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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홍관일(白虹貫日)
흰 무지개가 태양을 뚫고 지나간다는 뜻으로, 정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감응함을 이르는 말이나 임금의 신상에 해로움이 가하여짐을 이르는 말이다. 또는 지성이 감천하여 나타나는 조짐을 일컫는 말이다.
白 : 흰 백(白/0)
虹 : 무지개 홍(虫/3)
貫 : 꿸 관(貝/4)
日 : 날 일(日/0)
출전 : 사기(史記) 추양전(鄒陽傳)
하늘에 장엄한 색색의 무지개가 펼쳐지면 모두들 환호한다. 비가 그친 뒤 태양의 반대쪽에 걸리는 반원형의 무지개는 우리나라에선 선녀가 타고 내려와 목욕하는 미끄럼대가 되고, 그리스(Greece) 신화에선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여신 이리스(Iris) 자신이 된다.
무지개를 나타내는 한자 홍(虹)은 연못의 물을 빨아올리는 벌레로 하늘에 닿으면 용이 된다고 봤다. 빛의 반사에 따라 쌍무지개도 뜨는데 희미한 것이 암무지개이고 둘을 합쳐서 홍예(虹霓)라 하기도 한다.
특이하게 흰 무지개(白虹)가 실제 보였는지 전설에 의한 것인지 종종 등장하여 해를 꿰뚫었다(貫日)는 성어가 남아있다. 이때의 흰 무지개는 지극한 정성을 뜻해 하늘이 감응했다는 뜻과, 해가 임금을 말해 신상에 해로움이 닥친다는 전조의 의미를 지녔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 문필로 명성이 높았던 추양(鄒陽)이란 사람이 쓴 말로 사기(史記) 열전에 나온다.
추양은 제(齊)나라에서 태어나 제후국 양(梁)나라 효왕(孝王)의 문객으로 지내다 양승(羊勝)이란 사람의 참소로 옥에 갇혔다.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죽게 되자 진실한 사람은 의심을 받지 않는다며 옥중상양왕서(獄中上梁王書)를 썼다.
여기에 전국시대(戰國時代) 때의 협객 형가(荊軻)를 등장시켜 충신과 간신, 의로움을 추구하는 선비를 군주는 알아야 한다고 읍소했다. 성어 부분을 보자. "옛날 형가가 연나라 태자 단의 의로움을 사모했는데(昔者荊軻慕 燕丹之義), 흰 무지개가 해를 뚫는 현상이 있었지만 태자 단은 형가를 의심했습니다(白虹貫日 太子畏之)."
진시황(秦始皇)의 볼모로 있다 탈출한 연(燕)나라 태자 단(丹)이 복수를 위해 형가에 부탁했을 때 하늘도 감동하여 흰 무지개(형가의 칼)가 하늘의 해(진시황)를 꿰뚫었으나 깊은 신임을 주지 못해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실제 형가는 진시황 암살 일보 앞에서 실패했다. 추양의 간곡한 글은 물론 효왕의 마음을 움직여 옥에서 풀려난 뒤 상객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간절한 정성은 천지의 자연현상까지 바꾸어도 믿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가르침도 준다. 반면 해를 뜻하는 군주의 입장에서 칼이 꿰뚫으면 신상에 위해가 닥쳐옴을 알고 잘못을 돌아보며 바로잡도록 깨우친다.
해가 아닌 달을 흰 무지개가 관통하듯 걸리는 백홍관월(白虹貫月)은 우리 고전에서 검색되는데 왕비나 후궁에 변고가 생긴다고 인식했다 한다. 또한 병란이 일어날 조짐으로 보기도 했는데 어찌됐든 흰 무지개는 태평한 시기에는 불길한 징조이고, 어지러운 시기에는 세상이 바뀌도록 희망하는 상징으로 여긴 셈이다.
백홍관일(白虹貫日)
백홍관일(白虹貫日)은 흰 무지개가 태양을 관통하듯 걸리거나 태양의 양쪽으로 흰 운기가 나타나 마치 태양을 꿴 듯이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서운관지(書雲觀志)'에 따르면, 먼저 일훈(日暈)과 일이(日珥)를 이루고 밖에 홍기(虹氣)가 있어 길게 이어서 해를 꿰뚫은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흰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는 현상을 변혁이 발생하기 전에 하늘이 내보이는 길흉의 징조로 해석하였다. 실제로는 대기 광학 현상의 일종이며, 공기 중 물방울 입자에 의해 태양 광선이 반사되거나 굴절되어 일곱 빛깔의 원호를 나타내는 자연 현상이다.
고대에는 무지개에 암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안쪽의 테는 수컷 무지개[虹], 바깥 테는 암컷 무지개[霓]라는 것이다. 또는 안이 자색이고 바깥이 홍색[內紫外紅]일 때 정상적인 무지개이고, 반대로 안이 홍색이고 바깥이 자색[內紅外紫]인 것은 색채가 비교적 옅어 보이는데 이를 암컷 무지개[霓]라 하기도 하였다.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 '운기(雲氣)' 조(條)에서는 홍예(虹霓)를 태양 곁에서 태양빛을 가리는 요사스런 기운(妖氣)으로 취급하였다. 마치 태양 옆에서 서로 총애를 다투는 모습 같다고 하여, 신하가 왕을 모략하는 혹심(惑心)이나 후비(后妃)를 쫓아내는 내음(內淫)의 흉조로 해석하고 있다.
천문류초(天文類抄)는 흰 무지개(白虹)가 백 가지 재앙의 근본이고, 모든 분란을 일으키는 기틀이라고 보았다. 안개와 마찬가지로 음이 양을 가리는 현상이므로 간신이 왕을 모략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징조라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도 무지개나 흰 무지개는 흉조로 보았다. 전라도에 발생한 일변(日變)에 대해, 영의정정광필(鄭光弼)은 이번 일변은 무지개가 태양을 범한 것으로 모두 흉상으로 여기는 것이며, 반란이나 위망(危亡)의 조짐으로 사(邪)가 정(正)을 해치고 첩이 지아비를 능멸하고 오랑캐가 중국을 침범하는 응험이 있을까 염려되니 근래 조정의 폐습을 바로잡기를 말하였다. 백홍관일 현상이 최근 신하의 모란(謀亂)으로 인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부제학 이사균(李思鈞)은, 흰 무지개(白虹)는 음기(陰氣)인데 감히 태양을 범하여 겨울철에 나타났으니 큰 변고가 된다고 말하였다. 또한 마침 조광조(趙光祖) 등을 죄준 날에 나타났다 하면서, 조광조 등이 경학으로 나라를 잘 다스려지게 하고자 하였고 그 마음은 나라의 일을 위하였을 뿐인데 하루 아침에 8명을 귀양 보내었으니 하늘이 꾸짖은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이어서 왕은 일반 백성과 달라서 일이 조금이라도 어그러지면 천상(天象)을 움직일 수 있으니, 중론을 널리 거두어 온화하고 화평한 성심(聖心)을 보이기를 청하였다. 이것은 약 열흘 전인 11월 15일 발생한 기묘사화로 대사헌조광조 일당이 숙청되고, 1달 뒤에는 사사되는 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 개진된 발언이다. 신하가 왕을 핍박하는 백홍관일의 재변이 바로 이 조광조의 분란을 예고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중종실록 14년 11월 29일).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는 백홍관일 현상은 전통시대에 특히나 왕의 직접적인 재난으로 인식하였다. 왕인 태양을 어둡게 하고 가리는 재변으로 인식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와 유사한 인식이 여럿 보인다. 백홍관일을 줄여서 홍관(虹貫)이라 쓰기도 하였다.
선조 때에는 백홍관일이 발생하자, 왕은 큰 재변으로 여기고 피전감선(避殿減膳)하였다(선조실록 6년 1월 19일). 여기서 피전은 재변을 당하여 자신의 부덕을 반성하고 과실을 성찰하는 의미에서 왕이 정전에 나가지 않고 별전에서 정무를 보는 일종의 재변 의례이다. 감선은 마찬가지 의미에서 반찬의 수를 줄여 하늘에 근신하는 태도를 보이는 의식이다.
