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이 시대의 큰 별이 졌다. 고난의 시절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깨달음과 희망을 주셨던 김동길 박사가 타계했다. 느닷없이 파고든 코로나 확진으로 6개월 넘는 투병 생활 끝에 결국 저 세상으로 황망히 떠나고 말았다. 그의 건강 체질과 생활 습관으로 보아, 100세는 거뜬히 넘길 줄 믿고 기대했지만, 모두에게 애석함을 남긴 채 훌훌 떠나고 말았다.(10월 4일, 향년 94세.)
안타깝게도 생신이었던 10월 2일에서 막 이틀 넘어가는 밤이었다. 예년 같았으면 장안의 명사들과 친구들을 신촌 자택으로 불러 모아, 냉면과 빈대떡으로 흥겨운 생일잔치를 벌였을 터인데 말이다. 장례식도 추모식도 치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난 그였지만, 아쉬움과 애석함을 못 견디는 이들이 곧바로 자택 옆 ‘김옥길 기념관’에 마련된 빈소로 모여들었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시신도 병원에 기부된 터라, 몰려드는 조문객을 맞느라 어렵게 마련된 빈소는 비좁고 단출하기 짝이 없었다. 타계 소식이 알려진 아침부터 각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 행렬이 줄을 이었지만, 유족들은 모든 조화와 조기를 돌려보냈다. 물론 조위금도 일체 사절이었다. 그저 활짝 웃는 인자한 얼굴의 소박한 영정에 하얀 국화로 단장된 제단이 다였다.
그의 별세를 기리려는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조문객을 접대하는 접객실도 없고, 단지 자택 앞마당에 임시 휴게실이 마련되어 차와 커피를 셀프로 서비스하고 있었다. 조문을 마친 손님들이 허전한 마음 달랠 길 없어 잠시 자리에 앉아 생전의 멋진 그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머물다 가기도 했다. 벽 한 쪽에 김박사의 환한 미소를 담은 조그만 액자 하나만 놓여있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TV프로 '낭만논객'의 사회자로 김박사의 마지막 임종을 지켜봤던 김동건 아나운서는 시종일관 침울한 표정으로 빈소를 오가며 자리를 지켰다. 정몽준 이사장(아산재단)은 허탈한 표정으로 선친(고 정주영 회장)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갑자기 떠나시니 마음이 영 쓸쓸하다’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전국의 명사들이 다 앉았다 간 자리지만, 유일한 한 사람 김동길 박사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가 한때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민의 부름을 받아 정계에 몸담았던지라, 정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정몽준 전 대표(한나라당)를 비롯, 이종찬 전 국정원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박철언 전 의원, 그리고 지난 대선 당시 후원회장을 맡아주었던 안철수 의원 등에 이어 ‘국민의힘’ 의원들이 줄줄이 조문을 마쳤다. 윤석열 대통령도 비서실장을 통해 조화를 보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주호영 원내총무와 권성동, 윤상현, 태영호 의원 등도 찾아 조의를 표했다.
특히 김 박사의 누이 김옥길(전 이대 총장) 기념관에 빈소를 마련한지라, 전 현직 이대 총장과 교수들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다.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를 비롯해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그가 창립한 '태평양시대위원회'를 이어 맡아온 강흥구 이사장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녀인 노재헌, 노소영 두 사람도 자리를 지켰다. 평소 김동길의 글과 말, 그리고 그의 소탈하면서 고상한 인품을 존경해온 애국 시민들의 발길도 끊어지지 않았다.
김동길, 그는 이 시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최고의 문장가요 달변가였다. 그의 글솜씨와 말솜씨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도 남았다. 짧고도 명쾌한 글, 그리고 해박한 지식에 유머와 논리를 섞어 청중을 사로잡는 명강연은 불후의 작품으로 한국사 '명예의 전당'에 영원히 남으리라. 한 마디로 김동길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전형으로 손색없는 한국의 큰 인물이었다. 그 마지막 시신까지도 아낌없이 주고간 거인 김동길, 그 이름 석자는 먼 후대까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과연 그를 따라 잡을 자 누구인가? 하지만 그가 남기고 간 삶의 발자취와 교훈을 따를 이들은 많으리라.
지난 겨울 김 박사는 매일 쓰던 자신의 칼럼에 <봄날은 간다>라는 글을 남겼다. “근래에 즐겨 듣고 보는 노래가 있는데 가수도 내 마음에 꼭 들어 하루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는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애잔한 노래이다. 원래는 50년대에 백설희라는 가수가 불렀다고 하는데, 내 마음에는 장사익이라는 소리꾼이 부른 노래가 마음에 진한 감동을 준다.”
바로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이 가을에 그는 떠났다. 김동길의 봄날도, 우리의 봄날도 따라갔다. 마지막으로 그 노래를 통해 이 시대의 거목 김동길, 그의 타계를 애도하며 삼가 명복을 빌고자 한다. 부디 평안한 쉼 누리소서...
봄날은 간다/장사익https://youtu.be/JjPGjdPNIuc
첫댓글 박사님 모습이 눈에선합니다. 천국에. 계시겠지요
아마 천국에서 꿈에 그리시던 어머님과 해후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김박사님이 세상을 떠나신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가네요..
삼가 고인을 다시 한 번 애도합니다..
힘차게 강의하던 모습 눈에 선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박사님 글솜씨와 말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요.
삼가 고인의 타계를 애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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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결혼도 하지않고 독신으로..
나비넥타이만 하시고...
기인입니다.정치판에 안들어갔으면 했는데...평생을 선비로 살았더라면...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셨지만 '영원한 자유인'이기도 하셨죠..
정치보다는 오히려 '유엔 사무총장'감이셨는데 너무 아쉽고..
나라 걱정은 대통령들보다 더 많이 하신 분..애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