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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율곡 사단칠정론
* 이황과 다른 주장이며 우위 평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연구사 서성호
1. 사단칠정의 사상사적 의의
우리나라에서의 사칠 논쟁은 이황ㆍ기대승ㆍ이이의 초기 논쟁에서는 이황의 ‘발(發)’개념의 오해, 이이의 사칠배속의 천착 등으로 개념상의 혼란이 야기되어 논쟁의 실마리가 잘 풀리지 않았다. 더욱이 존재론적 시각(사실의 차원)과 도덕론적 시각(가치의 차원) 상호 간의 입장 이해가 전제되지 않아 논쟁이 언어상의 논쟁에 맴돌았다.
그러나 그 뒤 많은 학자들이 다시 논의함으로써 개념이 다시 분석, 정리되어 이황ㆍ이이의 사고방식이 점차 명료하게 되어 갔다. 물론 이 논쟁의 시원적 원인은 자연법사상으로서의 주자학 자체 내에 있었다.
즉, 존재론의 차원에서는 이(理)가 무위(無爲)이면서 도덕론에서는 ‘사단은 이의 발현’이라 하였고, 사단은 본성의 발현으로 순선무악(純善無惡)하다고 하면서 사단에도 ‘중절ㆍ부중절’ 또 ‘정ㆍ부정’이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유학 사상사에서 사단칠정론은 성리학 이론 논쟁의 핵심이지만 이것이 사상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현실을 보는 두 유형의 사고정형(思考定型)으로서 이황의 이상주의, 이이의 현실주의를 형성하였다.
2. 차마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일찍이 맹자는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했다. 그리고 그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사람들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가지니, 이것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해지기를 위해서도 아니며, 마을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며,(어린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나쁜) 평판을 듣기 싫어서 그러했던 것도 아니다.(《맹자》공손추)
우물로 들어가려는 어린아이를 보고 슬퍼하며 가슴 아파 하는 것은, 명예나 사귐을 위해서도, 모진 놈이라는 비난을 싫어해서도 아니며, 단지 사람의 마음 자체가 본시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혹은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맹자의 주장은 천지(天地)와 만물(萬物), 인간(人間)을 하나로 꿰는 논리에 바탕 한다.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을 내는 것으로 그 마음(心)을 삼으니, 만들어진 만물이 이로 인해 각기 천지가 만물을 낸 그 마음(生物之心)을 얻어서(만물 스스로의) 마음을 삼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 것이다.(《맹자》공손추)
사람이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서글피 여겨 가슴 아파하는 마음(惻隱之心)’을 지닌 것은, 사람을 포함한 만물의 마음이 바로 만물을 만든 천지의 마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사람의 본래 마음이 이러하기 때문에 정치할 때도 그 본래 마음에 바탕하여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정치를 하면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간단할 수 있는 정치가 당시 현실[전국시대(戰國時代)]의 혼란 속에서 피어나지 못한 것은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 물욕에 가려 손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이이(李珥, 1536~1584)의 설(說)
이이는 이황이 사단을 이(理)의 발현 즉, 이성적 작용으로 파악한 데 대해 이성적 작용도 작용인 이상 기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이는 무위(無爲)라는 주자의 설을 계승, 존재와 도덕을 일괄하여 이ㆍ기 관계를 이른바 ‘기발이승일도설’로 제시하였다. 따라서 사단과 칠정의 관계는 칠정은 기의 발동의 총칭이므로 사단은 칠정에 포함된다고 본다.
이이는 “사단과 칠정은 본연지성(本然之性)ㆍ기질지성(氣質之性)과의 관계와 같다. 본연지성은 기질을 겸하지 않고 말한 것이며, 기질지성은 도리어 본연지성을 겸한다.
그러므로 사단은 칠정을 겸하지 못하나 칠정은 사단을 겸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인심ㆍ도심은, 이황에서처럼 대립적이기는 하나, 그것이 사단ㆍ칠정과 같은 대립 관계는 아니라고 하였다.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는 주장에서 이이는 다시 칠정과 사단을 비슷한 것끼리 연결시켜, 측은은 애(愛)에, 수오는 오(惡)에, 공경은 구(懼)에, 시비는 ‘희로(喜怒)의 당연성 여부를 아는 것’에 배속시킨다.