숙종 때에는 사학(四學)의 유생 박태두(朴泰斗) 등이 송시열(宋時烈)을 벌준 것에 대하여 변론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문에서는 그 당시 일어났던 백홍관일의 재변이 정월에 나타난 것을 성왕과 주공의 이야기에 빗대 해석하였다. 간신의 말을 듣고 주공을 벌준 성왕이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공을 다시 신임하였는데, 하늘이 왕에게 경고하여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백홍관일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숙종실록 1년 1월 16일).
중종실록 37권, 중종 14년 11월 29일 기미 2번째기사 (1519년 명 정덕(正德) 14년)
사정전에 나가 전라도의 일변에 대해 이르니 정광필 등이 그 까닭을 아뢰다
上御思政殿, 迎訪領議政鄭光弼, 左議政安瑭, 右議政金詮, 吏曹判書南袞, 兵曹判書李長坤, 參贊李惟淸, 副提學李思鈞, 大司諫李蘋, 執義柳灌等.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영의정 정광필(鄭光弼), 좌의정 안당(安瑭), 우의정 김전(金詮), 이조 판서 남곤(南袞), 병조 판서 이장곤(李長坤), 좌참찬 이유청(李惟淸), 부제학 이사균(李思鈞), 대사간 이빈(李蘋), 집의 유관(柳灌)들을 연방(延訪)하였다.
上曰: 今全羅道有非常之變, 故迎訪耳. 左右各言厥由.
임금이 이르기를, "지금 전라도에 비상한 변이 있으므로 연방한다. 좌우는 각각 그 까닭을 말하라"고 하였다.
光弼曰: 近來災變之發, 非特此也. 地震屢作, 近古所未有. 今此日變, 則虹蜺干於太陽. 古皆以爲凶象, 或叛亂危亡之兆. 以邪害正, 妾婦乘其夫, 夷秋侵中國, 其應如此, 可不惕念乎. 災變雖不可指一事言之, 然近日朝廷, 欲矯弊習, 事出不得已, 而天之應驗如此.
정광필이 아뢰기를, "근래에 재변이 일어난 것은 이뿐이 아닙니다. 지진이 여러 번 일어난 것도 근고(近古)에는 없던 일입니다. 이번 일변(日變)은 무지개가 태양을 범한 것인데 예전에는 다 흉상(凶象)으로 여겼습니다. 혹 반란·위망(危亡)의 조짐으로 사(邪)가 정(正)을 해치고 첩이 지아비를 능멸하고 오랑캐가 중국을 침범하는 등 그 응험이 이러하니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재변은 어느 한 가지 일 때문이라고 지목하여 말할 수는 없으나 근일 조정에서 폐습을 바로잡고자 한 일은 부득이한 까닭에서였는데도 하늘의 응험이 이러합니다"고 하였다.
安瑭曰: 天變之事, 雖不可指以爲某應也, 自前年五月以後, 地震雨雹, 或太白晝見. 朝政有失耶? 或兵象耶. 上每自惕慮, 凡事光明正大而爲之. 至於近日之事, 人皆畏之, 不得進言, 極可畏也.
안당이 아뢰기를, "천변의 일을 어느 일에 대한 응험이라고 지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이후로 지진이 있고 우박이 내리고 혹 태백성(太白星)이 주현(晝見)하매, 조정에 잘못이 있는가 또는 병상(兵象)인가 하여 임금께서 번번이 염려하고 모든 일을 광명정대 하게 하셨는데, 근일의 일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여 진언(進言)하지 못하니 지극히 두려워할 만한 일입니다"고 하였다.
金詮曰: 臣見圖形, 甚驚駭也. 當如光弼所啓, 闕失之事, 固當省覺, 而亦爲敬天勤民之實也. 自近來天威一動之後, 人心洶洶不定, 須極爲撫定可也. 天象, 雖不可指言某事之應, 然見此圖形, 有相背之狀. 恐人心相背而然也. 變亂舊章多矣. 臣意以爲一遵舊章可也. 大抵新進喜事之人進用, 則必起此紛更之弊, 是可慮也.
김전이 아뢰기를, "신이 도형(圖形)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정광필이 아뢴 바와 같이 부족한 일은 워낙 돌이켜 깨달아야 하며, 참되게 하늘을 공경하고 민사(民事)에 근로하셔야 합니다. 근래 천위(天威)가 한번 진동한 뒤로 인심이 흉흉하여 안정되지 않으니 극진하게 어루만져 안정시켜야 합니다. 천상(天象)을 어느 일에 대한 응험이라고 지목해 말할 수는 없으나 이 도형을 보면 서로 등진 형상을 하였으니 아마도 인심이 서로 등졌기 때문에 그런 것인 듯합니다. 구법(舊法)을 변란한 것이 많거니와 신은 구법을 한결같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저 신진(新進)의 일 좋아하는 사람이 진용(進用)되면 반드시 이렇게 어지러이 고치는 폐단을 일으키니 이것은 염려스럽습니다"고 하였다.
南袞曰: 天災雖不可指的言之, 然垂象則必有應驗. 近日大事, 旣處置矣, 而人心不定. 人心不定, 則猶可致此災變也. 至於政事間得失之事, 深察之, 以謂某失致某災乎, 是非邪正, 洞分可也. 自卽位以後, 災變連仍, 前年地震, 今此災變, 尤爲可驚. 上下交修, 而災變若此, 天意未可知也. 今須驚懼, 加於前日, 勵精圖治, 以示大公至正之心, 使上下洞然, 則可無其災也.
남곤이 아뢰기를, "천재는 확실하게 지목하여 말할 수는 없으나 수상(垂象)에는 반드시 응험이 있습니다. 근일 큰 일을 이미 처치하였으나 인심은 안정하지 않았고 인심이 안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런 재변을 부를 수 있습니다. 정사(政事)중의 득실(得失)에 관한 일에 있어서는 깊이 살펴서 어느 잘못이 어느 재변을 불렀는지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을 환히 가려야 합니다. 즉위하신 뒤로 재변이 잇달아 지난해에는 지진이 있었고 이번의 재변은 더욱 놀라우므로 상하가 서로 수성(修省)하여도 재변이 이러하니 천의(天意)를 알 수 없습니다. 이제 모름지기 놀라와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전일보다 더하여 정성을 기울여 잘 다스리기를 도모해서 크게 공변되고 지극히 바른 마음을 보여 상하가 환히 알게 하면, 재변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李長坤曰: 大抵上下交修, 至於政事之間, 亦當警省可也, 果如南袞所啓. 近日欲矯誤爲之事, 而人心皆驚懼不定. 天威一動, 下人自然畏懼而如此也. 天之垂象, 雖不可指言以此, 而人皆疑懼, 不敢進言, 則此非小事也. 且國家政在臺閣, 自古非美事也. 近來年少之人, 雖有幹能, 朝廷之事, 皆欲自爲之, 此人心之擾擾者也. 當與大臣裁抑而爲之, 使政出于一可也.
이장곤이 아뢰기를, "대저 상하가 서로 수성하는 것은 정사(政事)를 할 때에 있어서도 경계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과연 남곤이 아뢴 바와 같이 근일 잘못한 일을 바로 잡으려고 하였으나 인심이 다 놀라고 두려워하여 안정되지 않는데, 천의가 한번 진동하면 아랫사람을 자연히 두려워서 이렇게 됩니다. 하늘의 수상을 지목하여 말할 수는 없으나, 사람들이 다 의구(疑懼)하여 감히 진언하지 않는다면 이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또 국가의 정치가 대각(臺閣)에 달려 있는 것은 예전부터 아름다운 일이 아닌데 근래 젊은 사람이 재능이 있다고는 하나 조정의 일을 다 스스로 하고자 하니, 이것이 인심이 요란해지는 까닭입니다. 대신과 함께 제재해서 정령(政令)이 한군데에서 나오게 해야 합니다"고 하였다.
