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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와 지상파 방송에서 일본의 장례문화에 대해 대거 특집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제목으로는 ‘일본은 지금 슈카츠(終活)의 붐이 일고 있다’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웰다잉’ 이 장례업계의 키워드가 된 지 한참 지났습니다.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스스로의 임종을 어떻게 준비하여야 할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보다 일본에서는 진작 이슈가 되어 지금 ‘終活(종활)’이 사회에 널리 팽배해져 있다고 합니다. 일본어로 슈카츠라고 읽고 한자어로는 마칠 종, 삶 활이라고 적습니다.
일본에서는 한 해에 약 126만명이 사망합니다. 이미 2006년 사망자 수가 처음으로 출생자 수를 앞지르기 시작하여 전형적인 인구감소 사회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사망자 수는 2040년에 정점을 찍고 출생자수의 2.5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2060년에는 인구의 40%정도가 65세 이상이 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일본에서는 과거 비교적 언급을 꺼리던 ‘죽음’을 나와 가까운 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임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슈카츠(終活, 임종을 준비하는 활동)’ 비즈니스 붐이 일본에서 일고 있습니다. 슈카츠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뜻대로 살기 위해 생전에 장례나 묘 준비, 상속 등 사후 대책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슈카츠라는 제목이 붙은 세미나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인생에서 마지막 때가 있음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최근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적극적으로 준비해 사후 문제를 최소화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시키기 위한 ‘셀프 장례 준비’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전장례의향서를 작성해 자신의 사후에 남은 재산 분배 등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생전 자신의 뜻을 밝혀둠으로써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전장례의향서는 장례형식, 장일, 부의금과 조화, 수의, 관, 시신 처리 등에 대해 본인의 의사를 밝혀놓은 서식입니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자신의 장례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사전장례의향서는 한 해동안에만 1만 부 이상 배포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잘못된 죽음 즉 자살 등의 사회적 문제를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불필요한 장례 절차 등을 생략하고, 임종에 대한 시각을 바꿈으로써 결국 높은 삶의 질을 얻는 긍정적 시도라고 말합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윤달에 수의를 장만하고, 미리 묏자리를 마련해두면 무병장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묘를 잘 쓰면 자손들이 번성하고 성공을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보면 그것도 다른 방식의 ‘죽음을 맞이하는 즐거움’인 셈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제가 왜 죽음에 대해 말씀드리느냐면 우리의 인생이 어쩌면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말 죽음의 때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 지를 깨닫기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깨닫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사실 성경적으로 따져보면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인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과 다른 죽음에 대한 의미를 하나 더 성경에서 찾아보자면 그것은 바로 영적인 죽음입니다. 우리는 육체적인 죽음뿐 아니라 영적인 죽음까지 맞이하는 존재입니다. 그 영적인 죽음에서 살아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 천국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국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때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언제 어디서인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의식으로 예수님을 만날 날을 기대해야하는 지 오늘 말씀을 통해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다시 만날 날과 장소를 기대하면서 예수님을 기다리시며 참다운 인생의 종말 신앙가운데 바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첫째로 재림의 장소를 알아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한 장소가 재림의 장소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3절입니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있을 수 있는 상황은 사람들이 “주님이 임하시는 곳이 이곳이다. 저곳이다.”라며 소문이 무성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칭 재림예수가 임하여서 내가 재림한 예수라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세상에 만연하여 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여기로 갔다가 저기로 갔다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허황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단들의 큰 특징 하나가 마지막 때에 어느 지역에 주님이 임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의 이단들은 한국의 어느 땅, 미국의 이단들은 미국의 어느 땅, 각자의 나라에 특별한 땅을 주장합니다.
