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풍
“우리 어머니 좀 버려주세요”
“우리 자식놈 좀 살려주셔요”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버려진 자
식도 찾는게 부모이거늘....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건만 자식
들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손주들을 어루만지고도 싶고 쌈
짓돈으로 양말 한 켤레 사탕 한 봉지 선물을 사 놓고 손꼽아 기다
려도 찾아오는 이 없었기에 기약 없는 약속만 기다리며 적막한 하
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엄마는
지난 날 사업 실패로 술로 세상을 살다 먼저 간 남편을 대신하며 고
된 한숨 내쉬면서 아들 둘을 악착
같이 키워냈습니다.
새벽녘부터 시장통에서 채소를 팔아 가면서 자식들 대학 보낸다
고 그 흔한 운동화 한번 사신기도 힘든 지난날을 더듬으며 남은 일
생마저도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게 살아가는 이유였기
에
비 온 하늘이든...
눈 온 하늘이든 ...
자식 위에서라면 못할 것이 없었
다 말합니다.
"엄마 제가 외국 여행 보내줄 게“
“난 큰 집 사줄 게“
말만 들어도 배부른 엄마는 여자
로서 몇 번을 죽고 나야 엄마가 되는 거라며 행복해하던 시간 너
머로 자식들이 이젠 결혼도 하구
이쁜 손녀들도 만들어 주었습니
다.
다들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만 봐
도 밥 먹은 것 같다며 땡볕 노점
에 앉아서도 입가에 웃음을 매달
고 있던 엄마가 평소처럼 새벽달 보고 나와 점심을 먹은 뒤 심한 복통에 시달려 119에 실려 응급
실로 가 버립니다.
“대장암“
세 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로 정든 집과 점포는 모두 병원비로 없어
져 버렸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버티며 완치 판
정을 받고 나니 갈 때가 없어 우
선 큰아들 집에서 거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이틀 한달 두달 시간이 흐르
고 나니 방을 같이 쓰는 손녀가 불편하다며 투정을 부려 대더니 일하고 들어 온 며느리까지 노인 냄새가 난다며 방향제를 들고 다
니면서 뿌려대기도 하는 모습에 몸 둘 곳 없는 엄마는
술에 쩌려 밤늦게 들어온 아들과 며느리의 언성이 대문을 넘기기
까지 하는 모습에 안절부절 몸둘 곳을 찾아 보지만
"당신만 아들이야?"
엄마의 마음은 가시방석이 따로 없는 것
집 안 청소며 빨래에 손녀 밥 챙
겨 먹이고 온갖 가사 일 다 하고
도 늘 아들 내외의 눈치를 밥보다 더 많이 먹고 사는 엄마의 마음 밭에는 앙상한 빈 가지만 남았습
니다.
오늘은 학교에서 돌아온 손녀가 다락방에 있는 자전거를 한사코 내려달라 보챕니다.
힘에 부친 자전거를 내리다 자전
거와 함께 낙상사고를 당하고 만 엄마가 깁스한 후 향한 곳은
<요양병원>
당분간 집안일이며 손녀에게 기
운 빼지 말고 푹 쉬면서 휴식을 취하라는 아들 내외는
병아리 눈물만큼 머물다 병실을 황급히 빠져나가 버리는데요.
며칠간은 집안일에 몸도 덜 부대
끼고 편한 날을 보내는 것 같아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
지만
한 달 두 달 몇 달이 되어가도 그
렇게 먼 거리도 아니건만 자식들
은 찾아오지 않는 시간 너머로
손주들도 어루만지고도 싶고
쌈짓돈으로 양말 한 켤레 사탕 한 봉지 손녀에게 줄 선물을 챙겨놓
고 손꼽아 기다려도 오질 않는 하
루를 내다보며
"새도 다람쥐도 앉았다가 가는데 ... "
기약 없는 약속을 기다리며 적막
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물 없
이 먹는 고구마보다 더 퍽퍽한 것 같은 엄마에겐
이젠 눈물도 말랐고 한숨도 멎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게 바로 고려장이구나“
옆에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단풍 진 가을이 사그라들 듯 말을 거듭
니다.
