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아 만나서 함께한 아름다운 시간이 너무너무 즐거웠다 !
부디 몸건강하고 행복해라 !!!!
워 낭 소 리
상주에서 박 재 욱
희끗희끗 잔설이 붙은 산허리를 스쳐 차가움을 몰고 오는 바람은 매서운 칼바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 마을은 풍요로운 농촌의 풍경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초입 진입도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을 어귀에서부터 여기저기에 웅크린 축사가 괴물의 형상을 띤 채로 서 있고 축사를 스친 바람이 역겨운 냄새를 달고 달아난다.
산 너머 이웃 마을에도 또 다른 마을에도 바람은 냄새가 역겹기는 마찬가지인듯 그 냄새를 달고 빠르게 달아나야만 했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도 바깥은 아직도 차가운 모양이었다. 해가 솟으면 어느 정도의 온기가 있어 추위를 녹여주건만 축사 안으로 새어드는 바람은 여전히 칼바람이었다.
지난 밤에는 낡은 양철지붕을 때리는 겨울바람이 하늘가득 머물던 찬공기를 안으로 밀어 넣어 설핏 잠을 설쳤다. 그 탓인지 몸이 어슬어슬하다. 춥기는 하지만 잠시나마 선채로 눈을 좀 붙여볼 요량으로 눈까풀에 힘을 풀었다. 순간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자국을 내 딛는 소리가 조금 소란스럽는가 했는데 크르릉 크르릉거리는 기계 마찰음 소리가 들렸다.
‘제기럴. 사료작업을 왜 이때에 해.’
작은 산이 이어진 언덕 밑에 지어진 축사에 가끔 기계음소리와 엔진소리가 들리는 것은 사료를 가득 실은 자동차가 들러 이루어지는 사료작업이었다. 그럴 것이라 여기며 불안한 심통을 던졌다.
오래지 않아 일단의 사람들이 얼굴과 몸을 흰 천으로 가리고 축사 안으로 들어섰다. 자세히 보니 긴 장화를 신고 이상한 물건을 손에 든 것이 마치 자기 의사대로 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지시나 통제에 따라 일관되게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강시 같았다.
사람들은 심연의 강을 마지못해 건너가야 하는 듯 축사 안을 쭉 훑어보더니 저들끼리 무어라고 지껄었다.
'사료작업이 아니쟎아, 그럼 예방주사 방역인가.’
가끔씩 방역을 한답시고 축사주인은 4내지 5명씩 무리들과 어울려 뽀족하고 긴 바늘로 엉덩이며 목 주위를 찌러고서는 생각이상으로 살찐 놈들을 돌아보며 흐뭇해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함께 한 동료들이 발출하는 왠지 불안한 눈빛이 그들에게 모아졌다.
이윽고 그들은 우리 동료들을 한 쪽으로 몰아 일렬로 세우기 시작했다.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칸막이가 열리고 축사에 가득 했던 동료들이 한곳으로 몰리자 좁은 공간에서 너댓 녀석들은 머리를 엉덩이에 맞대고 웅웅소리를 질렀다. 아직까지 구석으로 몰리지 않은 녀석들도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웅웅소리를 질러댔지만 남성을 잃어버린 놈 중에는 아직까지 영문도 모르는 녀석도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감을 잡지 못하는 녀석은 바보 같았다.
영문을 모르는 녀석들은 ‘예방주사를 또 맞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터였지만, 왠지 모르게 도축장으로 끌려갈 것 같은 불길한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차피 죽어야하는 운명이라면 이 순간만큼은 낌새를 느끼지 못하는 녀석이 오히려 행복한지도 모른다.
