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계산 하늘다리, 4차선 국도가 화산과 채계산 사이를 지난다. 오전 9시 30분쯤 나는 구름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일광사로 갔다.
채계산 일광사(釵笄山日光寺) /전통사찰
- 전북 순창군 적성면 고원리
승려 세현(속성 김씨)이 1948년 처음 절을 지었다. 오래된 절이 아니며 태고종 소속이다.
어떤 블러그에 채계산 일광사라 하여 그대로 가져 왔다. 화산 아래 섬진강 옆이 정확하다.
일광사 뒤에 무량사가 있다. 무량사는 전통사찰이 아니라서 가진 않았다.
섬진강, 적성교.
대웅보전
일광사 목조여래좌상 /전북 유형문화유산
17세기 구례 천은사 약사전에 있던 불상이다. 불상 안(복장)에 불상을 개금한 내용이 기록된 유물이 나왔다.
어은정 /전북 문화유산자료
- 전북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양사형(楊士衡, 1547~1599),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계평(季平), 호는 영하정(暎霞亭) 또는 어은(漁隱).
변사정(邊士貞)·정염(丁焰) 등과 의병으로 활동한 공로가 인정되어 병조정랑에 오름.
춘추관기사관·경기도사·남평현감(南平縣監)·예조정랑을 거쳐 1599년 영광군수(靈光郡守)로 임지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어은유집>이 있다.
문장가이며 서예가인 양사언(楊士彦, 1517~1584)과 형제인가 하였다. 양사언의 본관은 청주다.
어은정과 같은 마을에 군립 <섬진강 미술관>이 있다. 작은 미술관에 들러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구암정 / 전북 문화유산자료
-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구암 양배(?~1500)가 동생 양돈과 함께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양배는 지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조정을 등졌다. 남원 양씨다.
섬진강이다. 여기서 용궐산이 보인다.
용궐산, 산 중턱에 거대한 암벽이 있다. 암벽에 잔도를 놓았다. 입장료는 4,000원이다. 왕복 3시간 잡으면 넉넉하다.
다리가 아프지만 도전을 하였다.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하여 4시 20분에 완료하였다. 어떤 이는 정상까지 갔지만 나는 잔도가 목적.
흐르는 섬진강이 보여주는 멋진 경치는 잊을 수 없다.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을 보러 가지 전 앞산 풍경. 해가 진다.
낯선 동네, 인적이 없다. 해는 지고 있는데 조금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다.
석산리 마애여래좌상 /전북 문화유산자료
- 전북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신라 때 절을 지었지만 19세기쯤 폐사, 불암사란 절이 있었던 터에 마애불이 있다.
높이는 약 3m 이며 11세기나 12세기에 조각한 것으로 여긴다.
2025년 11월 1일 방문
회문산 만일사(回門山 萬日寺) /전통사찰
- 전북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673년(문무왕 13)에 창건되었으며 창건자는 미상이다.
백제 때 처음 지어진 고찰이라고 한다.
고려 말에 무학(無學)이 이성계(李成桂)의 등극을 위하여 1만일 동안 기도하였기에 만일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6·25 때 완전히 폐허되었고 1954년 김인숙(金仁淑)의 시주로 다시 지었다. 비구니사찰이다.
만일사 안내문이나 인터넷 백과사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분명한 게 없다는 이야기다.
이성계는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남원 황산까지 왔다. 황산대첩으로 이성계는 고려에서 유능한 장군이 되었다.
황산대첩 뒤에 돌아가는 길에 무학이 있는 만일사에 들른 이성계, 순창 고추장 맛에 반하였다고. 왕이 된 후엔 진상품으로.
이런 이야기는 만들어진 이야기다. 영어로 storytelling 이다.
만일이면 약 28년이다. 이런 이야기도 만들어진 이야기며 만일사 사적은 분명한 게 없다.
나는 만일기도법회를 연 곳으로 생각하였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니 실망하였다.
만일사 주차장에서 본 풍경
순창 만일사비 /전북 유형문화유산
이성계와 만일사 관련한 이야기를 기록한 비인 것 같다. 중창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조선 후기에 만든 비이다.
안정리 미륵불 /순창군 향토유적
- 전북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마을 안내표지를 보고 알았다.
순창군 쌍치면을 지나면서. 금평교(쌍치면 도고리)
영광정(迎狂亭) /전북 문화유산자료
- 전북 순창군 쌍치면 시산리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자 이곳에 살던 금옹 김원중은 뜻있는 사람을 모았다.
모인 7명의 동지와 함께 일부로 광인 행세를 하였다. 이곳서 의병을 모집하고 물자를 준비하여 항일 투쟁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이곳에 이들의 뜻을 높이 추앙하고자 정자를 세우고 건물의 처마 끝에 태극팔괘를 도각하였다.
추령천, 추령은 순창에서 정읍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기도 하다.
