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에 지켜지는 약속에는 무언가 있다
밤새워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에도 폭우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전과 오후에 한 시간 이상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각기 약속이 잡혀 있어 외출 준비를 하면서도 약속이 취소될 것이라는 생각에 서둘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있으니 약속 하나가 취소되었다. 나머지 하나도 취소되길 바라면서 꾸물거리는데 취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상대방이 마음 편히 취소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권사님, 안녕하세요. 거기 밤새 폭우가 쏟아졌지요?”
“예, 비 많이 내렸어요. 근디 하필이면 비가 쏟아지는 날 약속을 잡았네요. 그래도 선생님, 오늘 꼭 오시는 거지요. 오셔야 되요.”
“권사님, 폭우 때문에 어려운 일 없으신가요? 이런 날은 가능하면 외출을 삼가하고 안에 있는 것이 좋은데요.”
“지는 어려운 일 없어요. 선생님, 무신 일 생겼어요?”
“아니요. 그냥, 날씨가 안 좋으니 만나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아서요.”
“아이고, 그런 말 마세요. 차타고 오시는 분이 더 힘들지요.”
약속을 피할 길이 없었다. 버스 안에서 권사님의 삶을 더듬어 묵상하였다.
그는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별 볼 일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전 재산을 팔아서 진주를 산 사람의 기쁨과 소망’으로 사는 천사로 나에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라는 말씀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를 만나서 결혼을 하였지만 남편의 간질 때문에 성직을 떠나야 하였다. 형언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두 자녀를 보살피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과일 장사를 하였다. 남편이 힘이 좋아 리어카를 끌고 다닐 수는 있었지만 지적 장애가 있어 새벽에 도매시장에 가는 일부터 시작해서 온 종일 동행해야 했던 그는 생활고에 지쳤음직도 한데 남편에 대하여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거리에서나 집에서 만나면 그저 순한 눈빛으로 수줍게 웃었다. 나는 야윈 몸에 풍덩한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추레한 모습으로 리어카를 뒤에서 밀거나 때로는 끌고 명산동 산동네를 오르내리는 그를 볼 때 마다 남편을 잘못 만나서 고생이 많다고 생각하였다.
그나마 남편이 병들어 과일 장사를 그만 두게 되었을 때 그는 파출부 일로 자녀들을 양육하였다. 자녀들이 취업하고 결혼하여 슬하를 떠나게 되자 그는 자신과의 약속,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학생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80년대 초반에 만난 인연이 있는 나에게 연락을 주셨다. 그런 그가 십여 년 전에 내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그가 참으로 고마웠고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어느덧 그가 일하고 있는 아파트 미화원 휴식소에 도착하였다. 그는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노크하자 바로 문이 열렸고 그는 미리 준비해 놓은 새 양말을 주며 갈아 신게 해주었다. 그리고 곧 바로 일어나서 우리는 폭우를 무릅쓰고 인근 식당에 가서 때 이른 점심 식사를 시작하였다.
“선생님, 험악한 우중에 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1년 동안 모아 놓은 것을 어제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몫이거든요.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가 1년 동안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기백만 원의 돈이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동으로 눈물이 나왔다.
자녀들을 양육하고 병든 남편을 구완하느라 자기 노년을 위해 아무런 준비를 해놓지 않은 권사님이 해마다 하나님의 몫으로 바치는 정성이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옥합을 깨는 마리아와 다름없다.
“권사님, 하실 일도 많고 쓰실 일도 많으시잖아요.”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굶지 않고 헐벗지 않고 잘 살아요. 저보다 선생님이 더 필요하지요. 선생님께서 난민들에게 양식 보내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니 하나님의 몫으로 보내세요.”
“권사님, 그런데 왜 저에게 하나님 몫을 맡기는 거지요?”
“우리 곁에 있을 때 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한 일을…
그리고 선생님은 제게 예수님을 보여주신 분이고 계산없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난을 따라갔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 예수를 보았다고 하는 권사님 앞에서 나는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권사님은 계속해서 직은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을 이어 갔다.
“저는 주의 종으로 살기로 했지만 못 살았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지 못한 몫을 선생님께 진즉에 떠맡겼습니다.
제가 송구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기도와 작은 옥합을 드리는 일뿐입니다.
선생님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필요한 일에 써주시면 됩니다.”
폭우를 뚫고 달려와 천사, 성자 청소부를 만난 기쁨으로 내 영혼이 춤을 추었다.
작은 체구에 단발머리, 초라한 옷차림의 그에게서 맑은 기운이 흘러 나왔고 그의 얼굴에는 소란한 세상을 넘어선 담담함과 소박함과 초연함이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난 흥분으로 당면 문제들과 기도 제목들도 다 내려놓고 밤새도록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드렸다.
다음 날 종일 폭우 소식이 뉴스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스마트 폰에는 피해 상황과 위험을 알리는 알림 문자가 계속 이어졌다.