가느다란 주사기 바늘이 꽂이자 맨 앞에 선 녀석이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불식간에 저항할 시간도 없이 쿵하고 넘어졌다. 그 옆에서 흰 장갑을 끼고 전자봉을 든 사람의 손이 떨리는듯 녀석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검은 밧줄이 걸리고 녀석이 실려나갔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어두운 기가 다가오자 마지막이란 낌새를 느끼고 후다닥 탈출을 시도하던 녀석도 또 다른 놈도 탈출구가 없음에 뒤따르는 녀석을 힐끔 돌아보고서는 벌렁거리는 콧구멍으로 강한 콧바람을 내뿜으며 입을 벌린채 차례대로 넘어졌다.
내장을 다 비운듯한 가스덩어리가 코와 입에서 강하게 뿜어져 나와 옆에 서서 도움을 주던 너댓 사람의 얼굴로 겹겹이 줄기차게 몰아치자 견디지 못한 일부의 사람이 코를 움켜쥐고 컥컥하는 소리를 뱉었다.
동물성 사료가 화학반응을 한 마지막 날숨은 평소에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을 예고한 콧바람은 독가스나 다름없었다.
“속이 울렁거려 정말 인간으로서 못할 짓이구먼, 말 못하는 짐승이 무슨 죄가 있어 생으로 죽어야 하나 이거야 원.”
주사기를 잡은 사람이 불만을 토하며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메스꺼움에 코를 훔쳤다.
“놈들이 전생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댓가로 업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거야.”
“업보, 업보라면 우리도 죽어서 소 돼지로 태어나는 건 아닌지. 무수한 생명을 강제로 뺏으니 아마 그렇게 되겠지......”
“우리가 왜? 시킨 사람이 업을 받아야지.”
“하긴 그렇네.”
“허튼소리 집어치우고 굳은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이 작업 끝나면 5일간의 휴가가 기다리니 얼마나 좋은가.”
“얼어죽을......”
“그냥 그렇다는 거야. 여기서 끝나면 좋은데, 작년과 같이 추운 날씨에 밤새워 방역초소근무 설 생각하니 즐거워서 그런다 왜.”
“그러니깐 힘없는 지방공무원은 만능 선수란 말이다.”
“ ...... ”
어쩔수 없이 생명을 지워야하는 자책의 말을 위안으로 흘리며 불도(佛徒)인양 윤생(輪生)의 변으로 응답하며 저들끼리 너스레를 떨었다.
사태가 심각한 극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판단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쟎아. 대체 무슨 이유로......’
눈가에 흘린 물기가 마르기도 전에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하면서 실려나가는 녀석과 거리는 불과 이십여 미터, 죽음으로 가는 시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곧 나도 먼저 간 녀석들과 같이 인간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겠지. 타고난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비육이란 수단으로 키위지다 도축되어 인간들의 식탁에 오르는 것이나 젊기는 하나 좀 일찍 가는 것이나 살다가 가는 것은 마찬가지, 타고난 수명을 조금 늘리려고 아둥바둥하는 인간들보다는 어쩌면 우리가 더 신사적일 것이다.’
관조적(觀照的)인 생각을 모으며 나는 내 발꿉을 내려다 보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지난 해에는 먼 지역에서 발꿉이 썩어들어가고 콧물을 심하게 흘리는 병에 걸리어 비실거리는 동료들이 모두가 영문도 모르고 죽었다는 소문이 있어 혹시나 싶어 불안했는데, 동료들의 발꿉에 문제가 있나 싶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물집이 생겨 갈라진 발꿉은 없고 모두들 이상 없었다. 혹시 콧물을 흘리는 녀석이 있나 싶어 둘러보았지만 감기로 인하여 조금 흘리는 녀석이 하나 있기는 한데 심한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죽임의 대상이 되어야하는가.’
