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은 정직하고 솔직하고 급하고 세차서 한 번 자기 비위에 맞지 않으면 천만금이 생긴다 해도 마다했다. 그리고 한 번 결심한 일은 기어코 해내는 성격이셨다. 가령 오늘은 나무를 일곱 짐 하겠다고 결심하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어이 해 내고 마는 성격이셨다. 그가 신앙생활을 하기 전에는 성격이 인색했다. 공동 작업을 하다가 흰 쌀밥을 싸 가지고 와서 먹을 때 곁에서 좀 나누어 먹자고 하면 “내가 땀 흘려 번 쌀을 내가 먹지, 누구를 주느냐”고 하면서 혼자 먹을 만큼 인색한 사람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른 말 잘하면 싫어한다. 그러나 허튼 소리 하지 않고 책잡힐 일을 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면서도 가까이 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재치도 있고 장난 끼도 남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친구들과 밤에 모여 어느 집 잔치에 돼지 다리 걸어 놓은 것을 훔쳐올 수 있느냐고 했더니 아무도 나서지 못했으나 그가 가서 훔쳐 왔다. 장난이 지나쳐서 모두 걱정을 하니 다시 갖다 놓고 오기도 했다.
일을 얼마나 부지런히 했는지 지게를 너무 져서 지게 목발이 닳았는데 어린 아이가 질 수 있을 만큼 짧게 닳았다. 부지런히 일해서 재산을 모아 논밭을 마련해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게 되었다. 머슴살이를 해서 집도 마련하고 형편이 나아지니 그리워하던 형님을 자기 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오시도록 해서 형님을 도와드리기도 했다. 형님 생활도 나아지자 30살에 16살 어린 14살짜리 소녀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결혼식은 못하고 살게 된다. 신부 이름은 문순희였다.
이때는 장리쌀 제도가 있었는데 논문서, 밭문서를 맡겨 두고 벼를 밥그릇으로 빌려 가는 것이다. 그런데 정한 때까지 빌린 것을 못 갚으면 그 논밭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이러한 논밭을 밥그릇배미라고 부르기도 했다. 10년 각오하여 돈을 모으고 장리 놓고 거둬들이고 하다 보니 그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돈도 모으고 부자가 된 이후에는 노동도 중지하고 반대로 머슴도 두게 되었다. 이제는 마당 쓰는 일마저 머슴에게 시키고 깨끗한 옷 입고 그 시절에 제일 좋다는 옥양목 두루마기도 걸치고 으스대며 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