내일 있을 약속에 적신호가 켜졌다. 물론 내가 가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직접 운전해서 나를 만나러 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오는 길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안전을 생각하며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가 보낸 카톡이 먼저 와 있었다.
“비가 많이 와서 KTX 타고 가는 계획으로 변경했어요. 오전 11시에 약속하신 OO교회에 도착 예정이여요. 교회에서 뵐게요.
낼 뵙겠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전라도에서 경상도에 가는 길은 교통편이 별로 없고 연결이 좋지 않아서 하루치기가 어려운데 폭우가 쏟아지면 더 어려워질 것이 뻔하였다.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너무 무리를 하면 안 되다는 생각에 약속을 취소하거나 미루기로 마음먹었다.
“애공! 선생님, 무리하지는 마세요. 비가 많이 내려서 걱정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음으로 미룰까요? 아니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곳 지역 도로가 전면 통제에 들어갔어요. 물론 다는 아니고 일부지만요.”
“선생님, 역에서 OO교회까지 도로 통제가 아니면 갈게요. KTX 타고 가는 길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역에서 교회까지는 택시 타고 갈 예정입니다.”
나는 그가 무리하게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고맙기도 하지만 부담이 되기도 해서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를 생각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약속을 그대로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선생님, 지금 약속을 미루면 또 언제 뵐지 기약이 없어서 내일 그대로 가려고요.”
나는 그의 ‘언제 뵐지 기약이 없어서’ 라는 말에 마음이 약해졌다.
“무사히 오소서. 그러나 역에서 OO교회까지는 멀어요.” 라고 답신을 보냈다.
다음 낭 아침 빗소리를 들으면서 염려하는 마음으로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정샘, 역에서 OO교회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요. 조심히 오길 바래요. 제가 차가 없어서 마중을 못나가니 죄송한 마음이요.
그러나 여기로 오다가도 비가 심하게 내리면 나중에 뵈게요.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소중하오.”
그는 집에서 출발하였으니 곧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고 그로부터 4시간 후에 역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나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을 보려고 먼 곳에서 달려온 그의 정성이 고맙기만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서로 얼싸안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인도에 다녀온 것이 벌써 13년이 되었다고 하였다. 13년 사이에 나를 두 번 보았는데 이번에 안 보면 못 보게 될 것 같아서 불원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왔다고 자신을 변호하였다. 교회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는 사이에 그는 쫓기는 듯이 서둘러서 준비해온 선물을 주었다. 곶감, 화장품, 감사 편지와 후원금 등. 그의 정성이 범상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겨우 3시간을 보내고자 아침 일찍 악천후를 뚫고 4시간 이상을 달려온 그의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였다. 돌아갈 버스 출발시간이 3시 20분이라고 해서 터미널 부근의 커피숍에 가서 마주 앉았다.
우리는 인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옛일을 회상하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우중에 불편을 감수하면서 나를 보러 온 몇 가지 놀라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첫째는 그가 우리회가 인도에서 운영하는 ‘비전 아카데미’ 프로그램에 등록금을 내지 않고 참여하였으나 내가 그를 무시하거나 등록금을 강권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둘째는 우리 센터 사감이 비자 여행을 나간 사이에 내가 그를 임시 사감으로 임명하여 봉사하게 만들어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셋째는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자기가 집안의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귀국하게 되었을 때 내가 자기 부모님의 선물 구입비로 용돈을 챙겨 주어서 받은 감격이 항상 가슴 밑으로 흐른다고 하였다.
잊어도 벌써 잊었을 십여 년 전에 받은 작은 호의를 사랑으로 깊이 간직하고 있는 그의 영혼이 너무 귀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가 폭우에도 불구하고 북북 우기면서 나를 보러 온 것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그가 옛날에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를 고백하러 불원천리 달려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제야 수년 전에 추위에 떨고 있는 나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숄을 선뜻 주고 간 그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카톡을 보내주었다.
“선생님, 몸은 멀리 있지만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샘, 그 마음이 천사 같아요. 천리 길을 와준 것만 해도 감사한데 이렇게 많은 선물을 챙겨온 정성이 너무 가상합니다. 내가 차가 없어서 편히 못해주어서 미안하오.
짧은 방문이지만 우중에 온 것이 천사의 방문을 받은 기분이오. 마음 담아 써준 카드 최고 선물이오. 감사하오.”
나는 사랑이 가득 담긴 카드를 읽으며 그의 앞길을 마음껏 축복하였다.
그렇다!
폭우 속에서도 지켜지는 약속에는 무언가 있다. 폭우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편하고 힘든 것을 개의치 않는 무언가가 없이는 폭우가 내리는 날에 굳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겠는가?
폭우 속에서 만난 두 천사 때문에 나는 영원히 브엘세바에서 살아야할 것 같은 기분이다.
2023년 7월 17일. 월요일. 자시
우담초라하니
첫댓글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