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6951113780
< 자르모 유적 >
자르모 유적은 기원전 7100년~4950년경까지 번성했던
신석기 초기 영구 정착지 유적입니다.
이 유적은 1940년 이라크 유물 관리국에 의해
발견 되었고
시카고 대한 연구팀에 의해 1948년도부터
1955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본격적인 탐사와 발굴이 진행 되었습니다.
< 자르모 유적의 위치 >
자르모 유적의 위치는 자그로스 산맥의 동쪽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해발 약 800m의 지대이며
유적의 크기는 12000m2~16000m2 가량 됩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의 크기를
보아 전성기 당시의 인구가
150~200명 정도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유적의 주택 모형 >
이 유적의 특징은 돌과 흙으로 벽을 만들어
집을 짓고 집안에 굴뚝이 있는 화덕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 자르모 화덕 자리 >
< 아랫사진 굴뚝 구멍이 보이는 화덕 >
이 화덕의 존재 덕분에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야생의 곡물들을 심어서
본격적인 농업을 시작했다는
증거도 나왔습니다.
< 맨위 두 줄 보리, 아래 왼쪽 야생 완두콩, 아래 오른쪽 피스타치오 >
유적 근처에는 농사를 지었던 자리와
그 곡식들이 상당 수 발견 되었고
그 중에는 현재 맥주의 주요 재료인
두 줄 보리의 조상이 이 곳에서 본격적으로
키워 졌던 증거들이 다수 발견 되었습니다.
그 외 야생 완두콩과 야생 밀 피스타치오 등등도
키워 졌던 증거가 발견 되었습니다.
< 자르모 유적 발굴 당시 사진들 >
이 뿐만 아니라 이 유적에서는
근처의 야생동물들을 가축화 했다는
증거도 나왔는데
양, 염소, 개 등을 키웠다는 증거가 나왔고
특히 가장 최근의 지층에서는
돼지를 키웠던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도 나왔습니다.
< 자르모의 토기 >
< 자르모의 토기 >
또 신석기 유적 답게
제법 많은 토기들이 출토 되었는데
그중 가장 오래된 토기는
기원전 7000년경에
제작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자르모의 장신구들 >
< 자르모의 장신구2 >
토기 뿐만 아니라
여러 장신구들도 출토 되었는데
몇몇 장신구들은 근처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들로 만들어져
있어서
약 200km이상 떨어진 지역들과
어떤 무역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 자르모에서 발견된 흑요석 칼날 >
이곳의 상당한 기물 제작 수준은
토기나 장신구 뿐만 아니라
무기에서도 솜씨를 보여주는데
흑요석을 연마해서 만든
칼날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용된 무기는 창으로 추정되는데
칼날 아랫부분과 긴 장대를 묶어서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자르모 초기의 여인상 >
< 자르모 여인상 >
< 위의 여인상의 스케치 >
자르모 유적 또한
동시대의 다른 신석기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다산과 풍요를 기원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상들이 발굴 되었습니다.
재질은 대체적으로 점토로 만들어 졌으며
여인들의 몸매는 다른 유적들과 비슷하게
상당히 과장되어 있었습니다.
< 자르모 유적1 >
< 자르모 유적 2 >
1950년대에 첫 발굴되어 연구 되기 시작한
이 유적은 1958년에 새로운 탐사를 시작하려다가
당시 지역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무산되었습니다
그 이후 계속적으로 연구를 이어 나갔지만
역내 정치와 치안의 불안정으로 인해
제한적인 연구를 했습니다.
2012년부터는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연구팀이
새로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일본의 연구팀도 이 곳에서
발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저정도의 문화수준을 200명 사는 집단이 이루었다는게 놀라운데 사실 더큰 집단이 있었고 저긴 그 집단에 속했던 시골마을중 하나인거 아님?
실제 근처에 그 이후에 생겨난 정착지들의 사이즈가 더 크긴 합니다
이후 근처에 다른 마을들도 꽤 생겼는데 저 지역이 보리가 원산지였던 곳이고 그럭저럭 인구부양력이 되는 곳이라 2100년가량 지속된거 같습니다
첫댓글 와 7000년전;; 진짜 신기하다 가서 보고싶어..
와 진짜 신기해... 저때 무역도 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