몰몬교라는 이단은 구세주께서 친히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주민들에게 전해 준 완전한 복음이 있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몰몬경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동계올림픽개최지 솔트레이크시티가 중심인 미국 유타주에 모여 살면서 그 곳이 마지막 때의 구원의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통일교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일대 500만평의 엄청난 규모의 땅을 사서 일명 ‘청심단지’를 만들어놓고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이라며 마지막 때 구원의 땅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은혜로교회라는 이단의 교주 신옥주씨가 피지라는 섬이 마지막 때에 구별된 땅이라며 성도들을 데리고 이주하여 강제노동하게 하고 완전 피지라는 땅에서 왕으로 대접받으며 살았던 것이 PD수첩에 방영되면서 정말 난리가 났었습니다. 규모는 다르지만 수많은 이단이 “이 곳이 주님이 계신 곳이다. 저 곳이 주님이 계신 곳이다”라고 주장하며 적그리스도를 재림 주로 위장하며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5절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태복음 24장 11,12절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또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벙커를 짓고 대비하고 지하 밑으로 숨든지, 지구의 멸망을 피해 우주로 날아가면 마지막 날을 피할 줄로 생각합니다. 노르웨이령 스피츠베르겐 섬에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라는 시설이 있습니다. 이 시설의 목표는 핵전쟁, 소행성 충돌,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등 지구적 규모의 재앙후에도 살아 남은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식량의 씨앗을 저장하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동안 지구의 동식물을 지켜낸 것에 비유하여 ‘최후의 날 저장고’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현재 총 200만개의 식물 씨앗이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인근에는 종말의 상황이 찾아와도 견길 수 있는 벙커까지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국제종자저장고가 있는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더워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노르웨이 환경부 의뢰로 스발바르대학센터가 조사해 최근 발표한 새로운 보고서에 따르면, 스발바르제도는 지구온난화의 가속으로 오는 2100년 안에 평균기온이 1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상황은 각국이 탄소 배출량을 제대로 줄이지 못한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이미 스발바르제도 곳곳에서는 지구온난화와 관계한 문제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결국 인간이 마지막 때에 피할 곳은 없다는 말입니다.
특히 우리 주님이 임하실 때 이 세상은 완전히 끝이 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날이 언젠가는 임할 줄을 알면서 어떤 장소를 피해야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루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이 임할 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고 이단에 미혹되지 않고 어떤 장소에 관심을 두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둘째로 때를 미리 알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재림의 시간을 인간이 미리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9절입니다.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임하실 때 즉, 이 땅에 완전한 심판이 임하고 이제는 이 세상이 끝이 나게 될 때가 있을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끝이 난다라고 경고를 해도 그 때까지 어떠한 대비도 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롯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이야기했음에도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쾌락과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임한 멸망에 모두 멸망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언제 무슨 일이 있을 지를 생각하면서 무엇을 진행하면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특성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왜 다시 오실 날을 알려주시지 않을까요? 미리 알려주시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모두 천국갈 준비를 잘 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우리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7절입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우리들은 언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면 미리 잘 준비하고 항상 꾸준하게 준비하면서 살아야할텐데 이상하게 대부분, 아니 거의 100% 모든 사람들이 딱 그 때가 닥쳐서야 준비하려고 하고 기분만 들뜨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시험준비도 미리 준비하면 될텐데 꼭 날짜가 닥쳐와야 뭐부터 할지고민하면서 막상 시험범위도 제대로 한 번씩이라고 다 읽어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우리가 주님의 재림의 때를 안다면 주님이 임하실 때가 되기 전에는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은 다 하고 자기 하고 싶은 욕망대로 다 살고 죽기 일보 직 전에만 예수님 만나기 몇 분전에만 신앙고백하면 되겠지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때와 시기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정말 황당해하면서도 그 시험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공부했던 시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험보는 날짜를 가르쳐주지 않고 보는 수시 쪽지시험입니다. 