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xicology: The plastics puzzle
"독성학자들이 플라스틱 성분인 BPA의 잠재적 유해성을 경고하고 나서자, 소비자들은 뭔가 새로운 것이 나와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 결과 BPA는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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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wiki/Bisphenol_A)
미국의 슈퍼마켓 통로를 따라 어슬렁 어슬렁 걷다 보면, 소비자운동이 승리한 듯한 느낌이 든다. 어린이용품 코너를 보면, 플라스틱 젖병, 누출방지 컵(spill-proof cups), 날붙이류(나이프, 포크, 스푼 등)에는 자랑스럽게 'BPA 없음'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많은 플라스틱 제품에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해물질인 BPA(비스페놀 A)를 더 이상 함유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주방용품 코너에 진열된 믹서나 물병을 봐도, 유기농식품 코너에 쌓여 있는 몇 가지 통조림캔을 들여다 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BPA가 없는 제품들을 카트에 가득 싣고 여유만만하게 카운터에 당도하면, 캐셔가 내미는 영수증에도 BPA는 더 이상 포함되어 있지 않다(첨부그림 1 참조).
BPA는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화합물이다. 지난 20여 년간 설치류와 인간을 대상으로 실시된 수백 건의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와, 한 목소리로 "BPA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 결과, BPA는 부분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EU의 당국자들은 젖병에 BPA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했고, 이와 함께 산업 차원에서 벌인 활발한 마케팅 캠페인 결과, 많은 소비자들은 "현재 플라스틱과 식품보관용 용기는 안전하다"고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안전의식(false sense of security)이다. BPA는 아직도 많은 식품용기, 특히 통조림 깡통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 버젓이 존재한다. 'BPA를 포기했다'고 호언장담한 기업들이 그 대타(代打)로 내세운 화합물들, 예컨대 BPS(비스페놀 S)는 BPA와 동일한 화학구조를 공유하며, 과학자들은 'BPS가 BPA와 동일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충분한 독성학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BPA 대신 BPS가 포함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이건 문제다"라고 대한민국 국립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최경호 교수(환경독성학)는 말했다.
"BPA를 기반으로 하는 에폭시 코팅이 널리 사용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강력하고, 유연하며,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에폭시는 통조림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열을 견딜 수 있으며, 수많은 종류의 음식료와 반응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닌다"라고 북미 금속포장연맹(워싱턴DC 소재) 측은 밝혔다. 동(同)연맹의 추산에 의하면, 알루미늄과 기타 금속으로 만들어진 깡통의 95%는 에폭시 타입의 수지로 코팅되어 있으며, 그중 99.9%는 BPA라고 한다.
(1) 대중의 신임을 잃은 BPA
BPA는 1950년대 이후 대부분의 '딱딱하고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의 화학적 뼈대를 형성해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BPA가 플라스틱에서 용출되어 식품으로 전이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일련의 유해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누적되어 갔다. BPA의 유해반응으로는 생식능력 감소, 체중감소, 남성 생식기 이상, 행동발달 변화, 당뇨, 심장질환, 비만 등이 있다(Nature 464, 1122–1124; 2010, 참고 1).
"BPA와 인간 건강 간의 관련성을 확립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대부분의 연구들은 다양한 인간세포와 동물모델을 이용하여 'BPA가 유해한가 아닌가?'라는 의문에 대한 결론을 내렸을 뿐, '우리가 실생활에서 노출되는 양의 BPA가 인간의 건강에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해결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제프리 그린 교수(에스트로겐 및 그 수용체 연구자)는 말했다. BPA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중 상당수는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미 국립 환경보건학연구소(US National Institute of Environmental Health Sciences)에서는 3,000만 달러를 들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많은 증거가 누적되고 소비자들의 우려가 고조되자, 미국 정부 내에서는 뭔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규제에 앞장선 것은 EU였다. 2011년 EU는 젖병에 BPA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했고, 이듬해에 미국 정부도 그러한 움직임에 가세했다. 그러나 식품과 음료가 담겨 있는 깡통의 내벽(linings)에는 여전히 BPA가 듬뿍 코팅되어 있으며, 많은 국가들의 경우 식수를 공급하는 수도 파이프 내벽에도 BPA가 코팅되어 있다. BPA는 치과용 실란트와, 산부인과에서 사용하는 미숙아용 인큐베이터에서도 발견된다.
