 더디오는 게 아니다.
생강나무꽃이 화사하게 망울을 터트린다.
가까이, 바짝 다가가 눈을 맞췄다. 쌩긋 꽃망울이 답한다.
가지가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내 가슴으로 전이된다.
봄이 다가 오는게 아니라 우리가 봄에게 다가가야
그 봄이 내 봄이 되는 게 아닐까.
발 밑 낙엽 속에 꿈틀대는 봄을 느끼셨는지?
계곡은 아직 겨울이다. 아니 겨울과 봄이 공존한다.
시리도록 하얀 얼음 아래 봄의 고동은 힘차리라.
미수 선생이란 음각이 선명하다.
추사 김정희의 글로 추정되는 암각문.
산을 내려와 거룩한 세족례를 하는 여성분들.
여저기 바위에 새겨진 암각들.
독재동이란 한문 글씨가 선명하다.
이런 암각 바위가 서울에 있다면?
아마도 누군가가 밝혀내지 않았을까?
명문가들이 이곳에서 시를 짓고 창을 하며 시국을 논했을 게다.
점점 바위에 새겨진 글자들은 희미해진다.
예전에는 분명 명당 쉼터였을 이곳에서 잠시 쉬고 나서 다시 길에 접어 든다.
동네 대동제 등 큰 행사시 제를 지내는 곳이다.
빼곡한 소나무길(거의가 일본산 니키타송)이다.
걸음을 멈추고 걸어 온 길을 헤아려 본다.
고인돌.
남방계가 아닌지?
나무들이 늘어서 길을 내준다.
길이 우리를 가게 한다.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말이다.
그럼에도 자연과 우리가 걷는 길에 대해 감사함은 잊지 말아야 한다.
길은 서로의 마음까지도 이어준다.
오늘 걷기도 그렇다.
강아지 4형제, 아니 4남매?
반기는 건지 경계하는 건지 헷갈린다.
꼬리를 흔드니 반기는 쪽으로 한 표를 던진다.
그리고 매여 있음에 대한 미안함도 전한다.
저들의 발걸음에는 한계가 있다.
늦은 점심.네시가 넘었다. 이탈리아 성악가 카루소를 차용한 상호다.
청국장 주꾸미 그리고 달달한 돼지고기 볶음 맛난 식사였다.
함대님의 안내로 이 식당을 찾았다.
귀경길에는 그의 애마로 연신내까지 픽업해 줬다.
함께하신 동행 여섯 분의 따듯한 걸음에 감사 드립니다.
다음 산길 걷기에서 반갑게 뵈어요^^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있으면 문자 주세요. 내려 드릴게요.
♬흐르는 곡은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
*
첫댓글 형님의 문화해설을 들으며 걷던 날들이 생각나네요..
마음고요님 온라인 상에서는 참 오랜만입니다.
짬이 나시면 걷기에서도 얼굴 좀 봐요.
그냥길을걸어도 좋았는데 오늘은 뜻깊은 산행도보를 걷고있는 곳곳 마다 자세히 설명해주시고 오래도록 간직해도 될것같은 사진과 해설까지 로따님과 함께한 시간이 보람되고 좋았읍니다 로따님에 수고하심에 깊은감사드림니다
함께한 노고산길에 무아지경님께서도 즐거우셨나 봅니다.
오리지널 자연산 스틱 효험이 좀 있었는지요.
로따님의 명품 길 안내와 재치있는 입담에 감칠 맛나는 명문 후기까지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동행님들 함께해서 반가웠습니다. 집ㆍ나ㆍ행!
닉네임처럼 일곱명 모두가 절친 길동무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노고산은 사계절 어느 때 가도 좋은 곳이지요.함께해 저도 즐거웠답니다.
처음 참석한 우길고걸에서~ 즐거이 운동하며 좋은하루 보내고 왔습니다~
즐겁게 리딩 해 주신~대장님과~ 함께 한 모든님들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수민님의 첫걸음을 모시게 되어 무쟈게 기뻤습니다.
틈나는대로 산길 들길에서 반갑게 뵈옵기 바랍니다.
즐거움과 행복을 동반한
산길도보였네요
로따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노고산길 든든한 함대님 덕분에 무사히 마치게 되어 감사 드립니다.
비밀아지트(?)를 과감히 공개해 주시고 커피타임을 주신 거 잊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