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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86 성령님의 강림(사도행전2장1-4절)
성경말씀은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까지 봉독합니다.
[사도행전 2장]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장은 조금 어려운 면도 있고 약간의 오해의 소지도 있고, 그런 부분이어서 같이 보는게 참 좋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오순절’이라는 말은 유월절을 기점으로 해서 50일째 되는 날. 그런 뜻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의 라암셋에서 출발해서 시내산에 도착하는 데까지 걸린 대략의 시간이 50일 된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시내산 아래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꼭대기에 구름 가운데 불 가운데 임재해 계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산 아래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모세가 하나님께 올라가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날,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이 체결된 날이다.
다른 말로는 율법을 주신 날이다 이런 말로 의미를 부여하는데, 율법을 주셨다 하는 것은 유대인들 개념이고, 우리 기독교적 개념은 언약을 맺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적 개념은 율법이라는 개념보다는 언약이라는 거죠. 언약..
사실은 법이 다 언약인데, 모든 법은 다 약속이죠.
그런데 우리 의식 속에 ‘율법’ 그러면 ‘폐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헤프게 말하는 복음주의적 사고방식 속에 ‘율법’ 그러면 괜히 우리를 정죄하는 것 같고, 폐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언약 하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인식을 해요. 약속이니까..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율법서 이런 말은 사실 잘 안합니다.
안 하고 따로 따로 떼어서 창세기 출애굽기 이렇게 하는데, 유대교가 오경을 율법서 하는 것을 우리는 따라서 그저 막연히 따라하는 거예요.
우리는 율법이라는 개념보다는 언약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니까 오순절이 율법 받은 날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그냥 일방적으로 율법을 주셨다는 것보다는, 하나님과 레위지파가 주축이 되어가지고 언약을 맺은 날이다.
우리가 ‘결혼한 날’ 이렇게 하는 것보다, ‘영원한 언약을 맺은 날’ 하면 훨씬 더 아름답죠.
언약을 맺은 날인거야.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그래서 오순절 하는 개념이 글자대로 하면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죠.
의미로 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을 맺은 날.
그런데 그 때는 그 언약을 당장 오경을 다 기록한 것은 아니고, 그 핵심의 내용 율법 옛언약의 대헌장 같은 그런 언약의 근간, 줄기, 이것이 십계명에 들어있으니까 이것을 돌판에 새기는 거죠.
그래서 그 날이 이스라엘 3대 절기 중에 하나거든요.
유월절은 출애굽 하는 날이고, 그 다음에 오순절 또는 칠칠절 혹은 맥추절 이렇게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명절은 초막절인데, 초막절은 다른 말로 장막절 혹은 수장절이라고 합니다.
3대 절기 중에 ‘오순절이 이르매’ 하는 것은 아침에 잠깐 말씀드린 대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온 세계 각국으로부터 왔다가 그 먼길 온김에 한 50일만 더 지나면 오순절까지 보고 갈 수 있으니까, 장막절까지 있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개 유월절 지키러 왔다가 한 50일 있다가 오순절까지 보고 그리고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 메대 바대 혹은 엘람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부르기아 밤빌리아 애굽 이런 데에서 오면 빨리 와야 한 2-3개월 걸려요.
길면 한 4-5개월 이렇게 걸리는 거예요.
그리고 한 4개월쯤 오고, 한 두달 머물고, 또 돌아가는데 4개월 걸리면, 한 10개월 내지 1년 정도 걸리죠. 예루살렘에 한번 갔다 오는데 1년이 걸리는 거예요.
그러면 1년 걸리게 되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경비도 만만치 않죠.
차비만 해서 되는게 아니라, 먹고 자고 해야 되니까..
그러면서도 예루살렘을 순례할 열정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1년씩이나 걸리는데..
그런데 우리가 비행기 타면 11시간만 하면 예루살렘에 가는데, 그것을 지루하다고 투정하고 그렇죠?
경비가 지금도 수월한 것은 아니지만, 1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사실은..
그렇게 온 사람들인데,
..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그 ‘한 곳’이 어디냐?
우리가 일반적으로 대체로 ‘마가요한의 다락방이었을 것이다.’ 할 뿐이지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 성령강림 때에 모인 곳이 마가요한의 다락방이었을 수도 있고, 성전 안에 어느 한 집에 따로 모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두 이론이 만만치 않아요.
