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길 따라(6)
(2022년 8월 13일∼15일)
瓦也 정유순
광주광역시 서구 전평제 부근 식당에 들려 오전을 마감하고 다시 발길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사로 향한다. 눈꺼풀이 무거워 한번 감았다 떴더니 호남고속도로를 달려온 차량은 모악산 정상이 보이는 금산사 주차장이다. 모악산(母岳山, 795m)은 모든 잘못과 어떠한 일이라도 용서하고 품어 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 같은 산이다. 이 산자락 서쪽에 금산사가 기지개를 편다. 초입의 금산천 다리를 건너 조금 올라가면 금산사 일주문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본당으로 가는 중간에 견훤성의 문인 개화문이 문을 닫은 채 서 있다.
<모악산 - 2018년4월>
<금산사 일주문>
금강문을 지나면 좌측 처영문화기념관에서는 ‘토끼뿔 거북털’이라는 주제로 송월주 스님 추모전이 열리고 있으며, 천왕문을 지나면 좌측으로 성보박물관이 있다. 송월주(宋月珠, 1935∼2021) 스님은 제17대와 제28대 두 차례에 걸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고, 김수환 추기경, 강원룡 목사와 함께 2000년대에는 이 세 분을 가리켜 ‘종교 지도자 삼총사’라고 한 언론에서 보도했다. 보제루(普濟樓) 밑 계단을 지나면 부처가 도(道)를 깨달았다는 보리수(菩提樹)가 있는 절 마당이다.
<처영문화기념관>
<금산사 보리수>
그 오른쪽 마당 한쪽을 지그시 누르고 서서 맨 먼저 눈길을 끄는 서향 건물이 국보(제62호)로 지정된 미륵전이다. 금산사(金山寺)는 원래는 백제시대에 지어지고 신라 후기 혜공왕 때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절의 기틀이 갖추어졌다고 한다. 당시 신라 불교의 주류였던 교종 계통 법상종의 중심 사찰로 역할을 했는데, 법상종이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종파라 이곳 절에는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이 절의 중심이다.
<미륵전과 배롱나무>
미륵전(彌勒殿)은 목조(木造) 3층 건물로 각 층은 대자보전(大慈寶殿), 용화지회(龍華之會), 미륵전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데 모두 미륵불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미륵전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통층(通層)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가 12m에 이르는 미륵입상이 서 있다. 원래는 진표율사가 절을 세울 때 철불(鐵佛)로 미륵장륙상을 세웠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절이 불타면서 철불은 없어졌다고 한다.
<미륵전 미륵불>
미륵전 뒤로하여 계단을 올라가면 적멸보궁이 있다. 이곳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모셔진 방등계단(方等戒壇)에 참배하기 위하여 특별히 건립된 예배전(禮拜殿)이다. 따라서 이 적멸보궁에는 법당 내에 불상(佛像)을 따로 봉안하지 않았다. 보물(제26호)로 지정된 금산사 방등계단은 부처의 사리를 종 모양의 석조물에 모신 곳이며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계단(戒壇)으로 고려 시대 양식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통도사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이 있다.
<금산사 적멸보궁>
<진신사리탑>
방등계단을 장엄(莊嚴)하는 정중탑(庭中塔)인 오층석탑(보물 제25호)은 신라 석탑의 기본형을 따르고 있지만 하층 기단이 좁은 편이다. 지대석과 하층 기단, 상층 기단, 갑석, 1층 탑신부는 모두 여러 개의 돌들을 짜맞춘 것이지만, 2층 이상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개씩의 돌로 이루어졌다. 후백제왕 견훤이 공양탑으로 건립했다는 설도 있지만, <석탑중수기>에 따르면 고려 성종 원년(982)에 처음 세웠고 조선 성종 23년(1492)에 도괴된 것을 다시 세웠다고 한다. 높이 7.2m이며 보물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산사 오층석탑>
그리고 미륵전과 대적광전 사이에 석련대(石蓮臺)가 나온다. 보물(제 23호)로 지정된 석련대는 하나의 돌로 조각하여 만든 불상의 좌대(座臺)로 높이 1.52m, 둘레 10m에 달하는 거대한 연화대(蓮花臺) 형식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언뜻 보아서는 마치 여러 개의 돌로 상대 중대 하대를 따로 만들어 맞추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금산사 석련대>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수계(受戒), 설계(說戒), 설법(說法) 등 사원의 중요한 의식을 집행하는 곳이다. 대적광전은 본래 대웅대광명전(大雄大光名殿)으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등 삼신불(三身佛)만을 봉안하였는데, 1597년 정유재란 때 완전소실 되어 1635년(인조 13)에 복원할 때 대웅대광전과 극락전, 약사전에 모셨던 5여래(如來) 6보살(菩薩) 500나한(羅漢)을 한 자리에 봉안하면서 이름이 대적광전으로 바뀌었다. 1986년에 화재로 보물(제476호) 지정이 해제되었으나 1990년에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금산사 대적광전>
대적광전 안에 모신 5여래는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약사불이며, 6보살은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가리킨다. 아울러 500나한을 같이 모신 곳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불교를 수용한 이래 숭앙(崇仰)해온 모든 불보살들을 대담하게 한자리에 모셨다. 대적광전 전각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옆으로 긴 법당 건물로서, 3층 건물인 미륵전과 함께 길이와 높이의 좋은 대비를 이룬다.
