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잊혀진 세계 .1
이번에야말로 깨어난다면 천국과 지옥 둘중에 하나일거라 생각했다.
정신을 잃었을때 마지막이란 생각도 들었었고 굳이 다시 살아날 이유도 미련도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살았다면 눈앞에 닥친 용에게서 벗어나려 골머리를 썩을테고 또, 우연을 가장하여 집으로 도망친다 하여도 원하지 않은 결혼에 골머리를 썩어야 할 터였다. 그래 차라리 다행이야.
스르륵 천천히 눈을 뜨고본 하늘은 정말이지 눈이 부시도록 맑고 깨끗한 푸른색 이었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콧속을 감미롭게 자극하는 달콤한 꽃향기. 이곳은 천국일게 분명했다. 어렸을적부터 딱히 나쁜짓을 저질러본적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지도..
"일어났어?"
"......."
"그대로 죽은줄 알았어."
하지만 조금 의아한건 천국이 살아있던 현실과 조금도 다른점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릴적 책에서 본 천국은 저 푸른하늘에 떠다니는 뭉게구름 속에 있다고 적혀있었는데 자신이 누워있는 곳은 책에서 읽은 천국과 너무 다른곳이었다. 일단 손을 뻗어도 저 푸른하늘에 닿을수조자 없는 먼 거리에 존재하는 공터 였다는 점이 다르고, 또 하나는 하얀 날개를 퍼덕이며 훨훨 날아다니는 천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천사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거야? 그러면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한 낙원은?
하긴.. 삶을 뒤로하고 죽음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이 무슨수로 글로 남겼겠는가. 아마 작가가 책으로 쓴 천국은 이럴것이 라는 작가의 상상속에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뭐, 아무러면 어떠한가. 비록 천국에 천사도 없고 작가가 말한 남녀노소 누구나 할거없이 평당하고 공평한 세계조차 아닐지라도 상관없었다. 이곳엔 더이상 자신을 괴롭힐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 사실 만으로도 비아는 충분히 만족하며 미소지을수 있었다.
"빨리 일어나. 칼에게 가야돼."
그래도 조금 지루할수는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늘 지금처럼 천국은 충분히 아름다울 테지만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같이 웃으며 대화할 사람도 없고, 외로울때면 혼자 떠들고 노래를 불러야 되는 상황 이었다. 음.. 그건 좀 많이 쓸쓸한데? 생각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이곳에 잘 적응하고 살아갈지 의문이었다. 지금 이라도 다른 영혼을 찾아봐야 되나?
"..계속 그러고 있을거야? 하.. 그냥 잡아 먹어 버린다?"
제길, 더이상 무시할수 없는 말이었다.
천국에 어떻게 적응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비아는 서슬퍼런 차가운 목소리에 그만 상상에서 깨어나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안 잡아먹는다며? 언제는 본인 입으로 사람을 왜 잡아먹냐고 물어본 주제에 저가 없는 존재인듯 재차 무시하자 협박으로 바뀌는 모습이 어이없었다. 물론 그 협박은 무시무시한 용에 비해 한낱 인간인 자신에게 잘 먹혀들어갔지만. 에휴 내 팔자야. 비아는 기분이 상당히 나빠보이는 용 몰래 조용히 한숨 쉬었다.
"깨어났으면서 왜 안일어 난거야?"
"..그냥요. 몸에 힘이 없어서."
사실은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는게 마음이 편해서요 라는 말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말한다면 친절한 저 용이 그렇구나 납득 하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찢어죽일지도 몰랐다. 암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용이었다.
비아가 혼자 생각하고 혼자 납득하고 있을때 용은 비아의 대답을 듣고 무언가를 찾으려 공터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뭐 하는거지? 생각을 마친 비아는 공터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을 헤집고 다니는 용의 이상 행동을 조용히 관찰했다. 아이고 불쌍한 꽃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자신이 비록 꽃에 관심은 없었지만 마구마구 밟히고 뽑히는 꽃들의 모습에 안쓰러움부터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용에게 그만하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거다."
그리고 드디어 용이 꽃을 헤집는 이상 행동을 멈추고 무언가를 들어올렸을때 비아는 그 무언가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윽. 저.. 저게 뭐야? 용이 검은 흙을 털면 털수록 들어나는 무언가의 뿌리 모습에 먹은게 없는 속에서 토기가 치밀었다. 저것으로 무얼 할려고 하는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았다. 용은 칭찬받고 싶은 어린아이 같이 밝게 미소지으며 흙을 깨끗히 털어낸 그 무언가를 비아에게 건냈다.