그러나 주자는 칠정과 사단은 비슷한 점이 있지만 그 성격상 나누어 붙이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이의 ‘사칠배속’은 그의 ‘기발이승일도설’의 필연적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지나친 천착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칠정의 선한 것과 사단은 다르기 때문이다. 사단은 도덕의 표준이라는 성격을 갖는 것이므로 칠정의 선한 것과 같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이는 존재론의 입장에서 도덕률을 규정하려고 하였으므로 ‘천지의 변화(天地之化)’는 바로 ‘내 마음의 발현(吾心之發)’이라고 하여 천지에 이화(理化)ㆍ기화(氣化)의 구분이 없다면 우리 마음에도 이발ㆍ기발이 없다고 하였다. 이이의 이러한 입장은 그의 ‘이통기국(理通氣局)’의 명제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즉, 기는 물질적ㆍ시간적 유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국(氣局)’이고, 이는 초월적 존재로 보편적 존재이기 때문에 시공(時空)에 국한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통(理通)’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의 ‘기발이승일도설’은 더 나아가 ‘심시기(心是氣)’를 주장하게 되고, 이 설은 그 뒤 주기학파의 송시열(宋時烈)ㆍ한원진(韓元震) 등에게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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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성리학의 이른바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이이 율곡(李珥 栗谷) 사이의 논의 들이 대표한다.
4.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대한 율곡 이이의 생각
조선성리학의 학파 성립, 내지는 동서 붕당의 형성과 관련하여 이황과 상대적 위치에 있는 인물이 이이(李珥, 1536-1584)이다. 그러한 만큼 사단과 칠정에 대해서도 이이는 이황과 크게 다른 생각이었다. 벗인 성혼(成渾, 1535-1598)과의 편지 토론에서 이이는 사단과 칠정 모두 氣가 발동하고 理가 올라탄 기발이승이송도(氣發理乘一途)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칠정만 그런 게 아니라 사단(四端) 역시 氣가 작용하고 理가 올라타는 것이네. 왜냐하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본 뒤에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것(빠지려는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감각행위이므로) 氣이니, 이것이 이른바 氣가 발동한다는 것이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근본은 仁이니, 이것이 이른바 理가 올라탄다는 것이네. - 《율곡전서(栗谷全書)》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
이이는 우주만물의 이치이자 원리인 理의 운동성을 부정하는 입장이었다. 理란 氣처럼 운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이가 감각(氣)으로 발생한 측은지심을 理가 아닌 氣의 발동으로 이해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이가 理와 氣가 서로 섞일 것이 아니라는[不相雜(부상잡)] 생각은 이이나 다른 유학자들이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이는 理 와 氣의 관계를 상하(上下), 존비(尊卑), 주종(主從) 등의 대립적, 준별적 관계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理와 氣가 서로 섞일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준별되는 별개의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었다[부상난(不相離)]. 이 점이 바로 이황과 다른 점이었고, 따라서 칠정(七情)과 구별하기 위해 사단(四端)을 굳이 理의 발동이라고 볼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5.사단칠정(四端七情)과 현실의 문제
사단과 칠정에 대한 이황과 이이의 생각 차이는, 이기론(理氣論), 즉 우주와 만물을 바라보는 존재론적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순수하고 학문적인 것이었다. 다만 학문과 사상이란 것도 결국은 그 주체가 처한 시대 속에서 나온 것이고 역으로 그 시대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이이의 관점은 특히 경세론적 측면에서 주목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 이이에게 있어 理, 즉 질리(眞理)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氣로 구현된 현실과 전혀 별개일 수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理, 즉 진리 혹은 도덕성이 당연히 중요하긴 하나 그에 못지않게 氣 즉 제도 개혁 등의 구체적 조치 자체가 또한 진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와 경제, 군사와 교육 등에 걸칠 다양한 개혁책을 건의하였다. 대동법의 선구로 평가되는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이나, 외침에 대비한 십만 양병설의 주장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이는 자신이 살던 16세기 후반의 시대를 ‘경장(更張)’ 즉 개혁이 필요한 시대로 파악하였다. 때에 맞추어 변통하여 법을 만들어 백성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시의(時宜)’임을 강조한 것도 《만언봉사(萬言封事)》 그 때문이었다. 성현의 말씀, 즉 理를 묵수하면서 도덕을 강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오히려 제도, 즉 유한하고 가변적인 氣를 통해 시의적절한 개혁을 하는 것 자체가 理, 즉 성현의 말씀 내지 유교적 진리를 실제적으로 보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나아가 理와 氣에 대한 이이의 주장은 이처럼 현실 속 자신의 실천과 잘 부합하는 것이었고, 이 점에서 사단과 칠정에 대한 사변의 가치를 새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사단칠정 논쟁을 비롯한 성리학의 여러 학문적 논변을 너무 기계적으로 경세론이나 현실 대응의 태도와 연결시키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사상이나 학문이 시대라는 분위기와 배경에서 나오고 역으로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그 나름의 자율성을 본래의 특성으로 지닌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ㅡㅡㅡ참고
朝鮮性理學과 四端七情
1. 주자성리학(朱子性理學)
이기론(理氣論) : 우주론(宇宙論), 만물은 불변의 원리인 理와 가변적 요소인 氣에 의해 생성, 존재, 소멸한다.