惟淸曰: 自卽位之後, 聲色遊畋之事, 絶不爲之, 而求治極矣, 災變相仍, 前年地震之後, 屢震不寧, 是可慮也. 近者擢用年少之人, 賢不肖相雜, 故過誤之事多矣, 法章亦似紛更. 自今以後, 請務去弊習, 而心無間斷. 易曰: 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 人君須體此言, 可也.
이유청이 아뢰기를, "즉위하신 뒤로 성색(聲色)이나 유전(遊畋) 등을 아주 아니하고 구치(求治)가 극진하셨는데 재변이 잇달아서 지난해 지진이 있고 나서 여러 번 지진이 있어 편안하지 않으니 이것은 염려스럽습니다. 근자에 젊은 사람을 뽑아 쓸 때에 어진 사람과 변변치 못한 사람이 섞였으므로 잘못된 일이 많았거니와 법도 어지러이 고친 듯합니다. 이제부터는 폐습을 제거하여 마음에 간단(間斷)이 없도록 힘쓰소서.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이 굳건하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써 마지 않는다' 하였는데, 임금은 이 말을 체념(體念)해야 합니다"고 하였다.
思鈞曰: 所謂白虹, 乃陰氣也, 而敢干大陽, 見于冬月, 此大變也. 雖不可的指而言之, 適出於罪光祖等之日. 光祖等以經學欲致治, 而自上言聽計從, 故知無不言, 後進之士, 見而效之, 以成過激之弊, 然彼人等其心, 只爲國事, 而一朝竄黜八人, 外人皆疑中間所爲也. 士類孰不疑懼. 人君之事, 與匹夫異, 一毫有差, 則猶可動天象也. 長坤所啓, 政在臺閣不可云者, 似當矣. 然但與大臣謀議, 而不肯博採衆論, 則事似一偏, 須斷自上心, 權在於上可也. 大臣不可以一槪觀也, 或有慷慨而無才者, 或只平常者, 或有容量者. 秦誓曰: 若有一介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人之有技, 若已有之. 大臣有如此者, 則人心自然和協而天道和順矣. 大臣雖若平常, 而無才德者, 則自然誤國家之事矣. 非知而故誤之也, 自然不知國事之至於誤也. 須先定聖心, 溫溫和平, 如門之洞開, 使下人皆得以見之可也.
이사균이 아뢰기를, "백홍(白虹)이라는 것은 음기(陰氣)인데 감히 태양을 범하여 겨울철에 나타났으니 이것은 큰 변입니다. 확실히 지목해서 말할 수는 없으나 마침 조광조 등을 죄준 날에 나타났습니다. 조광조 등은 경학(經學)으로 잘 다스려지게 하고자 하였고 임금께서도 말하면 들어주고 계책은 따라 주셨으므로 알면 말하지 않는 것이 없었고 후진의 선비들도 보고 본떠서 과격한 폐단을 이루었으나 저 사람들의 마음은 나라의 일을 위하였을 뿐인데 하루 아침에 8인을 귀양보내었으니, 외간 사람들이 다 중간에서 한 일이라고 의심합니다. 사류(士類)라면 누구인들 의구하지 않겠습니까? 임금의 일은 필부와 달라서 조금이라도 어그러지면 천상(天象)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장곤이 아뢴 '정치가 대각에 달려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은 마땅한 듯하나, 다만 대신과 모의하고 중론을 널리 거두려 하지 않으면 일이 한군데로 치우칠 듯하니, 임금의 마음에서 결단하여 권세가 위에 있게 하셔야 합니다. 대신을 다 같다고 보아서는 안 되니, 혹 강개(慷慨)하나 재주가 없는 자도 있고, 평상(平常)하기만 한 자도 있고 도량이 있는 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서(秦誓)에 이르기를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신하가 있어 다른 재주는 없으나 성실하고 착한 일을 좋아한다면 임용할 만하니, 이런 사람은 남이 재주를 가진 것을 자기가 가진 듯이 한다' 하였는데, 대신 중에 이런 자가 있다면 인심이 절로 화협(和協)하여 천도(天道)가 화순(和順)해질 것입니다. 대신으로서 평상한 듯하나 재덕(才德)이 없는 자라면 절로 국가의 일을 그르치게 되는데 알면서 짐짓 그르치는 것이 국가의 일이 그르쳐지는 것을 자연히 모르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먼저 성심(聖心)을 온화하고 화평하여 마치 문이 활짝 열린 듯이 정하시어 아랫사람이 다들 볼 수 있게 하셔야 합니다"고 하였다.
李蘋曰: 當事皆存警省, 使聖心公明正大, 人皆曰一哉王心, 大哉王言, 可也.
이빈(李蘋)이 아뢰기를, "일마다 다 경성(警省)을 간직하여 성심(聖心)이 공명정대하게 해서,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순일(純一)하도다. 임금의 마음이여! 크도다, 왕의 말이여!' 하게 되어야 합니다"고 하였다.
灌曰: 近來災變每作, 而今此大災, 適出於罪彼人之日. 其日聞命召大臣之時, 或疑有不測之事, 人皆驚懼. 然則果可動天象也. 克勤警省, 遵守先王之法可也. 且人君待遇臣下, 不可率爾也. 彼人等以經學欲輔導, 故拂於物情者多矣, 至於斥人, 亦大誤. 少有異志者, 則指謂小人而痛斥之, 故人不得開口. 大臣當禁抑而不能, 固不得辭其責矣. 然非徒大臣不能禁也, 自上信之重, 故大臣不知上意而不得禁耳.
유관(柳灌)이 아뢰기를, "근래 재변이 자주 일어나 이번의 큰 재변은 마침 저 사람들을 죄준 날에 나타났는데, 그날 듣건대 대신을 명소(命召)하였을 때에 혹 불측한 일이 있지나 않을까 하여 사람들이 다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하니, 그렇다면 천상(天象)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경성을 부지런히 하고 선왕의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또 임금이 신하를 대우하는 것이 경솔해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들은 경학(經學)으로 보도(輔導)하여 하였으므로 물정에 거스르는 것이 많았거니와, 사람을 배척한 것도 큰 잘못입니다. 조금만 저희와 다른 뜻을 가진 사람은 소인이라 지칭하여 매우 배척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입을 열지 못하였으니 대신들이 억제해야 할 터인데 못하였으므로 워낙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으나, 한갓 대신이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임금께서 매우 신임하셨으므로 대신들이 임금의 뜻을 몰라서 막지 못한 것입니다"고 하였다.
上曰: 近來災變, 果連仍不止. 變不虛生, 雖數迎訪大臣, 然應天以實, 不以文, 須指所當爲之事, 而議之可也. 大臣所啓, 周爲之思慮云者, 似當, 然用人尤重. 古云: 爲政在於得人. 吏曹判書, 亦今在坐, 深慮可也. 兵務甚解弛, 此可慮也.
임금이 이르기를, "근래 재변이 과연 잇달아서 그치지 않는데, 재변은 까닭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주 대신을 연방(延訪)하기는 하나 하늘에 대한 응답은 참되게 해야 하고 겉치레로 하는 것이 아니니, 해야 할 일을 집어서 의논해야 한다. 대신이 '두루 생각해야 한다'고 아뢴 것은 마땅할 듯하나, 사람을 쓰는 것이 더욱 중요하여, 옛말에도 '정치는 사람을 얻기에 달려 있다' 하였는데, 이조 판서도 지금 이 자리에 있으니 깊이 생각해야 한다. 병무(兵務)가 매우 해이하니 이것이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長坤曰: 國之所恃而安者, 兵也, 而禁軍尤虛疎, 誠爲可慮. 軍機所當愼嚴也.
이장곤이 아뢰기를, "나라가 믿고 편안한 것은 군사인데 금군(禁軍)이 더욱 허술하니 염려스러우며, 군기(軍機)는 신엄(愼嚴)해야 합니다"고 하였다.