예를 들어서 마가요한의 다락방과 성전과 거리가 제법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때가 제 3시에 너희 생각대로 술이 취한 것이 아니다. 할 때 온 사람들이 듣고 소동이 났다는 것은 성전 안에 한편에서 방언이 터지면서 이렇게 했으면 쉬운데, 다락방에 숨어가지고 있는데 성령이 강림했다고 누가 그것을 보고 미쳤다고 이렇게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여기 지금 ‘어느 한곳에 모였다, 앉은 온 집에 가득하다’ 이런 말은 다락방일 것이다 하는데, 짐작만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 꼭 다락방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안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러나 대체로 다락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이런 체험은 기독교 역사상 딱 한번만 있었던 일이고, 그 뒤에 어떤 곳에서도 재현된 일이 없습니다. 일회적인 사건이예요.
그런데 요즈음에 우리가 기도하거나 찬송하면서 꼭 그때처럼 ‘불길같은 주성령, 불의 혀같이 임해달라’ 그러면 곤란해요.
그런 불의 혀같이 내려오는 것도 없는데, 계속 불이야 불이야.. 그렇게 하는 것도 참 어렵죠.
그 이후에 다시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그런 것은 없었어요.
그리고,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것은 갑자기 이렇게 생긴 것이지 요즈음처럼 ‘할렐루야 할렐루야’ 말해가지고 혀가 꼬부라져서 이상한 소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냥 갑자기 급하고 바람같은 그런 성령이 임하면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육안으로 보이면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 일 후에 다시 그런 일이 또 재현되지 않았고, 여기에서 말하는 다른 방언이라는 것은 하나의 또 다른 언어죠.
‘아더 랭귀지(other language). 아더 통(other tongue)’ 이렇게 되어 있는데,
‘헤테로스’라는 헬라어가 일상에 쓰던 언어와 다른 같지 않은 그런 언어인데,
여기에서 방언이라는 말이 ‘글로싸’라는 헬라어가 써졌는데, 언어는 언어인데 일상에 쓰지 않는 어떤 다른 언어가 나타났다.
그런데 8절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이 때는 ‘글로싸’라는 말이 아니고 똑같이 우리말로는 방언이라고 했는데, ‘디알렉토스’하는 말은 우리가 난 곳 방언, 난 곳 언어로, 난 곳 지방언어로 듣게 됨은 어찜이냐, 하고 앞에 방언과 뒤에 방언이 달라요.
여기 나오는 이런 방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까지 있는 그런 방언과는 또 다릅니다.
그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그런 방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런 방언이었어요.
우리 영이 비밀을 하나님께 아뢴다. 이런 개념인데, 여기에는 오순절날에 나타난 방언은 기도하는게 아닙니다.
기도를 하면 기도는 누가 듣는 거죠?
하나님이 듣는 거죠.
하나님이 들으면 끝나는 건데, 여기에는 사도행전 2장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듣는게 아니고, 거기 예루살렘에 순례하기 위해서 온 세계 각국 15개국으로부터, 여기 소개된 것만 한 15개국으로부터 모여온 사람들이 전부 다 자기들 15개국의 지역 언어로 들었다는 거예요.
또 들었다 하는 것도 진짜 재미있는 건데,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다른 방언’이라 할 때, 말하는 사람마다 딴 소리 딴소리 다른 언어가 나왔느냐?
열두 사도가 외치면 열두 가지 언어가 나왔느냐?
아니면 일상의 쓰던 언어와 다른 언어냐?
참 어렵다는 거예요. 이게..
제가 그 때 취재를 했으면 영 알아듣기 쉽게 할텐데, 그 때 제가 없었어요.
참 아쉽죠.
그래서 다른 언어가 일상으로 쓰던 언어와 다른 것이냐, 아니면 열두 사람이 아니면 120문도가 120가지 언어로 했느냐?
그런데 어떻든 여기 나중에 보면 듣는 사람들은 하여간 어떻게 들었든지 누구에게 들었든지 몇사람이 말했든지 간에 듣는 사람들은 각각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들었다.
그러면 예를 들면 베드로 한 사람이 대표적으로 한 가지 언어인데, 히브리 언어가 아니고 다른 일상에서 쓰던 언어가 아니고 다른 언어인데, 듣는 사람들 귀에 15가지 언어로 들렸느냐?
15가지 언어로 들리면 150가지도 들리겠죠.
한 사람 입으로 말했는데, 듣는 사람이 15가지로 들리면 150가지로 들릴 수 있는 것이고,
방언이 아니라, 듣는 귀가 그렇게 알아들었는지.. 참 신비한 사건이예요.
