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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기타 Re:몽골기사 vs 유럽기사(나름 한번 예전에 써본 반박글ㅡ.ㅡ;; 이젠 지겹다 진짜;;;)
마네 추천 0 조회 1,073 15.12.05 23:11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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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12.05 23:35

    첫댓글 이이제기
    1. 이 두전투는 동유럽의 폴란드,헝가리를 상대로한 전투입니다....헝가리는 당시 신흥강국이 맞습니다만 헝가리의 급격한 팽창을 허용하게한 헝가리 군사력의 기둥인 쿠만인은 벨라4세가 이미 제거해버린지 오래였죠
    -> 그 당시 헝가리는 잘나가던 시절이 아닙니다. 벨라 4세의 아버지인 안드라시 2세가 실지왕 존처럼은 아니지만 잦은 외정,사치로 인해 벨라3세가 일으킨 중흥기를 끝내는 선이 아니라 왕권을 약화시키고 고위귀족의 신장을
    인정한 어러니 블러(이는 오-헝 연합까지 이어지는 헝가리 귀족이 오-헝 이전까지 기득권을 유지하는.. 동유럽 귀족 막장의 투톱을 이룹니다.)

  • 15.12.05 23:42

    로 인해 왕권 강화겸 친위육성 일환으로 몽골침입전엔 웬수같던 쿠만족 회유해서 아들을 쿠만족 칸 딸과 혼인시킬 정도였고.. 몽골침입당시 국가비상사태라고하나 고위귀족들이 몸사리느라... 동원병력이 적었을 것(이건 어디까지나 제 몽상이지만..)입니다만 다행히 모하치패전같은 경우를 피한거죠.

  • 작성자 15.12.05 23:45

    @데미르 카라한 데미르 카라한님 지적이 맞습니다 제가 표현을 신흥강국이라고 표현한게 어떻게보면 헝가리를 제법 건실한국가로 표기를 해 버린격이 되었네요 ㅎㅎ 다만 당시 헝가리가 벨라 4세에 치세아래 영토확장이 활발한 시기로 제가 알고 있어서 이런 표현을 사용해 보았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15.12.05 23:53

    @마네 사실 고위귀족이 덜 날뛰거나 암군인 안드라시 2세만 아녔다면.. 유목민 전술 잘 아는 헝가리의 피해가 크지 않았을겁니다. 폴란드는 뭐 당시 나라가 쪼개져 있어 모르겠고.. 오히려 몽골의 서유럽 침입했다면.. 신롬 경우 독일내 왕권 복구할 마지막 기회(지만 뼛속같이 시칠리인인 프리드리히2세라 안될거야..)였을거고.. 프랑스도 승패여부떠나 왕권강화가 더 촉진됐을것 같습니다. 대신 정복보다 약탈이나 전초전으로 간다면 성을 지나치고 주변지만 약탈할테니 심각한 피해를 입겠죠?

  • 작성자 15.12.06 00:03

    @데미르 카라한 동감합니다 무엇보다 벨라 4세가 모히전투에서 몽골군과 격돌할당시의 환경이 상당히 안좋은 상황이었는데 그만한 선전을 한걸보면 벨라 4세도 범상한 왕이 아니라고 생각되더군요 진짜 딴거없이 쿠만인만 가세했었어도 몰랐을것 같습니다 근데 사실 약탈이나 전초전으로 갔어도 얼마 못갔을것 같습니다;;;

  • 15.12.05 23:49

    2. 전성기 이슬람의 경쾌한 기병역시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를 마르텔이 투르-푸와티에 전투에서 막아낸전력이 있습니다.
    -> 동로마를 파상공세한거와는 좀 비교하기가...(뭐 서고트왕국의 유산이 싸그리 말소된거 보면....인정하긴 합니다만..) 당시 프랑크는 보병-기병 과도기라 비교우위하기 힘듭니다.
    3. 또한 잉글랜드의 앵글로 색슨족은 강력한 경기병을 보유한 켈트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끝내 켈트족을 웨일스,스코틀랜드등 산지로 몰아냅니
    -> 당시 호빌라경우 등자도 없던 시기라 강력한 경기병이라고 보긴 좀 힘들지 않나 싶네요...

  • 작성자 15.12.05 23:57

    투르 푸와티에전투는 공세의 정도는 분명히 틀리나 이슬람의 서유럽공세를 좌절시킨 중요한 전투이기에 넣었으며 보병이 기병을 상대하여 승리한 전투인지라 넣었습니다. 그리고 등자가 없던 시기라는 지적엔 공감하나 "당시 기준"으로 봤을때 앵글로 색슨족 기준에선 분명 강력한 상대였을것이었기에 수식어를 집어넣어 봤습니다 그리고 중요한건 유럽의 대기병전 능력도 절대 약한 수준이 아니며 유럽도 여러종류의 기병대를 상대한 경험이 풍부한 지역이라고 설명하고 싶었는데 제가 필력이 딸리다 보니 전달이 좀 미흡했나 보네요