둔전교(쌍치면 둔전리)에서 본 영광정 경치. 기룡암이란 바위가 보인다.
훈몽재
- 전북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훈몽재란 터만 있다. 보이는 건물은 근래 지은 것이다.
동산저수지(순찬 복흥면 동산리)에서 본 백암산. 백양사는 저 산 넘어에 있겠다. 구암사 가는 길이다.
도집산/영구산 구암사( 都集山/靈龜山 龜巖寺) /전통사찰
-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도집산의 원래 이름은 영구산(靈龜山)이었다.
사찰의 동편에는 숫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고, 대웅전 아래에는 암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산의 이름을 영구산이라 하였다.
절의 이름도 구암사라 했다.
623년(무왕 24) 숭제(崇濟)가 구암사를 창건, 그가 신라 경덕왕대에 활약한 진표(眞表)의 스승 숭제와 같은 인물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구암사를 삼국시대 숭제가 창건했다는 것도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
조선 초까지 구암사에 대한 기록은 없고, 관련된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1392년(태조 1)에 각운(覺雲)이 허물어진 구암사를 다시 지었으며, 태종 때 절을 다시 손질했다.
그때 절터는 현재 구암폭포 부근에 있었다.
구암사는 이때부터 절이 점차 번창하기 시작하여 전국 규모의 수도 도량을 이루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말았다.
임진왜란 이후 절을 다시 짓게 되고, 화엄종주(華嚴宗主)로 널리 알려진 상언(尙彦, 1707~1791)이 머물렀다.
1800년대 초에 백파 긍선(白坡亘璇, 1767~1852)이 현재 절터에 건물을 새로이 짓고, 선강(禪講) 법회를 개최, 세가 점차 커졌다.
구암사에 머물던 긍선은 이곳에서 『정혜 결사문(定慧結社文)』, 『선문수경(禪門手鏡)』 등을 저술하였다.
구암사에는 당시 긍선과 교우가 깊었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쓴 현판, 긍선과 김정희가 주고받은 많은 서간(書簡)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현판과 서간은 한국전쟁 때 절과 함께 모두 불탔다. 현재 여러 편의 추사필 편액과 추사가 바위에 새긴 글씨만 남았다.
정관(正觀, ?~1813), 설두 유형(雪竇有炯, 1824~1889), 설유 처명(雪乳處明, 1858~1904), 학명(鶴鳴, 1867~1929), 석전(石顚, 1870~1948), 운기(雲起, 1898~1982) 등 많은 고승이 구암사에서 배출되었다. 19세기에는 유형이 머물렀고, 유형의 제자 처명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전우(田愚, 1841∼1922)와 함께 이곳에서 불교 교리를 연구했다. 근대 고승 한영(漢永, 1870∼1948) 또한 구암사에서 처명의 법을 이어받았다.
1940년 일헌(一軒)이 낡은 절을 손질하고, 1957년에 고쳐 지었으나, 1959년에 다시 소실되었다. 1973년 대웅전과 요사(寮舍)채를 고쳤고, 1997년 삼성각을 새로 지었다.
(인터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인터넷에서 구암사를 찾아보기, 백과사전을 통해 절의 내력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구암사 은행나무 /전북 기념물
무학 자초가 구암사를 방문하고 싶은 나무라고 한다. 800여 년 되었다는 뜻이다.
승탑, 뒤 왼편부터 정관, 설파 상언, 백파 긍선. 모양이 비슷하다.
2000년에 구암사에서 『월인석보(月印釋譜)』 제15권이 발견되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절의 내력에 비하여 남은 문화유산은 빈약하다.
낙덕정(樂德亭) /전북 문화유산자료
- 전북 순찬군 복흥면 상송리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하서 김인후를 기리기 위해 1900년에 세운 정자다. 전남 장성 필봉서원(세계문화유산)에 하서 김인후 사당이 있다.
나는 이런 모양의 정자는 처음 본다. 팔각형으로 가운데에 방이 있고 외벽(?)과 방 사이에 행랑이 있다. 외벽은 문이다.
이곳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광복 후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내신 가인 김병로 선생 생거지가 있다. 이분이 이곳서 공부하였다고.
낙덕정 현판은 1930년 7월에 금옹 김원중(錦翁金源中, 쌍치면 영광정 참조) 선생이 쓰셨다.
정자가 있는 바위 이름이 낙덕암(樂德巖)이고, 김병로 선생은 김인후의 후손이다.
자연가 /김인후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도 절로 물도 절로하니, 산수간 나도 절로.
아마도 절로 삼긴 인생이라, 절로 절로 늙사오리.
훈몽재에서 이곳까지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다. 추령천을 따라 걸으면 좋겠다.
낙덕정에서 순창읍을 가려면 담양호를 지나야 한다. 담양호를 지나면서 본 경치이다.
2025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