그런데 이것은 어차피 설명이 안됩니다.
어떤 그런 일이 있어서 결론은 뭐냐하면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결론은 거기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 유대, 가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리비야,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사람들이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됨은 어찜이뇨? 이렇게 된 거거든요.
5절에 보면,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우거하는 것은 유월절부터, 유월절도 닷새전에 아니면 일주일전에 와 있고, 친척 찾아보고 어차피 한 1년 계획을 하고 예루살렘에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유월절 전에 왔다가 오순절까지 보고 그리고 여유있게 떠나게 되면 어떻든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땅에 와서 머문 기간이, 또 고향이 예루살렘 같으면 좋지만, 거기에서부터 갈릴리 북부 같으면 또 몇일간 내려오고 이런 곳이란 말이죠.
그래서, 우거하였는데,
6 이 소리가 나매,
‘이 소리’는 방언하는 하는 소리죠.
그리고 소리라는 것은 ‘소리들’이 아니고 ‘소리’예요.
그러면 한 사람이 말한 것 같거든요.
..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그런데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하는 것은 그 때 ‘경상도 보리문둥이가 아니냐?’ 하면서 지방 출신들, 변방이죠.
그러니까 순수한 혈통을 지키는 사람들은 유대인들, 혈통과 종교가 섞여있는 것이 사마리아인들, 그리고 아예 내 놓은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갈릴리 촌놈들이 아니냐..
그런데 이게 무슨 갑자기 무슨 어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지만, 듣는게 여러 언어로 들렸다는 거야.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전부 자기 난 곳 방언으로 들렸다는 거예요.
자기들은 말하는게 문제가 아니고, 듣는게 희한한 거야.
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아침부터 새술에 취했나?’ 이렇게 조롱을 한 거죠.
이것은 왜 성령께서 이런 일을 하셨느냐?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거죠.
오순절이어서 복음이 빠르게 전파될려고 하면, 세계 각국으로부터 사람들을 다 끌어모으는 초청장을 보내도 안 올텐데, 미리 다 와 있으니까..
그리고 유월절 지키고 가 버린 사람은 이런 은혜 못 보는 거죠. 그렇죠?
그 유월절을 지키는 것 뿐 아니라 오순절까지 다 지키고 가겠다 하는 예루살렘을 더 사모하고 또 어떤 영적인 종교적인 열정이 더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이런 은혜를 받게 된 거죠.
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런 것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된다는 아니라 그런 일도 있어진다 하는 뜻이지, 모든 사람이 다 꿈꾸고 모든 사람이 다 예언하고 이렇게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고린도전서 12장에 가서 보면 알게 될 겁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의 사명에 따라서 그 사람의 적성에 따라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나누어 주는 거예요.
각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그래서,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이런 본문들은 누가가 직접 들은게 아니죠.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그 때 믿지도 않았고 현장에 없었으니까 어떻게 알았겠어요?
두가지 경로가 있는데, 하나는 사도바울에게 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실루아노라든지 그 외에,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왔다가 체포되어가지고 가이사랴 감옥에 바울이 2년간 갇힐 때, 자기는 자유해가지고 예수님 사역을 쭉 지켜본 사람들의 증언을 직접 인터뷰하고 탐방하고 했던 그런 것을 통해서 이런 것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죠.
22절,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이것은 시편 16편에 다윗이 노래한 시에서 나온 말이죠.
이렇게 볼 때 누가가 파악하고 확인한대로는 베드로가 처음 여기 예수님을 이스라엘 앞에 증거할 때 어떤 분으로 증거했느냐 하면 다윗의 자손으로 증거했다는 거야.
29절,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그 자손’은 다윗의 자손이고, ‘한 사람’은 예수님이죠.
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다윗이 그런 시편을 쓴 것은 자기 육체가 썩음 당하지 아니한다고 노래한 것이 아니라, 다윗은 분명히 죽어서 그 무덤이 지금도 있지 않느냐? 그것은 바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한 것이다. 이렇게 증거합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나신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이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다’ 할 때, 이게 지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이런 성령강림이 있고 그리고 방언이 터지고 하는 것을 아무도 안 봤잖아요.
그럴 것 같으면.. 자기들끼리만 했죠.
그런데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다’ 할 때 이 일은 그 방언을 말하는데,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고 자기들끼리 열두 제자들이나 120 문도 그런 사람이 들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목적이 한 15개국으로부터 온 그 사람에게 듣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이 사건이 다락방에서 있었는지 성전 한 켠에서 한 집에서 있어서 바로 터져나오면서 외쳤는지..
