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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詩》가 선정한 좋은 시 읽기· 45
고미숙 추천: 신지혜,「 밑줄」(시집,『 밑줄』에서)
권현수 추천: 임동윤,「 찰옥수수가 익는 저녁」(《문학과창작》2010년 가을호)
김금용 추천: 조정권,「 모과」(《시인시각》2010년 가을호)
나병춘 추천: 유안진,「 궁여지책」(《우리詩》2010 년6월호)
염창권 추천: 이향아,「 그리워라」(시집,『 아지랑이가 있는 집』에서)
이동훈 추천: 김선우,「 아욱국」(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에서)
조삼현 추천: 이선이,「 기러기」(《주변인과시》2010년 겨울호)
사단법인『우리시진흥회』가 ‘좋은 시 읽기운동’의 일환으로 매월『우리시』에 좋은 시를 선정 소개한다.
시와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이 운동에 독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밑줄 | 신지혜
바지랑대 높이
굵은 밑줄 한 줄 그렸습니다
얹힌 게 아무것도 없는 밑줄이 제 혼자 춤춥니다
이따금씩 휘휘 구름의 말씀뿐인데,
우르르 천둥번개 호통뿐인데,
웬걸?
소중한 말씀들은 다 어딜 가고
밑줄만 달랑 남아
본시부터 비어 있는 말씀이 진짜라는 말씀,
조용하고 엄숙한 말씀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인지요
잘 삭힌 고요,
空의 말씀이 형용할 수 없이 깊어,
밑줄 가늘게 한번 더 파르르 빛납니다
- 시집,『 밑줄』에서
시읽기
세월은 발효다. 그리도 절절했던 꽃시절도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낙엽
의 나날도 세월의 항아리에 들어가면 발효되어 색도 열기도 벗은 채 투명
한 빛으로 환생한다. 그러다가 투명함도 사라져 空이 된다.
그런 면에서 신지혜 시인의「밑줄」은 ‘세월’또는 ‘발효’로 읽힌다.
하늘 높이 바지랑대를 세우듯 이상과 꿈을 가지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밑줄을 그으며 살고 있는가. 때론 짙게 그어놓은 밑줄에 스스로를 호통
치듯 다짐하듯 또는 채찍질 하듯 오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덧긋기도 하면
서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 절실했던 것들도 세월의 옷을 입으면 내용은 사라지고
밑줄 긋던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제 홀로 춤을 춘다.” 밑줄 위에 그리도
조용하고 엄숙하게 앉아 있던 말씀도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마치 “본
시부터 비어있는 말씀이 진짜라는 말씀”인 듯 말이다.
그것은 “잘 삭힌 고요,” 다시 말해서 잘 발효되어 “空의 말씀이” 되어
“형용할 수 없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깊은 空의 말씀도 수
없이 밑줄을 그으며 내용물을 채우는 시간 다음에 오는 깨달음인 것을!
어찌 과정을 생략하고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밑줄」에서 “비워진 말씀”은 비움으로서 채워진 공간, 완성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空’이 어떤 공간인가. 없으나 있는 곳, 우주의 만
물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공간이 아닌가.