袞曰: 上意已定其是非邪正, 則誰能逃於聖鑑哉? 如或不明, 則有以奸邪爲賢矣. 自上深念之.
남곤이 아뢰기를, "임금의 뜻에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을 정하셨으니 누구인들 성감(聖鑑)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혹 명백하지 않으면 간사한 자를 어진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니 임금께서 깊이 생각하소서" 라고 하였다.
上曰: 政在臺閣則亂. 大抵朝廷之事, 大臣力爲之, 則必不如是, 大臣不爲, 故政歸臺閣矣. 近者之事, 果出於夜間, 故下人疑之, 然不得已矯之, 故如此耳. 若大臣早加裁抑則, 此亦不至是也.
임금이 이르기를, "정치가 대각(臺閣)에 달려 있으면 문란해진다. 대저 조정의 일을 대신이 힘써 했으면 이렇지 않을 것인데, 대신이 하지 않으므로 정치가 대각에 돌아간 것이다. 근자의 일은 과연 밤사이에 일어났으므로 아랫사람들이 의심하나 부득이 바로잡아야 하므로 그렇게 한 것이다. 대신들이 일찍부터 제재하였으면 이 일도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고 하였다.
光弼曰: 彼人所爲皆善, 故雖有過激, 而不敢沮抑矣.
정광필이 아뢰기를, "저 사람들이 하는 것은 다 착하였으므로, 과격한 일이 있어도 구태여 억지하지 않았습니다"고 하였다.
上曰: 前日光祖於經筵, 常曰; 大臣待士類, 如親子弟, 而敎之可也. 予甚嘉其言. 果大臣如此爲之則好矣.
임금이 이르기를, "전일 조광조가 경연(經筵)에서 늘 말하기를 '대신은 사류(士類)를 친 자제처럼 대우하여 가르쳐야 한다' 하였는데, 내가 그 말을 매우 가상히 여겼다. 과연 대신이 그렇게 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다"고 하였다.
光弼曰: 若賢者, 則彼必心服, 可能如子弟而敎接之, 若非賢者, 則勢不能如此也. 且彼人等欲改五禮儀註. 臣聞之慮必生事矣.
정광필이 아뢰기를, "어진 사람이라면 저도 심복(心服)할 것이므로 자제처럼 가르칠 수 있겠으나, 어진 사람이 아니라면 형세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또 저 사람들이 '오례의주(五禮儀註)'를 고치려 함을 신이 듣고서 일을 일으킨 것이라고 염려하였습니다"고 하였다.
上曰: 遵先王之法而過者, 未之有也. 祖宗朝事, 間有可改之事, 然不至百倍, 則不如遵守也.
임금이 이르기를, "선왕의 법을 지켜서 잘못된 것은 없었다. 조종조의 일에도 이따금 고칠 만한 일이 있으나 고치는 것이 백배나 옳지 않으면 준수하는 이만 못하다"고 하였다.
光弼曰: 彼人議論方張, 故雖刑官, 不得自擅爲公事. 如全家入居之人, 不得放還, 古也, 而彼則論議而放還. 情雖有可哀, 法不可枉也. 宗親許通事, 彼人等亦欲啓之, 祖宗之不許通, 豈無深意乎.
정광필이 아뢰기를, "저들의 의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므로 형관(刑官)도 마음대로 공사(公事)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전가 입거(全家入居) 한 사람을 놓아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이 고례(古例)인데 저들은 논의해서 놓아 돌려보냈으니, 정상으로 보면 불쌍하나 법은 굽힐 수 없습니다. 종친을 허통(許通) 하는 일을 저 사람들도 아뢰고자 하였는데, 조종께서 허통하지 않으신 데에 어찌 깊은 뜻이 없겠습니까?"고 하였다.
上曰: 光祖等, 果欲爲善治, 而不計後弊, 至於過矣.
임금이 이르기를, "조광조 등은 과연 선치(善治)를 하고자 하였으나 뒷폐단을 생각하지 않아서 지나치게 되었다"고 하였다.
光弼曰: 光祖等, 以激濁揚淸爲事, 故人不敢異議, 靡然從之. 凡事可否相濟而後可也, 而或有異議者, 則必曰沮抑善類, 斥之矣. 如臣等, 何能裁抑乎.
정광필이 아뢰기를, "조광조 등은 악을 제거하고 선을 들어올리는 것을 일삼았으므로, 사람들이 감히 이의하지 않고 모두를 따랐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가부를 상의해야 옳겠으나 혹 이의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선류(善類)를 억지한다 하여 배척할 것인데 신 등으로서는 어떻게 제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였다.
長坤曰: 軍事在平時, 則不須議也, 然不可不慮後弊也. 今日大臣, 皆入侍, 議之何如.
이장곤이 아뢰기를, "군사는 평시에 있어서는 반드시 의논할 것 없으나, 뒷폐단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대신들이 다 입시(入侍)하였으니 의논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上曰: 軍務之事, 果可預講也.
임금이 이르기를, "군무의 일은 과연 미리 강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光弼曰: 軍務之事至重, 自上亦可知之. 經學雖本源, 軍機亦不可不預講也. 祖宗朝, 或親試射, 或遣大臣試射. 須如此可也.
정광필이 아뢰기를, "군무의 일은 지극히 중하므로 임금께서도 아셔야 합니다. 경학(經學)이 근본이기는 하나 군기(軍機)도 미리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종조에서는 친히 시사(試射)하거나 대신을 보내어 시사하게 하셨으니 그렇게 해야 합니다"고 하였다.
上曰: 試射事, 果如領議政所啓可也. 前日欲爲觀射, 適因災變停之矣.
임금이 이르기를, "시사의 일은 과연 영의정이 아뢴 바와 같이 하는 것이 옳다. 전일 관사(觀射)하려 하였으나 마침 재변 때문에 정지하였다"고 하였다.
光弼曰: 武士安能皆以洽於物望者用之. 其中稍可者, 用之可也. 成宗朝, 如陸閑者, 心類犬豕, 尙不棄而用之. 承旨之任, 非武士所爲之任, 而朝廷多疑而任之者, 以示武士勸勵之方也.
정광필이 아뢰기를, "무사(武士)는 어떻게 다 물망에 흡족한 자를 쓸 수 있겠습니까? 그 중에서 조금 괜찮은 자는 써도 됩니다. 성종조에서는 육한(陸閑)처럼 마음이 개돼지 같은 자도 버리지 않고 썼으며, 승지(承旨)의 직임을 무사가 할 수 없는 직임이고 조정에서 많이 의심하는데도 맡긴 까닭은 무사를 권려(勸勵)하는 방도였습니다"고 하였다.
李蘋曰: 臣在邊方三年, 詳見彼敵之勢, 甚難矣. 近者虜人, 掠去團鍊使軍卒, 而不興問罪之事, 彼敵狃以爲常, 患必復出矣. 固可問罪, 而近適年凶, 兵食不足, 故難擧耳. 閭延武昌來居彼人, 今且不禁, 則必如三浦之患. 議者以謂今欲逐之使還, 則如驚宿虎. 臣未知國家何以處之. 是亦大可慮也. 前日朴佺上疏, 欲擊三浦倭人. 其時朝廷以謂不可從之, 未久而亂作. 古云; 兵難遙度. 必目覩而後知之矣. 朴佺則居其道, 深知其情, 故欲早圖之, 而朝廷不知, 故不從耳. 西方之事, 臣亦詳知矣.