그러니까 그런 학설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아직도 그 장소가 다락방이었다는 단어는 안 나왔죠? 우리가 방금 읽은 곳까지..
그래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 할 때 보고 들은 것이 방언이 터져 나오는 것인데, 그런 일이 일어난 그 장소가 성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베드로가 그 뒤에도 보면 제 9시 기도시간에 다락방으로 가는게 아니거든요.
성전으로 가고 있어요. 성전으로..
34절,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시편 110편에 나오는 말이죠.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청천벽력같은 그런 선포죠.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리스도를 너희가 죽였다’ 이런 말이죠.
그랬더니, 베드로의 이 단순한 말이 그 갈릴리 사람으로서 투박한 그런 말이 힘이 있고 단순해가지고 막 사람이 마음에 찔려서,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거룩한 두려움과 함께 탄식하면서 어찌할 바를 묻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는 아주 분명하는 단순해요.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여러분 대체로 서울에 가서 목회를 하는 분을 보면, 꼭 경상도 사람 아니면 전라도 사람이야.
목회가 잘 안 되는게 서울 사람이야.
서울 사람들은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 히마리가 없어요.
경상도 사람은 ‘믿습니다.’ 단순하게 이렇게 하니까 힘이 생기는데, 서울 사람들은 이래 저래 눈치 보느라고 말에 힘이 다 빠졌어요.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도 서울 사람은 정치 못해요.
경상도 사람이나 전라도 사람이 그냥 단순하고 이렇게 해야 씨가 먹히는 거야.
베드로가 말하니까 다 알아들어요. 초등학교 3학년만 되면 알아듣습니다. 너무 쉬우니까..
어려운 말을 할 턱도 없고 ‘~적(的)~적(的)’ 그런 것 안 한다고..
단순한 거지..
.. 너희가 회개하여,
이 ‘회개한다’는 말은 생각을 통째로 바꾸는 거야.
‘메타노이아’, 정신을 개조해버려. 완전히..
그래서 어떤 전환기 결정적 전환점. 영어로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라고 하죠.
획 돌아서야 돼요.
그래서 정신적으로 육체가 아니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개조, 헬라어로 메타노이아, 영어로는 ‘리펜턴스(repentance)’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헬라어로는 메타노이아, ‘노이아’는 ‘정신’인데, 정신을 완전히 바꾸라. 생각을 완전히 바꾸라..
여태까지 유대교에서 어쭙잖게 확실한 것도 없이 그렇게 바리새인들처럼 복잡하게 해석에 해석을 더하고 이런 것에서 그런 믿음 다 버리고 아주 정신을 확실히 바꾸라..
여러분 지금 에스라 하우스라든지 아니면 제가 혹시 강좌를 가서 창세기부터 하는 가운데 정말 정신을 확 바꾸는 사람 많아요.
모태로부터 믿은 신앙인데, 다 내려놓고 완전히 정신을 확 바꾸어 가지고 정신만 바꿉니까? 음식도 바꾸고 그릇도 바꾸고 가족 말고는 다 바꾸는 거야.
확 바꿨더니 그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런 이야기가 홈페이지에 끝없이 올라오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짜 회개라는 겁니다.
확 바꾸는 겁니다. 그냥..
고집이나 목적이나 소원이나 이런 것도 다 자기를 부인하고 확 바꿔야 돼요.
..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러니까 첫째 정신 마음 생각을 바꾸고, 둘째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고 죄사함을 얻어봐.
그러면,
..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간단하죠.
그러면 자기의 여태까지 육신적인 생내적으로 날 때부터 세상적이고 자아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생각하던 그런 생각을 다 내려놓고 스톱 해버리고, 그리고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게 되면, 그러면 새로운 영으로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영이 들어오셔가지고 새 삶을 살도록 해준다.
아주 단순한 거예요.
저는 사실 이런 말도 제대로 못들은 체 설교 듣는 중에 내가 그동안에 꽤 교만하게 내가 잘 난 줄 알고 똑똑한 줄 알고 착한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저녁에 그냥 눈물이 쏟아지면서 내가 갖고 있던 고집이나 내 소원이나 내 목적이나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예요.
내가 농촌에서 마치 상록수에 나오는 심훈처럼 농촌계몽운동을 하고 야학 야간학교를 중학교를 만들어가지고 아이들 가르치고 농촌 잘살기 운동, 그 때 잘 살아보세 하면서 새마을 운동하고 이렇게 했는데,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린거야. 어느 날 아침에..
