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는 그 나라의 이념과 특성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각 나라의 국기는 모양‧색상‧문양 등을 통해 상징성을 표방한다. 국제적으로는 1789년 프랑스혁명 때 시민군이 사용한 삼색기를 최초의 국기로 보고 있다. 현재는 모든 나라가 국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세계 각국의 국기 가운데 절반 이상이 천체를 담고 있다. 국기에 별이 들어있는 나라는 미국(50개), 미얀마(14), 그라나다‧베네수엘라(7), 중국(5), 이라크(3), 상투메 프린시페(2. 아프리카 서해안의 섬나라), 베트남‧소련‧이스라엘(1) 등이다. 네팔‧대만‧말라위‧방글라데시‧왜국‧우루과이의 국기에는 태양이 한 개씩 그려져 있다. 브라질 국기에는 남미의 대국답게 광대한 우주를 담은 天球가 그려져 있다. 남반구에 자리잡고 있는 뉴질랜드‧서사모아‧파푸아뉴기니‧호주의 국기에는 남십자성이 그려져 있다.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는 초생달이 들어 있다. 초생달은 이슬람의 상징물로서 장차 보름달로 커진다는 의미에서 발전을 뜻한다. 세계에서 자기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 국민들이 살고 있는 나라인 부탄은 龍의 여의주를 국기에 그려놓았다. 이 여의주는 지구를 상징한다.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의 천문관측대를 국기에 담아 전통적인 문명국임을 자랑하고 있다. 인도와 몽골 국기에는 다양한 천체 상징물을 그려놓았다. 전 세계 국기 가운데 가장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국기는 단연 태극기다. 태극기의 흰 바탕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가운데 태극 문양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네 모서리에 그려져 있는 4괘는 각각 하늘‧땅‧물‧불을 상징하는데, 태극을 중심으로 한 우주만물의 조화를 기원하고 있다.
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매달 줄 안 그는
국기 얘기를 하다 보니 각중에 청마의 시 <깃발>이 떠오른다. 그런데 ‘깃발을 맨 처음 공중에 매달 줄 안 그’는 의외로 뿌리가 깊다. BC 3000년경 수메르人들이 사용하던 도장에는 별자리를 넣은 깃발이 새겨져 있으며, 도교 신도들은 BC 3세기경부터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 깃발을 사용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유물로 확인된 경우가 이 정도고, 실제로 인류가 깃발을 사용한 것은 이보다 훨씬 오래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깃발을 사용하는 의도는 현실적이든 영적이든 하늘의 힘을 빌려 장수와 복락을 누리고자 한 주술적 企圖다. 그 이전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우주에서 날아온 유전자에 의해 탄생했다. 인간이 인식하기 전부터 모든 생명이 탯줄처럼 우주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생명을 우주와 연관시키려는 시도는 점성술을 탄생시켰다. 점성술을 학문화한 최초의 학자는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AD 83~168)다. 그는 알렉산드리아도서관에서 천문학을 연구했는데, 과학적인 연구 대신 옆길로 빠져서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점성술을 집대성하여 「테트라비블로스」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운명뿐만 아니라 외모와 언행까지 모조리 별자리의 영향을 받는다. 현대과학에 비춰보면 택도 없는 소리지만, 오늘날에도 점성술사들은 여전히 「테트라비블로스」에 씌어 있는 방법대로 별점을 봐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점성술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별점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점이다. 故 이병철 회장이 신입사원 면접 때 관상가를 곁에 앉혀두고 조언을 구했던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일화다.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는 많은 천문학적 업적도 남겼다. 인류 최초로 별들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도 그였고, 처음으로 별의 밝기를 측정하여 기록으로 남긴 것도 그였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고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는 공식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행성 운행의 모형을 만들어 별들의 異常 운행을 관측했다. 그러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과 달과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주창하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그의 천동설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뒤 여러 학자들이 경전을 창작할 때 그대로 인용되어 이후 1500년 동안 서구의 천문학 발전을 가로막았다.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결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사람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였다. 성경에서 쪼매만 벗어나는 발언을 해도 가혹한 제재를 받던 중세암흑기, 케플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구를 계속하여 행성이 타원 궤도로 태양을 공전하고 있다는 ‘케플러의 제1법칙’을 비롯하여 천체 운행과 관련된 많은 법칙을 밝혀냈다. 각 천체 간에 중력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처음 예견한 사람도 케플러였다. 중력의 법칙은 케플러 死後인 1687년 아이작 뉴턴에 의해 완성되었다. 케플러는 최초의 공상과학소설인 「꿈」을 발표하기도 했다. 비록 꿈속의 장면이지만, 우주여행객들이 달 표면에 서서 지구가 자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은 상상력의 극치였다. 케플러의 연구는 코페르니쿠스에게 연결되어 지동설의 완성으로 이어졌다.
폴란드 神父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1543년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발표했다. 프톨레마이오스도 코페르니쿠스보다 1300년 앞서 지동설을 만지작거렸지만, 그러자면 지구가 격렬한 회전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걸 느낄 수 없어 확신하지 못했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하자 교회가 발칵 뒤집혔다. 훗날 종교개혁의 선봉에 선 마르틴 루터(1483~1546)조차 코페르니쿠스를 가리켜 ‘벼락출세한 바보 점성술사’라고 깎아내렸다. 논의 끝에 가톨릭은 1616년 코페르니쿠스의 모든 책을 금서목록에 포함시켰다.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지 73년이나 지났고 살 만한 사람은 이미 책을 다 산 뒤였다. 어쨌거나 이 금서령은 1835년까지 유효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