식품이나 음료를 담는 깡통에 포함된 BPA를 대체하는 것은 특히 까다롭다. 콩에서부터 토마토, 카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품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깡통 코팅재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통조림 깡통의 내벽을 코팅하려면, 세균과 곰팡이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것은 물론, 내용물(식품)이 깡통을 공격하여 부식시키는 것도 막아야 한다. 더욱이, 금속이 식품과 접촉할 경우 식품의 생명인 향취(香臭)가 손상될 수 있다. "음식 맛이 이상하다고 눈쌀을 찌푸리는 고객에게 '안전을 위해 그렇게 만든 겁니다'라고 설명한다면, 어느 누가 그런 말을 곧이듣겠는가?"라고 매사추세츠 대학교 로웰 캠퍼스(UMASS Lowell)의 대니얼 슈미트 교수(플라스틱 공학)는 반문했다. 한편 식품업체들은 황 화합물(단백질, 보존료, 살충제에서 발견됨)을 차단하는 코팅재를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황 화합물이 금속(철 또는 주석)과 반응하여 보기 흉한 황화물 얼룩(sulphide stains)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장점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BPA 대체 코팅재는 지금껏 등장하지 않았다. "만일 BPA를 대체하려면, 모든 식품마다 별도의 깡통과 별도의 코팅재를 사용해야 한다. 그건 매우 골치아픈 문제일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원가가 많이 든다"라고 슈미트 교수는 덧붙였다.
"물론 BPA를 대체하는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조차 각자 나름의 결점을 갖고 있다. 예컨대 1999년, 이든 오개닉(Eden Organic: 미시건주 클린턴 소재)이라는 업체는 식물성 함유수지(올레오레진)으로 콩 통조림 내벽을 코팅하기 시작했다. 함유수지는 깡통의 제조원가를 20% 이상 상승시켰을 뿐만 아니라, 식품의 맛을 변화시키고, 강산성 식품(예: 토마토; 강산성 식품은 특히 BPA를 용출시키는 경향이 있음)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라고 미주리-콜럼비아 대학교의 프레데릭 폼 잘 교수(생물학)는 말했다. 일본의 일부 업체들은 BPA가 적게 함유된 래커를 이용하여 통조림 내벽을 코팅하고 있다. 그밖의 코팅재에는 아크릴, 비닐, 페놀이 있는데, 아크릴은 너무 연약해서 사용이 제한되며, 비닐과 페놀은 에스트로겐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최근 새로운 대안이 부상하고 있다. 예컨대 슈미트 교수는 트라이탄(Tritan) 분자를 기반으로 한 에폭시를 개발하고 있는데, 트라이탄은 이스트먼케미컬컴퍼니(Eastman Chemical Company: 테네시주 킨스포트 소재)가 생산하는 無BPA 폴리머(BPA-free polymer)다. 현재 트라이탄을 기반으로 하는 에폭시는 젖병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슈미트 교수에 의하면, 트라이탄 기반 에폭시는 BPA만큼 다재다능하고 가격도 저렴하다고 한다. "통조림 코팅 산업의 마진은 너무 박한 편이어서, 누군가 저렴하고 품질좋은 솔루션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업자들의 마음을 결코 움직일 수 없다"고 슈미트 교수는 말했다. 통조림 내벽 코팅의 경우와는 달리, 젖병과 금전등록기 영수증에 포함된 BPA를 대체하는 작업은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다. BPA가 대중의 신임을 잃자, 많은 업자들은 BPA의 사촌뻘인 BPS에 눈을 돌렸다. BPA 분자 하나는 두 개의 페놀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의 이소프로필 그룹(isopropyl group)이 중간에서 가교(架橋) 역할을 하고 있다. BPS 분자의 경우, 두 개의 페놀 그룹을 하나의 설폰그룹(SO2)이 연결하고 있는 형상이다(첨부그림 2 참조).
BPS는 1869년 염료로 탄생했지만, 소비재에 도입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예컨대 금전등록기 영수증에 BPS가 사용된 것은 2006년이다. 따라서 BPS의 독성을 연구한 자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의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BPS가 BPA만큼이나 독성이 강한가?'다"라고 파리 디드로 대학교의 르네 아베르 교수(내분비학)는 말했다.
(2) BPS는 BPA보다 안전한가?