그러면서 성경에 있는 진리를 사모하게 되면서 완전히 딴 사람이 되는데, 내가 될려고 해서 그렇게 애쓰는 것도 없이 그냥 내가 갖고 있는 생각 목적 소원이 아무 것도 아닌 거야.
다 내려놓고 제가 진지한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되고 싶었던게 있었거든요.
첫째는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가 되겠다.
그리고 농사짓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농사를 때려치우고 도망갈 생각도 했지만, 논을 메는데 얼마나 힘드는지 논메는 기계를 만들 수 없나..
그런데 만들어봐야 아무 쓸데 없는 거야. 제초제 나와버렸으니까..
그래서 조그만한 엔진을 달아가지고 논메는 기계 죽죽 밀던게 있거든요.
밀어도 팔이 아파요. 하루 하고 말아버리는데..
엔진을 달아가지고 밑이 파이면서..
그렇게 논 메면서 연구하고.. 그런 것 개발하기 전에 내가 예수 믿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개발 했으면 제초제 나와서 다 못 쓰게 되겠는데..
하여튼 그런 생각이라든지..
뭐 목수가 되겠다든지 상록수가 되든지 사철나무가 되든지..
아무 쓸데 없는게 되더라는 거야. 전부 다 내려놓게 되더라는 거야.
그게 제게는 회개였어요.
내 소원 내 욕심 내 목적 내 어떤 성취동기 아무 가치가 없다.
그래서 그랬더니 그 날 그로부터 2-3일 동안 얼마나 울고 불고 하면서 그런데 우는데, 운다고 해서 슬퍼거나 그런게 아닙니다.
우는데 속에서는 기쁨이 넘치는 거야.
그런 것을 사람들이 보고 미쳤다고 하는 거야. 울면서 기뻐하니까..
미친 것 아녜요? 그렇죠? 울면서 즐거워하니까..
그런 체험이 없는 사람은 저게 무슨 소리인가 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내성적이고 거의 우울증 환자에서 자폐증에 가까울 정도로 소심하고 대인공포증에다가 온갖 정신적 괴로움을 다 가지고 있던 사람이, 논을 메고 밭을 메는데 무슨 환상이 떠오르냐?
이정도가 아니고 여러 수백명 수천명이 옥수수알처럼 총총 머리가 박혀 있는데, 내 딴에는 뭐라고 외치는데, 진리가 마음에서 떠올라서 견디지 못하는 거예요.
참 이상한 체험이었어요.
농사하는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거야.
돈 버는게 별로 관심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목수일 하는 것도 예사고 농사하는 것도 예사고 계속 생각하느라고 일이 안 될 정도로..
여러분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여러분도 자꾸 그런 생각이 나거든 생각을 바꾸라고.. 하는 일이 별로 가치가 없다..
제가 어떤 건축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벽산건설에 있던 사람이었어요.
과장까지 되어가지고 일 잘 하는 사람인데, 두바이로 간다고 연봉 9천만원에다가 주재비 따로 나오고 한다고, 갈 준비가 전부 다 끝났는데 나한테 상담하러 온 거야.
‘9천만원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성원건설에 가서 집을 지었다손 치자. 지었으면 내가 작품을 만들었다 싶겠지. 그런데 별이 떨어질 때는 다 부숴진다. 다..’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돈은 받으면 좋겠는데, 당신이 돈 받아갖고도 선교비 쓸 것이고, 먹는 것도 한계가 있지 다 먹는 것 아니잖아.
그래서 그럴 바에는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찾으라.
영원한 가치있는 일이 뭐냐?
사람의 영혼 속에 뭔가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도 보통사람이 아니고 영원히 살 사람들 마음속에 영원히 가치있는 것을 심어주는게 최고로 가치있는 일이다.
이렇게 했더니 그 성원건설에 가는 것 때려치우고 CTS에 갔거든요.
여러분 요새 두바이가 한바이도 안 되죠.
두바이가 뭐 지금 쪽박을 차게 생겼어. 괜히 미국에서 유대인들이 ‘너 잘 한다 잘 한다’ 이렇게 하니까 진짜 잘 하는 줄 알고 등신 같은 것들이..
빚내어가지고 돈 빌려줄테니까 얼마든지 해 봐라. 하다가 자금줄 탁 끊어버리거든요.
그러면 건설회사 다 부도나거든요. 부도나면 다 도망가잖아.
