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 길에서 만난 동백꽃들은 안녕하실까?
이번 삼월의 남파랑 길은 어딜 가나 꽃의 향연, 꽃의 축제였다.
춘삼월이라서 그런지, 봄이 일찍 와서 그런지,
한꺼번에 피어난 많은 꽃 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눈에 가득 안겼던 꽃은 산다화山茶花라고 부르는 동백꽃이었다.
“누가 금빛 조의 은빛 실같이 가는 회를 가져다,
주홍빛 나물 주발 안에 빽빽이 박아두었나.
봄이 일러 복사꽃, 오얏꽃의 시새움을 마구 부르짖지만
한겨울에도 눈 서리의 침범을 받지 않는다네.”
송나라의 빼어난 시인인 양만리楊萬里의 <산다시山茶詩>에 실려 있는
붉고도 붉은 동백꽃은 나무에 달려 있어도.
그 명을 다하고 땅에 떨어져 있어도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그 붉고도 붉은 동백꽃을 순창 출신의 여암 신경준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시사철 바뀌지 않지만, 겨울에 꽃을 피울 수는 없다. 동백은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데 곱고도 많으니 아름답다. 비록 그러하지만 동백은 남방에서 자라므로 북쪽에 옮겨 심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동백의 정조는 땅 때문이라 하겠다. 이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하늘(기후 때문에) 정조를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하다. 굴원屈原은 귤에 대해 칭송하는 <귤송橘頌>에서 “천명을 받아 다른 곳에 가지 않고 남국에서 자라네” 라 하였고, “홀로 서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 않으니, 어찌 기뻐하지 앟으랴” 라고 하면서 거듭하여 탄식하였다.
그리고 유독 옮겨 가지 않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삼아, 끝내 이를 백이伯夷에 비하고 그 표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동백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수 없는 것 역시 기뻐할만 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때문에 내가 동백을 사랑함이 정말로 소나무나 잣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
신경준의 <순원화훼잡설>에 실린 글이다.
야생 차나무가 무성한 다산 자락에서 제자들을 가르쳐서
그의 호를 ‘다산茶山’으로 지었던 다산 정약용도 동백꽃을 두고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남겼다.
”동백나무 밀집하여 푸른 숲을 이뤘는데,
잎은 굳고 각이 지며 꽃은 붉게 피었네.
봄바람에 그저 꽃이 눈에 가득하기에
작은 뜰에서 피든 지든 뜻대로 맡겨둔다네.”
다사 정약용의 꽃을 자랑한 <다산화사茶山花史>에 실린
동백에 대한 글이다.
완도항에서 보았던 동백,
장보고의 청해진에서 보았던 동백,
백련사에서 보았던 그 동백
그 동백꽃들이 지금은 더 무심하게 땅에 떨어져
다시 땅으로 돌아가겠지,
2023년 3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