"BPS와 BPA의 구조적 유사성은 'BPS가 에스트로겐 효과를 낼 것'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천연 에스트로겐은 여러 개의 페놀 고리를 보유한 소분자인데, 이 페놀 고리들은 인체의 에스트로겐 수용체에서 발견되는 포켓에 결합하는 화학적 장식물(chemical adornments)을 보유하고 있다. BPA와 BPS는 분자 크기가 비슷한 데다가 페놀 고리에 붙어 있는 장식물도 비슷하다. 따라서 양자(兩者)는 모두 - 마치 열쇠가 자물쇠 속에 들어가듯 -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삽입될 수 있다"고 텍사스주립대 의과대학의 체릴 왓슨 교수(생화학)는 말했다.
왓슨은 동료 르에 비나스(현재는 미 FDA에 재직 중임)와 함께, 실험실에서 배양한 랫트의 뇌하수체 세포가 BPS에 얼마나 잘 반응하는지를 측정해 봤다. 뇌하수체 세포는 에스트로겐 및 그 유사체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미세한 농도의 BPS가 일으킬 수 있는 반응까지 측정할 수 있었다. 측정 결과, 미세한 농도(리터당 10^(-15)개의 분자)의 BPS도 효소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에스트로겐의 일종인 에스트라디올이 일으킬 수 있는 정상반응과 유사했다(참고 2). BPS는 성인 여성의 체내에서 일상적으로 발견되는 에스트라디올과 함께 에스트로겐 경로를 과도하게 자극함으로써, 해당경로를 중단시키고 세포자살을 유도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왓슨에 의하면, 이는 일반적인 에스트로겐 유사체가 일으키는 전형적 반응이라고 한다. 즉, 에스트로겐 유사체는 에스트로겐 반응을 부적절하게 활성화하여, 정상적인 에스트로겐 경로를 교란시키고 궁극적으로 세포사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다른 과학자들도 비슷한 연구결과를 얻었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수사네 브레머 박사가 이끄는 소비자보호 및 보건연구소(Institute for Health and Consumer Protection: EU의 지원을 받는 보건연구기관으로, 이탈리아 이스프라 소재)의 연구진은, 에스트로겐에 민감한 인간의 세포주를 이용하여 BPS와 BPA의 반응성을 시험해 봤다. 시험 결과 BPS와 BPA는 모두 에스트로겐과 유사하지만 활성은 에스트로겐보다 약해, 에스트라디올의 10만분의 1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참고 3).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최경호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제브라피시를 0.5㎍/L의 BPS(환경에서 검출되는 BPS 최대농도의 약 1/6에 해당됨)에 노출시켜 본 결과, BPS에 노출되지 않은 제브라피시에 비해 알을 적게 낳고 '에스트로겐/테스토스테론 비율'이 높아지며,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기형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참고 4). 아베르 교수는 BPS가 마우스와 인간의 태아 고환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는 예비실험을 실시한 결과, "고농도의 BPS는 고농도의 BPA와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지만, 저농도에서의 효과는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 실제로 노출되는 BPS의 농도가 얼마만큼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탈리아 소비자보호 및 보건연구소의 카트리느 시모노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12개국에서 BPS를 포함하는 젖병 30개를 수거하여, 5분 동안 끓는 물에 담그거나 2시간 동안 70 °C의 물에 담가 보았다. 그러나 두 가지 젖병 모두 검출 가능한 수준의 BPS를 방출하지는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참고 5). "젖병의 소재는 폴리카보네이트에 비해 가수분해에 대한 저항성이 훨씬 더 강하다. 따라서 식품접촉 환경(food-contact setting)의 안전성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폴리카보네이트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된다. 이 소재의 셀링포인트(selling point)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슈미트 교수는 강조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BPS에 노출되는 상황은 다양하다. 뉴욕주 보건복지부의 커런타찰람 카난(분석화학)이 이끄는 연구팀은 금전등록기 영수증, 비행기의 수하물 태그와 탑승권에서도 BPS를 검출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감열지(thermal paper)로 만들어지며, 그 속에는 BPS가 컬러 현상제(colour developer)로 첨가되어 있다. 이들은 재생지(recycled paper)로 만든 피자 박스와 식품통(food bucket) 등에서도 BPS를 검출했다.
