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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좋은 사람들 두레 원문보기 글쓴이: 두레 사무국
<죽림헌 산필(散筆)>은 1980년대 초부터 신문 잡지 등에 썼던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10년 전엔가, 이 원고들을 모아 수필집을 내려고 했다가 인연을 만나지 못해 여태 글창고에 묵혀두었던, 묵은지 같은 글입니다. - 김재일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궁극적으로 인간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복이요,소망이다. 이것은 동서가 다르지 않고,고금이 다르지 않다. 결국 인간은 끊임없이 복을 갈구하는 동물이다. 어휘가 풍기는 뉘앙스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학문도 예술도 종교도 결국 거기에 바탕을 둔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유난히도 복을 갈구해 온 민족이다. 우리 민족만큼 목마르게 복을 갈구해 온 민족이 지상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그것은 잠시만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쉽게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복조리,복떡,복쌈,복주 등에서부터 복주머니,복덕방,복부인에 이르기까지 자고새면 복을 찾아 헤매는 게 일이다.
그 뿐 아니다. 복음(福音)이니 복자(福者)니 해서 종교까지도 복을 내세우는가 하면 사람들 이름에 까지 '복(福)'자를 써서 복된 삶을 기원한다. 또 연말연시에 주고 받는 카드나 연하장 등의 인사말에도 “새해 복 많이..."운운하는 글귀가 빠지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복에 목 말라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그만큼 박복하게 살아온 탓일까-
옛날에 한 박복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잠이 들었다. 꿈에서 제석천을 만나게 되었다.그는 선처를 부탁했다. 그러자,제석천은 말없이 그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그 곳은 세상 사람들의 복주머니를 보관하는 복창고였는데, 크고 작은 복주머니들이 천장에 무수히 매달려 있었다.
"제 복 주머니는 어느 것입니까 ?" 그러자.제석천은 큰 복주머니 사이에 끼어서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주머니를 가리켰다.복 많은 사람의 한달 치도 안되는 복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다니 !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그는 제석천의 옷깃을 잡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자, 제석천은 그가 애통해 하는 것을 보고는 다른 사람의 복주머니를 그에게 잠시만 빌려주겠노라고 했다. 그 복주머니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의 것이므로 주인이 세상에 태어나는 즉시 돌려주어야 한다고 제석천은 그에게 당부를 했다. 남의 복주머니를 받은 그는 삽시간에 부자가 되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렀다. 복주머니의 주인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자,그는 다시 가난뱅이로 몰락하고 말았다.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그는 다시 제석천을 찾아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이거 너무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자,제석천은 말했다.
"자네가 부자로 있을 때 남을 도와주었더라면 다시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네" 이상의 우리 민담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복이란 하늘이 내려주는 공짜 선물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키워가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나무다. 그 나무는 남사랑[利他]을 영양분으로 해서 자라거니와 사랑과 용서 없이는 결국 고사(枯死)하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복이 없다고 한탄하고 박복함을 하늘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정녕 복이 없다는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복이 없다는 것은 그가 복을 짓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설이 아니라,복이 없는 자일 수록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복을 짓는 일이요,복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한 성인은 복을 촛불에다 비유하였다. 나의 촛불을 다른 초에 옮겨 주어도 내 촛불은 꺼지거나 불꽃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주위는 더욱 밝아진다. 인생도 그와 같아서 가난한 자일 수록 남을 도와주어야 하고, 역경에 처해 있을 때일수록 큰사랑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조금도 억지일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뿐,그러나 제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얼굴이 다르고,이름이 다르고,생각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서로 어울어져 믿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가.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찾아드는 요즘이다.
아는 이들로부터 받아두었던 카드며 연하장을 다시 꺼내보며 지난 날들을 생각한다. 그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복을 나는 남에게 충분히 돌려주었는지.... 올해는 복을 받기보다 복을 짓는 한해가 되었으면.
새해엔 복 많이 지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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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명절을 앞두고 김재일 대표님의 글을 잠시 열었습니다. 나누는 기쁨으로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명절 되시길 기원합니다.~
김재일 소장님의 말씀
새해엔 복 많이 지읍시다
네 그러겠습니다
조채희 소장님께서도 명절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 새해엔 복 짓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 글을 '불여사'(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에 옮겨 좀 더 많은 분들이 읽고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