이빈이 아뢰기를, "신이 변방(邊方)에 3년 동안 있으면서 적의 형세를 보니 매우 어렵습니다. 근자에 노인(虜人)이 단련사(團鍊使)의 군졸을 약탈해 갔는데도 문죄하는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으니 적이 버릇이 되어 심상히 여겨 우환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본디 문죄할 것이나, 근래 흉년을 만나서 군량이 모자라므로 군사를 일으키기가 어렵습니다. 여연(閭廷)·무창(茂昌)에 와서 사는 저들을 이제 또 금하지 않으면 삼포(三浦)의 환난(患難)같이 될 것인데, 이것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지금 쫓아서 돌아가게 하는 것은 마치 자는 범을 놀라게 하는 것과 같다' 합니다. 신은 국가에서 어떻게 처리할는지 모르겠으나 이것도 크게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전일 박전(朴佺)이 상소(上疏)하여 삼포의 왜인을 공격하기를 바랐으나, 그때 조정에서는 '그 말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 하였는데, 얼마 안 가서 난이 일어났습니다. 옛말에 '군사란 멀리서 헤아리기 어렵다' 하였으니, 반드시 눈으로 보고서야 알 수 있습니다. 박전은 그 도(道)에 있어서 그 정상을 잘 알므로 일찍부터 도모하려 하였으나 조정에서는 모르므로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서방의 일은 신이 또한 잘 압니다"고 하였다.
上曰: 閭延武昌事, 前日於經筵累議之, 果不至滋蔓, 而除之可也. 然我國虛踈, 不可不計也. 且慶尙道監司, 當初不爲久任, 故分爲兩道, 及爲久任, 而又不合一, 似不可也. 久任則可合爲一監司也.
임금이 이르기를, "여연과 무창의 일은 전일 경연에서 여러 번 의논했거니와, 과연 더욱 성해지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허술함을 헤아리지 않아서는 안 된다. 또 경상도의 감사(監司)는 당초에 구임(久任)하지 않았으므로 두 도(道)로 나누었었으나, 구임하게 되어서도 하나로 합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 구임하면 합해서 한 감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光弼曰: 久任事, 已有成命矣, 然似有後弊矣. 臣初以爲不可者, 恐生後弊.
정광필이 아뢰기를, "구임의 일은 이미 성명(成命)이 계셨으나, 뒷폐단이 있을 듯합니다. 신이 처음부터 불가하다 한 까닭은 뒷폐단이 생길 듯하기 때문이었습니다"고 하였다.
詮曰: 久任事, 雖已有成命, 然至爲有弊. 世宗朝, 只設三年而還罷云. 今亦不至有弊, 而停之何如. 庶尹之設, 尤有弊.
김전(金詮)이 아뢰기를, "구임의 일은 설명이 계셨으나 매우 폐단이 있습니다. 세종조(世宗朝)에서도 다만 3년 동안 설행(設行)하였다가 도로 폐지했다 합니다. 이제도 폐단이 있기 전에 정지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서윤(庶尹)을 둔 것은 더욱 폐단이 있습니다"고 하였다.
於是左右皆陳其弊端, 上曰: 予意初以爲雖有小弊, 久任則好事必多, 祖宗朝, 亦有爲之, 故議于大臣而定之. 然今至於有弊而還革, 則宜及其未設而革之可也.
그래서 좌우가 다 그 폐단을 아뢰니, 임금이 이르기를, "내가 처음에, 작은 폐단은 있더라도 구임하면 좋은 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조종조에서도 하였으므로 대신에게 의논하여 정하였다. 그러나 이제 폐단이 있게 되어 도로 폐지한다면 설행하기 전에 폐지했어야 옳을 것이다" 하였다.
承旨金希壽曰: 今此日變, 不可指因某事而發也, 然凡天變, 或登時應驗, 或久而後應. 臣意以爲十五日之事, 甚非美事也. 自卽位以後, 凡事皆分明正大, 而只此事, 獨不分明, 甚不可. 臣雖迷劣, 居近密之地, 豈敢一日安寢乎. 光祖等本心, 公明之人也. 上若從容責其過誤之事, 則光祖等必服其罪矣, 而今者如亂臣告變之事, 而急迫治之, 人心蒼皇, 不知聖慮之何如. 天之示變, 恐或以此而致之. 自古變亂舊政者, 皆懷邪念, 欲成已事, 光祖等則專爲國事, 而至於竄逐, 故人不能無疑焉. 朝廷大臣,爫則已知上意, 外間年少之輩, 不知端倪, 皆以謂; 讒邪之人, 譖說于上, 斥逐正人, 危亡之勢, 朝夕必至, 安有如此可懼之事. 今雖百爲傳旨而下之, 何能曉解下人之心乎. 臣不敢望回天聽, 然上若已知其無他邪念, 稍減其罪何如. 卽位以後, 凡事皆分明正大, 而只此事, 獨不分明, 甚不可. 臣雖迷劣, 居近密之地, 豈敢一日安寢乎? 光祖等本心, 公明之人也. 上若從容責其過誤之事, 則光祖等必服其罪矣, 而今者如亂臣告變之事, 而急迫治之, 人心蒼皇, 不知聖慮之何如. 天之示變, 恐或以此而致之. 自古變亂舊政者, 皆懷邪念, 欲成已事, 光祖等則專爲國事, 而至於竄逐, 故人不能無疑焉. 朝廷大臣, 則已知上意, 外間年少之輩, 不知端倪, 皆以謂; 讒邪之人, 譖說于上, 斥逐正人, 危亡之勢, 朝夕必至, 安有如此可懼之事. 今雖百爲傳旨而下之, 何能曉解下人之心乎. 臣不敢望回天聽, 然上若已知其無他邪念, 稍減其罪何如.
승지(承旨) 김희수(金希壽)가 아뢰기를, "이번 일변(日變)이 어느 일 때문에 일어났다고 지적할 수는 없으나, 천변(天變)이란 곧 응험하기도 하고 오래 뒤에 응험하기도 하는데, 신은 15일의 일은 매우 아름답지 않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즉위하신 뒤로 모든 일에 다 분명하고 정대(正大)하셨으나, 이 일만은 분명하지 않으셨으니 매우 옳지 않습니다. 신이 미열(迷劣)하기는 하나 가까이에서 모시는 자리에 있으니 어찌 감히 하루라도 편히 잘 수 있겠습니까? 조광조 등은 본심이 공명한 사람들이니 임금께서 조용히 그 잘못한 일을 나무라셨으면 조광조 등이 저희 죄에 승복하였을 것인데, 이번에는 마치 난신(亂臣)의 고변(告變)에 관한 일처럼 급박하게 다스려서 인심이 당황합니다. 성려(聖慮)가 어떠하신지 모르겠으나 하늘이 재변을 보인 것은 이 때문에 생긴 일일는지도 모릅니다. 예전부터 구정(舊政)을 변란하는 자는 다 간사한 생각을 품고 제 일을 성취하려 하는 것이나, 조광조 등은 오로지 나라의 일을 위하였는데도 귀양가게 되었으므로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정의 대신들은 이미 임금의 뜻을 알고 있으나, 외간의 젊은 무리는 시말을 모르고 다들 '간사한 사람이 임금께 참소하여 바른 사람을 내쳐서 위망(危亡)의 형세가 조석간에 이를 것이다' 하니, 어찌 이와 같은 두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이제 백번 전지(傳旨)를 만들어 내리더라도 어떻게 아랫사람들의 의심을 풀 수 있겠습니까? 신은 감히 천청(天聽)을 돌이킬 것을 바라지 않으나, 임금께서 이미 저들에게 간사한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아신다면 그 죄를 조금 감해 주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참고)
이육사의 '강철로 된 무지개' 그 의미는?
역사학자인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이육사(李陸史)의 시를 잇따라 재해석하고 나서서 화제다. 특히 그는 육사의 대표시 '절정'의 마지막연 '강철로 된 무지개'를 둘러싼 국문학계의 오래된 논에 뛰어들어, 국문학계의 주류해석과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의열투쟁에 나섰던 이육사의 '강철로 된 무지개'는 과연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매운 季節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의 시 '절정(絶頂)'의 전문이다.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구조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연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는 육사의 시 중에서 가장 논쟁적인 구절이다. 이 결구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육사의 시 '절정'은 국문학사적 위치가 다르게 놓일 수 있다.
