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에이즈에 걸렸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30일. 죽음을 코앞에 두고 제일 처음 나온 반응은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다른 혈액과 섞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무능한 의사의 오진일 것이다. 그는 텍사스 출신의 마초 카우보이다.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에이즈로 사망한 최초의 유명인 록 허드슨에 대해 마구 비아냥거린다. 인종차별주의자에 남성우월론자, 거칠고 방종한 백인 육체노동자인 그가 동성애자나 걸린다고 생각했던 에이즈에 감염된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방탕하게 놀던 그의 막 나가는 인생이 이젠 막바지까지 왔다.
발악하다가 마침내 현실을 받아들인다. 끝난 인생 더 막 나가기로 한다. 하도 막 나가다 보니 안 그래도 허약해진 육체가 더 쪼그라든다. 이젠 놀 기력도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문득 죽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는 도서관으로 가서 에이즈라는 병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왜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는지 곱씹어 본다.
이제 현실과 맞서기로 한다. 그는 누워서 죽음을 맞이하느니,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발버둥쳐 보기로 결심한다. 때는 1985년이었다. 할리우드 미남 스타였던 록 허드슨이 앙상한 모습으로 죽어간 이후 에이즈와 동성애에 대한 공포는 하늘을 찔렀다. 어제까지 함께 로데오 경기에 참가하고 술을 마시고 여자들을 공유했던 동료들이 그를 더러운 동성애자 취급하며 모욕한다. 제약회사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치료약을 임상실험 중인데, 그 효과를 보지 못해서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주인공 론 우드루프는 자신의 몸에 맞는 치료약을 찾았다. 그는 30일이 지나도, 6개월이 지나도 멀쩡히 살아있다. 그가 찾아낸 약은 미국에서는 수입이 금지된 약이다. 그는 멕시코 국경을 넘으며 적당히 사기도 치고 술수도 발휘하여 약을 확보하고, 자신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이 약을 절실한 환자들에게 파는 사업을 시작한다. 트랜스젠더이자 에이즈 환자인 레이언이 그의 사업을 돕고, 그들의 일은 번창한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결성하여 회원제로 환자에게 무제한적으로 약을 공급하기로 한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방탕한 전기기술자 론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30일 시한부를 선고받지만, 그는 7년을 넘게 살았다. 영화는 1985년부터 1992년까지 그의 고군분투를 담는다.
그는 나쁜 백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어느 날 몹쓸 병에 걸리고, 철저히 약자가 된 후, 세상을 다시 보게 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성질 못된 그에게로 와서 친구가 되어준 이는 멸시와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트랜스젠더다. 그리고 이권으로 물든 의료계에서 적절하게 처신하지 못하는 순진한 여의사다. 그는 빼도 박도 못하는 소수자가 되어버리자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박힌 차별주의와 편견을 알아챈다. 영화는 한 개인의 분투기를 넘어서 자본과 권력이 잠식한 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한다.
강한 나라를 외치던 레이건의 미국이었던 그 시절, 에이즈는 방종함의 결과로 신이 내린 벌이라고 여겨지고, 자본 권력이 국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 아픈 개개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약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이 되어버린 미 식품의약청은 미국 제약회사에서 다루지 않는 치료약을 마구 사들이는 론의 사업을 가로막는다. 론은 죽어가는 몸으로 법정에서 에이즈 자율치료권리를 쟁취해낸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소수자들끼리의 연대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오랫동안 ‘백인 쓰레기’로 의심 없이 살아왔던 론은 이제 트랜스젠더 레이언의 당당한 삶에 영향을 받고, 아름답게 함께 나이 들어가며 죽음을 준비하는 게이 커플의 지원으로 사업에 힘을 얻는다.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타자에 대한 환대를 실천함으로써 비정해진 의료 시스템에 균열을 가하는 진짜 의사 이브의 실질적인 도움은 론의 활동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들의 연대로 생을 연명하게 되는 론은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행동을 실천하는 경지에까지 다다른다.
영화는 ‘죽음에 맞선 승리’라는 주제를 담는 의례적인 틀을 거부한다. 죽음에 뒤따르는 눈물과 아픔을 영화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주인공의 롤러코스터 같은 행적을 현장감 있게 따라가기 위해 카메라는 시종일관 거친 헨드헬드 스타일로 인물 곁에 바짝 붙어 그를 클로즈업으로 포착한다. 초라하고 앙상한 주인공의 얼굴은 영화의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영화는 관객의 감정적 동화를 최대로 이끌어내어 결정적인 순간에 눈물을 흘리게 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며 한 인간의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한다. 한 인간의 승리의 드라마보다는 공동체의 역할과 제도의 모순에 눈뜨게 하는 전략은 영화를 지적인 작품으로 끌어올린다.
에이즈 환자 역할을 위해 20㎏ 이상 감량하여 앙상한 몸매로 만든 매튜 매커너히의 열연은 역대급이다. 20년 전 톰 행크스가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 변호사 역할을 위해 엄청난 체중 감량을 하고 혼신의 열연을 펼친 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듯이, 매튜 매커너히도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으로 보상받았다. 톰 행크스가 기존 익살스런 코미디 전문 배우라는 세간의 시선을 벗고 진정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듯이, 특별한 개성 없는 미남 배우로 여겨졌던 매튜 매커너히의 앞으로의 배우 행로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역시 50㎏ 대까지 몸을 혹사하며 트랜스젠더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 자레드 레토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동반 수상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최선을 다해 열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깊은 울림을 준다. 론의 마지막 시선에 포착된 광대는 삶의 허망함과 즐거움에 대한 아이러니한 상징으로 뇌리에 깊이 박힌다.
정민아 (카타리나)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출신.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