그러면 절반 지어놓은게 조금만 하면 끝날텐데, 부도나게 만들어가지고 가격이 그냥 똥값이 되면 돈 대어주고 했던 저격수들이 가서 슬슬 챙기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것 모르면 건설회사 뛰어들면 안 돼요.
무슨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죠?
그러니까 거기 갔으면 지금 부도나가지고 오도가도 못하고..
그렇게 했을 텐데, 제가 최근에는 안 들어봤는데, 성원건설도 거기에 크게 걸려있지 않습니까?
우리 청년들 조심해요. 물론 건설도 돈은 벌 수 있어요.
벌 수 있을지 모르나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은 아녜요.
사람이 육체가 사는 집보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령의 전을 짓는게 중요하냐.
다른 너절한 학문 IT BT 해봐야 그런 것 별것 아닙니다.
전부 쓰잘데기 없는 소리 왔다 갔다 하고 끝나는 거야.
영원히 가치있는 것은 사람, 사람도 영원히 살아있을 사람들 마음 속에 영원한 가치 영원 불변의 진리를 심어서 그 사람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삶을 살게 하는 일이야말로 중요한 거죠.
요새 국어 영어 수학 하는데, 여러분 수학만 없으면 학교 다닐만 하죠? 그렇죠?
어떤 사람은 수학때문에 신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저놈 빌어먹을 수학만 없으면 학교다닐만 하다.’
영어만 없어봐. 거의 여기 낙오할 사람 별로 없습니다.
영어 수학 두가지 없어봐. 다 학교다닐 만 할거야. 그렇죠?.
제가 얘기 했죠?
영국에 가면 거지도 영어하는데, 영어해도 못 살아. 취직도 안 되고..
영어 한다고 다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 외교관이 된다든지 무역회사 영어 해야 돼요. 그런데 다 영어 할 필요 없어요.
여러분 싱가폴 총통 지냈던 사람이 두 가지 언어, 중국과 영어를 동시에 쓰게 했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얼치기가 되어 버렸다.
자기도 중국어도 제대로 못하고 영어도 시원찮고..
위간이라는 사람이 싱가폴의 아버지 같은 그런 사람 아닙니까?
분명히 이야기 했습니다. 두가지 언어정책은 실패했다..
메타노이아, 생각을 바꾸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최고의 선물이죠.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최고의 선물, 예수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 성령을 받아서 바른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성령을 받아서 성경을 깨닫고 사랑을 배워서 하나님 배우는 것..
여러분 생명공학 중에서 사람을 거듭나게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공학이 최고야. 맞습니까?
영생하는 생명공학이라야 가치가 있지, 요새 유전자 조금 조작해가지고 그래가지고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병신도 아니고 정상도 아니고..
그런 것 가지고 장난하면서 굉장한 학문처럼 해봐야 남는게 없습니다.
영원히 살 사람들을 바르게 해서 하나님께 응답하는 인격자로 세우는 것 최고의 가치입니다.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 약속은 제한된게 없습니다.
누구든지 얼마든지 부르시는 사람에게 이런 은혜를 주셨다.
누구든지 회개하여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받고 하면 누구든지 죄사함 얻게 되고 누구든지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죄를 사함받게 되고 거듭나게 되고 이런 세상을 소개하는데, 이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그 일이 세상 그 당시에 예루살렘에 잘 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볼 때, 세상 시원찮은 저 갈릴리 벳새다 동네에 베드로 같은 사람..
그런 사람에게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주어졌다는 겁니다.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여러분 중요한 얘깁니다.
여러분 이 세대를 따라가거나 이 세대를 본받거나 하면 안 됩니다.
이 패역한 세대에서 박차고 나가서 이 세대에 빠져 물들어갈게 아니라, 세대를 박차고 나가서 세상을 이기는, 이 악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자 보세요.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것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예수님은 3년이나 했는데, 열두 제자에서 70인 제자 정도가 확실한 제자이고, 승천하면서 한 5백여 제자가 모였다가 다시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이 120문도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갑자기 예수님 올라가시고 성령이 오시면서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된거야.
신자가 아닙니다. 그날에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
물론 예수님께서 3년간 뿌려놓은 것도 있고 하죠.
모세부터 천 몇백년간 뿌려놓은 것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어떻든 빨리 성장합니다.
그리고,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회라는 말을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해가지고 세상 세대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무리죠.
불러내심을 입은 무리..
‘에클레시아’라는 말이 ‘무엇으로부터 밖으로’ 라는 말이예요. 교회라는 말이..