성즉리성(性卽理設) : 심성론(心性論), 사람에게 내재한 理는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도덕적 본성(性)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본성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현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경궁리(居敬窮理)해야 한다.
거경(居敬)-잡념 없이 도덕적 긴장상태 유지, 외형적 엄숙함
궁리(窮理)-지적탐구
거경궁리의 바탕 위에서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실천하면 인의예지가 실현된다. 이러한 입장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킨 것이 주자 《대학장구(大學章句)》의 8조목(條目) =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이일분수론(理一分殊論) : 신분제, 지주전호제 뒷받침, 禮 중시
2. 사단칠정(四端七情)
사단(四端) : 측은시짐,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측은지심 인지단야(惻隱之心 仁之端也)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발로이고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 부끄러이 여김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발로이고
사양지심 예지단야(辭讓之心 禮之端也)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발로이고
시비지심 지지단야(是非之心 智之端也)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의 발로이다.
인지유시사단야(人之有是四端也) 사람에게 이 네 가지 싹이 있는 것은
유기유사체야(猶基有四體也) 마치 사람에게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
《맹자(孟子)》공손추(公孫丑)
칠정(七情) : 희(喜)ㆍ노(怒)ㆍ애(哀)ㆍ락(樂)ㆍ애(愛)ㆍ구(懼), 오(惡)ㆍ욕(欲, 慾)
이황(李滉, 1501-1570)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
“사단은 理가 작용하고 氣가 뒤따른 것(理發氣隨之), 칠정은 氣가 작용하고 理가 올라탄 것(氣發理乘之)” - 《퇴계집(退溪集)》 권16, 답기명언논사단칠정(答奇明彦論四端七情)
⇒ 도덕적 감정인 사단을 일반적 감정인 칠정과 구별하여 강조(이황은 理와 氣를 준별, 심지어 왕과 신하의 관계로까지 파악)
⇒ 현실개선은 제도(=氣)보다 도덕(理, 性)을 통해 가능 ※ 사화(士禍)의 시대 … 공의(公義)와 사리(私利)의 구별을 강조하기 위함
이이(李珥, 1536-1584)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
“칠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단 역시 氣가 작용하고 理가 타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본 뒤에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것(빠지려는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은(눈으로 보는 감각 행위이므로) 氣이니, 이것이 이른바 氣가 작용한다는 것이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근본은 仁이니, 이것이 이른바 理가 탄다는 것입니다.”
[非特七情爲然(비특칠정위연) 四端亦是氣發而理乘之也(사단역시기발이리승지야). 何則(하칙), 見孺子入井然後(견유자입정연후), 乃發惻隱之心(내발측은지심). 見之而惻隱者氣也(견지이측은자기야), 此所謂氣發也(차소위기발야). 惻隱之本則仁也(측은지본칙인야) 此所謂理乘之也(차소위리승지야).] -《율곡전서(栗谷全書)》 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
⇒ 사단과 칠정 모두 氣의 작용으로 본 것은 氣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이이는 이황과 달리 理와 氣 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봄)
⇒ 진리(理)는 현실(氣)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실 개선(氣, 제도개혁) 그 자체가 진리(理)라는 인식.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 건의 십만양병 제안 등 현실문제 적극 대응) → 일부 학자 “실학의 선구자” ※ 사림(士林)이 대거 복귀하면서 민생이 개선 등 각종 사회문제 개선의 필요성 절감.
송시열(宋時烈, 1607-1689)
퇴계 선생이 중시한 것은 “사단은 里가 작용한 것이고, 칠정은 氣가 작용한 것”이라는 주자의 말씀인데 …주자의 말씀들이 혹 기록한 사람의 잘못에서 비롯되었을지 어찌 아는가? [退溪所主(퇴계소주) 只是朱子所謂(지시주자소위) 四端理之發(사단리지발) 七情氣之發(칠정기지발) …安知朱子之設(안지주자지설) 或出於記者之誤也(혹출어기자지오야)] - 《우암집(尤庵集)》 권86, 잡저(雜著)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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