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상처를 마주하며
이 미 나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내게는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31년 전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A라는 애는 자신은 반에서 학업성적이 줄곧 2등이었다며 상대적으로 뒤처진 나를 상습적으로 놀리고 조롱했다. 또한, 내 얼굴은 못생겼다며(?) 비아냥거렸다. 당시 유약했던 나는 항변도 못 했다. 학교에 가면 속이 타들어 갔다. 생각할수록 치가 떨렸다. 그 상흔은 성인 되어서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요즈음 그 생각이 울컥 떠올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는 숨을 깊게 가다듬고 A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지만 바쁜지 받지 않는다. 기다리다 못해 여러 번 문자 메시지로 내 심경을 적어 보냈다.
왜 인제 와서 지난 일을 따지는 것이냐고 궁금해할 것 같은 A에게 너의 조롱이 내게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어 지금의 내 입지를 자리매김하여야 확실한 설욕이 될 것이어서 그랬다는 설명을 서두에 꺼냈다.
또한, 내가 못나고 형편없다는 A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도내 작가 지망생들끼리 경쟁하는 백일장 대회서 입상한 4개의 상장과 2019년 12월에 받은 수필가 등단 패를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시절 각종 글쓰기 상, 미술대회 상, 합창부 상, 학업 우수상 등 35개 이상 되는 상들을 한 번에 묶음 사진으로 촬영하여 보냈다. 또한, 내 피아노 실력이 부족하다는 놀림에 반박하기 위해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과 최근 내가 찬송가 피아노 반주한 동영상을 카톡으로 보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상대는 코가 납작해졌을 것이다.
정말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 게다가 담임선생님조차 가해자 A와 또 다른 애 B가 남들 앞에서는 착하고 모범생인 척 행동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애들의 비행에 울분이 차 있던 내가 나쁜 아이로 오해하셨다. 그래서 이제라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담임선생님께도 편지를 보냈다.
내 짓궂은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도 나는 교육자이신 부모님의 자녀로서 학업성적이 뛰어나지 못해서 놀림과 질타를 받아야 했고 우등생이었던 두 동생과도 비교당해야 했다. 그래서였던지 고등학교 때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치밀어 오르는 화병이 왔다. 세월이 흘러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아픔은 여전했고 병약했다. 그런 나를 보며 안쓰러워하던 선배 언니의 권면으로 나는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내 아픈 과거를 하소연했다. 그러면 언제라도 위안받았고 과거에 매이지 말고 미래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런 나의 열심에 등 돌렸던 운명도 내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피아노 반주가 하고 싶어서 하루에 4시간에서 5시간씩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맹연습한 결과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임명되었다. 또한, 내 연기실력을 인정받아 교회 행사가 생기면 연극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건강도 좋아져서 화병 때문에 복용했던 한약도 끊게 되었다.
또한, 결혼하고 첫째를 출산하였고 아이를 기르면서 도내 백일장 대회에서 4번 응모하여 모두 입상하였고 그사이에 둘째를 낳았다. 얼마 후 서울 한 문예지에 수필가로 등단하는 경사도 생겼다. 마음이 뿌듯했고 남매를 키우는 엄마로서 기쁨이 컸다. 하지만 이따금 지워지지 않는 과거는 깊은 상처로 남아 날 힘들게 했다.
이런 과정을 역시 A에게 순차적으로 문자로 보냈다. 그리고 말미에 “너 그렇게 잘나서 국회의원 됐냐! 빈정거려줬다. 하늘을 찌를 듯한 그 기세는 어디 간 것인지 A는 묵묵부답이다. 풀이 잔뜩 죽어 있을 A를 생각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속이 시원했다.
이 일들이 있기 얼마 전 그 시절 A와 B부터 고통당하는 딸을 교육자 체면 때문에 방관했던 부모님께도 강하게 따져 물었다. 분노와 원망이 섞인 딸의 거센 반발에 친정 부모님은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말을 잇지 못했다.
도저히 그냥 넘어가면 병이 될 것 같아 친정 부모님의 동의로 초등학교 졸업앨범에서 가해자 A, B의 주소와 집 전화번호를 수첩에 기재했고 즉각 연락을 시도했다. 유감스럽게도 B는 없는 전화번호이었고 주소지도 바뀐 듯하다. 그래서 일단 A의 집에 전화한 것이다. A의 부모님은 의심 없이 당신 딸(A)의 번호를 알려 주셨고 나는 A에 게 연락을 취해 봤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앞서 말한 대로 여러 번 문자를 보냈다.
이제 문자로 따졌으니 잘못했다는 사과 문자를 기다렸다. 하지만 내 메시지를 확인했어도 아무런 답이 없다!
