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말씀/ 고린도전서 15:1-34 요절/ 고린도전서 15:20 | 2023. 4. 9 | |
부활절 특강 제 1 강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사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우상숭배와 인본주의와 육신주의에 빠져 있던 고린도 사람들은 그 놀라운 복음을 듣고 변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부활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 교회 안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세상을 향한 선한 영향력을 상실해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장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들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그들이 복음신앙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권면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 몸의 부활을 믿음으로 사망권세를 이기고 생명력이 넘치는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았고 그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가 전했던 복음을 다시 알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복음을 지키지 못하고 헛되이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복음을 굳게 지키도록 복음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할 때 구원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영적 성장이 없다면 복음신앙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나의 신앙을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을 때 구원이 이루어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의식과 수치심과 불안과 두려움과 허무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일생동안 땀 흘리고 수고해야 먹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죽어서 한 줌의 흙이 됩니다. 죽음 이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영원토록 참예하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를 범한 인간의 운명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절망에 빠진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지은 모든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누구든지 죄사함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에게 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다시 말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장시 지낸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음을 증거해 줍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성경대로’ 라는 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고 실행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직후부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메시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전체에 걸쳐서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22편과 이사야 53장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편 16편은 그리스도의 부활, 다니엘 12장은 성도들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생전에 여러 차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5-11절은 부활의 증인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증언합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게바 다시 말해 베드로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체포되어 고문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문을 꼭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시며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그때까지 그들 대다수는 살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습니다. 그래서 의심 되면 언제든지 찾아가서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게 보이셨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 생전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핵심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모든 사도에게 보이셨습니다. 여기서 ‘모든 사도’는 야고보와 열두 사도들 외에 초대 교회 복음선포자가 된 사람들 예를 들면 바나바와 같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도들과 비교해볼 때 바울은 정상적인 임신기간이 없이 영적 탄생을 경험했습니다. 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한 복음의 원수였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적 무지와 교만 때문에 복음역사를 훼방하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데 일조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유대교를 위협하는 이단으로 생각하고 없애고자 했습니다. 다메섹에도 신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산헤드린에서 체포영장을 받아서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이런 사울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자리에 꼬꾸라졌습니다. 예수님의 광채로 육신의 눈은 실명이 되었지만 영적 눈은 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죄인으로서 자기를 발견하고 애통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울에게 아나니아를 보내셔서 안수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고 실명된 눈이 밝아졌습니다. 이후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의 진수가 담긴 로마서와 많은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고백합니다. 자기 같은 죄인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요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원수였던 바울이 겸손하고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 된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강력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진리 중에서 진리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진리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죽어서 시신을 불태우면 한 줌의 재밖에 남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생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 앞에서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보화가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역사적 사실이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2-19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에게 어떤 심각한 문제들이 생기는가를 보여줍니다. 예나 지금이나 육체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 헬라에는 영지주의 사상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혼은 참되고 아름답지만 육체는 악하고 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영혼이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가 죽으면 자유롭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육체의 부활은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 중에는 이런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주장은 복음진리를 훼손하는 위험한 사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이라는 가정법을 사용하여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가를 설명합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지금까지 전한 부활의 말씀은 모두 헛된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한 모든 사람들은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예수님의 시체는 팔레스타인 어느 곳에서 썩어서 사라졌을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없는 무능하신 분이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 또한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모두 망하게 됩니다.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하다가 많은 박해를 받았고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사회에서 추방당했습니다. 화형을 당하거나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서 카타콤이라는 지하공동묘지에 숨어서 살았습니다. 이런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의 소망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들은 헛된 믿음과 헛된 소망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산 가장 불쌍한 자들이 됩니다.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말하며 인생을 즐깁니다. 하지만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서 죄와 낙을 누리며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본향을 사모하며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고 우리의 부활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장차 부활할 것이라는 헛된 소망을 붙들고 인생을 즐기지도 못하고 죽어서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바보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도 반드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8절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얼마나 놀라운 일이 펼쳐지는가를 보여줍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입니다. 죽으면서 영혼의 안식에 들어갑니다. 새로운 날이 밝아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 때에 깨어날 것입니다. 농부는 많은 수확을 기대하면서 땅에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꿉니다. 그리고 첫 열매가 맺히면 몹시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첫 열매는 곧이어 수많은 열매가 맺힐 것을 알리는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을 보증해주는 증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통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겠구나,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겠구나.”하는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습니다. 아담은 죄를 지어서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담 아래 있는 모든 인류는 죄인이며 죄 때문에 죽습니다. 하지만 살리는 영이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새생명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부활합니까? 부활하는 데는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들의 부활입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악을 정복하시고 심지어는 죽음도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성도들의 부활입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큰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고 천군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을 믿고 부활의 소망 가운데 죽은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고 다시 일어납니다. 동시에 이 땅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도 부활의 몸을 입고 새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됩니다.
부활신앙이 분명할수록 죽음의 권세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수년 전에 온두라스에서 사역하던 강다윗 선교사는 차를 타고 가는 중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는 사람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강다윗 선교사의 차는 유리창이 박살나고 운전석 곳곳이 벌집처럼 구멍이 났습니다. 선교사도 머리 뒤쪽과 옆구리에 총을 맞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생명을 지켜주십시오. 만일 데려가신다면 저의 영혼을 주님께 맡깁니다.” 병원에 실려 간 후에 살펴보니 머리뒤쪽에 맞은 총알은 깊이 박히지 않고 납작하게 눌린 상태로 붙어 있었습니다. 옆구리 옷에는 구멍이 났지만 몸은 스치고 지나가서 멍만 들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들을 사랑하시고 눈동자처럼 보호하신다는 것을 체험하고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이 땅에 사는 동안 부활의 생명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부활의 생명력은 내게 파고드는 죄와 죽음권세를 몰아내고 밝고 생명력이 넘치는 인생을 살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통치권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은 그 사명을 완수한 후에 구속된 인류를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만유의 질서가 회복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30-34절은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들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바울은 항상 죽음의 위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죽음을 각 오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자기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사람들은 맹수만큼이나 사나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격렬한 폭동을 일으켜서 바울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바울이 그들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이유는 부활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하면서 방탕한 삶을 사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부활신앙이 없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허무주의자나 쾌락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악한 동무들이요 선한 행실을 더럽히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길을 가고자 할 때 악한 동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힘들게 신앙생활하지 말고 적당히 즐기면서 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악한 동무들의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이 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고나면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은 남지 않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 한 일만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소망 가운데 깨어 의를 행하고, 복음을 전하고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열정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장차 그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부활권세를 덧입고 죄를 이기고 연약함을 이기고 죽음도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