영어단어시험이나 수학단원쪽지시험을 정말 말도 않고 있다가 갑자기 보기 때문에 평소 때 꾸준히 해놔야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신앙생활도 주님의 때를 알지 못하기에 항상 꾸준하게 바른 신앙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바로 살기를 원하시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지 세상이 마지막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징조를 통해 우리는 주님이 임하실 때를 예측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보시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전쟁이 일어나는데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는 일,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가뭄과 홍수, 지진등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재난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이 핍박을 당하고 미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언제가 끝이 될 것인지를 정확하게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단서를 하나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시간을 알고 재림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종말의 시간도 알 수 없고 이 지구의 마지막 때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는 영혼의 파멸과 멸망을 벗어나서 영혼이 살아있어야 육신의 종말, 이 땅의 종말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때와 시간을 알고 준비할 수 없는 존재인데 언제인지를 알지 못해도 항상 하나님의 뜻을 알고 참다운 신앙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셋째로, 세상적인 관심으로 살아가서는 안 되고 매일 매일이 주님의 오실 때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31절입니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주님이 오실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세상적인 관심은 모두 버리고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날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멸망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롯의 아내를 지목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 32절을 읽으시겠습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소돔과 고모라에서 있다가 멸망당한 사람이 많은데 여러 사람들 중에 특별히 콕 집어서 롯의 처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다른 사람들의 멸망과 롯의 처의 멸망이 다를까요? 다른 사람들은 이미 구원에 대해 관심이 없고 알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롯의 처는 구원을 기대하며 생명을 얻기 위해 롯을 따라 구원의 땅을 향해 도망쳐 나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땅을 향해 가던 롯의 아내는 결국 죽음을 당하고 멸망되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보니 누가복음에서는 사람들이 멸망의 과정속에서도 자신의 세간을 생각하고 자신이 챙길 수 있는 재산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멸망을 당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엊그제 강원도 속초와 인제, 고성과 삼척과 강릉지역등 강원도, 그리고 부산 해운대에 엄청난 산불이 났습니다. 산불이 나자마자 대통령은 비상담화를 통해 중앙안전관리위원회를 통해 당부의 말을 하던 중 제 머리에 확 와닿는 멘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스와 전기등 가정에 폭발 위험이 있으니 불이 난 지역에서는 소방대원에게 화재진압을 맡기고 대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가재 도구, 재산문서, 통장등을 챙기신다고 대피명령을 따르지 않거든 생명이 최우선이니만큼 강제적인 힘을 가해서라도 대피하도록 해라고 지시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세상적 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내세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구별되어지고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34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이 땅에서 우리 인간들중에는 구원받을 사람과 버려짐을 당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속에 내세를 생각하며 은혜를 갈망하고 살아가느냐? 아님 이 세상이 완전한 세상인 줄 알고 세상적인 관심으로 살아가느냐의 차이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세상적인 관심이나 세상적인 욕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참 은혜를 갈망하며 주님만날 날을 대비하며 항상 주님중심의 가치관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온갖 자연재해와 인간의 죄로 인한 전쟁과 테러, 지역적인 갈등이 너무나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속에서 세상은 영적인 타락과 아울러서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적그리스도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자칭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이단교주들이 총 50여명이 됩니다. 물론 재림주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문제가 많은 이단은 더 많습니다. 신학적인 문제나 구원에 관련된 부분등 이론적인 측면에서 이단이 된 곳도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큰 곳은 이단들중에 많은 이단은 교주나 총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신으로 믿고 재림주 혹은 보혜사 성령등 하나님의 위치에 놓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단들은 자신들의 조직만이 구원이라고 말하며 자기에게로 오라고 합니다. 그러니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본문의 성경말씀처럼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고 말하는 이단들속에서 미혹과 유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임하실 재림의 장소, 시간에 관심을 두지 말고 어디서나 어느 시간이나 주님을 섬기는 참 신앙으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재물과 관심사에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며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결국은 우리 주님의 은혜만 갈망하며 살아갈 때 시간, 장소 상관없이 주님의 참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천국의 인생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