순간 시골의 야트막한 산이 이어진 언덕배기에서 이른 봄날 파란 새순으로 돋은 푸른 풀을 뜯어먹었던 풀냄새가 느껴졌다. 풀냄새를 따라 푸르름이 출렁이던 시골의 들판에서 밭갈이를 하던 어미의 꽁무니를 따라 천방지축으로 뛰어 놀던 때가 다가왔다. 산 모퉁이를 돌아 흐르는 물줄기를 스쳐온 바람이 신선한 공기를 담아 봄 아지랭이로 출렁이는 비탈밭은 어미가 즐겨가던 밭갈이 장소였다. 밭갈이를 나갈때면 어미는 무척 즐거워했다. 자식처럼 아껴주는 주인을 도와준다는 마음이 앞서기도 했지만 쟁기를 당기면 무척 힘은 들어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발꿉에서 느껴지는 흙의 감촉이 부드러워 좋았기 때문이었다. 일을 마치고나면 어미는 멍에목에 군살이 돋아 밤새 끙끙거리기는 했어도 주인이 챙겨주는 영양가 있는 음식에 모든 피로를 풀었다. 소부쟁기가 넘기는 한이랑 두이랑이 한뜸 두뜸으로 메겨져 긴 사래 밭이 새롭게 단장되면 주인은 그 밭에 1년 동안 정성을 들일 농심을 심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는 지나가는 다른 사람을 막걸리 잔에 불러들여 도회지로 나가 공부하는 아들 녀석의 효심을 주인은 늘 자랑으로 애기했다. 공부 잘하고 효심 가득했던 그 때의 아들의 마음이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미의 잔등을 긁어주던 그 손길은 따뜻한 아비의 손길이었다.
앞서가는 어미의 뒤를 따라가다 슬쩍 뒤돌아보면 고삐를 잡고 뒤 따라 오는 주인의 모습은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평온하고 환한 얼굴이었다. 흰 머리카락이 덮흰 이마에 가려진 주름은 영락없이 노인 얼굴이었지만 체력은 혈기왕성한 젊은이 그대로였다.
또 한 녀석이 넘어졌다. 녀석은 우리에게서 논객으로 통한 몽이란 놈인데 잘난척 하는 것이 지나친 과장으로 자기 포장을 하는 것이 좀 그러하기는 해도 나하고는 친했다. 넘어지는 녀석의 몸에서 짤랑 짤랑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그건 몽이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워낭소리였다.
댕거랑 댕댕. 덩그랭. 댕그랑댕댕댕.....
잠재해있던 분노가 일어나 눈꼬리를 일으켜 세웠다.
“발꿉도 멀쩡하고 건강한 우리가 왜 생으로 죽어야 하는데, 망할 인간넘들.....”
내가 표한 분노의 소리가 인간의 귀에는 우어잉 우엉이잉 하는 소리로만 들렸을 테지만 내 뒤를 따라 온 털식이가 우어이잉하고 똑 같은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털식이가 내지른 소리를 필두로 하여 모든 녀석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일부 녀석들은 강하게 저항하려고 유일한 공격무기인 뿔을 앞으로 내밀었지만 전자봉 앞에서는 죽을 수도 있음을 알기에 맥을 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야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에 조상들은 농사일로 단련된 근력이 어지간한 동물은 한방으로 날릴 무도의 힘이 있어 호랑이와 맞설 힘이 있었지만 인간에 의하여 남성이 제거된 상태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 숫놈의 기질은 남성에서 나오는데 그시기가 없으니 기력이 약하고 기력이 약하니 감히 인간에게 맞서서 저항 할 용기가 사라지는 것은 다 인간들이 바라는 요구사항, 때문에 좋은 말로 육질이 좋고 성격을 순하게 하기 위하여 불까기를 한다나. 욱지라질 넘들......’
눈앞에 있는 주사기를 든 인간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너도 짤렀냐. 나도 잘렸다.
통증으로 사타구니 밑이 좀 가볍다고 느꼈을 때 내 모습을 본 털식이가 내한데 던진 말이다.
