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러가지로 참 '재미'있는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이변이 많아서 시상 내역 하나하나도 재미있었고,
또 수상자들의 갖가지 반전 발언과
그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을 보고 듣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이번 수상 결과를 예측하는 내기를
같은 팀 후배 기자들과 했습니다.
중요 부문 중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감독상을 맞추지 못했네요
아래에 올 아카데미 해설 기사를 붙입니다.
전 각각 대니얼 데이루이스, 크리스토퍼 워큰, 마틴 스코세지가
받을 줄 알았거든요.
그나저나 10개 부문에 오르고도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해
아카데미와의 악연을 계속 이어가게 된 스코세지의 불운에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폭력의 시대에
폭력을 '아메리카를 세운 손'(주제곡)으로 묘사한 듯한
영화의 내용에 아카데미가 부담을 느낀 걸까요.
마이클 무어가 "부시 대통령,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수상의 기쁨 대신 격렬한 정치적 비판의 말로
소감을 마감했을 때
객석에서 야유와 찬사가 동시에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몇해전 엘리아 카잔이 공로상을 받을 때가 떠오르더군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동료들을 밀고했던 전력을 가진 그가
공로상을 받자 객석의 닉 놀테를 비롯한 절반의 사람들은
팔짱을 낀 채 노골적으로 야유를 보냈고,
반면 캐시 베이츠를 비롯한 절반의 사람들은
기립박수로 열렬히 환호했지요.
예술가의 예술적인 공로와 그의 삶의 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걸까요...
아래에 제가 쓴 올 아카데미 해설 기사를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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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23일 저녁 (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시카고’가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상을 받았다.
화려한 춤과 노래가 넘쳐나는 이 뮤지컬이
전쟁의 포연 속에 열린 올 아카데미 시상식을 제패한 것은
어렵고 힘든 시대에
영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선언과도 같았다.
이날 여우주연상은 ‘디 아워스’의 니컬 키드먼,
남우주연상은 ‘피아니스트’의 애드리언 브로디에게 돌아갔다.
제75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라크전 발발의 여파로 식전 레드 카펫 행사가 취소되는 등
겉으로 보이는 진행은 어느 해보다 검소하고 차분했지만,
수상자들의 연이은 반전(反戰) 발언으로
속으로는 격렬히 내연(內燃)한 행사가 됐다.
그리고 한 작품이 독주하기보다는
여러 작품이 골고루 영광을 나눠가진 가운데,
부문별 수상 결과는 어느 때보다 이변이 많았다.
‘올리버’ 이후 34년만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뮤지컬 영화가 된 ‘시카고’는
여우조연상(캐서린 제타-존스) 편집상 의상상 음향상 미술상까지
6개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가장 치열한 격전장으로 손꼽혔던 여우주연상 부문에선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 역을 열연한
니컬 키드먼이 최후 승자가 됐다.
“데이빗 헤어(디 아워스의 시나리오 작가)가
수상 소감 대사를 써줬으면 좋겠는데”라며
흥분에 어쩔 줄 모르던 키드먼은
“러셀 크로우가 절대 울지 말라고 충고해줬는데
이렇게 울고 있네요”라면서
돌아서서 눈물을 닦고 감격을 만끽했다.
잭 니컬슨, 대니얼 데이-루이스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이변을 연출하며 남우주연상을 따낸
‘피아니스트’의 애드리언 브로디는
“수상 소감을 준비할 때마다 상을 타지 못하길래
오늘은 아무 준비도 안 했더니 좋은 결과가 찾아왔다”는 농담으로
벅찬 기쁨을 표현했다.
캐서린 제타-존스는 만삭의 몸으로
시상식 무대에 올라 직접 ‘시카고’의 주제곡까지 부른 끝에
여우조연상 수상에 성공했다.
아카데미는 또한 ‘피아니스트’의 로만 폴란스키에게
감독상을 안김으로써
그의 과거행적에 대한 예술적 면죄부를 주어 눈길을 끌었다.
13세 소녀 성폭행 사건으로
지난 78년 선고공판 직전 프랑스로 도주했던 폴란스키는
이후 25년 세월 동안 미국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폴란스키는 이번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청중들은 뜨거운 기립박수로 그의 수상을 축하했다.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그녀에게’로 각본상을 받은 것과,
랩스타 에미넴이
‘8 마일’의 주제곡 ‘루즈 유어셀프(Lose Yourself)’로
아카데미 최초의 힙합곡 수상 기록을 남기며
주제가상 트로피를 안은 것도 이변이었다.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갱스 오브 뉴욕’은
단 한 개의 트로피도 가져가지 못했다.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모두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줄리언 무어,
13번째 노미네이션 기록을 수립했던 메릴 스트립,
남자 배우로 최초의 4회 수상 대기록에 도전했던 잭 니컬슨은
모두 수상에 실패했다.
올 시상식은 수상자들의
격렬한 반전 메시지 표명으로 내내 뜨거웠다.
열렬한 반전주의자로 잘 알려진 마이클 무어는
컬럼바인고교 총기 난사사건을 다룬 ‘볼링 포 컬럼바인’으로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뒤
“우리는 허구의 선거 결과와
허구의 대통령을 낳은 세계에 살고 있다”며
시종 격렬한 연설 끝에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
부시 대통령, 부끄러운 줄 아시오”란 말로 소감을 마감해
야유와 환호를 동시에 끌어냈다.
제2차대전 중 유태인 학살을 소재로한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주연했던 애드리언 브로디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전쟁의 비인간적 면모를 절실히 깨달았다”며
“하나님을 믿든 알라를 믿든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하며,
이 전쟁이 하루빨리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감동적으로 호소할 때 반전 무드는 절정에 달했다.
니콜 키드먼은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와중에서 왜 시상식에 참석하느냐고 묻는다”고 한 뒤
“그 이유를 말한다면 예술이 중요하기 때문이며,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첫댓글 전 개인적으로 니콜 키드먼과 잭 니콜슨, 그리고 디 아워스의 감독을 꼽았는데 한개는 맞춘 셈이네요 (그러고 보니 본 영화가 딱 그거뿐이군..훔~) 시카고 보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