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농군 학교를 창설하여 우리나라 정신 교육의 새 장을 열었던 김용기 장로는, 매일 새벽 기도를 끝낸 후 “민족이여 안심하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수백, 수천 번의 헛된 외침과 구호보다 더욱 믿음직스런 한 마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용기 장로의 마음 속에는 민족에 대한 걱정과 관심이 끊이질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 백성을 멸시하려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게 지워달라고까지 하며 하나님께 민족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 한 사람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서 먼저 당신을 택하신 것 뿐입니다. 당신의 관심이 혹 자신의 안녕과 평안, 호위 호식에만 매달려 있지는 않습니까? 진정 하나님의 관심이 곧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주요 관심사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당신의 삶속에서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롬 9: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구원의 대상으로서의 사회 본문 : 갈3:28
하나님의 구속의 열심은 단순히 우리 개개인을 구원하시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속한 이 타락한 사회와 이 암울한 세상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속한 이 사회는 구조적인 모순과 집단적인 죄악과 추악한 부패와 타락이 기승을 부리는 참으로 절망적인 곳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음을 이처럼 빛을 잃고 생명을 상실한 이 사회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음만이 이 타락한 사회를 구원시킬 수 있고, 이 어두운 세상을 진리로 밝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고자 하는 이 사회는 과연 어떤 곳이며, 하나님은 어떤 존재를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단 말입니까?
1. 어두움의 권세 아래 있는 인생(눅1:78,79)
1)영적으로 암울한 상태에 놓임 성도에게 있어서 이 세상이 본향이 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세상은 영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썩어있고, 그럼으로써 머지 않은 장래에 멸망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 이 사회는 결코 소망이 없고 영적으로 심히 암울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진리와 행복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하나님 없는 사회, 하나님을 도외시해버린 공동체는 죽은 시체와 같은 답답함과 허무함을 지니게 됩니다. 정녕 생명이 약동하는 살아 있는 사회, 평화와 안정이 보장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그 삶의 중심에 모셔들여야만 합니다.
2)공통과 탄식이 주를 이룸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과 번영과 안녕을 원합니다. 하지만 이 땅,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을 얻어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통과 탄식뿐입니다. 사실 생명의 길을 떠나고 복된 천국을 멀리한 인생, 자기 고집과 욕망에 휩싸여 자행 자지하는 인생들에게 무슨 즐거움이 있겠으며, 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마치 아버지의 집을 떠난 탕자처럼 그 결국은 허무와 고통과 탄식밖에는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눅15:13-17). 이 세상의 죄악된 삶의 방식을 뜯어 고치고, 부패하고 타락한 자아를 전적으로 부인함으로써,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소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영적으로 무기력한 세상(고전6:11)
1)허물과 죄로 죽은 세상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이 세상은 엄격하게 말해 절망의 처소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가 기승을 부리는 곳이요, 죄와 허물로 인해 이미 죽은 존재들(엡2:1)이 모여 살면서 매일 죄를 쌓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들의 죄성으로 인해 영적으로 절망 상태에 놓이게 된 이 사회는 결국 우리 인간들에게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고, 평안과 위로의 장소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절망하게 만들며, 멸망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정녕 하나님의 품에서 벗어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결단코 미래가 없을 것입니다.
2)생명을 상실한 세상 이 세상이 우리를 실망시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세상은 생명을 상실한 죽음의 처소라는 사실입니다. 실로 생명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떠난 사악한 원리가 통용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질서가 자리잡은 이 세상은 결국 죽음의 기운이 그 세력을 떨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처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분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진실로 죽음의 세상에서 하나님 이외의 대안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적으로 죽어있는 이 세상과 세상의 영혼들을 소생시킬 수 있습니다.
3. 성도의 빛 된 생활(엡5:8)
1)새 생명을 전할 수 있어야 함 영적으로 무기력하고, 타락하고 범죄한 인생들이 기승을 부리는 죽음의 이 세상에서 우리 성도는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영적으로 늘 긴장하지 않고서는 세속의 흐름에 쉽게 휩쓸려 버리고 말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이 세상의 타락한 흐름에 휘말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우리가 받은 참 빛을 이 어둡고 답답한 세상에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빛된 삶을 강조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권면하신 바 있습니다.
2)영광의 주를 소개해야 함 우리는 사회가 혼탁하고 이 세상이 부패할 때에 단지 뒷짐지고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 세상의 타락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며 이 세상을 위해 애타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빛으로서의 사명을 준행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 혼자의 만족과 안락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온 세상에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먼저 택하여 빛의 자녀로 불러주셨던 것입니다(벧전2:9). 오늘 우리는 죄악 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생명과 진리와 빛이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며 마침내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가장 귀한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요3:16).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을 외면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은 점점 더 암을 하고 부패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먼저 믿은 우리는 절망 상태에 이른 이 세상에 참 빛을 전하며 생명의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제자양육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경의 도구로 쓰임받고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평안 장로님, 예수 사랑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