주사에 익숙한지라 평소에 맞던 예방주사이거니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인간에게 몸을 맡기고 조금 따끔하겠지 했는데 따끔함을 느끼고 나서 다리에 힘이 빠짐을 느끼고 부터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서는 사타구니 밑에 통증을 느낄뿐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생겼네. ”
“이상하다니, 내꺼가 이상하면 니꺼도 마찬가지야 임아. ”
농담을 받으며 왜 그런 말을 할까 하고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뒤돌아가서 본 털식이의 것이 진짜로 꾸굴쭈굴 했다.
남성을 잃어버리고 꾸굴쭈굴한 것은 생명력이 없다는 뜻 생식기능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었다.
건너편 다른 울타리에서 새끼를 낳은 눈여겨 봐둔 미즈를 바라 보았다. 미즈는 내가 이성으로 좋아한 동료 여인이었다. 항상 짝사랑으로 일렁거리는 마음이 있어 조금만 더 자라면 내가 보아둔 미즈와 합궁할 날을 기다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종속보존의 기능을 강제로 빼았겼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인간이 싫어졌다.
“어이 형철이 앞에 선 애들이 주사를 맞고 일어나지를 않지, 공기가 이상하다 씨벌 인간넘들이 진짜로 우리 모두 다 죽이는 것 아니야 이거.”
내 이름을 부르기에 뒤돌아보니 힘이 세기로는 상대가 없는 통발이 형이 좁은 통로를 비집고 앞으로 나오면서 물어왔다.
“형 이제야 감잡았소, 무디기는 오늘 우리 모두 제삿날인지 아슈.”
“제삿날이라 어쩐지 이상하다 했지. 그럼 죽는다는 말인데, 우리 힘으로 한꺼번에 밀고 나가자. 내가 앞장설 테니 모두들 나를 따르라구.”
“형, 저들이 든 것이 전자봉이요. 전자봉을 든 인간을 상대로 우리가 이길 것 같소. 전자봉은 총이나 다름없는 것이요. 총 맞으면 모든 게 다 죽는데.”
“그래도 그렇지 이 자리에서 그냥 죽을 순 없지. 어차피 죽을 거면 이판사판으로 가는거야.”
“통발이 임마야 그시기도 없는 놈이 용기가 참 가상타. 참아.”
통발이와는 달내로 3일 차이가 나는 동갑내기인 경상도 상주에서 왔다는 천덕이가 나섰다.
통발이와 천덕이는 담장 하나를 두고 한 집 건너 있는 양쪽농가에서 같은 달에 때어났다.
저 둘은 사실 자신들은 알지 못하지만 배가 다르고 씨가 같은 이복형제이다. 배란 기일에 맞춰 옆 집에 온 수의사가 인공수정을 하고, 마침 이웃집 노인이 기르고 있는 암소도 배란을 맞아 울고 불고 야단을 하는지라 실패하는 셈치고 같은 씨로 수정을 했는데 그렇게 하여 태어난 녀석이 천덕이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둘은 형제인데도 저들은 그냥 친구로 터고 있다.
마을에는 소규모로 재미삼아 열댓 농가가 소를 키웠는데 두 농가는 각각 암소를 한 마리씩 길러서 새끼를 낳아서 파는 노인네가 주인인데, 송아지의 티를 벗을쯤에 어찌하다 통발이와 천덕이는 이 곳으로 입식되었고 통성명을 하다보니 이웃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와, 천덕이 넌 자신이 없냐. 그시기가 없다고 눌러지낸 인간들이 무섭냐.”
“인간이 무서운건 사실이 잖냐. 그시기가 있어도 마찬가지고. 고기소로 팔려 죽으나 그냥 죽으나 죽긴 마찬가지 그냥 소로 태어난 걸 원망하며 그냥 가는 거야. 우린 동향이 쟎냐 좋은 친구와 함께 가게된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여야지.”
