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에 무엇을 담을랴면
그 항아리 속에 있던 먼저 담어져 있던 것을 다 비워버리고 그리고 그 냄새가 나며는 그것을 몇 번을 씻고 물을
담궈서 울구고 해서 깨끗이 다 해서 마른 수건으로
다 닦고 그래가지고 거기다가 어떤 새로운 것을 담어야
그 새로 담은 물견이라든지 음식이 변질이 되지 아니하고 맛이 고대로 유지가 되는 것처럼,
방부를 들이고 정진을 헐라면
그동안에 다른 선방에서 공부를 헌, 여러 철을 했건
한 철을 했건 다른 선방에서 보고 듣고 알고 헌 것
다 깨끗이 비워버려야 하고,
또 다른 강원에서 그동안에 보고 배우고 느끼고 헌 것이 있다면 그것도 완전히 다 버려야 하고,
세속 학교에서 뭘 배우고 듣고 알고 헌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깨끗이 다 비워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일단 선원에 방부를 들이며는
그러헌 백지상태가 되아가지고 선원 규칙과 법도와
전통에 따르면서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행(修行)이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에,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마음에 날카로운 모서리를 갖다가 둥글게 맨드는
것입니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제도허는 것이
우리의 근본목적인데,
일체중생을 제도헐랴며는
일체중생을 나, 내 품안에 안을 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품안에 안을 수 없어가지고 어떻게 그 중생을 제도를 하겠습니까?
유치원선생이
유치원 그 어린이들을 잘 가리킬라며는
그 유치원 어린이 전체를 그 선생님이 다 그 마음
가슴으로 다 이렇게 포섭(包攝)을 헐 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는 특별히 이뻐하고 또 어느 어린이는 미워서
아주 그냥 못 견디고 그러헌 생각이 있어가지고서는
훌륭한 유치원선생님이 될 수가 없는 것처럼,
일체중생을 제도헐랴며는
일체중생은
낱낱이 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 업이 있어서 한결같지를 않습니다.
마치 요리사가 훌륭한 요리사가 될라면
다섯 가지 맛을 다 다룰 줄을 알어야 하는 것입니다.
짜고 ‧ 맵고 ‧ 시고 ‧ 달고 헌 그 여러 가지 종류에
조미료를 그 요리의 품목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구사를
해서 잘 맞춰야 훌륭한 요리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를 닦아서 자성을 깨달라서
자기의 생사 하나만 끊고서 편안허게 세세생생에
그러고만 말랴고 허는 것은 소승과(小乘果)에,
소승에 지내지 못하고,
참으로 일체중생을 제도헐랴며는
대승심(大乘心)을 발(發)해야 하는데
그럴랴며는 어느 회상에 가든지 그 회상에 법도에
적응허면서 원만허게 다 소화를 하고
한 철을 아무 잡음이 없이 대중의 모범이 되도록 그렇게 최선을 다허면서 정진을 허면,
또 그 다음에 해제(解制)를 허고는 또 다른 회상에 가며는 또 그 회상에 가서도 자기 마음에 맞건 안 맞건
그 회상의 법도에 적응허면서 정말 대중의 모범이 되도록 이렇게 딱 허고,
그 회상에 안 맞으며는 또 다른 데로 떠날지언정
그 회상에 몸담아 있는 동안에는
그 회상의 법도에 적응하고 적응, 억지로 적응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기쁨으로 그것을 소화를 허면서
잘 정진을 하고 딱 해제를 허면 걸망을 싸 짊어지고 ‘
참 한 철 참 내가 뜻 깊게 한 철을 잘 지냈다.’
이러헌 참 보람을 느끼면서 떠나는 그것이 얼마나 참
거룩하고 훌륭한 수행자(修行者)의 한 모습이냐
그 말이여.
그러헌 것 하나를 못허는 그러헌 사람이
어찌 그것이 수행자라 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자기가 안 믿는 선지식의 법문이 나온다고 해서
그 얼굴빛에 우르락 푸르락 불평을 터트리면서
불쑥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버리고.
세상에 무슨 종자(種子)가,
그 사람은 자기의 은사만을 욕먹게 헐 뿐만이 아니고
자기가 믿는 선지식의 얼굴에다 똥칠을 허는 것이며
자기의 부모까지 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한 행동 잘못해가지고
부모 욕 얻어 맥히고 은사스님 욕 얻어 먹히고
수계스님 욕 얻어 먹히고 자기가 믿는 선지식까지
욕을 얻어 맥히고 심지어는 부처님까지 욕을 얻어 먹히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