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공지사항이 없었던 오늘은 지기학교에서 수업을 하였다. 각 동아리별로 활동을 하기 전, 햇살모올, 온새미로, 티모태 동아리가 모여 '서경문화유산포럼'에서 수상하는 상을 받았는데, 수현이와 채영이였고, 다른 한명은 못 와서 못받았다. 수상하는 장면을 보면서 성실함과 부지런함의 중요성을 알 것 같았다. 수상하고, 각 동아리별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먼저, 9월 4째주 활동을 시험 때문에 못하고, 11월 중순정도부터는 해단식 준비로 바쁘기 때문에 모금을 시작해야 했다. 우선 김미진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서대문형무소측에서 만든 서대문형무소 관련 ppt를 보여주셨다. 서대문형무소는 3가지의 의미가 있다. 먼저, 근대 건축사 의미는 서대문형무소가 19세기 감옥으로 벤담의 판옵티콘 방식(원형)이어서 적은 인원들로도 많은 수감자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항일 독립운동 산실은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고통 속에서도 보여주신 독립의지를 뜻하고, 현대 민주화 운동 산실은 민주화 항쟁의 전개를 의미하였다. 삼국에서 근대까지 다양한 형벌들과 형무소가 변하였다.
1908년에 전국에 일제는 8개의 신식감옥을 설치하였는데, 서대문형무소는 원래 경성감옥으로 칭해졌다. 하지만, 경성감옥에서 서대문 감옥,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 서울에서 의왕으로 옮겨 1998년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개관되었다. 전시관 중 중앙은 원래 보안과 청사로, 이외에도 한센병사, 여옥사, 사형장, 여러개의 감옥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대문형무소는 근대와 현대사를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이기도 하여 그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04년에는 일제가 한국의 영토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권리를 얻고, 1904년 8월 일본인 고문이 간섭하여 정치하도록 하는 제1차한일협약이 이루어졌다. 1905년 11월에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통감정치를 실시하였다. 1907년 7월에는 정미7조약이 이루어져 통감부 차관통치를 하였고,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기도 하였다. 1909년 7월은 기유각서로 사법권, 감옥사무권이 박탈당하고, 1910년 8월 결국 일제에 강제병합되어 국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일제와 대한제국이 합병되도록 하는 을사5적이 있었는데,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논상대신 권중현 등이 있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직접 나선 이들은 다양한 계층의 의병들이었다.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이재명 의사, 강우규 의사, 유관순 열사등 의사와 열사들 뿐만 아니라 손병희, 한용운 등의 민족대표들,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국학운동을 이끈 박은식 등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에 대한 정보습득을 한 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네이버 해피빈의 해피로그를 만들어 그곳에 모금함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을 직접 계획하게 되었다. 약 1시간 30분동안 우리는 디자인, 모금이유, 홍보문구등을 생각해보며 시간을 가졌다. 직접 이렇게 의미 있는 모금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슴에 벅차오르기도 하고,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가 모금을 하는 이유는 서대문 형무소를 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해 드는 소송비용은 모으기 힘드므로, 서대문형무소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홈페이지를 개설하기 위한 돈을 모으는 것이어서 약 300~500만원정도 든다. 서대문형무소를 홍보하면서 우리가 이 모금을 하는 이유를 강조하면, 신뢰성이 더 높아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가 할 모금활동이 이루어져서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에 이 가치있는 문화유산을 널리 인식시켜야 한다고 생가한다. 햇살모올 파이팅!!!
첫댓글 도연아, 후기 너무 잘썼다. 활동하면서 점점 적극적이 되어서 너무 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