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산리 농사
시월이 중순에 드는 둘째 금요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전날 동선을 글로 남기고 약차를 끓여 놓았다. 어제 펼쳐 읽던 조용헌의 서책 일부를 읽다가 접어두었다.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해가 짧아져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에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 창원역에서 내렸다. 대산 유등 강가로 가는 2번 마을버스 첫차를 탔다.
버스로 이동 중 휴대폰 뉴스 검색으로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난날 후보에 오른 고은은 성 추문으로 시들해졌고 이문열이나 황석영도 제치고 조정래도 아니었다. 여성으로, 아직도 앞날 창창한 오십대 중견 작가 한강이 주인공이었다. 5·18과 4·3의 아픔을 문학적 서사로 보듬은 성과다. 우리나라 문단에서 커다란 획을 긋고 빛을 낸 일이다.
내가 젊은 날 밀양에서 교류를 가진 이재금 시인이 있다. 사학 재단 국어 교사로 그의 올곧은 성품이 양반 고을에서 반골로 낙인찍히기도 한 분인데 불치의 병마를 떨치지 못하고 30여 년 전 유명을 달리했다. 지금은 중앙대학과 통합했다만 서라벌예술대학 출신이었다. 이 시인과 동문수학 절친 작가가 한승원으로 가끔 밀양을 다녀갔다. 한승원 딸 한강은 청소년기를 보낼 때였다.
아침 이른 시각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자연학교 등굣길이다. 용강고개를 넘은 동읍 일대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가시거리가 짧았다. 모처럼 탄 2번 마을버스인데 기사가 여성이었다. 1번과는 장등까지는 노선이 겹쳐 엔에이치 아파트에서 상포를 거쳐 가술에서 모산을 지났다. 유등 종점을 앞둔 유청에서 마지막 손님으로 내렸다. 첫차를 탔으니 아침 7시가 조금 지나는 무렵이었다.
마을 안길을 걸어 강둑으로 나갔다. 간밤 일교차가 커진 아침이라 기승을 부리는 안개가 지표면을 따라 낮은 포복으로 번져갔다. 강둑에 일정한 간격으로 식재되어 자라는 벚나무는 낙엽이 져 나목이 되어 있었다. 야트막한 고개에서 모롱이를 돌아가는 곳은 청청한 대숲이 우거지고 갯버들도 무성했다. 둔치에는 물억새와 갈대에서 꽃이 피니 다 자란 곡식에서 이삭이 나온 듯했다.
유청마을에서 강둑을 따라 북부리 동부마을로 향해 걸으니 오른쪽은 강변 둔치고 왼쪽은 농지가 펼쳤다. 아침 안개는 몽환적으로 피어오르면서 짙어졌다가 옅어지길 반복하면서 쉽게 걷힐 기미는 아니었다. 연전 방영된 드라마 배경으로 나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가 선 동부마을을 지났다. 드넓은 둔치 파크골프장에는 아침 이른 시각임에도 동호인들이 운집해 여가를 즐겼다.
대산 문화체육공원에서 플라워랜드로 가니 여름내 물 주기와 김을 매느라 고생한 인부들은 가을이 되어도 할 일이 있는 듯했다. 여남은 명을 헤아리는 부녀들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일과를 시작하려 했다. 꽃밭에서 둑으로 오르니 안개로 둔치 일대 시야는 짧아 강 건너편 수산은 안개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가까운 거리 포플러만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수산대교 근처 모산마을에서 25호 국도 굴다리를 지나 들판으로 나갔다. 추석 전후 머스크멜론을 수확한 비닐하우스는 다른 작물을 심거나 심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여름 농사로 벼를 심어 가꾼 논은 벼들이 익어 곧 수확을 앞둔 황금 들판이었다. 벼농사 수익보다 추수 이후 심을 비닐하우스 당근 농사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듯했다. 들길을 더 걸어 다다기 오이 농장을 지났다.
오이 농장엔 포장에서 처진 오이는 나와 있지 않아 가술까지 걸었다. 마을 도서관에서 한강의 작품집을 뽑아 읽다가 ‘모산리 농사’를 남겼다. “쌀 소비 줄어들어 수지가 안 맞아도 / 여름을 넘기면서 휴경지 둘 수 없어 / 모내어 돌본 벼농사 가을걷이 앞두었다 // 추수가 끝난 들녘 서둘러 땅을 갈아 / 예전엔 수박 농사 근래는 당근 심어 / 농한기 옛말이 되고 겨울철이 더 바쁘다” 24,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