(추천 고미숙 시인)
찰옥수수가 익는 저녁 | 임동윤
감자꽃이 시들면서
정수리마다 자글자글 땡볕이 쏟아졌다
장독대가 봉숭아꽃으로 알록달록 손톱물이 들고
마른 꼬투리가 제 몸을 열어
탁 타닥 뒷마당을 흔들 때, 옥수수는
길게 늘어뜨린 턱수염을 하얗게 말리면서
잠자리는 여름의 끝에서 목말을 탔다
싸리나무 울타리가 조금씩 여위면서
해바라기들이 서쪽으로 깊어지고 있었다
철 이른 고구마가 그늘 쪽으로 키를 늘이면서
작고 여린 몸도 하루가 다르게 튼실해졌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돌라오지 않았다
옥수수 줄기처럼 빠르게 말라가던 어머니는
밤마다 옥수수 키만큼의 높이에
가장 외로운 별들을 하나씩 매달기 시작했다
그런 날 나는 하모니카가 불고 싶어졌다
문득, 아버지가 켜든 불빛이 그리워졌다
그 여름이 저물도록 어머니는
가마솥 가득 모락모락 그리움을 쪄내고 있었다
단맛의,
차진 알갱이들이 노랗게 익을 때까지
- 계간《문학과창작》2010년 가을호
시읽기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으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본질적으로 자연
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자연은 우리의 고향이고 우리의 미래이고 많은
예술가들의 텃밭이다. 고도의 엔트로피 사회를 견디어 내어야하는 현대
인이 잃어버린 그 곳, 그곳을 찾아서 천 수백 년 전에도 도연명을 ‘귀거래
사’를 읊었고 수십 년 전에도 정지용은 ‘향수’를 노래했다. ‘바람이 머물
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를 바라볼 수 있는 전원생활을
꿈꾸며 아파트의 베란다에 몇 개의 화분이라도 놓아보고 하다못해 컴퓨
터의 모니터 바탕화면에 코스모스 꽃밭을 꾸며보기도 한다.
지난 계절 여러 문예지에 실린 시들을 읽으면서 임동윤 시인의「찰옥수
수가 읽는 저녁」에 한결 마음이 머무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연유이리라.
자의식 과잉으로 신경증적인 현대인의 배배꼬인 언어의 미로를 헤매지
않아도 좋아서 읽기에 더 편안하고 더 여유롭고 더 시적이다. 시인은 지
금 서정시의 원천, 유년의 시절로 돌아가 있다. 때는 이런저런 열매들이
땡볕 속에 무르익어가는 한여름. 시인이 택한 시적 장치는 ‘의인화’다.
여름 전원 풍경 속의 갖가지 사물들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생
명체로서 우리들을 부른다. “ 감자꽃은 정수리에 자글자글 쏟아지는 땡볕
을 받아 시들어가고” 있고 장독대는 바로 옆에 피어있는 봉숭아로 손톱물
을 들였다. 한여름을 살아가고 있는 들판의 생명체들이 시인의 능란한 언
어 차용의 힘을 빌어서 풍성한 시의 밭을 일구어놓았다. “잠자리는 여름
의 끝에서 목말을 탔다”라는 행을 보자. 장마가 끝날 무렵이면 떼 지어 날
고 있는 잠자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꽃이나 풀잎
끝을 조준이나 한 것처럼 사뿐히 내려앉았다가는 또 가볍게 날아오르기
도 하고 제자리를 맴돌며 다시 똑 같은 재주를 부리며 흔들리는 풀꽃과의
장난이 귀엽기 그지없다. 시인은 그것을 “목말을 탄다”라고 의인화하고
있다. 누구의 목말인가라는 목적어가 들어갈 자리에는 “여름의 끝”이라
는 시제를 넣음으로서 한껏 시적인 맛을 더하고 있다. 언어의 묘미를 터
득한 시인의 회심의 미소를 본 것도 같다. 이와 같이 옥수수와 잠자리와
해바라기 그리고 싸리나무와 고구마까지 한껏 치장한 시의 옷을 입고 읽
고 있는 우리들을 마음의 고향으로 데려다 준다.
그런데 시의 후반부에서 시인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 세계 속에 아버지는 부재의 존재가 되어
있다. 평화롭고 안락한 전원생활 속에서도 만족할 수 없는 그 어떤 것. 그
것은 바로 현대인이 외면할 수 없는 도시 문명일 것이다. 아버지는 아마
도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면 그저 온갖 잡스런 자극이 난무하는 도시 문
명이 좋아서 그곳에서 사는 지도 모른다. 밤마다 외로운 별을 헤고 있는
어머니쯤은 안중에도 없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한여름 밤은 그렇게 두 모
자 앞에 익어가고 있다.