여기 한 역사학자가 기발한 논거를 제시하면서 육사의 시 '절정'을 다시 읽어내면서, 그 의미 지평을 심화하고 있다. 올봄 '역사비평' 114호(2016년 봄호)에 "육사의 '청포도' 재해석 ― '청포도'와 '청포(靑袍)', 그리고 윤세주"를 발표했던 도진순 창원대 교수(사학과)다.
그는 최근 발간된 '민족문학사연구' 통권 60호에 논문 육사의 '절정'을 특별기고 형식으로 발표했다. 27쪽 분량의 이 논문에서 도 교수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에 대한 그간의 다양한 견해를 살펴보고, 어느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다음 몇 가지를 논증했다.
첫째, '강철로 된 무지개'가 일반적인 채색 무지개가 아니라 荊軻가 진시황을 암살하려 할 당시 나타났다는 '白虹貫日'의 '흰 무지개'에서 비롯됐다.
둘째, 이러한 '흰 무지개'는 전통 사회에서 반역과 불길의 징조였지만, 일제 식민지하 독립운동에서는 윤봉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義烈 투쟁의 상징이 됐다.
셋째, 1918년 일본에서 유명한 '白虹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육사는 '흰 무지개'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서 '강철로 된 무지개'로 표현했다.
그간 '강철로 된 무지개'에 대한 국문학계의 주류적 해석은 예이츠(W.B.Yeats)의 비극적 환희(tragic joy)에서 차용한 '비극적 황홀(tragic ecstasy)'이었다.
도 교수는 이에 대해 "그러나 이것은 죽음과 수난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의열투쟁을 적극 지지하던 육사와 '절정'의 시세계와는 맞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그것은 예이츠가 '1916년 부활절'에서 제국의 끔찍한 탄압에 의해 오히려 독립의지가 강화되는 '끔찍한 아름다움(terrible beauty)'과 비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 교수의 논문 주요 부분을 발췌했다.
B.C227년, 드디어 형가는 진나라로 가게 되는데, 국경 가까이 있는 易水에서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사기'의 '자객열전'과 '전국책'이 전하는 이수의 이별 장면은 눈에 잡힐 듯 생생하며 장엄하기 그지없다.
이수 강변에서 이별의 의식이 행해지는데, 형가가 노래를 두 번 부른다. 이수의 이별 현장에서 형가가 두 번 부른 노래를 후에 '易水歌'라 하는데, 15자의 짧은 2구이지만 꾸밈이 없고 비장하기 그지없다. "바람은 쓸쓸하고 이수 강물은 차구나(風蕭蕭兮易水寒),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壯士一去不復還)."
그런데 '사기' '추양열전'에는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러 갈 당시 하늘에서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다(白虹貫日)'는 묘사가 있다. 이로부터 형가의 외침(노래)이 하늘로 기운이 뻗어 흰 무지개가 돼 해를 찔렀다는 고사(故事)가 됐다. 여기서 해는 진시황 같은 군주를, '흰 무지개'는 그를 찌르는 검(劍)을 의미한다. 형가로 해서 '易水送別', '白虹貫日' 등 많은 고사성어가 탄생했다.
'흰 무지개(白虹)'는 '荊攝'에서 비롯돼 국가적 변란의 상징으로 시와 문학은 물론 천문현상에 대한 기록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물론 대부분 불온한 흉조의 상징이다. 태평한 시기에는 白虹이 불길한 징조지만, 폭군 치하의 난세에는 희망과 변화의 상징이다. 결국 백홍을 어떻게 보는가가 그 시대를 보는 척도가 된다.
독립운동의 최대 목표는 식민 권력을 무너뜨리고 조국의 독립 해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식민지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에게 '흰 무지개'나 그 원조인 형가는 의열 투쟁의 대표적 상징이 됐다. 그 단적인 예가 윤봉길 의사다.
윤 의사는 1930년 3월 6일 23세의 젊은 나이로, 둘째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독립 투쟁의 꿈을 안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망명길에 오르면서 그가 남긴 유묵은 '장부가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丈夫出家生不還)'였다. 이 구절이 다름 아닌 형가의 '이수가' 중에서 비롯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화답하듯, 미주 지역 독립운동 신문인 '신한민보'의 주필 洪焉은 윤봉길의 의거를 '이수의 비가는 지기의 노래(易水悲歌知己音)'라는 구절로 찬양했다.
이처럼 '형가', '이수가', '흰 무지개' 등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항일 의열투쟁의 상징이었다. 일제의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서리빨 칼날진 그 위에' 서서 육사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한 '강철로 된 무지개'는 바로 이러한 무지개, 즉 검의 기세로 해를 찌르는 '흰 무지개'였다. 물론 여기서 해(日)는 일제(日帝)다.
육사는 일제 치하에서 불온과 불길을 상징하는 검(劍)의 흰 무지개를 환호하면서 은밀하게 표현했다. '절정'과 같은 해에 발표한 '西風'을 보자.
형가의 '이수가'가 스산한 강바람에서 시작하듯, 이 시도 '서리 빛을 함복 띠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스산한 서풍으로 시작한다. 시의 중심은 '서리 빛', '갈대꽃 하얀 위'로 상징되는 '흰 무지개'다.
그 흰 무지개를 품은 서풍이 하늘에서 내려와 형가와 같은 壯士의 칼집에 스며들어 검과 결합해 고향으로 돌아오자, 뭔가 큰 사건이 터질 듯 젊은 과부의 뺨은 하얗게 질리고, 대밭의 벌레들이 소란스럽게 울어댄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이처럼 '회한'의 정한을 '사시나무 잎처럼 흔드는' 그 서풍이 불어오면 '불길할 것 같아' 좋다는 것이다. 이 '서풍'은 다름 아닌 육사가 사모한 '백홍관일' 즉 '강철로 된 무지개'의 또 다른 표현이다.
지금까지도 '강철로 된 무지개'에 대한 주류적 해석은 김종길이 예이츠의 '비극적 환희'를 차용한 '비극적 황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비극적 환희'가 예이츠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김종길은 그것을 죽음의 비극 앞에서도 초연한 경우로 해석해, 1910년 한일병합에 자결하는 매천 황현, 1944년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는 육사, 1945년 후쿠오카 감옥에서 순국하는 윤동주 등의 시 세계를 '비극적 황홀'로 설명하면서, '절정'의 '강철로 된 무지개'를 그러한 '비극적 황홀'로 해석했다.
그러나 '강철로 된 무지개'는 비극이나 죽음을 초연한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비극적 환희'나 '비극적 황홀'과는 분명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제의 '겨울'과 '매운 계절의 채찍'에 맞서는 장렬한 투쟁 선언이다.
형가가 '이수가'를 부를 때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이 솟구치는' 강개한 아름다움을 느낀 것이나, 아우 이원조가 '절정'을 육사의 '楚剛'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절정'의 최후, 최고의 문제는 마지막 구절에서 '겨울'과 '강철로 된 무지개' 사이의 관계지음이다. 여기서 '겨울'은 이제의 엄혹한 탄압을 상징하며, '강철로 된 무지개'는 이에 대한 강개한 의열 투쟁으로 서로 적대적 대치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사는 둘 사이를 '~는'을 사용해 등치 관계로 표현했다. 즉 '겨울에도 강철로 된 무지개가 뜬다'는 식이 아니라, '겨울'이 곧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역설적 모순어법(oxymoron)이다. 바로 이 결구의 모순어법이 예이츠의 시 '1916년 부활절'에 나오는 유명한 모순어법인 'terrible beauty'에 비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이츠는 '그레고리 여사에게 보낸 서신'에서 1916년 부활절에 대한 시를 쓸 것이라면서, 이미 '무서운 아름다움이 태어났다(A terrible beauty is born)'는 표현을 사용했다. 즉 먼저 이 구절을 시의 핵심으로 생각하고, 시를 집필했다. 그리하여 이 구절은 '1916년 부활절'에서 가장 중요한 후렴구가 됐다. 이 시는 그의 시 가운데 드물게 현실에 밀착한 시이며, 특히 'terrible beauty'가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이츠와 육사는 유사한 점도 있지만 차이도 적지 않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역시 식민 현실에 대한 대응이다. 예이츠의 시 세계가 대개 아일랜드 독립 투쟁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초연한 입장에 있었다면, 육사는 적극적으로 투쟁에 참가하고자 했다. 따라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를 예이츠 시에 많이 나타나는 '비극적 환희(tragic joy)'와 구별해, 보다 특별하게 사용된 'terrible beauty'와 비교하는 것이 더 타당하고 생각한다.