  • 15.12.05 23:59

    4.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시 서유럽으로 바투가 돌진할경우 유력한 첫번째 매치업상대가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손꼽히는 황제 무려 "프리드리히 2세" 되시겠습니다 ㅋㅋ
    ->안타깝게도 이 황제는 독일내 왕권을 재확립시키려던 아들 하인리히를 제후들의 항의로 인해 감옥에 가둬 죽게할 정도로 작센-살리조의 독일 대공령을 쥐고 이탈리아에게 세금받고 교회를 거뭐진 정책이 아닌.. 슈바벤-부르군트-북이탈리아를 거뭐지고 제후를 다스린 할아버지보다 더한..
    중앙 집권된 이탈리아 위주의 제국(뭐 오토 2-3세의 이상향과 얼추 비슷해보입니다...)을 바라던 인간이라... 오히려 제후들이나 교황을 통해 이득을 볼려했을 것 같은.. '근대적'인

  • 15.12.06 00:04

    5. 명목상 사령관은 바투가 맞는데.. 실질적인건 수부타이인건 다들 아실겁니다. 루이9세의 치세경우 중앙집권을 완성시켰다고 보기힘든게.. 필립2세가 광대한 영토를 얻었지만.. 루이8세부터 고추밭을 만들어서.... 귀족가문을 내치고 분파가문으로 채우는 식으로 했지만.. 카페왕조시기까지는 별 문제는 없었지만 촌수가 멀어지고.. 후사가 끊어지는 후나.. 왕위계승에 거리낌이 없다보니 훗날 오히려 반왕파로 돌아서는 지라.. 루이 14세 치세에 이르러 된거죠.

  • 작성자 15.12.06 00:11

    @데미르 카라한 4.아무리 시칠리아-이탈리아를 중요시 여겼다지만 당장 빈이 위협당하고 독일내부까지 분탕쳐놓는 꼴까지 가만둘 황제는 아니라고 생각이 되네요 어떤방식으로든 바투군단을 상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5.옙 카라한님 말씀이 맞네요 루이 9세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 중앙 집권체제를 완성했다기보단 왕정집권의 기틀을닦았다? 이정도가 적당해 보이는거 같네요 이부분은 제가 과대설명을 한것 같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15.12.06 00:09

    6. 1284~85년에 걸친 킵차크한국의 노가이칸의 대공세를 막아내는데 성공합니다
    -> 이시기는 잡음이 없던건 아니지만 일치단결하던 40년전과 달리 몽골제국 해체로 따로가던 시절이고 노가이도 칸이 아니라 칸을 조종하는 막후 실력자였죠. 헝가리가 방어잘한것도 크지만 과거같은 포스가 나오기 힘듭니다. 대신 불가리아는 탈탈 털어서 재미를 봅니다.

  • 작성자 15.12.06 00:13

    몽골찬양이 심각한 정도여서 후기 몽골이 세운 킵차크 칸국의 유럽정벌 사례를 든겁니다 몽골이 그리 강하면 상황따윈 씹어드시고 유럽따위 털어드셔야 맞는건데 실제론 그정도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언급했습니다

  • 작성자 15.12.06 00:18

    데미르 카라한님의 지적을 참고하여 약간(?) 글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데미르 카라한님 지적 감사드립니다

  • 15.12.06 01:46

    뭐, 따지고 보면 아인잘루트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 15.12.06 02:41

    1. 모히 전투에서 몽골 군대의 피해는 사실 바투의 전략적 실책이 주 원인이었습니다. 본래 수베에데이의 계획은 부대를 5개로 나누어 동시다발적으로 강을 도하, 여러 방향에서 헝가리 군대를 단박에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투는 지나치게 빠르게 자신의 군대를 진군시키는 바람에 피해가 컸구요. 1241년 여름 헝가리에서 이뤄진 대규모 집회에서, 수베에데이는 바투의 성급한 진군으로 피해가 컸다고 설명해주었고, 바투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습니다.

  • 15.12.06 02:43

    2. 헝가리 군대의 서유럽화...랄까, 요새 증축 및 건설은 900년대 이후부터 진행되던 겁니다. 이유는 카롤링거 제국의 약탈 원정이 너무 매서워서(...) 사실 헝가리 대평원이 크기가 작아, 막상 기병은 1만 5천 가량 정도 유지가 한계라 훈이든 아바르든 머저르든 간에, 이주 초기를 제외하면 그다지 기병 위주의 군대를 운용하지 못했습니다.(때문에 몽골 군대의 퇴각 이후 헝가리 평원의 지력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 바람에, 이후 헝가리 왕국 상황이 더 개판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몽골 병력은 최소 5만 이상이 헝가리로 침입했으며, 한해 가량 보내고 퇴각했습니다)

  • 15.12.06 02:42

    3. 몽골의 헝가리 원정 목적이 정복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 원정 목적은 킵차크 초원 원정 이후 헝가리 방면으로 도주한 킵차크-쿠만 유목민들을 추격하는 것이었습니다. 헝가리 왕에게 몽골 군대가 보낸 서신에서 보이지요. 그걸 증명하듯, 몽골 군대는 헝가리에서 공성전을 단 한번도 수행하지 않고 벨러 4세의 추격에만 집중합니다.

