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사이 외 1편
윤의섭
도로 끝에서 차들은 사라진다
저 앞에 산이 놓여있다
산을 바라보며 걷는 나도 누군가에겐 사라지는 중이다
겨우 고비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장담하지 않았다
어떤 연명은 마지막을 긴 순간으로 만드는 일일 뿐이다
주변 사람들이 작정 없이 떠나기 일쑤고
얼굴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다신 볼 수 없어서
지금보다 더 나아질 시간이 없다면 오늘이 유토피아일까요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것
이라고 메모해 놓고는 간신히 슬퍼지지 않았다
살림살이를 새로 장만했는데
냉장고를 사고 책상을 들여 놓고 침대를 바꾸고
모두 일인용이었고
나는 사람이므로 일인칭으로
차들이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다음 차례다
곡예
날씨가 추울수록 이 계절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오늘 하천에 비친 도시에서 솟아오르던 눈송이는 끝내 수면을 넘지 못했다
그런 끝도 끝나지 않는다
동네 분들은 지금도 어머니를 내 이름으로 부르신다
끈질기게 남아있는 유년의 흔적 나 어른이지만 다 핀 것은 아니다
불의 고리를 통과하듯 하루하루를 지나왔지만
다음번에는 공중그네를 건너뛰어야 하는 날개 없는 비상의 날들
그러므로 봄이면 꽃을 피우는 나뭇가지의 손길은 공양의 자세다
이쯤에서 멈출 수 있기를
나는 폐선로를 따라 걷는 중이다
운행의 멈춤과 부질없음의 영원이 공존하는 길을 감상에 젖은 채
유령 같은 기차가 달려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공포를 떨쳐 내지 못한 채
나는 한없이 걸었고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먼 미래까지 가닿아 있다는 이론에는 비장한 허무가 깃들어 있다
저 앞에서 나는 또 어떤 쇼를 벌이고 있길래 이 계절을 망치고 있는 걸까
여행을 떠나지 못할 사람
꿈을 이루지 못할 사람
사랑에 실패할 사람
길들여진 짐승처럼 무언가는 조금씩 포기하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
날씨가 추울수록 나는 가까스로 겸허해진다
다음 계절에 꽃이 피지 않아서 오늘 벚나무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
윤의섭
1994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 등단.
시집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