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둔 텃밭으로
어제는 가을을 재촉할 비가 내리다 그친 시월이 한복판을 지나는 수요일이다. 자연학교 등굣길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아침 시조 시상을 떠올렸다. “여름날 시달렸던 폭염도 꿋꿋하게 / 그 이름 걸맞게도 백일을 피운 꽃이 / 가을이 이슥해져도 잎줄기는 살렸다 // 무더위 떠나보낼 비 내려 함초롬히 / 다시금 생기 찾아 연장전 펼쳐 보여 / 산책객 걸음 천천히 눈길 한 번 더 줬다”
앞 단락은 ‘가을비 백일홍’으로 어제 아침 걸었던 동판지 둑길에서 본 늦게까지 남은 백일홍꽃을 글감으로 삼아 율조로 다듬어 지기들에게 사진과 함께 날려 보냈다. 집을 나서면서 준비한 ‘황금빛 들녘에서’는 후일로 미루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른 아침 창원역 앞으로 나가 근교 들녘을 지나 강가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승객이 줄어 빈자리가 보여 기사도 의아해했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났다. 주남저수지에서 어제 내렸던 판신마을을 거쳐 들녘을 지나 가술 일반산업단지에서 승객이 내리자 혼자 남았다. 가술 국도를 달려 제1 수산교를 앞둔 주유소에서 내렸다. 아침에 가야 할 행선지로 대규모 비닐하우스에서 가꾸는 오이 농장을 찾아갈 셈이다. 농로로 드니 주택가 담장에 석류가 영글어 눈길을 끌었다.
지나간 여름부터 오이 농장에서 상품 포장 밀려나는 하품을 수집해 잘 활용하고 있다. 싱싱한 오이를 우리 집에서 찬으로 삼고 이웃이나 지기들에게도 보내 쓸모없다고 버려질 소중한 식자재의 낭비를 줄인 셈이다. 수확 후 포장 선별에서 상품성이 뒤진 오이라도 청정 수경재배라 먹는 데 아무런 이상 없었다. 배추나 시금치 가격이 고공 행진 중인 이즈음 대체재로 오이가 제격이다.
꽤 넓은 비닐하우스가 두 구역인데 한 구역은 수확을 마쳐 다음 작물을 심으려 준비 중이었다. 다른 한 곳은 아직 오이 넝쿨이 온전하게 남아 계속 따는 중이었다. 일손 지원은 베트남 청년들과 부녀들로 현지 숙소에서 머물며 모두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일했다. 농장주 내외 성품이 어질어 자상하게 잘 돌봐 줄 듯했다. 이방인인 나한테도 하품 오이를 아낌없이 챙겨가십사고 했다.
비닐하우스 바깥 수집 상자는 이번은 처진 오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한 봉지는 채울 수 있을 듯해 골라서 가려 봉지에 담으니 묵직했다. 우리 집에는 지난번 가져다 놓은 게 밀려 이웃 동 손 씨 할아버지 댁으로 보내면 될 듯했다. 연로한 분이 자동차 운전면허증도 반납해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갑갑하게 지내는데, 내가 보내는 오이를 즐겨 드신다는 후일담이 들려왔다.
오이 농장에서 가술까지는 꽤 긴 농로와 죽동천을 건너 국도변을 걸어야 한다. 십 리가 족히 되는 길을 걸어 가술 편의점에 오이 봉지를 맡겼다. 이후 마을도서관에서 보내는 일정을 바꾸었다. 월수금은 열람실이 한글 문해반 강좌 교실과 겹쳐 하루는 건너뛰고 들녘으로 만행 만보를 나서고 싶었다. 거리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 잔 받아 상포를 지나 주천강 건너 밀포로 향했다.
진영에서 수산으로 통하는 도로라 ‘진산로’로 명명된 거리를 지난 마을 곁 밭뙈기에 중년 부부가 고구마를 캐고 있었다. 토실한 고구마가 흙빛보다 더 붉고 고와 보여 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니 주인장이 더 가까이 와 찍으십사고 권했다. 다가간 김에 부산물인 고구마 잎줄기를 따가자니 흔쾌히 응해주어 허리를 굽혀 주섬주섬 따 모았다. 난 손이 재발라 순식간에 한 봉지 마련했다.
주인장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배낭을 추슬러 진영 근처 아울렛 상가 거리로 진출했다. 근처 회사원들을 고객으로 삼는 한식 뷔페는 이제 막 상차림을 마쳐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시금치나물과 숙주나물을 접시에 담고 삶은 계란과 국수도 한 사리 먹었다. 식당을 나와 국도변 마을 안길을 걸어 가술에 닿아 행정복지센터 공원에서 느긋하게 쉬다가 오후에 맡겨진 과제를 수행하고 왔다. 24.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