  • 15.12.06 02:52

    4. 몽골이 유럽 정복에 나섰다면, 이란 방면이나 중국 방면 정복과 같은 형태로, 도시 정복 > 그 인구 대부분을 징발하여 주변 도시 공략 > 반복 의 형태였을거라 생각합니다. 몽골기병 빠는 사람들이든 까는 사람들이든 사실 이게 몽골 정복의 핵심인데 다들 이생각은 안하시는듯.

  • 15.12.06 15:06

    몽골이 유럽정복을 시도했다면 몽골의 발목을 제일 잡는 건 보급이죠. 본문에도 적으신 내용이지만 서유럽의 요새들은 몽골 입장에서도 그리 만만하게 볼만한 존재들이 아니었고, 더불어 상당히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었죠. 즉, 회전 몇번 잘했다고 파죽지세로 밀어버린다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니 전쟁은 장기화의 양상을 띄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가장 큰 난제는 보급이죠.
    계산하기 쉽게 모든 식량을 곡물로 충당한다고 가정하고 대충 세보면 3~4만의 병력을 먹히는 데 하루에"만" 대략 30톤의 곡물이 소요됩니다.

  • 15.12.06 15:32

    더구나 이 계산은 인간보다 몇배는 더 먹는 말의 소모분은 아예 뺀 값이죠. 예전에 카페에 어떤 분이 말도 곡물을 먹일 수 있으므로 목초지의 부족을 이유로 몽골의 유럽 원정이 실패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라고 하셨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말에게 곡물을 먹일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아니 먹여야 합니다. 소와는 달리 말은 되새김질을 못하는지라 건초만 먹여서는 제대로 열량을 공급해주기 어렵거든요.
    문제는 기병의 특성상 말이 머릿수만 따져도 최소 두 배 이상은 많은데다가, 말 한 마리가 사람보다 몇배는 더 먹는다는 것이죠. 말의 운동량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체중의 2~3%를 주는 게 통상이라더군요.

  • 15.12.06 15:34

    몽골군의 군마 사이즈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대략 제주 조랑말을 기준으로 잡아봤을 때, 말 한마리당 얼추 300kg 정도이니 필요한 사료의 양은 대략잡아 7kg 정도 됩니다. 그리고 기병이 3만이면 말은 적어도 그 2,3배는 데리고 다니는 것이 통상이니 이 말들에게 곡물을 먹이려면 어림잡아도 500~600톤 정도가 필요하군요. 곡물과 건초의 비율이 1:1이라 하더라도 2~300톤 가량입니다. 아, 물론 하루에 말입니다. 유럽의 요새들을 순조롭게 공략한다고 하더라도 이걸 몇 개월 아니 몇 년 이상, 원활하게 공급해줘야 합니다. 더구나 윗분이 말씀하신대로 공성을 위해서 추가로 병력을 징발한다면 소요량은 더더욱 늘어나겠죠.

  • 15.12.06 19:59

    @우주존엄깻잎파닭 갑자기 뜬금없이 무다구치 렌야의 명언이 떠오르네요.."식량이 사방에 널려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풀을 뜯어 먹으면서 전진하면 된다!" ㅋㅋㅋ 보급따위 알게 뭐야 일단 전진!! ....... 으앙쥬금 ㅋ 몽골 장수들이 렌야만큼 멍청하진 않았을테니..ㅎㅎ

  • 15.12.06 22:15

    @Caligula 멍청하진 않더라도 기술적인 한계로 선택지는 더 부족하죠 ㄲㄲ
    당시 몽골이 접수한 땅 중 가장 비옥한 곳이 우크라이나 정도일텐데, 현재야 우크라이나가 연간 밀 생산량이 2000만톤 가량 됩니다마는 이는 현대와서 농업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늘어난 수치죠.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1950년대에서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쌀 생산량이 4배 가량 늘었거든요;; 후하게 쳐줘서 지금의 1/4라고 해도 우크라이나의 농민들은 수확량의 절반 가량을 기병 3만 먹이는데 바쳐야 합니다 ㅜㅜ

  • 15.12.07 02:39

    @우주존엄깻잎파닭 몽골 장수들이 렌야만큼 멍청하진 않았을테니 만약 손쉽게 폴란드-헝가리 군을 격파했다고 하더라도 보급때문에 서유럽으로 깊숙히 들어가진 않았을 거란 뜻이었요 ㅎㅎ

  • 15.12.07 09:55

    @Caligula 넹, 저 역시 몽골 지휘부가 제정신이라면 아무리 원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어도 그정도 선에서 멈췄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 16.01.17 10:16

    근데 폴란드는 당시에 공국시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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