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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을까?
먼저 기독교는 왜 일요일에 예배드리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출발점은 예수가 안식 뒤 첫날, 곧 주간의 첫날에 부활했기 때문이다.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날을 '주의 날(Lord’s Day)'이라 불렀고, 그 부활을 기념하는 모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성경의 신약 속 단서들도 이 흐름을 비춘다. 사도행전은 “주간의 첫날에” 모여 떡을 떼었다고 기록하고, 고린도전서는 그날에 맞추어 연보를 준비하라고 안내한다. 이는 십계명의 안식일이 곧장 일요일로 “대체”되었다기보다, 부활을 기념하는 공동체 예배의 새로운 관행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물론, 안식교는 이는 관행일 뿐 성경을 통해 증언된 사실은 없다고 본다. 즉 십계명을 통해 토요일이 안식일이라는 건 명백한 신의 명령이지만, 주의 날이라는 개념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물론, 1~2세기 문헌은 이 관행을 더욱 분명히 보여 준다. 『디다케』와 초기 기독교학자들은 ‘주의 날’에 모여 성경을 낭독하고 기도하며 성만찬을 나누었다고 증언한다. 특히 유스티노(저스틴) 순교자는 왜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에 모이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창조의 첫날”이라는 신학적 이유를 직접 적어 두었다. 당시 유대 전통을 지닌 신자들은 토요일 회당 관행을 어느 정도 이어 가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 고유의 주일 성찬 모임을 가졌다.
즉, 한동안은 토요일과 일요일의 이중 관행이 공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스도인 정체성을 표시하는 예배는 점차 주일 중심으로 수렴되었다. 핵심은 구약성서, 유대인의 전통에서 율법의 ‘대체’가 아니라, 부활 중심 예배의 ‘형성’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4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관행은 사회·법 제도와 결합해 굳어진다. 특히, 321년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의 칙령은 일요일(태양의 날)에 공적 휴식을 명하여 주일의 사회적 지위를 강화했다. 지역 공의회는 ‘유대화 금지’ 조항을 통해 토요일 안식일 관행을 억제하고 주일 집회를 권고했다. 이때부터 주일 중심 예배가 교회 전반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즉, 교회가 먼저 부활의 날 전승을 따라 주일 예배를 형성했고, 제국의 제도화가 그것을 넓고 단단하게 굳혀 준 구조이다.
오늘의 기독교 전통에서 로마 천주교회, 그리스/러시아 정교회, 그리고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받은 개신교는 일요일에 드리는 주일 예배를 표준으로 삼는다. 다만 십계명 제4계명(안식일)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해석은 교단이나 교회별 입장 차이가 있다. 반면 안식교는 십계명과 창조 기사를 근거로 토요일을 계속 준수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부활·재림을 신앙의 중심으로 고백한다.
안식교의 입장에서는 기독교의 처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성경에는 일요일에 예배드려야 한다는 내용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명시화되어 있지 않고 관행으로 이어져 온 걸 로마라는 거대 제국에 의해 시작된 주일(일요일) 예배 전통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부분이다.
설명이 길었다. 정리하자면, 안식교는 이러한 기독교와는 다른 측면이 있고, 안상홍은 안식교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일본 생활을 마무리한 이듬해인 1947년, 안식교에 입교했고, 다음 해인 1948년에 침례를 받았다. 이후 성경 해석과 안식일과 유대인의 절기 등을 둘러싼 견해 차이로 1962년 3월 안식교에서 제명 당했다. 이후, 1964년 부산 해운대 일대에서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라는 이름의 종교단체를 설립하여 독자적인 집회를 시작한다.
내부 신격화
안상홍에겐 흔히 알려진 사이비 종교단체의 교주들과는 다른 점이 존재한다. 문선명, 한학자, 이만희, 정명석 등과 같이 자신을 재림 예수, 구주 혹은 메시아로 칭했던 것과 달리, 안상홍은 자신을 신격화하지 않았다. 공개된 기록만 놓고 보면, 생전의 안상홍은 대중 앞에서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직접 선포하는 유형의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의 설교와 저술은 주로 초대교회 의례를 회복하자는 메시지, 곧 안식일과 유월절 준수 같은 신앙 실천을 강조하는 쪽에 가까웠다. 신격화에 준하는 “안상홍은 재림주, 그리스도이다”라는 규정은 그의 가르침과 상징을 둘러싼 안상홍 증인회 내부 해석이 시간이 지나 축적되고, 사후에 교단 교리로 정식화되는 과정에서 강도가 높아졌다.
안상홍 증인회 내부에서 신격화가 성립해 간 핵심 고리는 두 가지다. 첫째는 ‘예언 산술’의 틀이다. 안상홍 증인회는 다윗이 30세에 기름 부음을 받고 40년 통치했다는 구약의 도식을 예수에게 적용한다. 예수의 공생애는 3년이므로 남은 37년이 재림의 표준이 된다는 전개가 가능해진다. 즉, 안상홍이 30세에 침례받은 이후 1985년 사망까지 37년간 교회 사역을 한 것이 예언의 성취라고 해석한다. 예수의 3년, 안상홍의 37년이 다윗의 40년과 연계된다는 것이다.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협회 차원에서 그렇다고 하니 일단 넘어간다.
둘째는 ‘의례 복귀’의 표징이라고 알려진다. 구약에 있는 안식일과 유월절을 포함한 유대의 절기를 준수하는 것이 “잃어버린 진리를 되찾았다”라는 정체성과 연결이 되는데 이에 대한 구심점 역할을 안상홍이 했다. 즉, 의례의 실천 자체가 지도자의 고유성(유일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안식일은 그렇다 쳐도, 유월절이나 절기는 뭔가? 일단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사건,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봄 절기이다. 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과 그 중 마지막 재앙이 피의 표식이 있는 집을 “넘어갔다”라는 이야기에서 이름이 나왔다. 절기라는 말은 유월절을 포함해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등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해마다 돌아오는 종교적 기념과 예식을 통칭한다. 각 절기는 해방, 속죄, 광야의 기억, 수확 같은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안상홍은 초대 그리스도인의 본래 모습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역사 속에서 잊히거나 변질된 의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안식일과 유월절이다. 성경이 분명히 가르친 날과 예식이 있는데, 교회가 세월 속에서 이를 놓쳤고 그것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잃어버린 진리를 회복하는 행동이라고 본 것이다.
문제는 정작 유월절과 각 절기를 직접 경험했던 이들의 후손인 유대인들조차도 유월절이나 절기에 별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왜 그들도 지키지 않는 절기를 아무 관계도 없는 한국인들이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옮김)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