"하하하 이..이게 무슨?"
"먹어. 몸의 힘이 없다며? 그거 몸에 좋은거야."
'이런 미친!!!!!!'
용이 건낸것의 이름은 알수없었지만 끔직한 꽃종류중 하나라는건 알수 있었다. 그래 꽃. 짙은 검붉은 색의 꽃은 피어난 꽃깊 만큼은 양호했지만 문제는 땅속에 모습을 감췄을 끔직한 뿌리에있었다. 갓난 아기의 통통한 손이 여기저기 뻗어난듯한 검은 뿌리의 줄기. 그래 여기까진 이해할수 있었다. 땅속에 깊숙히 박혀 있어야 자랄수 있을테니. 하지만 그 아기의 손 같은 검은 줄기는 무언가를 관통해 돋아나 있었다.
그 무언가는 다름아닌.. 쥐. 말그대로 뿌리 줄기보다 거 시커먼 털이 나있는 죽은쥐 말이다. 비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끔지한걸 건내받고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어머니. 죽은쥐의 거친 털 촉감이 손에서 그래도 전해졌다. 위기를 넘으면 더한 위기가 찾아오고.. 차라리 지금이라도 죽여달라고 하는것이 신상에 더 이로운 일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끔직한 것을 건낸 용은 어서 먹으라고 천진난만한 눈동자로 비아를 바라보았다. 비아는 빠른 결단을 내렸다. 비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꽃뿌리를 드레스 속에 감추었다.
"하하하 나중에 먹을께요 나중에."
"안돼 얼른 먹어. 우리 지금 칼에게 빨리 가야된다 말이야."
칼에게 가는것에 어째서 제가 포함된 건가요? 일단 이건 재쳐두고 품속에 느껴지는 감촉에 진저머리 친 비아는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지금 생각보다 괜찮아요. 정말 정~말 극한까지 몸에 힘이 없을때 먹을께요. 이건 일단 아까우니 마음속(?) 싶이 간직하고.."
"정말 괜찮아?"
비아는 재차 물어오는 용의 말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먹기 싫다는 표정은 싸악 지운채 미소로 얼버부렸다. 용은 그런 비아의 모습이 믿음은 안가지만 상관은 없는 모양 이었다. 헉.. 헉.. 그 이후에 뿌리에 관심을 끊은 용의 표정에 비아는 마음속으로 할렐루야를 외쳤다. 그나저나 품속에 자신을 주장하는 이 끔직한걸 어디에다 버리냐가 광건이었다.
음?
용은 어느새 비아에게 관심을 끊고 자신이 무언가를 찾기위해 헤집어 놓은 공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끼는 곳인가? 공터는 너무 헤집은 탓에 엉망진창 이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용의 얼굴에 허망함이 깃들어 보이자 비아는 저가 그러라고 한적도 없는데 괜히 미안함이 먼저 들었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용은 자신을 잡아먹지도 않았고 물속에서도 구해준 존재였다. 그리고 폭포 주위에서 추위에 지쳐 정신을 잃었을 때에도 이곳까지 옮겨 살린것도 눈앞에 용인 것이 분명했다.
용은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했는데.. 지금도 솔직하게 대답하기 싫어 몸에 힘이 없다 거짓말을친 자신을 위해 꽃을 찾아주지 않았는가. 물론 그 모양이 조금 많이 끔찍하긴 해도. 용은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다시 깨어났을때 차라리 자신이 죽은 상태이길 바랬던것이 너무 못나 보였다. 용을 다시 마주할바에 천국이라 생각하는게 나았던 방금전 자신이 용에게 너무 부끄러워서.. 방금전도 꽃을 먹을바에 죽는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자시는 딱히 나쁜짓을 저질러본적 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던 자체로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 이었다.
"..다시 원래대로 못돌려놔요?"
"응. 시간은 못 돌리니까. 언젠가 제 모습을 다시 갖추겠지."
아끼는곳 맞구나.
"미안해요."
비아는 조용히 사과를 건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살려주셔서."
또 물속에 빠지고 살아났을때 했어야 했던 말을 이제야 고개숙여 인사했다. 그땐 숲도 무섭고 물에빠진데가 무시무시한 용앞에 섰다는것 자체에 정신이 없어 하지 못한 말이었다. 사과하는 방법과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되는지 잘 모르는 나이였지만 비아는 마음속 말을 꺼내고 나서야 조금 편안한 얼굴로 웃을수 있었다.