예이츠의 '1916년 부활절'이 식민적 일상에서 시작해 'terrible beauty'로 귀결됐다면, '절정'은 식민 권력의 채찍에 쫓기는 被動에서 시작해 이에 맞서는 能動의 선언인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로 끝난다. 매서운(terrible) 추위의 겨울은 그 맞대응인 아름다운(beauty) '강철로 된 무지개'를 불러오지 않을 수 없다는 terrible beauty, 그것으로 '절정'은 마무리된다.
陸史는 '戮史'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그냥 대륙의 역사가 아니라, 그것을 '베어버린다' 또는 '새로 쓴다'고 해야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육사가 당시 지배적인 담론과 개념을 베어내고 顚覆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점에 각별하게 유의하지 않으면 육사를 다시 물구나무 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흰 무지개'를 발견하고도 그것을 '절망의 노래'라고 한 것이나, 청포의 '靑袍'를 '귀의한 자들이 입는 복장'으로 본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靑袍'에서 보듯이 육사는 자신이 존경하는 두보의 시어마저 혁명적인 의미를 새롭게 부여했다.
'강철로 된 무지개'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의 장구한 역사에서 '흰 무지개'는 대개 '불온의 상징'이었다. 그는 해박한 안목으로 '흰 무지개'의 원천으로 올라가 그 건강성을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권력에 의해 전복된 이미지를 다시 전복시키고자 한 것이다.
변혁을 마다하는 권력 주도의 넓고도 긴 역사를 베어내는 절창이 바로 '강철로 된 무지개'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강철로 된 무지개'야말로 '戮史' 또는 陸史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다.
'절정'의 절정은 역시 '강철로 된 무지개'가 '겨울'과 결합한다는 데 있다.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희망 또는 투쟁과 짝하는 terrible beauty가 돼, 매운 계절인 겨울마저도 다시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강철로 된 무지개'야말로 오색영롱한 그 어떤 채색 무지개보다 아름다운 무지개가 아닌가? 우리 국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무지개가 아닐까?
▶️ 白(흰 백)은 ❶상형문자로 햇빛이 위를 향하여 비추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희다, 밝다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白자는 '희다'나 '깨끗하다', '진솔하다' 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白자는 촛불을 그린 것으로 해석한다. 갑골문에 나온 白자를 보면 타원형 중심에 획이 하나 그어져 있는데, 이것은 촛불의 심지와 밝게 빛나는 불빛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白자는 '밝다'나 '빛나다' 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白자는 그동안 다양하게 해석되곤 했다. 손톱이나 쌀알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갑골문에서 白자가 '밝다'나 '빛나다' 라는 뜻으로 쓰인 것을 보면 본래는 촛불을 그렸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白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주로 모양자로만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白(백)은 (1)백색(白色) (2)백지 (3)백군(白軍) (4)성(姓)의 하나 (5)백국(白國). 곧 벨기에 등의 뜻으로 ①희다 ②깨끗하다 ③분명하다, 명백하다 ④진솔하다 ⑤밝다, 밝아지다 ⑥빛나다 ⑦비다, 가진 것이 없다 ⑧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탄핵하다 ⑨흘겨보다, 경멸하다 ⑩흰빛 ⑪백발(白髮) ⑫대사(臺詞) ⑬술잔 ⑭비단(緋緞), 견직물(絹織物) ⑮볶은 쌀 ⑯소대(小隊: 군대 편성 단위의 하나) ⑰거저, 대가(代價) 없이 ⑱부질없이, 쓸데없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흴 고(暠), 흴 호(皓), 밝힐 천(闡),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검을 흑(黑)이다. 용례로는 흰 눈을 백설(白雪), 희고 깨끗한 이를 백치(白齒), 빛깔이 흰 종이를 백지(白紙), 흰 빛을 백색(白色), 대낮을 백주(白晝), 흰 빛깔의 기를 백기(白旗), 죽은 사람의 살이 다 썩고 남은 뼈를 백골(白骨), 늙은이를 백수(白叟), 하얗게 센 머리털을 백발(白髮),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함을 고백(告白), 의심할 것 없이 아주 뚜렷하고 환함을 명백(明白), 깨끗하고 흼 또는 죄가 없음이나 공명정대함을 결백(潔白), 혼자서 중얼거림을 독백(獨白),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음을 공백(空白), 스스로의 죄를 고백함을 자백(自白), 검은빛과 흰빛으로 잘잘못이나 옳고 그름을 흑백(黑白), 종이 따위의 글자나 그림이 있는 이외의 빈 부분을 여백(餘白), 죽어도 잊지 못할 큰 은혜를 입음이란 뜻으로 남에게 큰 은혜나 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을 표시하는 말을 백골난망(白骨難忘), 대낮에 꾸는 꿈이라는 뜻으로 실현될 수 없는 헛된 공상을 이르는 말을 백일몽(白日夢),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을 일컫는 말을 백안시(白眼視),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 또는 멀리 떠나온 자식이 어버이를 사모하여 그리는 정을 이르는 말을 백운고비(白雲孤飛),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면서생(白面書生), 아무 것도 없거나 모르는 상태를 일컫는 말을 백지상태(白紙狀態), 예로부터 흰 옷을 숭상하여 즐겨 입은 한민족을 이르는 말을 백의민족(白衣民族), 벼슬이 없는 사람으로 군대를 따라 싸움터에 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의종군(白衣從軍),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눈 깜박할 사이라는 뜻으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감을 이르는 말을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모래와 푸른 소나무라는 뜻으로 흰 모래톱의 사이사이에 푸른 소나무가 드문드문 섞여 있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말을 백사청송(白沙靑松), 아무 것도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백수건달(白手乾達), 서로 백발이 되기까지 사귀어도 마음을 알지 못하면 새로 사귄 것이나 같다는 뜻으로 친구가 서로 마음을 몰랐던 것을 사과하는 말을 백두여신(白頭如新),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말로 억지 논리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백마비마(白馬非馬), 믿을 만한 출처나 자료를 가지고 하는 선전을 일컫는 말을 백색선전(白色宣傳), 흰 옥이 흠이 없다는 뜻으로 결점이 전혀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백옥무하(白玉無瑕) 등에 쓰인다.
▶️ 虹(무지개 홍, 어지러울 항, 고을 이름 공)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벌레 훼(虫;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하늘'의 뜻(空)을 나타내기 위한 工(공)으로 이루어지며, 하늘에 걸리는 '벌레'의 뜻이다. 옛 사람은 무지개를 용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虹(무지개 홍, 어지러울 항, 고을 이름 공)은 (1) '무지개 홍'의 경우는 ①무지개 ②무지개 다리 ③기름접시 ④채색(彩色)한 기(旗) ⑤(양기가 음기를) 공격하다(攻擊--) 등의 뜻이 있고, (2) '어지러울 항'의 경우는 ⓐ어지럽다 ⓑ어지럽히다 등의 뜻이 있고, (3) 고을 이름 공의 경우는 ㉠고을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霓(무지개 예, 무지개 역) 등이다. 용례로는 무지개를 달리 일컫는 말을 홍예(虹霓), 무지개를 달리 일컫는 말을 채홍(彩虹), 무지개를 달리 일컫는 말을 분홍(雰虹), 빛깔이 흰 무지개를 백홍(白虹), 무지개처럼 굽은 다리를 홍잔(虹棧), 기다란 무지개 또는 기다란 다리를 장홍(長虹), 홍예다리로 양쪽 끝은 처지고 가운데는 높여서 무지개처럼 만든 둥근 다리를 홍교(虹橋), 아침에 서쪽에 서는 무지개를 조홍(朝虹), 무지개가 나타남 또는 나타난 무지개를 유홍(流虹), 상서롭지 아니한 무지개를 음홍(淫虹), 빛이 붉은 무지개를 적홍(赤虹), 안구의 각막과 수정체 사이에 있는 고리 모양의 얇은 막을 홍채(虹彩), 무지개와 같은 중이라는 뜻으로 미천한 출신의 후궁 소생으로서 중이 된 왕자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홍사미(虹沙彌),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다는 뜻으로 정성에 하늘이 감응하다 또는 임금의 신상에 위해가 닥치다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백홍관월(白虹貫月) 등에 쓰인다.