“현대판 황금 고려장이지 뭐유?“
해가 떴으니 져야 하고
낮이 있었으니 밤이 오는 게 당연
하지만
산다는 게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
고 하더니 자식에게 받은 서러움
을 마음의 빗장 열어 사랑으로 분칠하기가 부모라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길거리로 터미널로 내몰린 부모들도 많은데 그래도 우린 복이 라우“
엄마는 애써 발뒤축 세워보려
‘우리 아들은 사업을 하구유
며느리는 얼마나 착하다고요"
묻지도 않는 말을 해대면서 그런 자식들마저도 자랑스러워하시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쓸쓸하기도 참 슬프
기도 합니다.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가 밥은 잘 먹는지, 학대라도 당하지 않나
부모들이 수시로 확인도 하더구
먼. "
요양 시설에 입소한 부모는 잘 지내는지 자녀들은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다며
어느 노인의 푸념을 귓등으로 넘
기며 한숨으로 지은 밥에 두 숨으
로 반찬 얹어 먹고 나와 병원 옥
상 공원 긴 의자에 앉았습니다.
남의 집 자식들처럼 좋은 것으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했으면서
늙어서는 똥이나 싸고 헛소리나 하는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반쪽짜리 달이 어둠에 누워서
어딜 가던 눈치를 보는 게 일상
이 되어버린 엄마를 애달프게 비추어 주고 있는 밤을 지나
차가워진 세상의 어느 저녁을 따
라 병실로 자러 가는 엄마의 뒷모
습이 하얗게 지워진 아침
멀쑥한 걸음으로 병원을 찾아온 아들은
사업이 힘들어 못 왔다며 먼 산 보듯 엄마를 보며 말하더니 이것
저것 짐들을 챙겨 가방에 담습니
다.
"엄마 여기만 있으니 갑갑하지 ?
집으로 가자"
엄마도 이 병원에만 있는 게 창살 없는 감옥이었기에 식구들 얼굴 보며 도란도란 사는 게 행복이지 싶어 따라 나서지만
아들은 집으로 가질 않고 낯선 공
원으로 고삐를 끌고 가듯 엄마를 모시고 왔습니다.
“여긴 왜 왔어?
우리 이쁜 공주 학교에서 올 시간
인데 집으로 가지”
"응... 그게...
엄마랑 모처럼 소풍 나오니 좋네 김밥이라도 싸 올 걸 그랬나..."
녹색 푸르름에 도취한 엄마도
“그려 나도 오랜만에 우리 아들
이랑 오니깐 좋긴 하다”
아들을 잡은 엄마의 손에 물컹한 눈물이 잡힙니다.
「가서 엄마 좋아하는 식혜 사 올 게 구경하고 있어 금방 올게」
.......
시간이 흘러 저녁이 다 되어가도 아들은 오질 않습니다.
금방 온다며 기다리고 있으라는 아들의 말이 엄마의 폐부에 파고
듭니다.
사업이 힘들다더니 오죽해서 아들이 날 이런 곳에 ...
자식 팔자가 부모 팔자 라더니
아들이 어려워지니 엄마도 힘들
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추수려 보지만 엄마에게는 돌아갈 곳은 없습니다.
달이 적신 차가운 향기에 주저앉
아 있는 엄마에게 경찰이 다가옵
니다.
“할머니 집이 어디예요?
집 전화 아셔요"
"........"
"자녀분 핸드폰 번호는요?"
여러 차례 묻는 말에
"놀러 나왔는데 이제 집에 갈 걸유"
자신보다 큰 가방을 들고 바람 속으로 눈물을 감추듯 걸어 나온 엄마의 눈에 도로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습니다.
들것에 실려 응급차에 오르는 땅 바닥에 댕동댕이 쳐져 있는 식혜
를 보며
"아들“
틀림없는 아들이 분명했습니다.
"영규 아이가...?
우리 아들 영규야..... "
응급차가 가는 그 길을 신발이 벗겨진 것도 잊은 채 허공에 눈물 뿌리며 달려가는 엄마는 자식의 죽음 앞에 모든 걸 내던져도 아프
지 않은 게 엄마인 것 같습니다.
나무가 죽어도 나이테를 버리지 않듯 아픈 기억들이 걸어 나온 세월을 뒤로하고
검으나 희나 그래도 내 새끼라고.
버리고 갔다 다시 엄마가 있는 곳
으로 되돌아 가다 생긴 사고에 병마에 지친 며느리는 어린 손녀
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어도
엄마는 하루 낮과 밤을 팽개치며
아들의 수족이 되어주고 있었습
니다.
자식이란 바늘에 만 번을 찔려도 찔린 줄을 모르는 게
엄마 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