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포츠피플이라는 사이트에 어느 기자가 쓴 글인데여..
길지만 꼭 끝까지 읽어주세여.!!! 감동이 올겁니다!!!!
수 만이 넘는 관중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선수가 페널티킥을 차기 위해 서 있었다.
얼굴 가득 긴장의 빛이 역력했던 그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왼발로 킥을 하였지만 공은 수를 먼저 읽은 상대방 골키퍼의 선방에 가로막혔고, 골키퍼의 손을 맞고 나온 볼을 다시 차기 위해 그의 동료 선수가 달려 들었지만, 결국 상대편 수비수의 발이 한 발 앞섰다.
그것으로 인해 그는 4700만 국민의 눈을 순간적으로 질끈 감아버리게 만들어 버린,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선수가 되고 말았다.
이을용. 예전의 그 어느 선수처럼 찰나에 비운을 끌어안게 된 선수.
이을용은 축구 선수로서는 좋은 신체 조건을 타고 나지 못했다. 키도 작고 체격도 외소할 뿐더러 스피드 또한 그리 빠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신체조건 중 유리한 점이라곤 왼발잡이라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축구인생 또한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못했던 그에게 신은 니폼니시와 히딩크라는, 외국인 감독들과의 인연을 축복으로 안겨 주었다.
이을용 선수는 작지만 소리없이 강한 선수이다. 부천 팀에서 현재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으면서 키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다. 니폼니시 감독이 다져놓은 미드필더의 세련된 플레이의 중심엔 항상 그가 있었다. 윤정환이 마무리 패스를 하는 선수라면, 이을용은 좌우로 또는 종횡으로 폭 넓게 활동하면서, 윤정환이 해내지 못하는 미드필더의 기동력을 확보해내는 한편 뛰어난 수비력으로 팀의 살림꾼 노릇을 톡톡히 해내는 선수이다.
부천 팀의 팬이라면 그가 얼마나 많은 패스를 성공시키고, 스루패스와 결정적인 킬(kill) 패스를 넣어주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을용 선수는 화려해 보이지 않지만 뛰어난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볼트래핑, 유연한 볼 컨트롤과 좁은 공간에서의 볼키핑력은 케이리그 최고 수준에 올라있고, 자신의 발에 볼을 가장 가깝게 붙여서 드리블 하는 능력은 우리나라 선수중 가장 뛰어난 편이다. 이러한 드리블 능력은 현란한 페인팅 동작이 없이 자신의 중심이 이동하는 대로 볼을 옮겨다 놓을 수 있게 만들고, 이를 통해 그는 한두명 쯤은 쉽게 돌파하곤 한다.
미국전에서도 그의 드리블을 통해 프리킥 찬스를 만들었으며, 이 찬스에서 정확한 킥으로 안정환의 골을 어시스트 하였다.
이을용 선수는 히딩크 감독이 강조하는 수비의 안정화에 있어서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상대의 왼쪽 돌파는 어김없이 막아내고 있으며, 김태영과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수비 하모니는 작년까지만 해도 가장 취약한 왼쪽 수비라인을 가장 튼튼한 수비라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히딩크 감독의 요구에 따라 상대 선수에 대한 압박과 공간 프레싱을 통해 블럭수비를 완성하고 있을 뿐아니라 공격에 대한 지원을 통해 두 게임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리고 있는 선수가 바로 그이다.
이을용은 일대일 수비의 일인자로 우뚝 서 있으며, 상대선수의 볼은 어김없이 그의 볼로 소유권이 바뀐다.
만약 이을용 선수가 우리 팀이 대적해야할 상대 선수라면 분명 가장 골치아픈 선수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을용 선수의 가치는 단지 수비에서의 뛰어난 활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예리한 침투패스를 할 줄 알며 정확도와 로케이션이 좋은 킥력을 가지고 있어서 코너킥이나 프리킥 찬스에서 상대방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 이 점을 높이 산 히딩크 감독은 제 2번 페널티 키커로 그를 낙점한 것이다.
이을용은 코너 부근 까지 깊숙히 침투해 들어 가지는 않지만, 그의 크로스패스는 국제적 흐름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 나타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크로스 패스의 변화이다.
과거까지만 해도 엔드라인 근처에서 횡으로 올라가는 크로스 패스가 주로 시도 되었다면 이번 월드컵에서는 깊숙한 침투보다는 하프라인과 엔드라인 중간 지점에서 사이드 어태커에 의한 대각선 전진 크로스가 많이 시도되고 있다.
이는 포백라인의 강화와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 패스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면서 생긴 변화로, 순간적으로 수비수의 간격을 이용하는 빠른 중앙침투와 이를 헤딩슛으로 연결하는 방법이 더 득점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의 첫번째 골도 비록 헤딩슛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방법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고, 이을용 선수의 전술적 의미도 이런 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미국과의 경기에서 전반전이 끝나고 나오면서 이을용 선수는 황선홍 선수에게 "형 국민들이 나를 죽이겠지?"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페널티킥 실수가 얼마나 큰 죄이길래 그러한 멍에를 짊어져야 하는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히딩크 감독도 100센트 그를 지지한다고 하면서 축구란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경기중 실수 안하는 선수는 없고 이탈리아의 바조도 네덜란드의 데부르도 스페인의 라울도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실수하였던 적이 있음을 볼때 페널티킥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MBC 방송국은 미국과의 경기 다음날 선수들이 찬스를 놓치는 장면만을 편집하여 계속해서 되풀이 보여주면서 실수한 선수들을 죄인으로 몰고 갔다.