하지만 사과와 고맙다는 말을 들은 용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용도 어색한것을 느끼는가 싶었지만 조금 달랐다. 용은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우와.. 정신잃기전에도 참 아름답게 생긴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웃으니 이 얼굴이야 말로 천사가 따로 없었다.
"인간 네 이름이 뭐야?"
그래도 용이 자신의 이름을 물어볼줄은 몰랐는데 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비올라 쿠릴렌코. 마을 사람들과 엄마는 '비아' 라고 애칭으로 불러요."
비올라 쿠릴렌코. 비아.. 비아. 용은 비아에게 이름을 듣고 한참을 그 이름을 되새기듯 중얼 거렸다. 아.. 뭐지? 용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계속해서 나오자 비아는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너무 쑥스러워서 어떻게 반응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용님은요?"
"나? 그냥 네가 아무거나 정해서 불러. 난 어떤 걸로도 불렸으니까."
그런게 어디 있습니까. 그냥 용이라 부를까 보다. 어?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라는 생각은 기대로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용의 얼굴에 머리속 깊은곳에 집어 넣었다.
새카만 검은 머리카락. 하얀 피부. 보라색 눈동자. 용의 겉모습에 특징을 살려 이름을 지을려 해도 딱히 생각나는 이름은 없었다. 아니, 이렇게 급하게 짓는것 자체가 문제 있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부터 용님 용님 할수는 없으니까.. 비아는 단어 하나하나 떠올리다 딱 생각나는 이름을 말했다.
"크로셀!!"
"뭐?"
"[크로셀] 이요! 와! 이 이름 진짜 딱이다!"
왜 이 이름이 갑자기 떠오른건지 모르겠지만 막상 불러보니 용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 이었다. 비아는 그이름으로 정한 자신이 대견해 웃음을 터트렸다. 크로셀. 크로셀. 예쁜 이름이다. 그러나 언젠가 어디에서 들어봤던 이름이란 것인지도 모르고 비아는 마냥 신이나 용에게 앞으로 크로셀이라 부르겠다 소리쳤다.
하지만 막상 그이름을 들은 용의 표정은 많이 미묘했다. 어떻게 보면 놀라운 표정인것도 같았고 또는 기쁜것 같이 보이면서도 흔들리는 보라색 눈동자가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내 이름은 크로셀. 이제 그렇게 불러."
아주 먼 훗날. 비아는 용에게 이 이름을 지어준것을 두고두고 크게 후회하게 된다. 그 이름은 누군가에 middle name 즉 중간 이름이였고 그 마저도 무거웠던 과거의 잊혀진 잔재로 새겨진 이름 이었다.
지금 이순간 용에게 이름을 정해준것만이 마냥 기쁜 자신은 미래의 일들을 알 도리가 없지만 먼 미래에 이름의 의미를 안채로 시간이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이 이름을 정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고 용, 크로셀의 말대로 시간을 돌릴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난 널 처음 만났던 그날을 후회해본적 없어.'
"알고있어."
"네?"
"..아니야. 아무것도."
크로셀이 손을 뻗어 비아의 작은 손을 잡고 이끌었다.
"어디 가요?"
"숲 밖으로. 칼에게 가야지."
"어? 잠깐! 잠깐만요!"
"안돼. 얼른가자 비아."
칼이 도대체 누군데요! 라고 물어보지만 숲밖으로 향하는 크로셀의 발걸음은 멈추어 지지 않았다. 그리고 크로셀 손에 잡혀 끌려가는 비아 역시 크로셀을 따라 발걸음을 쉴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발걸음을 맞춰 시야에 들어난 나무들이 휙휙 지나가고 이어코 무섭게만 느껴졌던 숲속이 점점 멀어져 갔다. 진짜 많이 무서웠는데.. 슬쩍 돌아본 숲 뒤편으로 점점 작아지는 빈 공터가 보였다. 어두운 숲속 안 유일하게 따뜻한 햇빛이 드러난 빈 공터. 거기에 피어난 이름모를 수많은 꽃들. 마치 누군가 정성들여 가꿔놓은 화원처럼 보이는 저 곳이 유일하게 눈에 밟혔다.
이대로 숲을 빠져 나간다면 저 곳을.. 다시 볼수 있게 될까? 아마도 아니겠지. 그래서 비아는 시커먼 나무에 가려져 공터가 더이상 보이지 않을때까지 지켜보았다. 그건 비아가 나름 할수있는 마지막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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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정신 없이 써서 제가 생각한대로 적힌건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확인 해야되는데.. 겨울잠은 무섭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