기가 찬다. 감정이 격해져 다시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A는 수신을 계속 거부한다. 마음을 추스르기 어렵다. 그래서 다시 A의 친정집에 전화를 걸어 A의 아버지에게 “저는 이미나입니다”, “A가 저를 초등학교 6학년 때 상습적으로 못났다고 놀리고 괴롭혔습니다!!!” “아버지! A를 잘못 키우셨습니다!” “그리곤 저한테 사과도 없습니다”, “A는 악마입니다!” 뜻밖의 항의에 A의 아버지는 “ 대체 무슨 소리야!!!” 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씩씩거리며 먼저 전화를 끊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통화를 마무리했다. 분명 약이 오르고 망신스러워하는 A와 불같이 화를 내며 A를 호통치는 A 부모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어디 그뿐인가 A의 부모님에게 그 시절 A가 내게 했던 못된 행동을 여과 없이 모두 적어 빠른 등기로 보냈다. 그 편지는 이튿날 내 휴대전화에 A의 부모님에게 도착했다는 알림 카톡이 뜬다. 그리고 추가적 조치로 학창 시절 동창 20여 명과 선생님들과 A를 초대하여 단톡방을 만들어 A에게도 알린 현재의 내 경력과 A의 악행에 대한 항의의 내용이 실린 그 편지 4장을 보여주며 A와 B의 민낯을 폭로했다. 물론 이 편지가 A의 부모님께 보낸 편지라는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그 알량한 자존심 지키고 싶어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A에게 충분한 보복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A의 예상 밖의 반응에 친정어머니도 부아가 치밀었나 보다. ‘나 오늘 A 엄마 만나러 간다.’ 문자가 왔다.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난 후 친정어머니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미나가 어릴 적 상처가 얼마나 심했으면 여태 힘들어서 A에 얘기한 것인데 사과 한마디가 없냐고 A 어머니한테 따졌더니 죄송하다고 하신다. 이쯤에서 이 일을 마무리하자. 속상한 마음 이해한다. 이제 풀어야지.”하고 딸의 마음을 위로해 주셨다. 파렴치한 A가 참 얄미웠다. 그래도 A의 어머니라도 대신 사과했으니 그나마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A와 학창 시절 여러 동창과 선생님들이 초대된 단톡방에 친정어머니가 A의 어머니에게 항의하러 가셔서 사과받았다는 내용의 메시지로 보냈다. 그러자 학창 시절 내 아픈 사정을 몰랐던 동창들과 선생님들이 내 심정을 공감하며 A와 B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아마 A가 받을 이미지 타격이 작지 않았을 것이다. 동창들과 선생님들의 위로 덕분에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이 사그라지었다.
가해자 A는 자신이 내뱉은 말과 행동이 이토록 상대의 가슴에 뾰족한 가시가 되어 오랜 시간 힘들게 했다는 사실에 놀랐을 듯하다. 또한, 자신이 뿌린 죄가 세월이 지나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새삼 체득했을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그 원리가 그토록 들어맞았으니 가슴이 내려앉았을 듯하다. 그러하기에 항시 하늘을 두려워하며 삶의 순간들을 조심스럽게 내디뎌야 할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끝까지 자기 잘못을 외면하는 A를 보며 더 난처하게 하고도 싶었지만 나도 살아오며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있을 것이고 본래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신처럼 완전무결한 정의의 잣대로 심판한다는 것은 지나친 교만이며 월권이라는 생각에, 이쯤에서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 B도 이제는 모든 판단은 하늘에 맡기고 바삐 돌아가는 삶의 일상으로 되돌아오려 한다. 수첩 맨 위쪽에 내년 5월 중 수필집 출간이라는 문구를 적어놓는다. 이 목표를 진행하기 위해 세부 일정 등을 써 내려간다.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발목 잡히지 말고 주어진 현재를 놓치지 않아야지.. 바람 쐬러 나온 길 혹한 겨울을 보내고 서서히 봄으로 들어서는 아파트 공원을 걷는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가슴이 홀가분하다.
첫댓글 잘 하셨어요. 평생 가슴에 묻어 둘 이야기를 다 털어 내시고 이제는 홀가분하게 자녀들과
행복한 나날이 되시길 빕니다.
이미나님 파이팅!! 긍정적인 생각만 하시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 가시길 빕니다.
나이를 먹고 보니 그것이 정답입니다. 내 건강이 최고입니다.
그래야 훗날 자녀들의 모습도 같이 보면서 그 행복을 같이 누리게 되는 것이니까요
예~ 감사합니다~ 상대에게 할 말은 해서 속이 다 후련합니다. 이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