“축복, 개뿔이 축복이야. 나 혼자라도 앞으로 치달을 테니. 싫으면 모두 그만 두라고”
빠르고 강한 톤으로 말을 마친 통발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통발이가 뿔을 앞으로 내밀더니 감당할 수 없는 살의를 품으며 발꿉을 박차고 좁은 통로를 비집고 앞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앞으로 갈수록 통로가 좁아 더 이상 나가지 못하자 분함을 참지 못하고 우어이잉 우어이잉 고함을 지르며 씩씩거렸다.
“내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상황을 잘 모르긴 하나, 사전에 막을 수 있지 않았겠나.”
“미처 예상하지 못 했습니다.”
“양성으로 판명된 축사의 가축만 살처분 하면 되지 않을까.?”
“안됩니다.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더 확산되기 전에 반경 3키로에 있는 대상 모두를 처분해야만 합니다.”
“너무 가혹하군. 축산농가가 반발하지 않을까.?”
“현싯가 보상이라서 이해하고 따라 줄 것입니다.”
“현싯가 보상이라니, 80% 보상이라 했지 않았는가.”
“예, 이번 만큼은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살처분으로 구제역을 막을 수 있을지?."
“지난해에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확산을 막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살처분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 때 완전히 차단되었다면 올해는 발생하지 않아야 되는데, 문제는 매년마다 발생한다는 것인데..... 살처분 매몰지는 선택 잘했겠지. 침출수 문제로 언론이 시끌해서는 절대 않되니, 각별히 신경을 쓰야 할거야.”
말끝을 흐린 사람이 상기된 모습으로 앞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실장님,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무슨 예긴데. 개인적으로 학교 후배지만 여기선 공식적인 얘기만, 알지”
“예, 사실, 가축의 숫자나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균형을 맞추려고 자연적으로 구제역이 정리를 좀 하는 것이 잘 된 일인지도 모르죠.”
“하긴, 면적에 비해 많긴 하지. 보조지원에 돈이 된다고 하니 앞 뒤 가리지 않고 온 천지에 축사를 지어, 수질이며 토양을 오염시키고, 냄새를 풍기는 것은 사실이지. 초식동물의 내장이 왜 긴지 홍과장은 알아.”
“예, 풀 먹고 자라라고 신이 길게 한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육식동물의 살점이 들어간 사료를 먹고 운동도 없이 식용으로 가두어 키우니 병에 대한 저항성이 떨어져 병에 잘 걸린다고 전 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 그게 정답일거야. 구제역 말이야, 이 구제역이 14세기 중세에 유럽 및 아시아를 휩쓴 페스트의 변형이 아닐까? 구제역이 1934년에도 있었다지. 그 당시 흑사병으로 이천오백만명이 죽었다는데, 세균은 무서운거야. 지금은 발꿉 갈라진 동물이 구제역에 약하지만, 돼지 감기가 변형된 신종프루 같이 앞으로 또 어떤 변종이 나와 사람에게 저항할지...... 근데, 영감님 한데 보고할 자료 준비는 었는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럼, 사전 연습 삼아 브리핑 함이, 어때?.”
“예. 연습 한번 하겠습니다.”
홍과장이 전화를 들고 무어라고 말하자 곧 이어 주무관이 브리핑차트를 가지고 왔다.
차트에는 구제역 발생현황이라고 적인 전지 크기의 현황판에 발생일시․현재추진현황․향후계획․대처방안 순으로 간략하게 적혔고, 구제역 발생지점으로 부터 색깔이 다른 작고 큰 원이 두개가 그려져 있었다.
“붉은 색이 반경 500m고 푸른색 원이 반경 3km인가.”
“그렇습니다. ”
“몇 농가가 대상인가”
"붉은 원안에 총 5농가 있으며 이중 축산농가는 2농가로 한우 123두이며 돼지는 없습니다. 푸른 원안에는 15농가중 축산농가 8농가이며 소 1,234두 돼지 2농가 2,000여 마리 입니다. 문제는 인접한 시와 경계지점이라 파장의 여추가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지. 전염속도가 빠른 돼지가 있는 지역이라 신경이 많이 쓰이겠지. 영감님을 모시고 기자들한데 하는 만큼, 해박한 실력을 발휘해 보도록.”