<금산사 대적광전 5여래 6보살>
이번 여정의 마지막인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종학당으로 달려간다. 금산사를 되돌아 나오면서 스스로 미륵임을 자처했던 후백제왕 견훤도 금산사를 원찰(願刹)로 삼고 중수(重修)했을 터인데, 후계문제로 아들들에게 이곳으로 유폐 당했다가 겨우 왕건에게 투항하여 노구를 의탁한다. 왕건으로 하여금 후백제를 치게 하여 후삼국을 통일하게 한 다음 번민과 울화로 등창이 나서 죽는다. 그는 유언대로 전주와 가까운 논산시 연무읍에 묻혀 있다. 지금 견훤왕릉 옆을 가까이 지나며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돌이켜 본다.
<견훤왕릉 - 2019년 8월>
서쪽으로 햇빛이 길게 누운 오후 늦게 도착한 곳은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종학당이다. 충남 유형문화재(제152호)인 종학당(宗學堂)은 1643년(인조 21) 윤순거(尹舜擧)가 파평윤씨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건립한 사설교육도장으로서, 1910년 경술국치 후 일제 강압에 의해 280여년 만에 폐쇄되고 말았다. 호암산을 배산(背山)으로 병사저수지를 임수(臨水)로 하여 종학당과 정수루(淨水樓)를 두고 있다. 종학당은 동향에 가까운 동남향으로 서 있으며 주변은 담을 둘러 구획하였다. 이곳에서 42명의 문과와 31명의 무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종학당 전경 - 2019년 8월>
홍살문을 지나 바쁜 발걸음으로 배롱나무 군락지를 지나 위로 올라서면 본 건물인 종학당이다. 종학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형적인 한옥으로, 대청마루와 방 앞 툇마루 높이가 서로 다르다.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평면 가운데 1칸은 대청마루로 하고, 양측에는 각각 온돌방을 두었다. 방 아래로는 아궁이가 있고 기단 석축도 살림집과 달리 4단으로 높게 쌓았다. 오랜 세월 동안 잘 보존되어 있어 보는 즐거움이 더한다.
<종학당>
종학당의 우측으로는 보인당이란 건물이 보인다. 원래 ‘보인당(輔仁堂)’은 윤순거(尹舜擧)가 노성면 두사리에 본당과 동·서제를 설립해 운영하던 유림의 교육장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없어진 것을 1987년 종회에서 서울 가회동의 한옥을 매입해 이곳으로 옮겨 당호만 ‘보인당’으로 쓴 것이다. 따라서 원래 모습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상상만 할 수 밖에 없다.
<보인당>
보인당에서 우측 중문을 지나면 정수루가 나온다. ‘정수루(淨水樓)’는 일반서원과 마찬가지로 강당으로 사용하던 누각이다. 규모는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내부의 기둥과 들보, 서까래의 짜임이 그 당시의 건축기술을 보여준다. 정수루 뒤쪽으로 백록당(白鹿堂)이 겹쳐 있다. 백록은 ‘하얀 사슴’을 지칭하는데, “1,500년을 살아야 백록(白鹿)이 되고 또한 신록(神鹿)이 된다”는 이야기대로 가문의 교육을 통해 백록과 같이 훌륭한 인물을 길러 낸다는 의미가 아닌 가 생각해 본다. 이 두 곳은 상급교육을 했던 곳이다.
<정수루>
<백록당>
종학당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홍살문 쪽으로 방향을 잡아 돌아 나오는데 오석(烏石)에 이상한 글씨가 낙서된 것처럼 보여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구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2008년에 이곳을 방문하여 소나무를 기념식수하고 남긴 기념비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개혁과 개방을 통해 동유럽의 민주화를 이끌어 냈고, 그 공으로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고르바초프가 종학당을 찾았다는 것은 상당히 뜻이 있는 일이지만 다른 설명이 없어 그의 속내는 알 수 없다. (끝)
<고르바초프 기념식수 소나무>
<종학당 배롱나무 - 2019년 8월>
https://blog.naver.com/waya555/222858940932
첫댓글 등제감사합니다.
[금산사] 백제30대무왕께서 국비를들여 건설한절이지요.
그취지는 [미륵세계]를상징하며.그당시 익산[미륵사] 김제[금산사] 고창[선운사]등을
지었으니,이것만으로도그당시국부가얼마나융성했는지짐작이가지요.
(사진은 신라선화공주로서 백제서동공-백제30대무왕의총각때이름인데 서동공이기술로서
많은돈을소지하고있는줄알었기에 신라공주도 그돈에반해 백제까지찾아왔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