카난에 의하면, 우리가 하루 종일 피부를 통해 노출되는 BPS의 양은 독성을 나타낼 수 있는 역치(threshold values)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원천(예: 식품)을 통해 고농도의 BPS에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안할 때, BPS에 대한 심층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왓슨 교수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소량의 에스트로겐 유사체일지라도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제는 그것들이 미량에서도 생리학적 활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아무리 미량의 에스트로겐 유사체가 용출되더라도,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3) 새로운 검사 시스템
일부 제조업체들은 아예 비스페놀 패밀리를 버리고, 전혀 새로운 대체재를 찾아나섰다. 2007년 이스턴케미컬컴퍼니는 트라이탄(Tritan)이라는 신소재를 런칭했다. 트라이탄은 내열성이 강한 無BPA 플라스틱으로, 젖병 등의 유아용품에 사용된다. 그 후 트라이탄은 기존의 (BPA를 함유하는) 폴리카보네이트를 대신하여 물병, 식품용기, 어린이용 컵 등에 사용되었다. 이스트먼社에 의하면, "사이언스스트래티지스(Science Strategies: 버지니아주 샬로츠빌 소재 컨설팅업체)의 토머스 오시미츠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의 테스트 결과, 트라이탄의 단량체(monomers)는 에스트로겐이나 안드로겐 수용체에 결합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참고 6).
2011년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신경생물학 교수이자 서티켐(CertiChem: 오스틴 소재 화학검사 업체)의 CEO인 조지 비트너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102개의 상업용 플라스틱 제품을 검사한 결과, 92%에서 에스트로겐 활성을 가진 화학물질이 용출되었다"고 발표했다(참고 7). 문제는, 에스트로겐 활성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 플라스틱 제품 중에는 無BPA라고 선전되는 플라스틱 제품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충격적 결과에 대해 비트너 박사는 "플라스틱 단량체뿐만 아니라 첨가제들(예: 안정화제, 광택제)이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결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스트먼이 생산하는 트라이탄 수지들도 에스트로겐 활성을 보인 폴리머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서티켐의 자매회사인 플라스티퓨어(PlastiPure)가 연구결과를 브로셔로 만들어 배포하자, 이스트먼은 소송을 걸었다. 이스트먼의 변호사는 "서티켐의 실험실 테스트 방법은 배양된 에스트로겐 민감성 유방암 세포(oestrogen-sensitive breast cancer cells)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에스트로겐 활성을 측정하는 확정적 방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트너 박사는 Food and Chemical Toxicology의 편집장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우리의 검사방법은 오시미츠 박사가 트라이탄의 안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보다 최대 200배 민감하다"고 맞받았다(참고 8).
그러자 이번에는 미주리-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내분비 장애를 연구하는 웨이드 웰션스 교수가 비트너 박사의 진영에 가담했다. 그는 법정에서 행한 증언에서, "5개의 트라이탄 병을 수거하여 비트너 박사와 동일한 방법으로 별도의 검사를 실시한 결과, 모든 검사에서 에스트로겐 활성이 감지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배심원은 이스트먼의 손을 들어 줬고, 판사는 비트너, 플라스티퓨어, 서티켐에게 "앞으로 트라이탄의 에스트로겐 활성을 언급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스트먼은 오시미츠의 보고서 내용을 고수하고 있으며, 웰션스 교수는 - 비트너 박사와는 달리 - 트라이탄 폴리머 자체가 에스트로겐 활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제조 과정에서 첨가되는 다른 화합물들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플라스틱 제조에 사용되는 화합물 복합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웰션스 교수 한 명만이 아니다. 2013년 GHS(UN's Globally Harmonized System of Classification and Labelling of Chemicals: 화학물질의 분류·표시에 관한 세계 조화시스템)에 입각하여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전세계에서 생산된 2억 8,000만 톤의 플라스틱 중에서 50% 이상이 유해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Nature 494, 169–171; 2013). 여기서 유해성의 범주에는 발암성과 에스트로겐 활성도 포함된다.
위에서 언급한 화학물질 중에서 상용농도(플라스틱에서 검출되는 일반적인 농도)에서 유해한 것이 몇 가지나 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 화합물들이 혼합될 경우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왓슨과 비나스는 최근 실시한 연구에서, BPA, BPS, 노닐페놀(nonylphenol: 세제의 전구물질)과 같은 에스트로겐 유사체들이 랫트의 뇌하수체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2개 이상의 화합물들이 결합될 경우, 에스트로겐 신호전달계를 더욱 심각하게 교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참고 9). 즉, 총효과는 개별효과의 합을 능가했으며, 여러 개의 화합물들이 공존하는 경우 개별 화합물의 반응역치는 더욱 낮아졌다. "단독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화합물일지라도, 여럿이 합치면 에스트로겐 활성을 나타낼 수 있다"라고 왓슨 교수는 말했다.