▶️ 貫(꿸 관, 당길 만)은 ❶형성문자로 毌(관)과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조개 패(貝; 돈, 재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꿰뚫는다는 뜻을 가진 毋(관)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끈으로 꿴 돈이라는 뜻이 전(轉)하여, 금전이나 무게의 단위, 또는 '꿰뚫는다'는 뜻이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貫자는 '꿰다'나 '뚫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貫자는 毌(꿰뚫을 관)자와 貝(조개 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毌자는 물건을 고정하기 위해 긴 막대기를 꿰뚫은 모습을 그린 것으로 '꿰뚫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본래 '꿰다'라는 뜻은 毌자가 먼저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구멍에 줄을 엮어 쓰는 엽전이라는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소전에서는 毌자에 貝자를 결합한 貫자가 '꿰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貫(관)은 (1)쾌 (2)무게의 단위(單位)의 하나 (3)본관(本貫) 등의 뜻으로 ①꿰다 ②뚫다 ③이루다 ④달성(達成)하다 ⑤섬기다 ⑥통과(通過)하다 ⑦익숙하다 ⑧이름을 열기한 문서(文書) ⑨조리(條理) ⑩돈꿰미 ⑪명적(名籍: 이름 문서) 그리고 ⓐ당기다(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꿸 관(串), 통할 철(徹)이다. 용례로는 꿰뚫는다는 뜻으로 학문에 널리 통함을 관천(貫穿), 자신의 주장이나 방침을 밀고 나가 목적을 이룸을 관철(貫徹), 행동에 따른 위엄이나 무게를 관록(貫祿), 화살이 과녁 복판에 맞음을 관중(貫中), 꿰뚫어 통함을 관통(貫通), 꿰뚫어 흐름을 관류(貫流), 꿰뚫어 들어감을 관입(貫入), 말린 청어를 관목(貫目), 본적지를 이르는 말을 관적(貫籍), 시조의 고향을 관향(貫鄕), 시조의 고향을 본관(本貫), 시조가 난 곳을 향관(鄕貫), 고향이 같음을 동관(同貫), 관향을 바꿈을 개관(改貫),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주의나 방법으로 계속함을 일관(一貫), 경서 따위의 책을 감독하여 익힘을 강관(講貫), 뚫어서 통함을 통관(洞貫), 활을 쏠 때에 잇달아 과녁을 맞힘을 연관(連貫), 구멍 뚫린 엽전을 꿰어 한 뭉치로 만듦을 작관(作貫), 적의 진지로 돌격하여 들어감 또는 단숨에 일을 완성 시킴을 돌관(突貫), 가로 꿰뚫거나 자름을 횡관(橫貫), 교차하여 관통함을 교관(交貫), 처음에 세운 뜻을 이루려고 끝까지 밀고 나감이나 처음 품은 뜻을 한결같이 꿰뚫음을 일컫는 말을 초지일관(初志一貫),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었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을 이르는 말을 일이관지(一以貫之),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관철함을 이르는 말을 시종일관(始終一貫),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일을 해 나감을 이르는 말을 수미일관(首尾一貫), 조리가 일관하여 계통이 서 있음을 이르는 말을 맥락관통(脈絡貫通), 환하게 통하여 이치를 깨달음을 이르는 말을 활연관통(豁然貫通) 등에 쓰인다.
▶️ 日(날 일)은 ❶상형문자로 해를 본뜬 글자이다. 단단한 재료에 칼로 새겼기 때문에 네모꼴로 보이지만 본디는 둥글게 쓰려던 것인 듯하다. ❷상형문자로 日자는 태양을 그린 것으로 '날'이나 '해', '낮'이라는 뜻이 있다. 갑골문은 딱딱한 거북의 껍데기에 글자를 새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둥근 모양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日자가 비록 네모난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래는 둥근 태양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갑골문에 나온 日자를 보면 사각형에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을 두고 태양의 흑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먼 옛날 맨눈으로 태양의 흑점을 식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日자는 태양과 주위로 퍼져나가는 빛을 함께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태양은 시간에 따라 일출과 일몰을 반복했기 때문에 日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시간'이나 '날짜' 또는 '밝기'나 '날씨'와 같은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日(일)은 (1)일요일(日曜日) (2)하루를 뜻하는 말. 일부 명사(名詞) 앞에서만 쓰임 (3)일부 명사(名詞)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날의 뜻을 나타내는 말 (4)날짜나 날수를 셀 때 쓰는 말 (5)일본(日本)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날 ②해, 태양(太陽) ③낮 ④날수 ⑤기한(期限) ⑥낮의 길이 ⑦달력 ⑧햇볕, 햇살, 햇빛, 일광(日光: 햇빛) ⑨십이장(十二章)의 하나 ⑩나날이, 매일(每日) ⑪접때(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 앞서, 이왕에 ⑫뒷날에, 다른 날에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달 월(月)이다. 용례로는 그 날에 할 일을 일정(日程), 날마다를 일상(日常), 날과 때를 일시(日時), 하루 동안을 일간(日間), 해가 짐을 일몰(日沒), 해가 돋음을 일출(日出), 그 날 그 날의 당직을 일직(日直), 직무 상의 기록을 적은 책을 일지(日誌), 하루하루의 모든 날을 매일(每日), 날마다 또는 여러 날을 계속하여를 연일(連日),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일을 쉬고 노는 날을 휴일(休日),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축하할 만한 기쁜 일이 있는 날을 가일(佳日), 일본과 친근함을 친일(親日), 일본에 반대하여 싸우는 일을 항일(抗日),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을 당일(當日), 일정하게 정해진 때까지 앞으로 남은 날을 여일(餘日), 날마다 내는 신문을 일간지(日間紙), 일상으로 하는 일을 일상사(日常事), 날마다 늘 있는 일이 되게 함을 일상화(日常化),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뜻으로 학업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진보함을 이르는 말을 일취월장(日就月將),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이미 늙어 앞으로 목적한 것을 쉽게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을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막힌다는 뜻으로 늙고 병약하여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모도궁(日暮途窮),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무언가 바라는 마음이 세월이 갈수록 더해짐을 이르는 말을 일구월심(日久月深), 한낮에 그림자를 피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중도영(日中逃影), 해가 서산에 가깝다는 뜻으로 나이가 들어 죽음이 다가옴을 이르는 말을 일박서산(日薄西山), 같은 날의 두 번의 만조 또는 간조의 높이가 서로 같지 않은 현상을 일컫는 말을 일조부등(日照不等), 날로 달로 끊임없이 진보 발전함을 일컫는 말을 일진월보(日進月步),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점차 이지러짐을 일컫는 말을 일월영측(日月盈昃), 날마다의 생활을 이르는 말을 일상생활(日常生活), 해와 달과 별을 일컫는 말을 일월성신(日月星辰), 아침 해가 높이 떴음을 일컫는 말을 일고삼장(日高三丈), 항상 있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일상다반(日常茶飯),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말을 일취월장(日就月將),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말을 일구월심(日久月深)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