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
- 김미숙
영화를 보면
배우 이름이 까매지더니
친구 이름도 하나씩 까먹고
갈수록 친척 이름도 막막해진다.
기억에서 고유명사 하나씩 지워지고
약속도 깜빡 스케줄도 깜빡
눈앞에 붉은 경고등이 깜빡깜빡
적어야 산다고
그래서 적자생존인가
어느 날부터 습관적으로 메모 하는데
요즘은 메모했다는 걸 깜빡
메모해야 한다는 걸 깜빡
다 잊고 나면
죽는 것도 깜빡할까
그러면 정말 살아남을까
- 『미네르바』 (201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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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나이 때는 주변 인물들의 전화번호를 거의 다 외울 정도로 또랑또랑했건만
인제는 달력이나 비망록을 펼치지 않고서는 식구들 기념일도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적자생존? 적어두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장난이 아닙니다
선배 문우 중에는 일찍부터 자판기 커피잔을 메모장으로 쓴다고 하더군요
저 또한 조금 긴 여정에는 적바림공책을 들고 떠납니다만...
솔직히 적어놓고도 그게 무슨 말인지를 기억해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고유명사가 깜빡 거리면 치매도 따라오는 것인지....
나이를 잊으면 다시 젊어지는 것인지...
오래전에 발표했던 시 한 편을 다시 꺼내든 문우를 생각하자니 웬지 씁쓸해지네요
깜빡 깜빡거리는 집 근처 신호등을 생각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