“시작하겠습니다.”
“참, 홍과장이 프리핑은 청내에서 제일이라면서”
“축산위생과장 홍근전입니다. 여러분께서 관심이 많은 관내에서 발생한 구제역 양성 사건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제역은 영어로는 Foot and Mouth Diseas 하고 한자로는 口(입구)蹄(발꿉제)疫(병역)이라 합니다. 글자와 같이 입과 발꿉에 걸리는 병으로서 주 병원체는 RNA(Picornaviridae Aphthovrius)바이러스입니다.
어제 14일 표시된 지점의 관내 축산 농가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구제역이 발생했습니다. 금월 12일에 농가로부터 의심축 신고가 들어와 확인 결과 구제역 초기 증세와 비슷하여 우리시에서 자체 가축 이동 통제를 하고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검사를 의뢰 오늘 14일 최종결과 구제역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현재 추진 중인 사항은 주요 길목에 방역 이동초소를 설치 완료 하고 오늘부터 방역근무을 할 것이며 내일은 방역메뉴얼에 따라 살처분 등 후속조치를 할 것입니다.
구제역바이러스는 산도 6이하 산성이나 9이상 알카리에서는 활동하지 못하므로
아울러서 축산농가 개별적으로 철저한 소독을 실시하여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을 차단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에는 구제역이 다른 지역에서 발생해도 철저한 방역으로 우리시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그렇지는 못한 것이 죄송스럽습니다. 청정지역에서 비껴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호하는 상감한우의 명성이 밀려날 염려가 있어 안타깝습니다,
아시다시피 구제역은 국제수역사무국에서 A급 전염병으로 선포한 바이러스에 의하여 전염되는 급성전염병으로 우라나라에서는 1종가축전염병입니다.
주로 소.돼지.양.사슴 등 발굽이 두개로 갈라진 초식동물에 걸리고 증세는 발꿉.입,구강.코.젖꼭지에 수포성 물집이 생겨 썩어가는 병으로 전염되면 치사율이 최고 55%나 되는 무서운 병입니다.
바이러스 잠복기는 약 14일정도인데 소의 경우는 3~5일이며 감염 초기에는 약 40~41도의 고열로 잘 먹지 않고 거품이 섞인 침을 흘리고 심한 경우는 일어서지 못하다가 죽어가는 병입니다.
메리알 이라고 하는 예방백신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 축산농가에 할당하기는 부족한 상태이고, 아시다시피 백신은 치료약이 아니고 예방약입니다.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선진외국에서도 대상 가축을 살처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현재로서는 매몰처분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으로 살처분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라나라에서도 1934년 발병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주로 베트남 등 농업 후진국에서 발생했는데 근래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여 예방을 위하여 대상가축 모두를 살처분했습니다, 우리시에서도 메뉴얼에 따라 농가 500m 내에 있는 모든 가축을 이미 살처분하였으며 또 예방을 위하여 반경 3km내도 살처분 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소보다는 돼지의 전염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발생요건은 대기의 습도가 60%이상으로 높고 온도가 25도 이하일 때 잘 발생합니다. 전염원인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역을 차량. 사람 등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가 주 원인이고, 일부는 공기로도 전염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구제역이 사람의 인체에 영향을 주느냐 하는 것인데, 구제역은 돼지에서 생겨나 변형된 신종플루 같은 인수전염병이 아니며, 현제까지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구제역바이러스는 70이상 고온에서 살지 못하므로 고기를 70이상에서 충분히 익혀서 먹으면 되겠습니다.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축산농가 개개인의 철저한 소독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께서도 구제역과 사투에 들어간 저희들에게 많은 격려와 관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역시, 홍과장이야. 잘했어. 그런데, 서두에 영어 하고 한자 설명은 괜히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 과시로 느껴질 것 같아서, 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홍과장, 그리고 구제역이 생기면 가축방역에 따른 소독약품의 과다 살포로 가축분뇨 정화처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던데 그건 뭔가?.”
