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5일 월요일
[(백)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이날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다. 일찍이 시메온은 성모님의 고통을 예언하였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신심은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으며, 168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께서 이 기념일을 정하셨다. 1908년 성 비오 10세 교황께서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인 9월 15일로 이 기념일을 옮기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연결하여 기억하게 하셨다.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시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계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맡기신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부속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25-27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3-35
그때에 예수님의 33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막바지에 이르러 있습니다. 조금 뒤에는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라고 하시면서 숨을 거두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죄의 용서를 위한 커다란 선물임에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이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소중한 분을 주시고자 합니다. 바로 당신의 어머니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더 주고 싶어 애달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통하여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라시면서 당신 어머니께 따뜻한 사랑을 받으셨고, 우리도 그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도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우리를 모두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어머니의 모범 안에서 격려와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은 더 깊은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아드님은 예수님 한 분뿐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이 사람도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시지 않고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19,26)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 곧 우리를 모두 당신과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례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로마 6,3-5 참조).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 됨은 예수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성모님을 통해서도 이루어졌습니다.(김태훈 리푸죠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어머니는 2020년 9월 10일에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올해는 5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셨지만 그 강인함은 고통 속에서 단련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시대에는 배울 기회가 적었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키운 후에 ‘야학’에서 글을 배웠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기뻐하였고, 제게도 가끔 카드를 써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배움이 많았던 배우자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배움이 많았던 배우자인 아버지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습니다. 격동의 시대에 아버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고, 그런 사람은 기존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꿈’을 받아들였고, 홀로 가족을 돌보았습니다. 쌀가게, 마트, 밥장사, 가사도우미도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강인함이 열매 맺어서 저는 성직자가 되었고, 동생은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성모님처럼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신앙으로 삶의 십자가와 고통을 받아들인 어머니는 평생 사랑했던 아버지가 있는 하느님의 나라로 떠났습니다.
어제는 십자가 현양 축일,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십자가는 원래 치욕과 모욕의 상징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구원과 부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음,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었지만, 신앙인들에게는 하느님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역사를 보면, 교회가 십자가를 외면하고 세상의 권력과 재물에 기대었을 때, 언제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듯, 십자가 없는 교회는 물가에 세워진 집과 같아 시련이 오면 무너집니다. 성모님은 그 십자가를 가슴에 품으셨습니다. 아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을, 숨을 거두고 품에 안긴 모습을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을 공경합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아들의 길을 끝까지 함께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이 당신의 어머니십니다.’ 사랑을 받던 제자는 이제 성모님을 자신의 집에 모셨다고 성서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고통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와 같습니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과 갈등, 고통과 절망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는 힘들지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고인들의 유해가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오듯이, 하느님을 믿으며 충실하게 살았던 모든 이들은 천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것이 신앙인들의 희망입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함께 기도하면서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면 우리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 희망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수난 하신 동정 마리아를 기념하며,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게 하소서. 숨겨진 그물에서 저희를 빼내소서. 당신은 저희 피신처이옵니다.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오니,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십자가 곁에>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죽이는
십자가 곁에
너와 나 우리는
늘 새로 살림이다
가르는
십자가 곁에
너와 나 우리는
늘 새로 함께이다
절망적인
십자가 곁에
너와 나 우리는
늘 새로 희망이다
증오하는
십자가 곁에
너와 나 우리는
늘 새로 사랑이다
마지막인
십자가 곁에
너와 나 우리는
늘 새로 처음이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대목은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성모님을 한 가족으로 이어주시고 또한 성모님을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복음의 기쁨의 제5장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선포자의 두 번째 챕터 ‘복음화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285항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새 창조의 절정인 이 시간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마리아께 이끄셨습니다. 우리가 어머니 없이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지 않으셨기에 우리를 그분께 데려다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백성은 이 어머니의 모습에서 복음의 모든 신비를 읽습니다.> 그리고 286항에서 또 이렇게 전합니다. < 참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우리 옆에서 함께 걸어가시고 우리와 함께 싸우시며 끊임없이 하느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모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어머니로서 끊임없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주님의 사도로서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동반해 주시며 늘 힘이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복음의 기쁨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새로운 복음화의 별이시여, 친교와 봉사, 관대하고 열렬한 믿음 정의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에서 빛나는 증인이 되도록 저희를 도우시어 복음의 기쁨이 땅 끝까지 다다라 그 빛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추게 하소서. 살아있는 복음의 어머니, 작은이들을 위한 기쁨의 샘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알렐루야!”>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니체타(Nicetas)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375년
같은이름 : 니체따, 니체따스, 니체타스, 니케따스, 니케타
성 니케타(또는 니체타)는 고트(Goth) 사람으로서 도나우(Donau) 강변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에 울필라스라는 어떤 선교사로부터 개종하였다.
이 선교사에 따르면 니케타는 나중에 사제가 되었고, 동고트족(Ostrogoths)의 왕인 아타나릭이 로마 제국을 침략하면서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를 일으켜서 그 역시 희생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화형을 당하였고, 유해는 실리시아(Cilicia)의 몹수에스티아(Mopsuestia)에 안장되어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가타리나(Catherine)
신분 : 과부, 신비가
활동지역 : 제노바(Genova)
활동연도 : 1447-1510년
같은이름 :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지아코포 피에쉬(Giacopo Fieschi)와 프란체스카 디 네그로(Francesca di Negro)의 딸인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는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났는데, 5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수도생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지만, 그녀의 부친이 사망하자 16세의 나이로 줄리아노 아도르노(Juliano Adorno)라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성마르고 방탕하였으며 아내에게 불성실하였다.
반면에 그녀는 민감하고 신중하였으며 거의 유머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매몰스런 여인은 아니었다. 불행하였던 이 결혼생활은 10년이 지나면서부터 남편의 방탕으로 인하여 극도의 가난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게 되어 프란치스코 3회원이 되었으며, 함께 회개 생활을 하기로 약속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팜메토네 병원에서 일하였는데, 특히 카타리나는 아주 뛰어난 영성생활로 다른 이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고, 1479년에는 아예 그 병원에서 생활하였으며, 1490년에는 원장이 되었다.
이때 그녀는 흑사병으로 거의 사경을 헤매었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하자 자신의 직분을 사임하였다.
그 후 1년 뒤에 남편이 죽었다.
이때 그녀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가 된 카타네오 마라보토(Cattaneo Marabotto) 신부를 만났다.
그녀는 수많은 신비 체험을 하였으며, 악화된 병으로 인하여 한없는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신심은 비범하였다.
그녀는 세속에 있으면서 천상적인 사물을 관상하는 뛰어난 영성가였으며, 그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악으로 서서히 물드는 세상의 오염’이었고,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는 마귀의 간계였다고 한다.
“영혼과 육신의 대화”, “영혼론”은 신비신학 분야에서 유명한 저서가 되었다.
이 책들이 1934년에 영국에서 간행된 바 있다.
1510년 9월 15일 제노바에서 선종한 카타리나는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73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