세상에서 불려나와서 저 서마산 IC밑에 갈멜산 기슭에 따로나와 있는 무리..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나왔다. 불러내심을 받았다.’ 그런 뜻이 교회예요.
한국에서는 이 교회(敎會)라는 말을 할 때, 번역할 때 가르침을 받는, 가르치는 모임이라고 되어 있어요.
‘가르칠 교(敎)’자를 썼어요.
단지 불러내놓고 된게 아니라, 거기에서 가르치는 곳이예요.
가르치는 교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교회.
이렇게 가르칠 수 있어야 되는데, 옛날에 대천덕이라는 예수원의 원장이었던 대천덕 신부는 교회라는 말을 ‘가르칠 교(敎)’자로만 써서 될게 아니고, ‘사귈 교(交)’자로 쓸 필요가 있다.
그렇게 주장을 했어요.
일부는 맞는 말이죠.
사귐을 ‘코이노니아’라고 하죠.
그래서 이 가르침을 받고 가르침을 베풀기도 하지만, 역시 성도의 교제가 참 중요하기는 하죠.
어떻든 우리 한국에서는 가르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그러니까 가르침도 받고 교제도 하며, 그 다음에,
.. 떡을 떼며,
떡을 뗀다는 것은 가족같이 한솥 밥을 먹는다는 거죠.
그 다음에,
..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만약에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며 떡을 떼는 것만 하면 인간들끼리만의 관계로 끝나요.
기도한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거죠.
그래서 가르치고 교제하고 떡을 떼는 것은 인간관계이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죠.
하나님과의 관계도 연결되고 인간관계도 연결되어 있는 단체가 교회라는 겁니다.
나중에 요한1서 공부할 때 이런 말씀은 좀 더 구체화 해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우리가 지금 날마다 못하는게 아쉽기는 한데, 어떻든 마음을 같이 하는 것 중요해요.
그리고 모이기를 힘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모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만나고 모이고 교제하고 가르치고,
그래서,
..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어떤 것은 그 시대 그 환경 따라서 약간 약간 다를 수 있어요.
그러나 결론은 뭐냐?
결론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아야 돼요.
교회가 온 백성에게 욕을 먹으면 교회 선교가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그 방법이라든지 자세나 이런 것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칭송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개인도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이런 저런 좋은 일 해서 칭송을 받아야 돼요.
그게 안 되고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온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습니다.
온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어요.
그리고 미국이 마치 기독교 종주국처럼 비춰지는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계속 전쟁을 해대니까 이슬람권에 기독교 선교사가 가서 일 하는 것 말짱 헛적으로 만들어요. 욕을 먹게 해요.
지금도 다 죽어가는 미국 눈치봐가지고 나는 아프칸 파병한다는 것 정말 찬성할 수 없어요.
그게 해결 되느냐? 해결 안 되거든요.
소련이란 나라가 그 공산주의가 그렇게 지독한데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도 어지간히 땅굴 잘 파거든요.
8년 동안 러시아가 하다가 울고 간 데가 거기예요.
괜히 지금 미국이 가서 되지도 않은 싸움을 해가지고..
괜히 한국사람들 가서 어렵지 않겠는가..
그것 참 기독교 욕을 먹기 시작하면 어렵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샤론교회가 이 지역 사회에서 칭송을 받도록..
또 우리도 집안에서 문중에서 회사에서 지역사회에서 어디가든지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모든 곳에서 칭송을 받도록..
여기는 이것을 좋게만 보면 그런데, 실질적으로 보면 ‘모든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하는데 함께 있을 수 밖에 없어요.
따로 있으면 맞아 죽으니까..
그 다음에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여행객들이 대부분 상당히 많은 수가.. 물건이 없습니다. 오래 있으면..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데, 좋은 뜻으로 해요.
그 때 제가 들은 얘긴데,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산업도시가 아니고 종교도시이고 정치도시예요.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 나사렛 파에 가담한 사람들은 이단으로 찍히기 때문에 공직에서 쫓겨나야 되고 모든 상거래 끝납니다.
유대인 중에서 출교 당하니까..
그러면 먹고 살 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성도들이 애정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정말 한몸처럼 사랑하는 그런 것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재산을 팔아가지고 먹어야 돼요.
좋게 보면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서 나누어 주고 그렇게 하는데, 실제로는 제대로 말하자면 성도들의 재산을 팔아서 먹어치우는 교회가 된 거예요.