“예, 가축분뇨는 소규모로 돼지를 사육하는 신고대상 농가에 저렴한 비용으로 처리해주는 일종의 혜택입니다. 처리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준에 따라 처리합니다. 처리기준은 돼지분뇨를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약24,000ppm에서 유입하여 허용기준은 30ppm이나 우리시는 3ppm이하로 처리하여 방류하고 있습니다. 그외 COD(화학적산소요구량)는 유입시 10,000 방류시 20이하, 부유물질(SS)은 22,000유입 5이하 방류, 총질소(T-N)는 4,500유입 16이하 방류, 총인(T-P)은 800유입 1ppm이하로 방류 하고 있습니다.
가축분뇨 처리는 미생물을 이용하여 분해하고 최종으로 화학처리를 하여 방류기준으로 방류합니다. 문제는 농가에서 방역으로 살포한 과다한 약품이 가축분뇨에 녹아들어 함께 처리장으로 유입되어 미생물이 처리능력을 초과하면 미생물이 죽는데 있습니다. 그 미생물을 어떻게 죽지 않게 하느냐가 어려움이라고 합니다.”
“그런 문제가, 분뇨처리 측면에서도 구제역은 발생하면 않되겠구먼. 우리시 처리실태는 어떤가?.”
“그 기술적인 처리기술이 우리나라 다른 시군보다 뛰어나 다른 지역은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가동중지한 곳도 많지만 우리시 처리장은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시 공무원이 뛰어나다는 얘기구만.”
“그렇게 봐 주시어 감사합니다.”
“결국은 가축분뇨는 농가에서 수거하는 유입량이 어떻냐에 따라 기술적인 충족요구가 필연인데, 농가에서 반드시 수거시 유입기준을 지켜야 하겠네.”
“예,그렇습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농가가 유입기준을 초과하고 있지만 반입을 거부하면 민원 발생이 예기되어 받아서 처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 축산분뇨 해양투기 금지와 더불어 축산농가의 건전한 양식이 꼭 필요한데......”
말 끝을 흐린 실장이 안경을 걷어올렸다.
“예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음식물쓰레기 폐수 및 가축분뇨를 바다에 버렸습니다만 해양투기금지에 따라 가축분뇨를 비롯한 처리문제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입니다.”
“환경문제 대두라, 지방행정공무원은 역시 만능이어야.....”
안경 너머에 감추어졌던 다년간의 행정경력이 빛나는 안광이 강하게 뿜어져나왔다.
우어이잉 우어이잉 통발이가 한을 품으며 소리치고 울분을 토하자 그제서야 사태 파악을 한 동료들이 머리를 좌우상하로 흔들며 허무의 핏물이 다빠져 나갈 것 같은 기세로 각각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목줄기를 빠져나간 공기의 떨림이 큰 울림통이 되어 축사를 진동시켰다.
“이 놈들이 갑자기 왜 이래 소란하지, 뿔로 받을 듯한 기세가 만만찮은데, 울타리 펜스를 넘어와 진짜 뿔에 받혀 죽는 것 아니야 이거.”
“놈들이라고 죽는 느낌이 없을라고.”
“조심하세요. 전자봉을 앞으로 내밀고, 상황 파악 하세요.”
“한 놈씩 격리했다가 보내세요.”
명령대로 움직이는 로봇 강시들의 다급하게 주고 받는 말이 흐릿하게 들렸다. 커다란 눈에서 쏟아지는 불안한 눈빛이 강시들에게 모아졌다. 미쳐 떨구지 못한 메마른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떨어졌다.
생과 사를 가르는 선이 길게 그어졌다. 그 선이 점차 좁혀져 작아지고 있었다.
