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밤
정갈한 백지 한 장을 앞에 두고 홀로
네게 편지를 쓴다.
그러나
바람이 문풍지를 울리자
터벅터벅 사막을 건너던 낙타의 고삐 줄이
한 순간 뚝 끊어져버리듯
밤바다를 건너던 돛대의 키가 불현듯 꺾여지듯
무심결에
툭,
부러지는 연필심.
그 몽당연필 하나를 들고
흔들리는 등불 앞에서 내 마음
아득하여라.
내 마음 막막하여라.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2025.02.02. -
겨울의 적막한 한밤에 홀로 깨어 편지를 쓰는 시인이 있다. 등불이 어둡다고 했으니 아마도 황촉 불빛, 즉 밀랍으로 만든 초를 켠 정도의 불빛 아래에서 시인은 편지를 쓰고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편지’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서한(書翰)이라고만 볼 것이 아니라 시(詩) 한 편이라고 이해해도 좋겠다.
종이의 흰 빛과 밤의 어둠과 쓸쓸한 고요 사이를 희미하게 비추는 등불은 한껏 외롭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람이 불어오고 느닷없이 연필심이 툭, 부러지고 만다. 바람은 이내 등불의 불빛을 흔들어 놓고, 시인은 아득해진다. 아득하다는 것은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 어찌할 방도가 없이 벌어진 것에서 생겨나는 감정이니, 조짐이나 예고 없이 마치 땅이 꺼지듯 일이 닥쳐 갑작스레 시름에 싸이고 하염없게 된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것일 테다.
‘불현듯’이라는 시어와 ‘무심결’이라는 시어에 눈길을 두게 된다. 불현듯, 무심결에 일어나는, 뜻밖의 일은 삶에 끼어들고 뛰어들어 일상적인 것에 대해 이물감과 거리감을 갖게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Friedrich Nietzsche - Eine Sylvesternacht, for violin and piano (1863) / Violin: Sven Meier, Piano: Lauretta Al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