“타샤의 정원”이라는 유명한 화보집이 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미술사
를 전공한 사진작가 리차드 브라운의 렌즈에 잡힌 타샤 튜더의 정원들로
꾸며진 화보집이다. 백악관의 크리스마스카드에도 사용되는 그 화보 속
의 정원은 담쟁이덩굴과 라일락이 휘감긴 18세기 풍의 농가에 작약이 만
발한 집 앞 정원, 패랭이와 장미와 붓꽃이 층층이 피어있는 핑크가든 등
일 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동화의 나라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주인공은
100여권이 넘는 그림동화책을 발표한 90이 다된 동화작가 타샤 튜더 혼
자뿐이다. 남편과는 오래 전에 헤어졌고, 혼자 기른 4남매도 이웃으로 시
집 간 막내딸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시로 나가고 그녀 혼자 그 낙원을 지
키고 있다.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그처럼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에도 역시
아버지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렇게 현대라는 삶의 전쟁터
로 떠나고 고향을, 낙원을 지켜내고 있는 것은 어머니뿐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없는 낙원, 자연, 그러나 거기에는 우리들의 영원한 마음의 안
식처인 어머니가 있다. 가마솥 가득 찰옥수수는 익어가고.
시인이 선택한 의인화는 흔한 시적 장치이다. 그러나 오랜 시적 수련이
없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노련함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그리운 고향의
저녁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시인이 최근 발표한 산문에서 텃밭
가꾸기에 심취해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기름진 밭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운 채소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얻을 수 있는 시심이 아닌
가 그저 부러운 마음뿐이다.
(추천 권현수 시인)
모과 | 조정권
내 책상 위에 놓인 모과는
뇌수종이다
머리에 물만 고인 채
지상에서 무게 없이 썩는 삶
시 쓰려고 하는 밤
저 녀석은 나보다 더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다
모과는 왜 반가사유상처럼 보일까
스스로는 썩어가면서 향을 쌓는
모과는 내 책상 앞에 놓인 향적과香積果이다.
- 계간《시인시각》2010년 가을호
시읽기
조정권 시인의 어느 때 시보다 이번 작품은 짧다. 그만큼 함축과 상징,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모과를 뇌수종 걸린 머리로 본 것부터가 충격이다.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모습을 이렇게 빗대었다. 그러나 꼬박 밤을 새며 시
를 쓰는 작가 옆에서 반가사유상 모습으로 있는 모과, 그러고 보니 모과
는 썩어 가벼워질 뿐 아니라 향을 쌓아가는 향적과였던 것을! 여기에서
그의 준비된 반전이 놀랍다. 뇌수종에서 반가사유상으로 다시 향적과로
끌어올리는 그의 함축된 상징성이 돋보이는 좋은 시이다.
(추천 김금용 시인)
궁여지책 | 유안진
빈 새장 속에 물고기를 넣었더니
지느러미가 날개로 바뀌면서
봄 밤 새워 두견이 울음 울었다
머리 위로 안경을 치켰더니
머리꼭지에 눈이 생겼다
먹구름 너머로 찬란한 별들이 보였다
구두 한 짝마다 뒷굽 두 개씩 달아주었다
발굽과 다리도 넷이 되었다
좀 더 빨리 달리고 뛸 수 있겠다
호박에 검은 줄을 그려 넣었다
수박값 비싸도 상관없겠다
간단했다
억지도 마술인 걸.
- 월간《우리詩》2010년 6월호
시읽기
‘궁즉통’窮卽通이란 말이 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 살
다보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벼랑을 만날 때도 있다. 한 발자국 재껴 디딜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던져버리는 수도 있다.
시인은 어느 봄날 심심해서 물고기를 새장 속에 집어넣는 상상을 한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답답한 아파트에서 새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리고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물고기는 금세 파닥거리며 지느러미를 휘
저으며 단말마의 고통으로 죽어가겠지. 그리곤 밤마다 슬피 울어대는 두
견새. (화자 자신을 새장 속의 새로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매연으로 답
답한 도시생활에서 별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해서 궁여지책으로
머리 위에 안경을 끼우고 하늘을 본다. 머리꼭지에 눈이 생겨 별들이 반
짝인다. 또각거리는 하이힐이 불편해서 굽을 두 개씩 달아놓는다. 드디어
발이 네 개인 구두가 되었다. 아마도 네 발로 뛰어다니는 동물을 연상한
것이겠지. 시시때때로 철없는 동물이 부러울 때도 많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보라. 아무 근심걱정 없이 주인이 주는 밥을
얻어먹고 꼬랑지 흔들며 애교만 부리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값비싼 수
박(철모르는 수박)을 사 먹기 곤란한 때도 있다. 호박에 푸른 줄 좍좍 그
어 수박 비슷한 걸 만들어본다.