‘점점 좁아져 더 이상 설자리가 없을 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생과 사를 가름하는 순간에 순교자의 순수한 마음을 담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 선에 수평선 또는 지평선을 대입해 걸어보면 수평선이라면 바다를 걸 것이고 지평선에는 대지가 걸릴 것이다. 수평선에 걸린 바다의 무게와 지평선에 걸린 대지의 무게는 얼마이며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혼자 관조(觀照)의 심금으로 뇌파를 흘렀다.
“그야 수평선과 지평선만이 알일, 무게는 바다가 더 무거울걸. 친구 형철이의 마음에 바다가 걸리고 있으니 말일세.”
내 마음을 읽은 도형이 대답했다.
도형이는 철학을 하면서 문학을 하는 친구로서 문학을 하는 나와는 의견이 맞는 친구이다. 생각이 같으면 뇌파의 파장도 같은 법 내가 심각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그리면 도형이는 항상 내가 그리는 생각을 같이 하곤 했다. 그것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테레파시였다.
“그렇겠지.”
“바다의 수평선은 하늘을 올려놓고 버거운듯 하면서도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지. 그러기에 흔히들 하해(河海)와 같은 은혜라고 하지 않나.”
“그렇지, 대지의 지평선은 하늘만 올려놓았지만 수평선은 하늘과 땅을 올려놓고도 늘 바다의 수평을 맞추지...... 배들이 저마다 그 무거운 수평선을 끌고 다니니, 배는 대지를 담을 수 있을 거야.”
“인간들 중에는 수평선을 끌고 다니는 배 같은 사람도 있지만 지평선을 끌려고 하는 어리석은 인간도 있다지”
“그래, 저들 마음대로 돈이 혈안이 되어 온갖 곳에 축사를 많이 지어 우리들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선, 질병관리도 못하고 살처분이라니 무식하기는 지평선을 배로 끌려고 하는 것 같이.....”
“그래, 인륜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또 어떻고, 어미와 딸이 그리고 이웃 아줌마가 같은 씨를 가진 정자은행의 씨로.... ”
“모든 축사의 가축이 뒤죽박죽이니.....”
“그러니 저희들 세상도 반도덕으로 인륜이 무너지고 있쟎냐.”
“세상은 뿌린 대로 거두고 준만큼 돌아오는 법. 우리한데 못된 짓 한 인간넘들 분명 다음엔 짐승으로 다시 태어 날 거다.”
“우어이잉......”
“우어이이이이이잉......”
바깥은 아직도 차가운 모양이었다.
얼굴이 따끔거리는 것은 칼바람탓만이 아니다. 눈물이 나올 때 마다 마른 기침이 나오고 예전 같지 않은 메케한 공기라는 것은 농촌도 이제는 공기 좋은 시골이 아니라는 뜻이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면서 한을 내던지는 파장이 공기를 타고 흐른다. 그 미세한 기파가 전해졌다. 무엇 때문인지 마음 한 가닥이 어둑해졌다.
‘조금 있으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겠지만 고통을 당하기 전에 고통을 잊어버리고 싶다. 이것은 아닌 줄 알면서도 앞서간 동료들의 발자국을 밟으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었다. 즐겁게 죽는 것도 멈추지 않고 사는 방법이다. 죽임을 당함에 벗어날 길은 없다.’
문득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뒤돌아보는 것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기에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정신이 혼미하다. 앞은 보이는데 보이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시꺼멓게 탄 인간들의 얼굴이 다가왔다.
아늑한 저편에서 어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댕거랑. 덩그랭. 댕그랑댕댕댕..... 그것은 워낭소리였다. 끝.
첫댓글 풍경 사진은 어느 동네인지 산은 높고 들녁에 쌀나무는 다익었는데 아직까지 그냔 있네.
그런데 글이 너무 길어서 다 못 읽겠어 작가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짧게짧게 재옥아 미안하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