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왠일이야~ 날씨를 보며 기후건강도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주 수요일 집단상담모임 합니다.
여는 글 읽고 오셔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비 그치면 책으로 받아서 읽고 들어올 날도 기대하게 됩니다.
용기있는 삶
문은희_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 소장,심리학박사,계간 「니」 편집장
어렸을 때 유난히 겁이 많고 조심스러웠던 나는 용기있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다. 높은 그네도 겁이 나서 올라서지 못했고, ‘쾅’하고 발을 굴러서 상대를 공중으로 높이 던져올리는 널뛰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조그만 벌레도 눌러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의과대학에 갔는데, 피를 빼서 실험을 해야 하는 생리학, 생화학 수업에 들어갔어도 단 한 번도 주사바늘을 찌를 수가 없었다(결국 본과 2학년에 문과로 전공을 바꿨다). 골목길에서 하루 종일 뛰어놀던 어린 시절에 한 번도 크게 소리지르며 싸워본 일도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용기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우리네 위인으로 알려진 분들이 위험한 전쟁터에서 무섭지 않다는 듯이 싸우는 용감한 사람들이라, 나는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고 여겼었다.
<용기, 하나님의 딸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
이제 칠순을 코앞에 두고 지나온 날을 뒤돌아보면 그와는 다른 면에서 겁이 없었던 나를 보게 된다. 광복 이후에 학교에 갔고, 간도에서 남하해 아버지의 목회지를 따라, 그리고 피난지를 전전하며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나 다녔다. 처음에는 늘 조금 서먹하기야 했을 터이지만 그래도 외톨이 노릇하지 않으면서 학교 안 가겠다는 소리 없이 지냈으니 꽤 용감했었나 보다. “춥고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던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어, 남의 나라에서 무일푼으로 결혼했고, 연년생으로 아들 낳고 살았으니 용감하긴 했었다. 만 46세에 외국으로 유학 가서 쉰이 넘어 박사학위를 했으니 이 또한 용감한 일 아닐까. 그뿐 아니라 어디를 가든지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 움직였으니 쭈뼛대지 않고 꽤 용기있게 살았구나 싶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들이 여기저기에 살아남아 움직이고 있어 감사한다. 24년 전 여성봉사단체 알트루사를 만들고, 상담소를 차리고, 소식지를 시작하고, 계간지 「니」를 내는 등 겁 없이 일을 저질러왔다.
이제 이만치 용감하게 살고 보니 나만큼 복된 늙은이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번듯하게 세상에서 알아주는 성공을 한 것은 아니다. 아들, 손자, 며느리와 알콩달콩 사는 것이 아니라서 외롭겠다고 말들 한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자라는 모람(모인 사람)들과 사랑의 공동체로 호흡을 같이 하며 사니 더 바랄 것 없다. “누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인가?” 노인네인 나를 아직도 필요로 하는 젊은이들이 내 딸들이요 아우들이고, 그들의 아이들이 나의 손주들이니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하루아침에 늙은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순다섯 되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것 빼놓고는 서서히 차츰차츰 늙은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이토록 복된 늙은이가 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그러니 자랑으로 읽지 말기를 바란다).
나보다 머리 좋고, 재주 많고, 능력이 풍부한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무엇 하며 살고 있나 보자. 부자라 비싼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있다. 대학교수 하다가 은퇴해서 조용히 별장 갖고 사는 친구도 있다. 미스 코리아가 되었던 친구도 있고, 약사·의사로 사는 친구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가족을 위해 살고, 바깥활동을 해도 이미 체계가 잡혀있는 직장이나 단체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의 뜻에 따라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와 자기 집안 바깥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붕어빵 찍어내듯 똑같이 사는 것은 건강한 본이 아니다. 한 줄로 서서 남보다 조금 앞서 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쟁이 고작이어서는 안 된다. 남보다 큰 붕어빵을 가지려 하는 것이 겨우 삶의 목표일 때, 그 붕어빵은 강남에 있는 아파트일 수 있고 아이를 일류대학에 보내는 것일 수 있고 남편의 출세일 수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각기 다른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을 볼 수 있지 않았던가. 우선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남다른 달란트를 제대로 알고 나면, 그 자신의 것을 키우고 늘려야 할 ‘주어진 책임’을 열심히 성실히 용기있게 해야 한다. 땅에 묻어두는 것은 용기있는 처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일일이 간섭하지 않으시니 용기있게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 받은 달란트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 그리고 그 책임을 깨달은 사람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식으로 자기의 달란트를 키우고 불리려 애쓴다. 자기의 값어치를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주어진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남들의 평판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라며 자기를 깔보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많은 여성들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나님 품 안에 “남녀가 하나라”는 것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만의 ‘특징껏’ 살 용기를 가지지 못한다면 제대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붕어빵’의 틀을 더 믿고 산다고밖에 할 수 없다.
<용기, 남다르게 살기>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한 여인들은 하나같이 세상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기생 라합이나 다말(유다의 며느리) 그리고 룻의 용기와 지혜는 붕어빵 틀에 묶여있는 통상의 사람들이 감히 생각하고 실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당당하게 그들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문화는 끊임없이, 자신을 알고 자기가 믿는 뜻에 따라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게 만든다. 언젠가 상담받으러 온 젊은 여성이 내가 말하기만 하면 웃는 얼굴로 “옳아요,”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를 연발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그렇게 상냥하게 반응하느냐고 물었더니 얼굴이 어두워지고 깊이 생각하는 모습이 되었던 일이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대체질이어서 깜찍하게 연극을 잘해서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고 했다. 늘 다른 사람의 칭찬과 동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자기 혼자 만족하며 조용히 사는 순간을 견딜 수 없고 늘 고조된 상태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기운을 소진하게 되었던 경우였다. 남들의 칭찬이 없어도 되는 자기의 세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외아들을 둔 청상과부가 얼마나 손자를 기다렸을까? 그 할머니에게 둘째 손녀로 태어나 심하게 구박받으며 자란 여성이 있다. 집안에서 최고의 힘을 가진 할머니의 권위에 반발하고 투쟁하며 살아왔다.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면 그 뒤로도 모든 권위에 반발하며 외롭게 자기를 소모하면서 살게 된다. 앞에 소개한 칭찬받는 데 익숙한 여성과 반대인 듯 보이지만, 깊숙이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에서는 강하게 반발하느라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자신을 제대로 살려 키우지 못하고 사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러기에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야 (하나님의 자녀로) 참으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고, 남과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다 세상의 길을 가더라도 건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혼자라도 바른 길을 가는 용기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믿음의 자녀들과 이웃들이 용기있게 살 수 있도록 용납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가까운 이들이 다르게 사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가정과 이웃과 교회에 시아버지의 아이를 낳은 다말과 기생인 라합과 시어머니와 의논하여 남자의 잠자리에 슬며시 들어간 룻이 있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용납할 수 있을까? 기생이 되자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두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