이 시는 상상력에 관한 글이다. 사람들은 풀기 어려운 문제가 당도할
때 순전히 상상력으로 모든 걸 해결한다. 시인은 시가 써지지 않을 때, 주
변의 사물을 요모조모 살펴보며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물고기가 새가 되
고 조각구름이 되고 파도가 되기도 한다. 안경은 망원경이 되고 유리창이
되고 자전거가 되기도 한다. 어떤 암담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해
결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이 상상력이 아닐까? 상상력이라는 마술방망이를 쥔
자는 이 세상 아무 것도 두렵지 않으리라. 죽을 수밖에 없는 막장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버팅길 수 있는 힘. 그 답은 상상력이다. 시詩의 힘이다.
(이 물질만능시대에 시가 별 효용가치가 없다는 말의 반론이 되지 않을
까?)
윌리암 블레이크도 이렇게 읊지 않았던가? 한 알의 모래알 속에서 세상
을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추천 나병춘 시인)
그리워라 | 이향아
해 저문 빨랫줄에
아직 걷어 들이지 않은
누구의 속옷인가?
이슬에 젖는다
한뎃잠을 자기에는 서늘한 가을 저녁
빨랫줄에 걷지 않은 다 마른 빨래
혼자서 천천히 흔들리고 있다
그 때문에 누군가 무릎이 시리고
어깨뼈가 신경통에 걸릴 것이다
어스름에 나뭇잎은 시나브로 지고
빨랫줄에 걷지 않은
다 마른 빨래처럼
나는 한편에 비켜 서 있다
이슬을 맞고 있는 알지 못하는 사람
그리워라,
이슬에 젖고 있는 심란한 사람
- 시집,『 아지랑이가 있는집』에서
시읽기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는 가을 저녁, “빨랫줄에 걷지 않은/ 다 마른 빨
래”가 이슬에 젖고 있다. 빨래가 이슬을 맞고 있는 것은 그가 아직 귀가하
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속옷은 그에 대한 환유물이므로, 그는 지금
바깥에서 속옷처럼 이슬을 맞고 바람에 흔들리는 상태이다.
시적 화자는 그 고독한 사람의 실존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무릎이 시리
고 어깨뼈에 신경통을 가지고 있으리라 여긴다. 속옷의 임자를 그리워하
는 것은 주체의 고독한 한계 상황이 알지 못하는 타자의 속옷에 겹쳐졌기
때문이다. 속옷을 매개로 하여 실존의 틈을 엿보는 주체 역시 “이슬에 젖
고 있는 심란한” 상태이다. 여기서 “그리워라”고 언명하는 것은 나의 고
독함으로부터 출발하여 타자의 고독을 인정하고 감싸 안으려 하기 때문
이다.
쌀쌀한 가을 저녁, 나뭇잎은 떨어지고 지상의 존재들은 바람에 흔들리
면서 어깨뼈가 시리다. 서둘러 귀가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은 가엽
다. 그리고 그 가여운 존재들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시인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해 “그리워라”고 호명하게 되는 것이다.
(추천 염창권 시인)
아욱국 | 김선우
아욱을 치대어 빨다가 문득 내가 묻는다
몸속에 이토록 챙챙한 거품의 씨앗을 가진
시푸른 아욱의 육즙 때문에
- 엄마, 오르가슴 느껴본 적 있어?
- 오, 가슴이 뭐냐?
아욱을 빨다가 내 가슴이 활짝 벌어진다
언제부터 아욱을 씨 뿌려 길러 먹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으응, 그거! 그, 오, 가슴!
