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26,1-6; 마태 7,21.24-27
+ 찬미 예수님
밤새 평안하셨어요? 요즈음은, 왜 우리 선조들의 인사가 밤새 안녕하셨는지를 여쭈었는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대림 1주간과 2주간에는 독서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들으며 이 말씀이 어떻게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지는지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에서 공통된 단어는 ‘반석’이라는 단어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라는 말씀이 나오고, 복음에서는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반석’은 ‘바위’라는 뜻인데요, 바위 위에 어떻게 집을 지을까요? 집을 짓기 위해서는 우선 땅을 파는데, 흙과 모래를 걷어내며 땅을 파다가 마침내 바위층에 도달하면, 바위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그 위에 단단한 돌을 쌓아 올렸습니다. 돌 사이사이에는 진흙이나 석회 반죽을 메꾸었습니다.
이렇게 바위 위에 지은 집은 안전했습니다. 바위가 땅속에서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 집을 지어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위 위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는데요, 땅을 파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바위를 다듬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강 근처의 모래나 흙 위에 집을 짓는 일은 단순했습니다. 바위 위에 짓는 것보다 비용도 적게 들었고 시간도 절약되었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집에 휘몰아치면 무너져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고,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느냐, 듣지 않았느냐가 차이가 아닙니다. 똑같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실행하느냐, 실행하지 않느냐가 그들의 운명을 가릅니다.
가끔 수녀님들께 그런 얘기를 듣는데요, ‘하도 좋은 강의를 많이 들어서, 귀만 천국에 갈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저는 ‘입만 천국에 가면 어떡하지?’하고 생각을 하는데요, 우리가 천국에 갔는데 누구는 입만 와 있고, 누구는 귀만 와 있는 걸 보면 어떨까요? 우리의 몸이 가야하는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반석’ 즉 ‘바위’는, 원어인 그리스어로 ‘페트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집을 지으셨을까요? “너는 페트로(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바위 위에 당신의 집인 교회를 지으셨습니다. 이 교회는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우리의 집이기도 합니다.
제1독서는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라고 노래하는데요, 원문인 히브리어는 “‘야’ 안에서 ‘야훼’는 영원한 반석이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야’는 ‘야훼’의 축약형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이름을 두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만을 바위처럼 신뢰하는 사람들은 구원의 성문 안으로 들어가고, 교만한 이들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교만한 이들의 운명을 다음과 같이 예고합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합니다. 성모님의 노래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력자들(뒤나스타스)을 자리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루카 1,52)라는 말씀입니다.
성모님의 이 노래는 주님께 충실한 하느님 백성의 노래이고,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를 압축한 노래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거룩하신 삼위일체 수도원, 메테오라, 그리스
출처: Monastery of the Holy Trinity, Meteora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