왓슨 교수에 의하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PBA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화학물질이 개발됐을 경우, 식품용기에 널리 사용하기에 앞서서 에스트로겐 활성을 철저히 검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왓슨 교수를 비롯한 일단(一團)의 생물학자와 화학자들은 내분비교란 검사를 위한 다단계 프로토콜(TiPED: Tiered Protocol for Endocrine Disruption)라는 검사 시스템을 수립했다. 이 시스템 하에서는, 새로 합성된 화학물질은 철저한 내분비교란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내분비교란 테스트는 '컴퓨터를 이용한 구조분석'에서부터 '전(全)동물실험(whole-animal experiments)'에 이르기까지 5단계의 검사로 구성된다. TiPED의 목표는 독립적 실험실들의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플라스틱 제조업체의 신청에 따라 화합물의 유해성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현재 제조업체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걸림돌로 여겨지지만, 업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도 있다. 업체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플라스틱이 유해성 시비에 휘말릴 경우, 여론의 강한 압력은 물론 소송과 파산의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특정 화합물의 유해성이 밝혀지면, 업체 하나뿐만이 아니라 산업 전체가 설비를 교체해야 하므로, 해당 업계 전체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라고 왓슨 교수는 말했다.
TiPED의 취지는 내분비 교란물질(EDCs: endocrine-disrupting chemicals)이 더 이상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막는 것이다. 왓슨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은, 무수한 플라스틱 제품에서 수많은 미검증 화합물들이 발견되고 있는 현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화합물들은 우리 주변의 도처에 깔려 있다"라고 왓슨은 말했다.
※ 첨부그림 설명 1. 미국의 슈퍼마켓 풍경 ① 통조림: 대부분의 통조림 깡통 내벽은 아직도 논란 많은 BPA로 코팅되어 있다. ② 금전등록기 영수증: 많은 영수증들이 BPS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것은 BPA와 화학구조가 유사하다. ③ 젖병: 상당수의 제품들이 새로운 폴리머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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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전등록기 영수증 금전등록기 영수증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감열지는 종종 BPS를 포함하고 있다. BPS는 BPA와 구조적으로 유사하여 철저한 안전성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아직 그렇지 않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16B13359CE0BB627)
※ 출처: Nature 508, 306–308 (17 April 2014) doi:10.1038/508306a ※ 참고문헌: 1. Rochester, J. R., “Bisphenol A and human health: A review of the literature”, Reprod. Toxicol. 42, 132–155 (2013). 2. Viñas, R. & Watson, C. S., “Bisphenol S disrupts estradiol-induced nongenomic signaling in a rat pituitary cell line: effects on cell functions”, Environ. Health Perspect. 121, 352–358 (2013). 3. Grignard, E. Lapenna, S. & Bremer, S., “Weak estrogenic transcriptional activities of Bisphenol A and Bisphenol S”, Toxicol. in Vitro 26, 727–731 (2012). 4. Ji, K., Hong, S., Kho, Y. & Choi, K., “Effects of bisphenol s exposure on endocrine functions and reproduction of zebrafish”, Environ. Sci. Technol. 47, 8793–8800 (2013). 5. Simoneau, C., Valzacchi, S., Morkunas, V. & Van den Eede, L., “Comparison of migration from polyethersulphone and polycarbonate baby bottles”, Food Addit. Contam. 28, 1763–1768 (2011). 6. Osimitz, T. G. et al., “Lack of androgenicity and estrogenicity of the three monomers used in Eastman's Tritan™ copolyesters”, Food Chem. Toxicol. 50, 2196–2205 (2012). 7. Yang, C. Z., Yaniger. S. I., Jordan, V. C., Klein, D. J. & Bittner, G. D., “Most plastic products release estrogenic chemicals: a potential health problem that can be solved”, Environ. Health Perspect. 119, 989–996 (2011). 8. Bittner, G. & Yaniger, S., “Comment on ‘Lack of androgenicity and estrogenicity of the three monomers used in Eastman's Tritan™ copolyesters’ by Osimitz et al.”, Food Chem. Toxicol. 50, 4236–4237 (2012). 9. Viñas, R. & Watson, C. S., “Mixtures of xenoestrogens disrupt estradiol-induced non-genomic signaling and downstream functions in pituitary cells”, Environ. Health 12, 26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