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내린 둑길을 걸어
지난 주말 이틀은 가을답게 쾌청한 하늘에 선선한 날씨였다. 이어진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 월요일은 흐려지더니 늦은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봄가을 우리나라 상공 기단 배치는 이동성 고기압이 지나면서 때때로 뒤따라오는 기압골로 비가 오기도 한다. 간밤 저기압이 지나면서 우리 지역은 비가 내려 아침에도 개지 않은 화요일이다. 궂은 날씨와 무관하게 자연학교는 정상 등교다.
비가 소강상태를 보인 이른 아침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 도중에 내려 창원역에서 동읍 대산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부지런한 소시민들과 함께 소답동을 지나자 승차 인원이 늘어 뒤이어 탄 승객은 자리가 없어 서서 가야 했다. 나는 기점에서 탄 우선권으로 자리를 차지해 직장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도 어쩔 도리 없었다.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나면서 몇몇 승객이 교체되어 주남저수지를 비켜 동월을 지난 판신에서 내렸다. 출발지에서 참아준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을 펼쳐 썼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바짓단은 젖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차가 지나온 주남저수지 방향 들판과 둑을 바라보니 옅은 안개가 끼어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혀졌다. 빗속 우산을 받쳐 농로를 따라 동판저수지 둑으로 올랐다.
둑길 가장자리로 심어둔 백일홍은 지난여름 뙤약볕에도 알록달록 꽃송이를 펼쳤는데 가을이 이슥하도록 꽃잎을 보여준 녀석이 다수였다. 그 이름 ‘백일홍’답게 100일을 피우고도 날씨가 무더웠던 관계로 연장해 꽃을 피우는 듯했다. 그와 맞은편 목본으로 자라는 무궁화도 제 임무를 다했다. 여름부터 피고 지길 수없이 반복해 ‘무궁화’로 붙여진 꽃에서도 하얀 꽃송이가 여태 보였다.
저수지 내부에는 둥치가 수면에 잠긴 청청한 갯버들이 무성했다. 여름날 우아한 꽃송이를 펼쳐 보인 연들은 넓은 잎이 시든 채 계절감을 느끼게 했다. 논에서 연근을 캐려고 경작하는 연들도 이맘때 잎줄기는 시들어 지상부 영양분은 뿌리로 보내져 근육질을 불려 키워가는 듯했다. 주천강으로 물길을 보내는 배수문으로 가자 무점마을로 이어지는 코스모스 꽃길이 아득하게 펼쳐졌다.
당국에서는 무더위 속에도 코스모스 꽃길 조성을 잘했더랬다. 이십여 일 전 구월 하순 폭우에 연약하게 자란 잎줄기가 한꺼번에 쓰러져 안쓰러웠는데 일부는 다시 가닥을 추슬러 꽃잎을 달았다. 꽃씨 파종이 밀식이라 싹이 튼 후 솎아주기를 했더라면 튼실할 텐데 그렇지 못함이 유감이었다. 그러함에도 근동에서 입소문을 탄 코스모스 꽃길을 찾아 걸어본 이들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무점마을로 가질 않고 주천강 둑길을 따라 진영 방향으로 걸었다. 주천강은 창원 대산과 김해 진영을 나뉜 경계였다. 창원에 해당하는 북쪽 둑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되었으나 남쪽의 진영 좌곤리 구역은 지난봄부터 둑을 보강하고 포장하는 공사를 했는데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둑에서 바라보인 무점 앞 들판은 벼들이 익어 추수가 시작되어 비가 그치면 빈 논이 늘어날 듯했다.
주천강에 가로 놓인 좁다란 다리를 건너 남포에서 둑을 따라 걸으니 대산 들녘은 안개에 가려 시야가 흐렸다. 25호 국도 교통량을 분산시켜 남포교를 건너와 들판으로 지나는 포장도로는 아침 출근길 차량이 꼬리를 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진영 아파트단지가 드러났다. 남포 마을회관에서 천변 따라 상포로 향해 걸으니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들은 비를 맞아 무게감이 더 느껴졌다.
창고와 작은 공장이 들어선 천변에는 아침 일찍부터 작업이 시작된 일꾼들도 보였다. 상포에서 들길을 더 걸어 가술에 닿아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 잔 받아 손에 들고 마을도서관으로 향했다. 열람실로 드니 할머니들이 공부하는 한글 문해반 강좌는 쉬는 요일이었지만 아래층에서 노인대학이 열리는 날이라 트롯 가요 반주 소리가 들렸다. 조용헌의 ‘내공’을 펼쳐 아침나절을 보냈다. 24.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