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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찻집(자유게시판) 스크랩 계사탐매 ② 대영박물관의 청화백자세한삼우도화병
눌인 양도영 추천 0 조회 197 13.02.13 22: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계사탐매 ② 대영박물관의 청화백자세한삼우도화병

 

청화백자세한삼우도화병(靑華白磁歲寒三友圖花甁)의 매화

 

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The British Museum) <33전시실(Room33)> 즉‘중국?남아시아?동남아시아관’에서 찾은 또 하나 매화 관련 유물로는 청화백자세한삼우도화병(靑華白磁歲寒三友圖花甁)이다. 유물 앞에는‘Large porcelain altar vase painted in cobalt-blue with the "Three Friends of winter"’라는 긴 이름이 붙어 있다. 하부에 선덕(宣德)이라는 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명(明) 선종(宣宗) 선덕제(宣德帝;1425~1435)때 유물로 보인다.

 

청화백자세한삼우도화병(靑華白磁歲寒三友圖花甁)

 

세한삼우(歲寒三友;three friends of cold season)에 관한 유래는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흔히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매화 즉 송죽매(松竹梅)를 일컫는다. 선비들이 삭풍(朔風)과 눈비(雪雨), 엄동의 추위를 꿋꿋이 견뎌내고, 잔설이 남아 있는 이른 봄에 남 먼저 꽃을 피우므로 그 기상과 절조를 높이 사고 그 지조와 절개를 본받고자 하였기에 이 식물들을 좋아하였던 것이다. 화제(畵題)로 많이 사용되는 이들을 그린 것을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라고 한다. ‘삼우도(三友圖)’ 또는 삼청도‘(三淸圖)’라고도 한다.

 

세한삼우도가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부터 그려져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그림이 남아 있는 예는 조맹견(趙孟堅;1199~1264/南宋)의 세한삼우도를 비롯하여 명대 문인화가들의 작품들 뿐이다. 조맹견의 작품은 타이완의 국립 고궁박물관(台彎國立故宮博物院)에 보관되어 있다.

宋 趙孟堅 歲寒三友 冊 紙本 水墨? 32.2x53.4cm

 

명말청초(明末?初) 지금의 남경(南京)인 금릉(金陵)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8명의 화가를 '금릉팔가(金陵八家)' 또는 ‘금릉화파(金陵?派)’라 부른다. 번기(樊圻)·공현(?賢)·고잠(高岑)·사손(謝蓀)·섭흔(葉欣)·오굉(吳宏)·추철(鄒喆)·호조(胡造)가 그들 8명이다. <참고문헌 劉鵬飛. 「?初金陵八家的藝術淺析(上)」.『藝術市場,2007(3)』:66-67.>

 

이들 중 번기(樊圻)가 그린 그림에 공현(?賢)의 제시(題詩)가 함께 있는 <세한삼우도>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別有歲寒友 丹鉛香色分 별유세한우 단연향색분

山中雖寂寞 獨賴此三君 산중수적막 독뢰차삼군

 

공현(?賢)의 쓴 단연(丹鉛)이란 말은 단사(丹砂)와 연분(鉛粉), 곧 연지와 분, 즉 향기를 말한다. 이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 또 다른 세한삼우 있으니 그림에 향기와 색을 모두 담았네

산속은 비록 적막하나 오로지 이 세 군자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네

 

번기(樊圻)가 그린 그림에 공현(?賢)의 시(詩)가 있는 <세한삼우도>

 

명대에서는 문인화나 수묵화 뿐 아니라 도자기에 세한삼우도가 자주 등장한다. 이 경향은 일본에도 전해져 도자기 뿐 아니라 칠기, 직조나 날염에도 도안으로 채택된다. 여아절(女兒節) 인형 등의 장식이나 혼례 등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학과 거북이 등과 함께 이 문양이 많이 채택된다.

 

지금도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세한삼우도를 간혹 만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중국 주자자오진[朱家角鎭]에 있는 마원칭[馬文卿]의 개인 정원인 과식원(?植?, 커지위안) 즉 마가화원(馬家花園)의 회랑 벽에 걸린 그림이다.

마가화원(馬家花園)의 회랑 벽에 걸린 세한삼우도

마가화원(馬家花園)의 세한삼우도

 

한국에서는 조맹견보다 빠른 시기의 세한삼우도가 발견되었다. 북한 당국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877년 1월 31일 ~ 943년 7월 4일)의 능, 즉 현릉(顯陵)을 발굴 보수할 때 발견한 것이다. 이 벽화는 남북한의 세한삼우도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것으로 동양회화사 연구에서 매우 귀중한 것으로 일찍이 세한삼우가 그림으로 표현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왕의 능에 그려졌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을 더하며 세한삼우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알려준다.

 

왕건의 능을 발굴 보수할 때 발견한 세한삼우도

 

고려 승려 해애(海崖)의 세한삼우도는 현존하는 작품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일본 교토 묘만지(妙滿寺) 소장품으로 비단에 먹으로 그린 그림이다. 서울 서문당(瑞文堂)에서 1974년 발간한 이동주(李東洲)의『일본(日本)속의 한화(韓?)』에 그림이 소개되어 있다. 겨울날 키 큰 소나무 두 그루를 중심으로 양 옆에 매화와 대나무가 꿋꿋한 모습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제시(題詩)가 함께 있어 세한삼우도 라는 독립된 화제를 명확히 제시해 주었다. 이 묘만지(妙滿寺)에서는 단아한 색채와 치밀한 묘사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13세기의 고려 시대의 불화 '미륵대성불경변상도(彌勒大成佛經變相圖)'등 우리의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 여하튼 해애의 세한삼우도는 많지 않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화적으로 세한삼우가 고려시대에 그만큼 비중 있게 다루어 졌음을 짐작케 한다.

 

고려 승려 해애(海崖)의 세한삼우도

 

송·죽·매가 한 폭에 그려진 세한삼우도가 조선시대 일반회화에 남아있는 예가 많지 않다. 그러나 계회도(契會圖)를 통해 그 면면은 이어지고 있었다. 조선 초기에는 계회장면이 있는 산수도(山水圖) 중앙에 소나무가 서있고 좌우에 대나무와 매화를 그려 세한삼우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선 중기 이후의 계회도 중에는 송·죽·매가 아니라 군자를 상징하는 다른 식물을 임의로 배치하여 계회의 뜻을 더하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산수화 형식을 띠는 세한도가 많지는 않으나 19세기 권돈인의 <세한도>에서는 소나무와 대나무, 바위를 그리고 제시를 써 세한삼우를 그린 뜻을 보여주었다. 또 권돈인과 절친한 사이였던 김정희는 불멸의 작품 <세한도>를 남기는데, 이들의 <세한도>에서는 송·죽·매에 국한되지 않고 비슷한 상징성을 지닌 다른 사물을 함께 그리면서도 그 정신만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추사의 세한도 - 제주 추사관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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