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9일부터 15일까지 요서 지역을 답사했습니다.
답사기를 7회에 걸쳐, 올리겠습니다. 다음에 이곳을 답사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답사1일차
2026년 8월 9일 새벽 4시 잠에서 깼다. 오늘은 요서(遼西) 답사를 떠나는 날이다. 공항리무진버스를 타고 5시 50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 도착했다. 첫 번째 고구려 유적 답사를 떠날 때 만큼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요나라 상경성 유적이 있는 파림좌기에 가보고 싶었다. 만주 벌판과 다른 광활한 초원을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컸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와 5번째 답사를 함께 하게 된 노수한 님을 비롯해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6시 40분이 되었을 때 함께 답사하게 된 17명이 모두 모였다. 8시 55분 출발 예정인 천진행 아시아나 비행기를 탔다. 창가 쪽에 앉은 탓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와 함께 황해도 장산곶도 보였다.
2시간이 못 되어 천진 상공에 이르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천진은 산 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빌딩과 바다, 논밭이 보였다. 고구려 시대에는 해안가 저지대, 고조선 시대에는 바다였던 땅으로 한국 고대사와는 큰 관련이 없는 곳이다.
비자가 없고, 미리 QR카드를 작성한 탓인지 중국 입국은 다른 때와 달리 매우 쉬웠다.
천진시가 심양시보다 인구가 더 많은 곳이지만, 가까운 곳 북경에 큰 공항이 있기 때문인지, 심양공항보다 덜 붐볐다. 따로 출발했던 정현정 님이 우리 비행기보다 15분 늦게 도착한다고 했는데, 별다른 시간 차이 없이 공항 입국장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 만난 현지 가이드인 장문철 님은 대우그룹 연변 부사장까지 지낸 엘리트로, 나보다 1살 많은 여행사 사장이다. 현지 가이드로 여행사 사장님이 직접 나온 경우를 처음 겪어 본다.
천진의 날씨는 35도에 달해 더웠다. 11시 경 공항 주차장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천진을 출발했다. 천진은 동아시아 근대사의 주요 무대였다. 1858년 2차 아편전쟁, 1900년 의화단 운동 당시 영국, 프랑스 등이 북경을 공격하기 위해 먼저 점령했던 항구도시가 천진이었다. 한때 9개국의 조계지가 설치된 천진은 이국적 풍모가 남아 있는 곳이다. 1881년 12월 영선사를 따라온 조선의 유학생들이 천진기기국에 도착해 1882년 10월까지 신무기에 대해 배운 곳이 이곳이다. 하지만 이번 답사에서 천진은 단지 항공편 때문에 선택한 곳일 뿐이다. 중국 4대 직할시인 천진시를 제대로 볼 여유는 없었다.
차 안에서 이번 답사를 함께 할 17명에 대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이후 나는 버스 창밖을 계속 주시했다. 창밖에 보이는 천진은 광활한 저지대 평야였다. 1시간 50분 쯤 당산(唐山) 휴게소에 도착했다. 당산은 1976년 40여만 명의 사상자를 낸 20세기 최악의 지진으로 꼽히는 당산 대지진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이동. 2시 30분쯤 되어서 창밖을 보니 노룡(盧龍)휴게소 간판이 보였다. 잠시 후 난하(灤河)를 건넜다. 노룡, 난하, 그리고 노령현과 이웃한 창려(昌黎)현(縣)과 갈석산(碣石山)까지. 고조선과 낙랑군 위치 논쟁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 난하와 갈석산 사진만 찍었다.
고조선과 관련된 문제보다는, 고구려 덕흥리 고분에 등장하는 유주자사 진이 다스린 13개 군의 하나인 창려군에 대한 생각이 뇌리에 더 많이 떠올랐다.
이번 답사의 첫 답사지인 산해관에 도착한 시간은 시간 오후 4시. 점심 시간을 제외한다고 해도, 이동 시간만 거의 4시간이 걸렸다. 예상보다 최소 30분 이상 지체된 셈이다. 산해관 남쪽에 중국 고위층의 휴식처인 북대하가 있어서 그런가, 산해관까지 오는 휴게소, 고속도로 게이트에서 2차례나 검문이 있었다. 북대하를 벗어나자, 검문이 없었다.
산해관이 위치한 진황도 시내에도 차들이 많이 밀려 있었다. 중국인들이 여름 방학을 맞아 산해관에 많이 관광하러 온 탓이다. 저 멀리 하남성, 사천성, 산동성 등에서 온 차들도 보였다. 산해관 노룡두부터 입장했다. 만리장성 동쪽 끝인 노룡두는 너무나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사람에 치였다. 그래도 발해만과 만나는 노룡두를 사진으로 찍고 또 찍었다. 노룡두를 포함한 영해성은 산해관의 일부다. 작은 규모의 성임에도 불구하고, 벽돌로 아주 견고하게 성을 축성했다. 영해성 성벽의 최대 높이는 최소 20m는 족히 된 듯하다. 벽돌의 힘은 위대했다. 농경민 한족의 힘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답사 시간이 1시간이나 걸렸다. 하지만 사람들로 붐벼 좋은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노룡두를 보고 나와 천하제일문인 산해관 동문을 볼 차례다. 하지만 버스가 주차한 곳까지 걸어간 시간, 버스로 이동한 시간이 있어서, 산해관 동문 앞에 도착한 시간은 5시 30분. 게다가 산해관 입장료도 저녁 입장비를 받는다고 한다. 잠시 들어가서 천하제일문을 볼 것인가를 고민을 했다. 진황도 시에서 숙박을 한다면, 관람을 해도 되지만, 다시 2시간 이상을 가서 흥성시에서 저녁을 먹고 숙박해야 한다. 천하제일문을 그냥 사진만 찍고 나와야 할 정도로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천하제일문을 보지 않기로 했다. 아, 볼껄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기는 했다. 다행히 예전에 찍은 사진이 있으니.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섰다.
천진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지역에는 넓은 농토와 물이 많아 보였지만, 산해관을 넘어서 흥성시까지 가는 길에서 본 바깥 풍경은 산과 구릉지가 많았고, 물이 적어 조금은 건조해 보였다. 확실히 산해관을 경계로 만리장성 남쪽과 북쪽의 생태 지리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만 흥성시에는 강과 물이 있고, 온천도 있어서 그런가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는 소도시였다. 흥성시 복성루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7시 45분. 예상보다 많이 늦었다. 저녁 먹고, 호텔에 들어오니, 저녁 9시가 넘었다. 같은 방을 쓰는 양흥태님과 공부 이야기를 하고, 답사기를 쓰다 보니 어느덧 12시. 한국시간으론 밤 1시다. 출발할 때부터 21시간.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