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지난 9일 경기 성남시 창곡천 수변 공원. 1925년생 이성우씨가 빨간색 사이클복 상의에 헬멧과 선글라스, 클릿 슈즈(바닥의 돌출부를 자전거 페달에 끼워 고정하는 자전거 전용 신발) 차림으로 바퀴 폭이 좁은 로드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내달렸다. 얼마 후 자전거에서 내린 그는 160㎝쯤 되는 키에 군살 없이 다부진 체격이었고 허리가 꼿꼿했다. 그가 현재 100세, 한 달 후면 101세라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이씨도 “사람들이 내 나이를 많아 봤자 80세로 본다”며 “병원이나 은행, 관공서 같은 곳에 가면 항상 ‘이성우씨 본인 맞으세요?’라고 물어본다”고 했다. 경찰 공무원 출신인 그는 요즘 경기도 안산과 성남에서 ‘두 집 살림’을 한다. 평일엔 가족들과 가까운 안산에서 오이도 바닷가 산책길을 걸으며 지내다가, 금요일 오후가 되면 수인분당선을 타고 성남 위례동 ‘자취방’으로 향한다. 그가 경찰에서 은퇴한 뒤 2021년까지 행정사로 일했던 동네다. ‘100세 라이더’ 이씨는 주말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사이클이라 불리는 로드 자전거를 타고 한강길을 따라 팔당댐과 경기 남양주까지, 때로는 탄천을 따라 아래로 경기 용인까지 하루에 왕복 40~50㎞를 내달린다.
설렁설렁 자전거 타고 동네 마실 나가는 모습을 상상했다면, 그렇지 않다. 오전에 출발해 목적지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것이 이씨의 ‘루틴’이다. 천천히 달리는 것도 아니다. 때때로 최고 시속 30㎞ 가까이 내고, 중간에 쉬지 않으면 40~50㎞를 2시간 안팎으로 달리는 페이스다. 자전거에 부착한 속도계를 보면서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달린다고 한다.
이씨는 “정신이 멍하고 몸이 찌뿌둥할 때 자전거를 타고 나가 달리면서 바람을 맞으면 머리가 아주 상쾌해진다”며 “이 세상이 다 내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라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난 이씨는 24세 때 경찰관이 됐다. 강력반 형사로서 흉악범을 체포하고 강원 산간에 숨어드는 공비를 잡아내는 일을 했다. 6·25 전쟁 때는 군에 편입돼 참전했다.
“우리는 총칼 들고 산에 올라가서 싸워야 했기 때문에 훈련이 아주 힘들었어. 그때 신체가 완전히 단련된 거지. 경찰 생활하면서 육상과 유도도 했어. 내가 유도 2단이야.” 그는 “달리기가 빨라서 다른 경찰관들이 놓치는 소매치기들을 내가 다 잡아들였다”며 “개처럼 뛰어가서 범인 잡아온다고 그때 내 별명이 ‘독구’였다”고 했다.
이씨는 “젊은 시절 다져 놓은 체력을 늙어서 조금씩 빼먹으면서 사는 것”이라며 “나는 다른 사람보다 그 (체력을 빼먹는) 속도가 좀 느린 것 같다”고 했다. 그가 활동하는 ‘한강 시니어 자전거 동호회’에선 이씨가 최고령 회원이고, 그다음이 90세라고 한다. 이씨는 “70세, 80세 동생들도 힘에 부치니까 MTB(산악자전거)에 전기 모터를 달아서 탄다”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로드 바이크를 고집하는데, 아들뻘 동생들을 다 따라잡는다”고 했다.
이씨가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건 80대 초반이었다. 그전까지 생활 체육으로 축구를 즐겼던 그는 격렬하게 뛰어다니는 게 더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하던 참에 한강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니어 동호회를 우연히 보게 됐다. “눈이 확 트인 기분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곧장 자전거 가게에 가서 36만원짜리 산악자전거를 사 타기 시작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장비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조금 타보니까, 어떤 사람은 1000만원짜리 자전거를 타더라고. 당장 너무 비싼 걸 살 순 없어서 대만제(制)를 105만원 주고 샀어. 그런데 또 시원치 않아. 다른 사람이 타던 이탈리아제 자전거를 중고로 사서 타다가, 3년 전에 지금 타는 자전거를 샀지. 정가는 900만원 넘는데 꽤 할인을 받았지. 지금까지 사이클에 얼마를 썼느냐고? 1000만원도 우습지 않을까.”