자글자글한 늙은 여자 아욱꽃빛 스민 연분홍으로 웃으시고
나는 아욱을 빠네
시푸르게 넓적한 풀밭 같은 풀잎을
생으로나 그저 데쳐 먹는 게 아니라
이남박에 퍽퍽 치대어 빨아
국 끓여 먹을 줄 안 최초의 손을 생각하네
그 손이 짚어준 저녁의 이마에
가난과 슬픔의 신열이 있었다면
그보다 더 멀리 간 뻘밭까지를 들쳐 업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푸르른 관능의 힘,
사랑이 아니라면 오늘이 어떻게 목숨의 벽을 넘겠나
치대지는 아욱 풀잎 온몸으로 푸른 거품
끓이는 걸 바라보네
치댈수록 깊어지는
이글거리는 풀잎의 뼈
오르가슴의 힘으로 한 상 그득한 풀밭을 차리고
슬픔이 커서 등이 넓어진 내 연인과
어린것들 불러 모아 살진 살점 떠먹이는
아욱국 끓는 저녁이네 오, 가슴 환한
-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에서
시읽기
아욱을 국으로 끓이려면 껍질을 벗겨내고 이남박에 치대고 으깨야 한
다. 잎줄기를 연하게 하고 신맛을 덜기 위한 것이다. 이런 수고를 마다하
지 않는 사람은 누굴까. 끼니때마다 곁에 사람이 맛나게 먹어주고 몸도
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일 것이다. 그 이
전엔 어머니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오늘의 목숨은 다 그들의 사랑에 빚진
거다.
아욱을 치대는 과정에 시푸른 즙이 거품까지 내는 걸 보고 오르가슴을
연상한 건 이상할 게 없지만 어머니의 오르가슴을 물어보는 건 도발적인
데가 있다. 딸의 당돌한 질문에 어머니가 엉뚱한 답을 내놓으면서 상황은
유쾌하게 반전되지만 어머니는 딸의 의도를 간파하고도 ‘오, 가슴!’이라
고 천연스레 부언한다. 결국, ‘오르가슴’과 ‘오, 가슴!’이, 그리고 ‘사랑’
이 같은 의미일 수밖에 없음을 어머니도 딸도 수긍하는 눈치이다.
‘오르가슴의 힘으로 한 상’ 차리는 어머니의 사랑, 그 안엔 숱한 슬픔
이 간직되어 있다는 걸 화자는 꿰뚫어 본다. 상대의 슬픔이 짚이고, 그 슬
픔이 자신 안에 같은 무늬를 남길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
(추천 이동훈 시인)
기러기 | 이선이
깃털 다 빠져나가 홀쭉해진
베갯머리
잇단음표로 떠도는 끼룩거림이여
하늘은 구만리
그리움은 목이 길고 다리가 짧다
- 계간『주변인과詩』2010년 겨울호
시읽기
시를 읽으며 오랜만에 캬~ 하고 감탄사를 질러보는 시「기러기」. 짧지
만 감동과 여운이 있는 시다. 화자는 결혼하지 전 혼수품으로 가지고 갈
수를 놓았을 것이다. “내 님은 누구일까, 어디에 계실까, 무엇을 하는 님
일까, 만나보고 싶네” 흥얼거리며 수를 놓았을… 기러기 수가 놓인 베개를
가지고 시집을 갔을 것이다.
오래 써서 낡은 베개는 홀쭉해지고 여기저기 깃털이 빠졌을 것이다. 너
와 나를 잇댄 한 쌍의 음표여, 기러기의 끼룩거림이여! 한때는 대오를 이
루며 청하늘을 활공하였을 나의 사랑이여, 그리움이여. 그대 떠나고, 나
지금 홀로이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나니, 바라보고 있나니… 하늘은 구만
리로 멀기만 하고, 내 목은 기러기처럼 길기만 하나니.
좋은 시란 이렇듯 화자의 감정을 절제하면서, 객관적상관물을 통하여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하늘은 구만리
/ 그리움은 목이 길고 다리가 짧다’ 하였으니, 이는 기러기의 생김새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겠으되, 지금의 화자 감정을 절묘하게 묘사한 것이다.
(추천 조삼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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