과연 거대 언론이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 대한 대접이 그것 뿐인가?
축구는 감동의 스포츠다. 48년만에 우리 축구에 맺힌 한을 풀었고, 그것을 통해 감동 받았다. 4700만 국민이 모두 하나가 되어 열광했고 붉은 물결은 한반도를 몰아쳤다.
그 감격은 우리 국민이라면 모두가 느꼈을 것이고 우리는 승리를 통해 전율하였다.
4년 전 벨기에와의 피흘리는 전투를 통해 우리는 감동했었고, 그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축구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은 경기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나이지리아의 웨스트 선수는 조국의 가난한 어린이를 위해 축구화 사주기 운동에 발벗고 나서 그들의 꿈을 키워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플레이 메이커 오코차는 28살의 젊은 나이로 후배를 위해 대표팀 은퇴를 한다고 한다.
또한 덴마크 선수들은 SOS어린이 마을을 후원하며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자 앞장서고 있다. 대구의 보육시설인 SOS 어린이 마을은 덴마크 선수를 찾아가 그들과 훈련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으며, 선수들은 160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모금하였다고 한다.
승리의 순간 뿐 아니라 패배의 아픔까지도 감동을 준다.
지단의 고개숙인 뒷 모습에서 바티스투타와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눈물에도 같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언론은 이러한 감동을 전달해야할 의무가 있으며 선수 죽이기에 앞장 설 것이 아니라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 주어야 한다.
찬스를 놓친 설기현 선수의 표정이 굳어 갈때 그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며 용기를 붇어주는 황선홍 선수의 모습을 편집하여 집중보도하여 진정한 감동을 전해주어야만 했다.
스포츠 투데이는 홈런왕 유상철을 내세우며 말초적인 기사를 싣고 있다. 이제는 설기현과 최용수가 새로운 축구계의 홈런왕으로 등극했다는 유치한 농담과 욕짓거리를 자랑스럽게 기사라고 싣고 있다.
한번의 실수로 밤잠을 못자는 선수들의 심정을 헤아려 본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진정으로 승리를 얻고자 한다면 오늘의 실수를 위로해주고 더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주는 것이 더 현명하고 성숙한 언론일 것이다.
반미 시위를 걱정하며 선정적인 보도를 기성 언론은 일삼았지만. 오히려 우리 국민을 그러한 언론을 질타했으며 비가 오는 가운데도 해산하면서 주변을 정리했고,
단 하나의 사건도 일어 나지 않았다. 성숙하지 못한 것은 국민이 아니라 기성 언론들이었다.
SBS의 송재익 캐스터와 신문선 해설위원은 씻을 수 없는 잘못을 하였다. 미국 선수가 찬스를 놓치자 `미국에도 설기현이 있네요` 라고 하면서 뜨거운 더위 속에 풀스피드로 공격과 수비에 최선을 다한 설기현 선수를 욕보였다.
신문선 위원도 승리하지 못한 원인을 제공한 설기현 선수와 최용수 선수는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칼럼을 중앙일보에 게재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책임을 지라는 것인가? 자책골로 인해 권총으로 피격당한 콜롬비아의 수비수 코르도바와 같은 전철을 밟으라는 것인가?
신문선 해설위원의 해설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 경기를 잘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교체를 하고 있습니다.."
선수가 최선을 다한다면 책임질 의무는 전혀 없다 잘못이 있다해도 그것은 실수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책임만을 강조하는 것은 누군가를 반드시 역적으로 몰고가는 것뿐이다.
스포츠 조선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을용 선수 속죄 투혼을 하겠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 다는 말인가? 고의로 페널티킥을 실축하기라도 한 것처럼 `속죄`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사용한 것은 이을용 선수를 죄인이라 규정지어 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누구나 부담감에 실수할 수 있는 것이며 단지 그 부담감을 이을용 선수가 짊어졌을 뿐이다. 오히려 회피하지 않고 나서준 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승리가 아닌, 감동을 주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직 승리만을 바란다면 승리하지 못한 모든 선수들은 다 죽일놈이고 죄인이다. 그러나 승리보다 더 값진 것이 훨씬 많으며 90분 동안 모든 것을 잊고 열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한 선수들은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기쁨을 준다.
미국과의 경기후 믹스트 존을 통과하는 선수들이 인터뷰를 거부하자 외국 기자들은 욕을 해댔다고 하고, 우리 나라 기자들도 이것을 문제 삼아 선수들을 매너없는 선수들로 몰고 가고 있다.
그러나 승자 만이 대접받고 무승부나 패자는 죄인으로 취급한 언론이 이제와서는 침통한 그들의 심정을 보듬어 주지 못하고 매너없음 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불성설이다.
월드컵은 축구이지만 전국민이 즐기는 축제의 마당이다. 그러하기에 광화문에서 시청에서,전국의 도처에서 수십 수백만이 거리로 나와 붉은 카펫을 깐듯이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울고 웃고 탄식하여 즐거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