이씨는 65세에 경찰에서 퇴직하고 행정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4년 전까지도 현역이었다. 96세까지 일하고 100세에 사이클 자전거를 타는 것도 놀라운데, 특별한 지병 없이 건강하다. 청력이 떨어져 대화할 때 보청기 도움을 받는 정도다. 그는 “젊어서부터 매일 수만 자(字)를 읽고 썼다”며 “경찰관으로 일할 땐 사건 조사 기록을 매일 썼고, 행정사로 매일 온갖 서류를 작성했다. 지금은 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정독한다”고 했다.
아내와 사별한 지 10년. 혼자 밥 해 먹는 것도 척척이다. “어렵긴 뭐가 어려워. 쌀 씻어서 밥솥에 넣으면 되는 거고, 반찬은 반찬 가게에서 1만원어치 사 오면 며칠은 먹어. 고기도 한 근(600g) 사 오면 두세 번 구워 먹지.” 매일 아침 집으로 요구르트 배달을 받아 챙겨 먹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삶은 달걀을 한두 개씩 먹는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지 않을 때도 이씨는 몸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1~2시간씩 산책을 나가고, 집에서는 아령을 들거나 스트레칭을 한다. 100세 노인이 팔굽혀펴기도 10개씩 해낸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는다. 담배는 입에 댄 적도 없고, 술은 젊은 시절엔 사회생활하느라 마시긴 했지만 취하도록 마셔본 적은 없다고 한다. 세수할 때마다 로션을 늘 챙겨 바르면서 피부 관리도 한다.
이씨는 “늙었다고 늙은이 행세하면 진짜 늙는 것”이라며 “늘 내가 아직 젊다는 생각으로 산다”고 했다. 걸을 때도 의식적으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사이클복을 살 때도 화려한 색깔을 찾는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몸 상태가 조금만 안 좋아도 망설이지 않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이 나이에는 당장 크게 아프지 않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돼. 원인을 찾아내야지. 나는 가만히 안 두고 바로 병원에 가.”
‘젊게’ 살려고 스포츠 경기도 즐겨 본다고 한다. 종종 서울 잠실야구장에 가서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프로축구 K리그 경기도 본다. “딱히 응원하는 팀은 없어도 시간 날 때 가서 봤는데, 요즘 성남FC 성적이 시원찮아서 안 간 지 꽤 됐다”고 했다. 박지성이 뛰던 시절엔 서울월드컵경기장까지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보러 다녔고, 지금도 축구 A매치는 늦은 밤에도 TV로 꼬박꼬박 챙겨본다. 이씨는 지난 6일 진행된 2026 FIFA(국제축구연맹)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 결과도 꿰고 있었다. “(한국이)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랑 하는 거 맞지? 그 정도면 우리는 충분해. 그런데 유럽(플레이오프 D조) 네 팀 중에선 어디가 올라오려나?”
그의 ‘버킷 리스트’는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는 것이다. 2년 전 전남 여수·순천, 경북 포항·울진 등을 여행하면서 ‘이런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엄두를 내진 못했다고 한다. 이씨는 “아마 제대로 전국 일주를 하기는 이제 쉽지 않을 것”이라며 “차에 자전거를 싣고 목적지로 가서 자전거로 그 지역을 달리는 것만이라도 하고 싶은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4남매를 둔 그에게 자식들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혼자 가는 게 훨씬 자유롭고 좋다”며 “내가 스스로 몸 관리를 못 할 때가 되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혼자 다닐 능력이 되는데 뭣 하러 자식들이랑 다니겠느냐”고 했다.
이씨는 살아온 ‘100세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즐거운 시절이라고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욕심 같아선 20년만 더 살고 싶다”며 “지금처럼 웃고 즐기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걸 조금만 더 하고 싶다”고 했다. “80, 90세 된 사람들한테 다들 ‘100세까지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덕담하는데, 그 말에 숫자를 더 올려야 한다”며 “난 이제 100세인데 아직 죽기 아깝다. 아직 재미있는 게 많다”고 했다.
이씨는 70~80대 ‘인생 후배’들을 위한 건강 조언으로 “실천”을 꼽았다. “건강과 운동의 중요성은 모두가 다 알아. 그런데 다들 말만 한다고. 실천할 의지가 중요한 거야. 몸은 정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돼 있어. 일단 집 밖으로 나가서 무엇을 하든 몸을 움직여야 해. 그것부터 시작이야. 나는 말이야, 살살 달리더라도 죽는 날까지 이 사이클을 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