이것을 잘 모르고 이와 같은 정신을 밥상 공동체로 하겠다고 해가지고 성도들 몇 사람이 모여서 재산 다 팔아가지고 이것을 잘못하면 아주 위험하게 돼요.
바깥에 소문이 날 때 ‘저 교회에 가면 재산 다 팔아바치고 나올 때는 빈손으로 나온단다..’
끝까지 안 보고 그렇게 소문이 나요.
그래서 제가 아는 몇몇 목사님들 존경스러운 목사님들인데, 제가 존경한다는 말은 그만큼 순진하다 그 말이예요.
순진하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면 멍청하다는 말이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성경을 잘못보고 아 그게 성서적이다 하면서 내것 네것이 없어야 한다고 팔아가지고 야금 야금 먹어치우면 성장이 안 되죠. 또 소문이 더럽게 나니까..
성도가 30명 되는데, 세가정 반이 똘똘 뭉쳐있고 나머지는 들러리야. ‘똘똘 뭉쳐있는 너희는 뭐고 우리는 뭐냐?’
바깥에는 소문이 이상하게 나가지고 교회 성장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그런 것은 전혀 지혜로운 게 아니고, 그러나 그 때 유대인들은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사람들은 많이 모여 있는데, 도저히 생활이 안되니까 재산 있는 사람들 팔아가지고.. 우선 먹어야 사니까..
또 한편은 유대인들의 교회는 그렇게 한게 잘 한 거야.
왜 잘 한 거냐?
이 때 다 재산을 팔아먹었기 때문에 재산이 없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스데반 집사 핍박 날 때 상당히 흩어질 수 있었어요. 재산이 없으니까 미련 없이..
그리고 AD70년 예루살렘 멸망 전에 로마가 포위하기 전에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미련없이 헬라 지역으로 다 피신해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AD70년 예루살렘 멸망 때 그 안에 없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로서는 잘 한 거야.
잘 한 것은 그 예루살렘 교회에 국한 되는 경우이지, 모든 시대 모든 교회가 다 이대로 따라해야 될 원칙은 아니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앞으로 누가 공동체하자고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 해요.
조심하라고..
거기에 넘어가가지고 정말 이상한 데 빠진 사람이 많아요.
저에게도 ‘에스라 하우스 공동체 합시다’ 하고 들어와서 좋은 제안이라고 하는데, 내가 그렇게 설명을 하죠. 많이 생각해봐야 돼요.
그런데 누가 할 수 있느냐?
재산 하나 땡전고리도 없는 사람이 할 수 있어요.
어차피 가지고 있는 것이 없으니까, 들어가도 그만 나와도 그만 그렇죠?
그리고 장애인들 홀로서기가 안 되는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이 됩니다.
그리고 공동체 생활할 수 있는 민족이 있는데, 어느 나라사람이냐?
일본사람은 돼요.
일본사람은 국민성도 정직하게 하지만, 또 국민들이 지도자를 성실히 믿어주는게 있어요.
믿어주고 일절 말이 없는데, ‘하이’ 하면서 그냥..
그런데 한국 사람은 말이 많아서 안 돼요. 공동체가..
자기 마음에 안들면 따질려고 할 것이고, 전부 제멋대로 떠들 것이고 이렇게 주장하고 저렇게 주장하고 나중에 상처뿐인 영광이라..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중에 제일 안 되는 사람이 경상도 사람이야.
제가 볼 때 호남 사람은 좀 가능해요.
일본사람과 비슷하거든요. 백제 문화와 비슷해가지고..
지도자를 신뢰하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상도 사람은 전부 제 멋대로야.
나오는 놈 마다 장군이고..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곳이 경상도예요.
충청도 사람은 되는지 안 되는지 세상 끝날까지 가봐야 알아요.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알 수가 없어요.
하여튼 절대 경상도에서 공동체 같은 것 한다는 것은 꿈을 안 꾸는게 좋습니다. 아주 위험한 거예요.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도 다른 것은 몰라도 어떻든간에 방법과 이런 것은 다를 수 있는데, 칭송받고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을 주께서 더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은 사도들의 행적 중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어떻게 증거하고 어떻게 회개가 일어나고 어떻게 날마다 믿는 자를 더하게 하셨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샤론교회 성도들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서 사랑받는 의원 누가처럼 칭송받는 예루살렘 성도들처럼 어디가든지 칭송받고, 그래서 주께서 날마다 믿는 자를 더하게 하시는 아름다운 역사가 계속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